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69화 (69/296)

69화 첫 번째 올스타 03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가장 먼저 포사다가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피칭. 킴이 해 줄 줄 알았어.”

김민이 그와 주먹을 마주치며 말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뭘 어떻게 던졌는지도 모르겠어.”

옆에 앉아 있던 데릭 지터가 김민을 향해 말했다.

“원래 첫 번째 올스타전은 다 그래.”

데릭 지터는 아직 양키스의 캡틴 자리를 물려받기 전이었지만, 대스타의 여유가 넘쳤다.

‘데릭 지터, 지난 월드시리즈 MVP, 여유가 있는 게 당연해.’

김민은 자리에 앉은 후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단 1이닝만을 던졌는데 땀이 이렇게까지 난 건가?’

그는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올스타전은 아직도 한참이었다.

“나이스 배팅!”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주자가 1루에 출루했다.

“올해도 우리가 이길 것 같은데?”

지터의 물음에 포사다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의 마운드.

배리 본즈와 새미 소사가 이끄는 타선.

라인업만 보면 내셔널 리그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조금씩 아메리칸 리그로 기울고 있었다.

“킴, 정말 멋진 투구였어.”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또 다른 전설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김민은 TV에서만 봤던 리베라가 말을 걸자 살짝 놀랐다.

“아, 고마워.”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클로저였다. 그는 경기 중간이 아닌 9회 등판이 예정되어 있는지 불펜이 아닌 더그아웃에 머무르고 있었다.

“킴, 겁 없이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가던데 맞아도 좋다는 생각이었나?”

“그것보다는…… 맞아도 뒤에 선 야수들이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

김민의 대답에 리베라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 올스타전을 제대로 이하고 있군.”

최고의 야수들을 믿고 던진다.

아니, 최고의 야수들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김민의 투구를 이렇게 이해했다.

“솔직히 삼진을 잡으려고 던진 공은 딱 하나뿐이었어. 나머지는 운이 좋았지.”

“원래 삼진이라는 건 그런 거야. 삼진 그 자체에 목적을 두다가는 안타 맞기 딱 좋지.”

두 사람은 제법 죽이 잘 맞았다.

“영어가 꽤 익숙한데?”

“마이너리그에서 조금 오래 있었거든.”

김민의 말에 리베라가 놀라 말했다.

“10대 때 입단한 건가? 그렇게 오래 있었던 걸로는 안 보이는데.”

과거 김민은 7년 동안 마이너리그에 있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딱 2년뿐이었다.

김민은 리베라가 그의 나이를 지적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비슷해.”

잠시 뒤, 투수 코치가 다가와 김민을 향해 말했다.

“킴, 다음 이닝은 어려울 것 같네.”

3연속 삼진을 잡았기 때문에 다음 이닝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민은 다음 이닝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던졌던 한 이닝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그런가?”

“올스타전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으니까요.”

리베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깝네. 삼진을 2개 정도 더 잡으면 올스타전 MVP에 도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자 지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보통 올스타전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 시즌은 칼에게 양보하자고.”

200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전설 칼 립켄 주니어의 마지막 올스타 게임이기도 했다.

3회 홈런을 친 칼 립켄 주니어는 아메리칸 리그가 승리할 시 유력한 MVP 후보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터 뒤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

그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배리 본즈와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실력자였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MVP는 정당한 경쟁을 통해 얻어야 하는 거야. 킴, 그렇지 않나?”

뒤쪽에서 나타난 사람은 대화의 주인공인 칼 립켄 주니어였다.

“아, 칼.”

“다 들었어요?”

로드리게스의 물음에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 친구, 다음에는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MVP를 따내라고.”

올스타전 선발에 오른다는 것은 투수 부분 최다 득표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었다.

“1대150의 싸움, 그것도 괜찮지.”

포사다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선발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는 것은 다른 포지션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야수나 외야수는 해당 포지션의 주전 선수 14명과 경쟁하지만, 투수는 전체 투수들과 경쟁해야 했다.

포사다가 1대150이라고 말한 것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가 대략 150명 정도 되기 때문이었다.

“내년에는 그렇게 해 보이겠습니다.”

칼 립켄 주니어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로 그런 자세야.”

이날 경기는 결국 아메리칸 리그의 승리로 돌아갔다.

“올스타전 MVP는 칼 립켄 주니어입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한마디에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MVP! MVP! MVP!”

더그아웃에 선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MVP! MVP!”

김민은 칼 립켄 주니어의 수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전설의 퇴장인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올스타전에 발을 내딛기 전까지 그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목표를 다시 설정했다.

- 메이저리그의 전설.

단순한 스타가 아닌 역사에 이름과 등번호를 남기는 존재.

김민은 그러한 존재가 되면 앞에 목표했던 것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스타전에 오길 잘했어.’

그의 머릿속에서 컨디션 관리 같은 것은 까맣게 잊히고 말았다.

* * *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김민은 자신의 투구를 되돌아보았다.

‘세 타자 연속 삼진. 수비를 믿고 던졌기에 가능했던 일일까?’

트로피카나 필드에서는 등 뒤에 서 있는 야수들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트로피나카 필드의 넓은 외야뿐이었다.

그러나 올스타전에서는 달랐다.

웬만한 타구는 모두 잡아 줄 것 같은 철옹성이 그의 뒤에 위치했다.

‘수비를 믿고 던진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었나?’

김민은 코치 시절 수비를 믿고 던지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마운드에 서니, 그것이 쉽지 않았다.

3루수 안데르센은 몇 경기 당 하나씩 실책을 저질렀고, 2루수 칼튼은 불규칙 바운드에 약점을 드러내곤 했다.

‘지금부터라도 야수들을 믿고 던져야 해.’

2001년 올스타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그를 한 단계 성장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 * *

“킴, 돌아왔군.”

“시애틀은 어땠어?”

김민이 라커룸에 가방을 밀어 넣으면서 머레이의 물음에 답했다.

“어떻긴, 시애틀 한두 번 가 보는 거 아니잖아.”

“그냥 시애틀 말고, 올스타전 말이야. 3연속 삼진, 해설자가 놀라던데?”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안데르센이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물었다.

“소문에 따르면 타자의 생각을 읽는다고 하던데 괜한 소리였나?”

“그걸 내가 어떻게 읽어. 독심술사도 아니고.”

올스타전 이후, 내셔널 리그 팬들은 김민을 운영의 마술사가 아닌 독심술사라 불렀다.

“팬들이 알면 실망하겠는걸?”

“실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사실이니까.”

올스타전 브레이크를 마친 탬파베이는 텍사스와 3연전에 들어갔다.

이반 감독은 후반기 첫 상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심 타선만 잘 묶는다면 스윕도 가능해.”

텍사스는 탬파베이가 스윕을 언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였다.

물론 텍사스도 탬파베이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르스가 잘 버텨 준다면 가능할 겁니다.”

후반기 첫 경기 선발은 1선발인 부르스.

탬파베이의 선발 로테이션은 변화 대신 안정을 선택했다.

부르스, 렉터, 김민, 클락, 터커.

5인 선발 로테이션은 전반기와 같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비롯한 텍사스 선수들은 탬파베이를 해 볼 만한 팀으로 생각했다.

“꼴찌에서 벗어났어도 탬파는 탬파지.”

“이번 시리즈를 스윕하면 엔젤스와 몇 경기 차이지?”

“그래도 3경기는 날걸?”

“그렇게나 차이가 나는 건가? 우린 탬파베이보다 성적이 좋잖아.”

“어쩔 수 없어. 서부 지구에는 100승을 향해 달려가는 두 팀이 있으니까.”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질주로 인해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순위 경쟁은 지옥과도 같았다.

경기 초반.

두 팀은 찬스를 병살타와 실책으로 날리는 등 답답한 공격력을 보여 주었다.

“점수가 도통 나질 않는군.”

“에이스가 압도하는 투수전도 아니고, 괜히 하위권 팀들의 대결이 아니야.”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선취점을 뽑은 것은 텍사스였다.

“좋았어!”

“역시 로드리게스야.”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적시 2루타.

그러나 리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5회 말.

안데르센이 2점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나이스 배팅!”

“멋진 홈런이야.”

이후 경기는 득점 쟁탈전으로 들어갔다.

6회 초.

텍사스가 대거 4득점 하며 5-2로 경기를 뒤집었고, 다음 공격에서 탬파베이가 다시 3점을 뽑아 5-5 동점을 만들었다.

“선발 투수가 내려간 뒤부터 난리도 아니군.”

“그러게 말이야.”

기자들의 노트는 새로운 홈런과 적시타로 가득 채워졌다.

이날 경기의 승부는 9회 말에 가려졌다.

“티노! 끝내기 안타입니다!”

“티노가 길었던 공방전을 끝내는군요.”

탬파베이 12:11 텍사스

1선발을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점수였다.

“탬파베이가 잘 친 건지. 텍사스가 약한 건지.”

“둘 다 아닐까?”

“그럴 리가?”

기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기사를 송출했다.

다음 날.

2차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텍사스가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오늘 경기 MVP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야.”

“3점 홈런에 적시 2루타. 한 경기 4타점이군.”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팀을 꼴찌에 머무르게 할 수 없다는 듯 힘을 냈다.

“탬파베이와 텍사스를 합치면 어떨까?”

“공격력이 뛰어난 텍사스와 5선발이 나름 탄탄한 탬파베이, 그럴싸한데? 하지만 불펜은 어쩔 거야?”

기자들은 두 팀을 합친다고 해도 강팀이 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3차전.

김민이 후반기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킴! 킴! 킴!”

올스타전 여파 때문일까?

평소보다 많은 3만 명의 관중이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았다.

트로피카나 필드에 3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차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2층까지 관중이 들어오는 건 오랜만인데?”

불펜 투수들은 김민의 인기가 여전히 부러웠다.

“올스타는 역시 달라.”

“3연속 삼진. 멋진 임팩트였지.”

“난 언제쯤 올스타전에 나갈 수 있을까?”

불펜 코치가 투수들 뒤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아. 올스타전에 나가는 것보다 마이너리그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크니까.”

탬파베이 불펜은 후반기 첫 2경기에서 11실점을 하며 파산 위기에 몰려 있었다.

불펜 코치는 투수들의 태평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들 경기 준비를 철저히 해 두라고.”

에두아르드가 어깨를 으쓱하며 코치의 말을 받았다.

“준비해도 오늘은 나갈 기회가 없을 겁니다. 킴의 선발 등판 경기니까요.”

“…….”

불펜 코치는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스트라이크!”

록튼은 오늘따라 김민의 패스트볼이 무겁게 느껴졌다.

‘공에 힘이 실려 있어.’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멀리 가지 못하고 2루수 앞에 떨어졌다.

록튼은 타구가 멀리 가지 못한 것도 공에 실린 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웃!”

1루심의 경쾌한 제스처와 함께 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킴, 2구만에 첫 타자를 2루수 땅볼로 잡아냈습니다.”

“올스타전에서 보여 준 퍼포먼스가 그대로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김민은 2번 타자 클루이드마저 삼진으로 잡아내고 3번 타자와 마주했다.

‘여기서부터 지옥인가?’

3할 타자만 다섯 명이 포진된 텍사스.

그들의 공격력은 리그 최상위권이었다.

“킴이 어떤 공을 던질지 궁금하군.”

타석에 선 타자는 바로 올스타전에서 김민의 공을 받아 준 이반 로드리게스였다.

록튼은 전설적인 포수와 마주하자 자기도 모르게 경외심이 생겼다.

‘퍼지(이반 로드리게스의 별명)가 지금 내 앞에 서 있어.’

이반 로드리게스는 젊은 포수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는 포수 최초의 20-20으로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누르고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5년 연속 3할 타율과 20홈런을 달성했다.

게다가 그는 공격만 뛰어난 포수가 아니었다.

데뷔 첫해부터 도루저지율 49%라는 엽기적인 기록을 시작으로 2년에 한 번꼴로 도루저지율 50%를 넘겼다.

그 덕분에 10년 연속 골드글러브와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김민은 며칠 전 내셔널 리그 올스타를 상대로 투구한 터라 이반 로드리게스를 앞에 두고도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다.

‘수비를 믿고 던지자.’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공략했다.

‘바깥쪽이냐?’

이반 로드리게스는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잠시 뒤, 배트가 크게 헛돌면서 파공성을 일으켰다.

휙!

“스윙 스트라이크!”

이반 로드리게스는 자세를 바로 하곤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초구부터 스플리터잖아. 리베라의 말과 너무 달라.’

올스타전이 끝난 뒤, 리베라는 김민이 수비를 믿고 던지는 법을 터득했다고, 이반 로드리게스 앞에서 칭찬했다.

이반 로드리게스는 그 칭찬을 잊지 않았고, 김민이 초구로 패스트볼을 던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의 선택은 스플리터였다.

‘하긴 수비를 믿고 던진다고 패스트볼을 선택한다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아무래도 정타보다는 빗맞은 타구가 수비하기 쉬우니까.’

이반 로드리게스가 배트를 세웠다.

‘자, 다시 한번 던져 보라고.’

그는 스플리터와 커터 같은 변형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슉!

안쪽을 찌르는 공은 예상보다 스피드가 느렸다.

‘치면 3루 땅볼이야.’

이반 로드리게스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기에 마지막 순간 배트를 멈췄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 노 볼.

이반 로드리게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독심술사인가?’

그는 김민이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코스에 정확히 공을 던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내가 포수라면 다음 공은 승부구야. 하지만 킴이 내 마음을 읽고 있다면 반대로 가겠지.’

이반 로드리게스는 역으로 하나 지켜보고자 했다.

호흡을 조절하고 배트를 든 순간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바로 승부구? 정말 마음을 읽는 건가?’

이반 로드리게스는 급히 배트를 냈지만, 배트는 공을 스치는 데 그쳤다.

탁!

짧은소리를 낸 공이 그대로 록튼의 미트에 꽂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파울 팁 삼진.

대기 타석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이 장면을 보고 낮게 중얼거렸다.

“퍼지를 수 싸움으로 누른 투수는 오랜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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