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첫 번째 올스타 02
끼익.
문을 열고 불펜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킴, 왔나?”
김민을 향해 손을 든 것은 전설적인 투수 코치 코쿠스였다.
‘어딜 가나 다 전설이군.’
“언제 올라가는 겁니까?”
김민의 물음에 코쿠스가 대답했다.
“5회 정도가 아닐까 싶군. 일단 스트레칭부터 하지.”
김민은 몸을 풀면서 주변 투수들을 살폈다.
‘저건…….’
마운드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는 엔디 페팃이었다.
‘세 번째 투수로 엔디가 나가는 건가?’
엔디 페팃이 세 번째라면 김민은 아마도 네 번째.
“킴, 오늘 경기도 사인은 직접 낼 거지?”
그에게 질문을 던진 선수는 퍼시발이었다.
퍼시발은 에인절스의 수호신으로 3년 연속 30세이브를 달성한 클로저였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러려고 하는데…… 안 될까?”
“안 될 건 없지. 킴이 하고 싶다면 하는 거지.”
퍼시발은 일찍부터 불펜에서 대기 중이었다.
‘로켓맨이 2이닝을 막았으니, 나머지 7이닝을 9명의 투수가 돌려막아야 해. 솔직히 나한테까지 등판 기회가 오진 않을 것 같군.’
그는 시애틀 클로저 야마모토나 자신 둘 중 하나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킴, 나가면 배리 본즈에게 안부나 전해 달라고.”
“배리 본즈라고?”
“5회에 나가면 딱 본즈 타석이야.”
김민은 배리본즈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인류가 탄생시킨 최강의 타자와 대결인가?’
약물의 힘을 빌려 신이 된 천재.
그게 바로 배리 본즈였다.
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중견수 앞에 공이 떨어졌다.
퍼시발은 그 장면을 보고는 혀를 찼다.
“오! 본즈가 날아갔어!”
김민이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안타로 타순이 당겨져서 본즈는 4회에 나오게 되는 건가?”
“아마도.”
“아까 그 ‘오!’는 뭐야? 그렇게 내가 홈런 맞는 걸 보고 싶었던 거야?”
“홈런이라니? 난 킴의 삼진을 보고 싶었다고.”
“퍽이나.”
퍼시발은 독심술을 쓴다는 김민이 배리 본즈와 맞대결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 줄지 궁금했다.
‘어떤 코스, 어떤 구종도 다 때릴 수 있다는 본즈와 타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독심 안의 킴, 정말 멋진 승부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의 대결은 방금 안타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5회 초.
드디어 김민이 부름을 받았다.
“킴, 멋지게 던지라고.”
“아, 그래 자네가 원하는 대로 멋진 홈런을 맞아 주지.”
김민은 퍼시발의 환송을 받은 뒤 마운드로 향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킴이 마운드로 향합니다.”
“킴의 이번 시즌 성적은 8승 4패 평균자책점 3.12 삼진 71개입니다. 승수는 리그 14위지만 평균자책점이 리그 4위입니다. 내셔널 리그 팬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킴은 운영의 마술사 또는 보스턴 사냥꾼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보스턴 사냥꾼이요? 이 별명은 특이하군요.”
“이번 시즌 보스턴을 상대로 2승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2승 중에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거둔 승리도 있습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5월 중순 당한 부상 때문에 올스타전은 물론 시즌 전체를 접고 말았다.
“외계인 페드로와 싸워 이긴 투수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보스턴 사냥꾼과 싸우게 될 첫 번째 타자는 새미 소사입니다.”
새미 소사는 전성기를 지난 맥과이어와 달랐다.
그는 이번 전반기에만 2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면서 투수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배리 본즈가 신이라면 이쪽은 반인반신 정도는 되는 모양이군.’
김민은 연습 투구로 몸을 풀면서 새미 소사를 살폈다.
“플레이!”
주심의 사인과 함께 경기가 재개되었다.
“킴이 사인을 교환한 다음 초구를 던지겠습니다.”
“킴은 타자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해서 독심술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루키인데도 별명이 많은 선수군요.”
“하하, 그렇습니다.”
새미 소사는 배트를 세우며 김민을 노려보았다.
‘친구, 축제잖아. 즐기자고, 자 바깥쪽으로 하나 부탁해.’
그의 긴 팔과 무시무시한 파워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나 하나 정도 빠지는 패스트볼을 언제든 담장 밖으로 넘겨 버릴 수 있었다.
김민은 순간 던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을 던져도 다 때려 낼 것 같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게 바로 새미 소사인가?’
이치로나 제레미도 뛰어난 타자지만 지금의 새미 소사와는 격이 달랐다.
‘보스턴의 라파엘 이상이야.’
약물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이 경지에 올랐다면 김민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새미 소사를 만든 것은 스테로이드라 불리는 약물이었다.
‘반인반신이 아니라 악마와 싸우는 느낌이군.’
그는 투구에 앞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3루에는 칼 립켄 주니어, 유격수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2루에는 브렛, 1루에는 덴이었다.
‘든든한 아군이 있어서 다행이야.’
김민은 막강한 내야진의 수비를 믿고 투구에 들어갔다.
‘땅볼 타구가 나온다면 내야가 어떻게든 잡아 줄 거야.’
슉!
빠른 공이 안쪽을 깊이 찔렀다.
새미 소사는 그 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쳇! 바깥쪽을 달라고 하니까.’
그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탁!
배트에 빗맞은 공이 그대로 3루 라인을 벗어났다.
“새미 소사! 매서운 스윙입니다!”
“하지만 파울이군요. 킴이 첫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김민은 이반 로드리게스로부터 공을 넘겨받고는 모자를 고쳐 썼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이반이 사인을 내지 않았어.’
이반 로드리게스는 리그 최고의 포수였지만, 김민에게 볼 배합을 맡기고 있었다.
이는 김민의 별명이 독심술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심술사, 오늘만큼은 자네 마음껏 던져 보라고.’
그는 미트를 툭 치곤 어서 사인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김민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사인을 냈다.
- 안쪽 스플리터.
이반 로드리게스는 미트를 내밀면서 자세를 잡았다.
‘위험한 공이지만, 제구에 따라서 새미 소사를 잡을 수도 있다.’
새미 소사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안쪽을 노렸다.
새미 소사는 두 번은 놓치지 않겠다며 배트를 강하게 휘둘렀다.
‘이건 홈런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공이 낮게 가라앉으면서 배트 아랫부분에 맞았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운드를 일으킨 공.
평범한 타자였다면 그대로 3루 땅볼아웃이었지만, 괴력 덕분에 공이 크게 휘면서 3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내셔널 리그 더그아웃의 선수들은 새미 소사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소사, 뭐 하는 거야! 두 개 모두 볼이잖아.”
“올스타전이라 욕심을 내는 거지.”
내셔널 리그 1루수에 선발된 토르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좋은 공은 주지 않을걸? 저 친구는 그런 친구라고.”
새미 소사는 배트를 내리곤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헤이, 퍼지(땅딸보, 이반로드리게스의 별명). 저 친구 파티를 즐길 줄 모르는 것 같아.”
이반 로드리게스가 미트를 주먹으로 때리며 소사의 말을 받았다.
“아까 내가 이야기해 봤는데. 주인공을 위해 계단에서 구르는 역할은 사양하고 싶다고 하더군.”
“아, 그래?”
두 선수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사인 교환이 끝났다.
새미 소사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이번 공은 하나 참아 볼까?’
여유를 가지고 하나 더 지켜보려는 순간이었다.
높이 떠오른 공이 미트를 향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이건…….’
새미 소사는 배트를 내밀려고 했지만, 이미 타이밍이 어긋나 있었다.
‘허, 내가 이런 공에 당하나?’
혀를 찬 순간 공이 미트에 들어왔다.
팡!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멋진 제스처, 그리고 새미 소사의 씁쓸한 미소.
카메라는 그 둘을 절묘한 각도로 한 화면에 넣었다.
‘독심술사라고 하더니, 정말이군.’
새미 소사를 쓰러뜨린 공은 바로 커브였다.
“킴, 첫 번째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새미 소사가 삼진으로 물러나는군요.”
“그러고 보니 삼구삼진이었습니다.”
내셔널 리그 더그아웃은 새미 소사의 삼진에 분주해졌다.
“소사가 삼진으로 물러났어.”
“저 커브 말이야. 칠 수 있지 않았을까?”
“느린 커브긴 한데. 소사가 패스트볼을 기다렸다면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새미 소사에게 치퍼 존스가 물었다.
“어땠어?”
새미 소사가 배트를 꽂으며 대답했다.
“소문대로야.”
“독심술?”
“하나쯤 기다려 볼까 하는데 바로 승부구가 들어오더군. 그것도 느린 커브로.”
“그 정도야?”
치퍼 존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 타석에서는 그랬어.”
새미 소사의 한마디에 더그아웃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흠, 타자의 마음을 진짜로 읽는 건가?”
“그걸 할 수 있다면 무실점 투구도 가능한 거 아니야?”
“평균자책점이 3점대인 걸 보면 그것까지는 아닌 것 같고, 승부구를 잘 선택한다고 봐야겠지.”
이런저런 말이 오가는 사이 6번 타자 피아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뉴욕 메츠의 마이크 피아자입니다!”
김민은 피아자를 보곤 마른침을 삼켰다.
‘레전드만 계속해서 나오는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고의 공격형 포수 피아자.
김민은 그의 공격력이 보스턴의 4번 타자 라파엘 못지않다고 판단했다.
‘이럴 때는 수비를 믿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초구는 소사 때와 같이 안쪽 패스트볼.
‘피아자, 땅볼 하나 부탁해.’
그러나 피아자는 이 공을 치는 대신 기다렸다.
팡!
“초구는 볼이군.”
“이번에는 타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 같아.”
“하긴 독심술사는 너무 간 거야.”
내셔널 리그 타자들은 김민이 더 이상 타자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피아자는 수비력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단 본업이 포수였다.
볼 배합을 읽는 것에서는 다른 타자들보다 한 수 위였다.
‘수비를 믿고 안쪽 공으로 땅볼을 유도. 강속구가 없는 투수가 선택할 수 있는 베스트군. 미안하지만 내게 그런 볼 배합은 통하지 않아.’
김민은 초구를 참아 낸 피아자의 인내심에 미간을 좁혔다.
‘까다로운 상대군.’
그는 두 번째 공으로 바깥쪽 스플리터를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피아자는 이 공도 참아 냈다.
“볼 투.”
“이야. 피아자가 아주 잘 보는데?”
“다음 공에서는 반드시 배트를 내겠지?”
“올스타전인만큼 투수도 피하지 않을 거야.”
모두의 시선이 세 번째 공에 모였다.
“바깥쪽 코너로 꽉 찬 패스트볼이겠지?”
“아마도.”
김민은 로진백을 만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볼 투라. 좋지 않은데. 설마 내가 알지 못하는 버릇이나 습관이 읽힌 건 아니겠지?’
그는 좁혔던 미간을 폈다. 그리곤 이반 로드리게스와 사인을 교환했다.
‘후…… 여기서 한 방 맞으면 제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거야.’
슉!
세 번째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이번 공은 높은 코스였다.
피아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스를 보곤 혀를 찼다.
‘낮은 코너가 아니라 한가운데 높은 코스라고?’
그의 배트는 이미 돌고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첫 스트라이크에 관중들이 환호했다.
“좋았어.”
“나이스 피칭! 그렇게 던지라고.”
피아자는 헛스윙 이후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 세 개 연속 볼이잖아. 이 친구 올스타전에서 볼넷을 줄 생각인가?’
그는 볼넷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깥쪽 패스트볼이 아니면 기다리겠어.’
배트를 세우자 네 번째 공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안쪽.
‘바깥쪽을 노렸는데 안쪽? 설마, 내 생각을 읽은 건 아니겠지?’
독심술사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서 점점 커졌다.
다음 순간,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이 위로 떠오르면서 포수 미트를 파고들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이반 로드리게스는 미트에서 공을 바로 빼는 대신 잠시 포구 동작을 유지했다.
‘이번 공은 정말 좋군.’
새미 소사는 날카로운 패스트볼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걸어 보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이반 로드리게스가 미트에서 공을 빼며 말했다.
“자네도 봐서 알 거 아니야. 이런 공을 가진 투수가 볼넷을 주겠어?”
피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방금 그 공 98마일(158km)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공이었어.”
전광판에 기록된 실제 구속은 김민의 최고 구속인 94마일(151km)이었다.
피아자가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쓸었다.
‘이제 나도 도망칠 곳이 없군.’
카운트 2-2, 파울이 아닌 이상 다음 공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김민은 카운트를 확인하고는 그립을 꾹 쥐었다.
‘간다.’
호흡을 조절한 뒤 강하게 공을 챘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향한 순간 피아자가 눈을 크게 떴다.
‘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깥쪽 낮은 코스.
그대로 퍼 올린다면 담장을 넘어갈 것이다.
‘아니!’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공이 배트를 스치며 뒤로 빠져나갔다.
‘패스트볼이 아니잖아.’
아니, 패스트볼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때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은 그의 예상보다 더욱 크게 휘면서 배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파울 팁 삼진.
파이자는 삼진 이후 배터 박스에서 물러서는 대신 이반 로드리게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퍼지, 지금 공…….”
“슬라이더냐고 묻고 싶은 거지? 사인은 커터였어.”
피아자는 이반 로드리게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커터라. 그랬군.”
김민이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세이코프 필드가 달아올랐다.
“킴! 킴! 킴!”
“훌륭한 투구다! 킴!”
시애틀 팬들은 김민이 적일 때는 얄미운 선수지만, 아군일 때는 더없이 든든한 방패라고 느꼈다.
“이번 이닝 마지막 타자가 될 수도 있는 타자가 등장합니다.”
7번 타자 라이언.
그는 앞선 두 타자에 비하면 다소 떨어지는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배트 컨트롤과 선구안은 리그 최상급이었다.
‘루키 투수에게 삼자범퇴당할 수는 없지. 최소한 나라도 1루에 나가야 해.’
그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위치를 잡았다.
‘하나 보자.’
팡!
“스트라이크!”
초구는 라이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이었다.
‘느린 체인지업. 이건 안타를 맞아도 좋다고 생각하고 던진 공인데…… 아니야, 이건 3루 쪽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공이야.’
그는 김민이 칼 립켄 주니어의 수비력을 믿고 3루 땅볼을 유도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독심술사. 상대의 마음을 읽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을 풀어나가는 능력은 수준급이군.’
슉!
두 번째 공이 안쪽으로 날아왔다.
‘이것도 땅볼 유도야.’
평범한 타자라면 땅볼을 염려해 그냥 흘려보냈을 공이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이쪽 공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비가 되어 있다면 안타가 아니라 장타다.’
그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빠른 공을 노렸다.
그러나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낮게 가라앉았다.
‘스플리터?’
탁!
배트 아래쪽에 맞은 공이 크게 튀어 올랐다.
‘젠장.’
라이언은 1루로 내달렸다.
‘틀렸어.’
3루 땅볼 이웃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3루심이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파울을 선언했다.
“파울!”
치퍼 존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후유. 위험했어.”
새미 소사는 차라리 3루 땅볼 아웃이 낫다고 생각했다.
“킴에게 삼진 기회를 주는군.”
“설마, 세 타자 연속 삼진 같은 걸 당하겠어?”
“카운트 0-2라고, 유인구 세 개면 라이언도 당할 수가 없을 거야.”
라이언도 새미 소사가 말한 것처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아남긴 했지만, 해적선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는 타석으로 돌아가 배트를 세웠다.
‘비슷한 공이면 모두…… 아니야.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라이언은 앞으로 날아올 유인구를 잘보고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공이 올지 모르겠군.’
그는 배트를 가능한 짧게 잡았다.
이윽고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이것은!’
라이언이 놀란 것은 김민의 세 번째 공이 앞에 던진 두 개의 공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유인구가 아니라 패스트볼이다.’
그는 급히 배트를 냈지만, 시간에 맞추지 못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중계진은 김민의 삼진에 목소리를 높였다.
“삼진! 또 삼진입니다!”
“루키 투수가 올스타전에서 일을 내는군요. 정말 멋진 투구입니다!”
라이언은 김민의 강심장에 혀를 내둘렀다.
‘투 스트라이크를 잡고 바로 승부를 걸다니, 맞아도 좋다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정말로 내 마음을 읽은 건가?’
다음 순간 관중들이 기립 박수로 김민의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축하했다.
“K! K! K!”
김민은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모자를 벗어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킴! 올스타전에 역사를 씁니다!”
“루키 투수가 내셔널 리그 올스타 5, 6, 7번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습니다.”
마운드를 내려온 김민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 벅차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