81화 스승과 제자 02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루덴입니다.”
“루덴은 이번 시즌 아주 좋습니다. 현재 21홈런에 7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면 90타점까지도 가능해 보입니다.”
루덴은 조금 특이한 유형의 타자였다.
그는 테이블 세터인 2번과 클린업인 3번을 함께 소화할 수 있었다.
김민은 루덴이 포장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잘 포장한다면 공수주를 모두 갖춘 5툴 플레이어, 나쁘게 말한다면 특별한 장점이 하나도 없는 선수. 오늘 경기는 어느 쪽일지 모르겠군.’
그는 초구로 바깥쪽 패스트볼을 던졌다.
슉!
루덴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빠지는 이 공을 참아냈다.
“초구는 볼이군요.”
“루덴의 선구안은 확실합니다.”
김민은 루덴이 초구를 참아내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구안, 언제든 20도루를 할 수 있는 빠른 발. 테이블 세터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루덴은 테이블 세터로서 가장 중요한 출루율이 부족한 선수였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선구안이 좋은데 어떻게 출루율이 나쁘단 말인가?
김민은 그 답을 다음 공으로 보여 주었다.
슉!
빠른 공이 한가운데에서 살짝 떨어졌다.
‘스플리터?’
스트라이크에 들어오는 공이었지만, 루덴이 원하던 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바깥쪽 공을 밀어치고자 하던 참이었다.
‘지금 배트를 내밀면 가운데가 아니라 손잡이 쪽에 맞게 될 거야.’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존에 들어오는 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스트라이크를 서서 당하는 건 말이 안 돼.’
루덴은 가능한 빠르게 배트를 움직였다.
탁!
배트 아래쪽에 맞은 공이 유격수 쪽으로 흘렀다.
‘쳇, 있는 힘을 다해 당겼건만,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루덴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 사이 록튼이 마스크를 벗고 일어나 유격수 유칼리스에게 콜을 했다.
“유칼리스!”
유칼리스는 공을 향해 달려드는 적극적인 수비를 펼치고 있었다.
‘록튼, 난 이미 달리고 있다고.’
그는 유려한 동작으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유칼리스 1루에 송구! 아웃! 아웃입니다!”
“이건 루덴이 너무 성급했군요.”
탐욕.
루덴이 좋은 선구안을 가지고도 높은 출루율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는 삼진을 많이 당하지 않는 타자였지만, 볼넷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또 루덴의 나쁜 버릇이 나왔군.”
“칠 수 없는 공은 그냥 보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루덴은 다 치려고 한다니까.”
“저걸 두고 스트라이크 병이라고 하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은 놓치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좋은 타격 습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높이와 속도 그리고 무브먼트가 각기 다른 공을 단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타격한다면 좋은 결과를 내기 힘들었다.
“킴,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공 3개로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았군요. 대단히 효율적인 투구입니다. 하지만 이번 타자는 아무리 킴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것은 토론토의 슈퍼스타 소리아였다.
카펜터는 소리아야 말로 김민을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고 믿고 있었다.
“킴에게 첫 번째 시련이 도래했군.”
마블 감독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루덴과 소리아는 하늘과 땅 차이지. 킴이란 친구가 소리아를 상대로 얼마나 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김민은 사인을 내기 전 소리아의 타격 위치를 살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어.’
어설픈 페이크는 넣지 않겠다는 뜻.
‘정면 승부는 위험하고, 초구는 살짝 미끄러지는 게 좋겠지.’
김민이 사인을 내자 록튼이 재빨리 시프트를 옮겼다.
“탬파베이의 적극적인 시프트가 나왔습니다!”
“이건 안쪽 공을 넣겠다는 뜻인데요. 소리아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습니다.”
소리아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내야 수비수들을 보고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직 김민이 던질 패스트볼이었다.
‘자, 와라.’
슉!
빠른 공이 안쪽을 파고들었다.
‘패스트볼? 아니야. 이건…….’
그는 배트를 내미는 동시에 무릎을 살짝 굽혔다.
록튼은 소리아의 자세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스플리터를 읽었어!’
안쪽에서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보통 타자였다면 2루수 땅볼이나 1루 라인 근처에 떨어지는 파울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아는 달랐다. 그는 그 공을 치기 위해서 배트가 아닌 몸을 움직였다.
‘이 타이밍이군.’
따악!
하늘 높이 떠오른 타구.
김민은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머레이가 잡을 수 없는 타구야.’
그가 바랄 수 있는 건 공이 펜스를 넘어가지 않는 것뿐이었다.
“큽니다! 큽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중견수 머레이는 있는 힘을 다해서 뛰었다.
‘제길, 엄청난 타구네.’
센터로 날아간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때렸다.
탁!
김민에게는 천만다행인 상황이었다.
“펜스에 맞고 떨어지는 공을 머레이가 처리합니다!”
머레이는 있는 힘을 다해 2루에 공을 던졌지만, 소리아의 2루 입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리아, 넉넉하게 2루 베이스를 밟습니다. 펜스 직격 2루타!”
“역시 소리아군요. 대단한 타자입니다.”
김민은 초구에 2루타를 맞고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소리아가 좋은 타자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방금 그 타격은 단순히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야.’
떨어지는 공을 치기 위해 무릎을 굽힌 임기응변은 높이 평가해줄만 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받쳐 준 스윙 스피드는 인간의 그것이라고 믿기 힘든 정도였다.
‘스테로이드가 다시 날 힘들게 하는군.’
모두의 찬사를 받는 슈퍼스타 소리아.
그의 뒤에는 약물이라는 악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토론토의 영웅이 스코어링 포지션에 나갔습니다.”
“다음은 4번 타자 카이엔입니다. 킴이 어떤 공으로 카이엔을 막아낼지 궁금하군요.”
카이엔은 3번과 5번 양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소리아의 다운그레이드 버전 같은 선수였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탁!
날카로운 타구가 1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김민은 파울 타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정상적인 타구야.’
그가 카이엔에게 던진 공은 소리아에게 던졌던 바로 그 스플리터였다.
‘카이엔의 어깨와 근육은 소리아와 달리 부풀어 오르지 않았어. 한마디로 카이엔은 약을 하지 않고도 클린업을 친다는 뜻이야. 실제 실력은 아마 이쪽이 더 위겠지.’
김민은 카이엔이 스테로이드를 했다면 소리아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버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조 파업으로 위축된 리그, 마이클 조던을 앞세워 추격해 오는 NBA, 메이저리그가 여러모로 위기였던 것은 알지만…… 스테로이드를 퍼트린 건 악마와 계약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는 약물의 시대를 순수 실력으로 해쳐나갔던 투수들에게 다시 한번 존경을 표했다.
“킴, 카운트 2-2에서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김민이 승부구로 던진 공은 바깥쪽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였다.
카이엔은 이 공을 그대로 받아쳤다.
딱!
경쾌한 타격음.
그러나 김민은 승리를 자신했다.
‘좋은 타구야. 하지만 펜스를 넘기에는 각도가 너무 낮아.’
떨어지는 공을 결대로 밀어 친 타구.
일반적인 수비 포메이션이라면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가르는 2루타.
하지만 탬파베이의 수비 시프트는 타구의 방향을 읽은 듯 왼쪽으로 움직여 있었다.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중견수 품에 안깁니다. 중견수 라인드라이브! 중견수가 어떻게 저 자리에 서 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탬파베이가 자랑하는 수비 시프트입니다. 탬파베이가 토론토의 턱 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시프트의 효과 덕분입니다.”
김민은 카이엔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이닝을 마쳤다.
“나이스 피칭!”
“킴의 운영은 언제나 대단하다니까.”
“칭찬은 적당히 해 줘. 이번 회는 실점 위기였다고.”
카펜터는 마운드를 내려가는 김민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소리아를 1번에 놓았다면 무사 2루. 루덴의 타격 때, 2루 주자가 3루로 갈 수 있었으니, 1사 3루. 그리고 지금 이 타구가 나왔다면…….’
장타 하나와 희생타 2개를 묶어서 1득점.
카펜터는 김민을 상대로 선취점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블 감독은 소리아를 3번에 기용했고, 김민은 실점 없이 1회를 마칠 수 있었다.
“킴은 킴이고, 이젠 내가 막을 차례군.”
카펜터가 글러브를 든 채 마운드로 향했다.
2회 초.
“2루수, 좋은 수비를 보여 줍니다.”
탬파베이는 4, 5, 6번이 나란히 내야 땅볼을 기록하며 힘없이 물러났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타자들은 내야 땅볼이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카펜터 말이야. 어려운 공은 아닌 것 같았는데 타구 질이 좋지 않아.”
“그건 히팅 포인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안데르센의 지적에 머레이가 말끝을 올렸다.
“그런 넌 왜 유격수 땅볼이야?”
“패스트볼인 줄 알고 당겼는데 커터였거든.”
“넌 볼 배합에 속은 거네.”
“그런 셈이지.”
김민은 1회와 2회를 보면서 카펜터가 어떤 투수인지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
‘카펜터는 타자들이 좋아하는 코스에 정확히 공을 꽂아 넣고 있어. 하나쯤 빠지거나 살짝 움직이는 공으로 말이지. 이건…… 타자들을 상세하게 분석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투구야.’
타자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볼 배합으로 상대를 유인한다.
카펜터의 볼 배합은 김민의 볼 배합과 대전제가 같았다.
‘스승과 제자. 같은 것은 투구폼만이 아니군.’
김민은 마운드를 내려가는 카펜터의 뒷모습에서 여유를 느꼈다.
‘우리 팀에 빅뱃(강타자)이 없기 때문인가? 마운드를 내려가는 모습에 여유가 느껴져. 악마와 계약한 본즈나 소리아가 우리 팀이었다면 저런 여유가 없었을 텐데 말이야.’
탬파베이 타선은 그렉스를 제외하곤 약물 경험이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메이저리그 최악의 장타력을 자랑했다.
“킴, 수비야.”
록튼의 말에 김민이 글러브를 들었다.
“이것 참…… 쉴 틈이 없군.”
“어쩔 수 없잖아. 땅볼만 3개인데.”
록튼은 김민을 다독이며 그라운드로 향했다.
2회 말.
김민은 카펜터와 똑같이 땅볼 3개로 토론토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킴! 5, 6, 7번을 상대로 연속 그라운드볼입니다!”
“오늘 킴의 스플리터 제구가 상당하군요. 소리아에게 2루타를 맞은 것을 제외하곤 실투가 없습니다.”
카펜터는 단 3분 만에 끝난 공격에 혀를 찼다.
“광고를 틀 시간도 주지 않는 공격인가? 우리 팀답지 않군.”
그는 김민이 뛰어난 투수이긴 하지만 너무 빨리 공격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마블 감독도 이번에는 타자들의 성급함에 화를 냈다.
“뻔히 보이는 볼에 손이 나가고 있어!”
그는 조금 더 타자들이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살짝 카펜터를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당했던 걸 그대로 돌려주는 거라고.’
2회 나온 땅볼 3개는 우연이 아니었다.
김민은 카펜터의 휴식시간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인 투구를 펼쳐 보였다.
3회에도 양 팀 투수들의 호투가 이어졌다.
“카펜터는 연속 9명을 범타 처리하고 있어.”
“공이 배트에 맞는데 안타가 나오지 않다니, 신기한 일이군.”
“킴은 어떻고? 삼진이 겨우 1개인데 무실점이야.”
“그래도 킴은 소리아에게 2루타를 맞았잖아.”
김민은 투수전이 오래 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펜터의 운영은 쉽게 흔들리지 않아. 인간을 넘어선 본즈나 소사 같은 타자가 나오지 않는 한 득점 기회를 만들기 힘들 거야.’
카펜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소리아 앞에 좋은 찬스가 나지 않는 한 킴의 무실점은 계속될 거야. 아마 승부가 나는 것은 경기 후반이겠지.’
그는 두 선발 투수의 체력이 오늘 경기의 승패를 가를 열쇠라고 생각했다.
4회 초.
예상하지 못했던 선취점이 나왔다.
“카를로스! 홈으로 내달립니다! 공도 홈으로 옵니다! 세이프인가? 아웃인가?”
2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카를로스.
그는 초구 도루에 성공해 상황을 무사 2루로 만들어 버렸다.
이윽고 이어진 2개의 희생타.
‘안타 하나 없이 실점인가?’
카펜터는 1회 자신이 바랐던 상황을 역으로 당하고 있었다.
“세이프! 카를로스! 빠른 발을 이용해 득점을 올립니다!”
안타 하나 없이 실책 1개와 도루 1개 그리고 희생타 2개를 묶어서 선취득점.
“탬파베이! 뛰는 야구를 성공시켰습니다. 4회 초 선취득점에 성공합니다!”
“요즘 탬파베이 야구를 보면 독특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거포와 강속구 투수가 아닌 수비 조직력과 주루로 승부하는 야구.
혹자는 탬파베이 야구를 스몰볼이라 부르기도 했다.
카펜터는 기분 나쁜 선취점을 내줬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침착한 투구로 머레이를 잡아냈다.
“카펜터, 5번 타자 머레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면 머레이의 삼진은 오늘 카펜터가 잡은 첫 삼진입니다.”
카펜터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해리스 투수 코치가 수건을 내밀었다.
“크리스, 수고했네.”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실수는 무슨…… 실책을 저지른 것은 2루수 루덴이야.”
카펜터는 고개를 흔들었다.
“기록은 루덴의 실책이지만, 타구 속도가 상당히 빨랐습니다. 스카이돔에서 빠른 타구는 실책이 나오기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카이돔은 마운드를 제외하곤 모든 곳에 인조 잔디가 깔려 있는 특이한 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투수가 타구 속도까지 조절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리스 코치는 타구 방향은 몰라도 속도는 투수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펜터는 뛰어난 운영 능력을 지닌 투수라면 그것마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공이 배트에 닿는 히팅 포인트를 조절함으로써 타구속도를 늦출 수 있어.’
김민이 카펜터의 생각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욕심이 과하다.
그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기 전 10년 이상을 투수 코치로 활약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욕심이 얼마나 큰 독이 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투수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
물론 완벽한 투구를 추구하는 투수라면 김민의 가르침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4회 말.
“킴, 첫 타자를 중견수 플라이로 가볍게 처리합니다.”
“루덴은 오늘 그라운드 볼과 플라이로 두 타석을 끝내는군요.”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
김민은 소리아와 다시 마주쳤다.
‘소사와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는 초구부터 상대의 허를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소리아는 높은 곳에서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커브를 그냥 흘려보냈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공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좋아.’
카펜터는 김민의 초구 커브를 보곤 미간을 좁혔다.
“드디어 나왔군.”
“드디어라니?”
동료의 물음에 카펜터가 대답했다.
“킴의 커브는 씨크릿 웨펀이라고. 많이 던지진 않지만 제구와 타이밍이 좋아.”
김민은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소리아는 자신이 원하는 공과 전혀 다른 공만 던지는 김민에게 미간을 좁혔다.
‘명색이 에이스인데, 도망만 치는군.’
그는 하나 정도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김민의 패스트볼이 안쪽을 깊이 찔러왔다.
‘패스트볼?’
소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하나 지켜보려 했는데 바로 찬스볼이 들어오는군.’
그는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고 해도 초인적인 배트 스피드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공이 떠오르면서 배트는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소리아는 물론 카펜터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삼진이었다.
“킴! 소리아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전광판의 구속이 94마일(151km)까지 나왔군요. 오늘 최고구속입니다.”
소리아는 삼진을 당한 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공은 강속구 투수나 던질 수 있는 공이었어. 어떻게 저런 꼬맹이가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거야?’
카펜터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보곤 혀를 찼다.
“브리핑 때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군. 킴의 주무기 중 하나가 바로 떠오르는 공,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해리스 투수 코치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보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실제로 보니, 더 훌륭한 무브먼트야. 방금 공은 94마일(151km)이 아니라 100마일(161km)처럼 보였어.”
그는 카펜터도 좋은 투수지만, 김민이 한수 위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