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58화 (58/296)

58화 루키 대 외계인 01

윙…….

빔프로젝터의 팬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반대편 벽에 뿌려진 영상에서는 한 투수가 연신 공을 던지고 있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시겠습니다.”

레이저 포인트를 들고 서 있는 사내는 게일이었다.

그의 앞에는 하얀 유니폼을 입은 스무 명의 사내가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수 뒤쪽에서 본 영상입니다.”

공이 잇달아 날아와 포수 미트에 꽂혔다.

팡! 팡!

“킴의 주무기로 흔히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부르는 패스트볼입니다.”

영상을 지켜보던 사내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라이징 패스트볼은 위로 떠오르는 공이 아니라 덜 떨어지는 공입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는 제법 크죠. 타석에서 보면 마치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곳에 모인 분 중에는 이미 이 공을 경험한 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일의 설명에 집중했다.

“사실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은 킴만이 아닙니다. 뛰어난 패스트볼 구위를 가지고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라이징 패스트볼과 유사한 공을 구사합니다.”

게일은 말을 쉬고는 화면을 넘겼다.

“킴의 패스트볼이 모두 라이징 패스트볼로 날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패스트볼은 평범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내들은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과 코칭 스탭이었다.

이들은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전력분석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우리는 초고속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했습니다. 그 결과 라이징 패스트볼이 다른 패스트볼보다 더 많은 회전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즉, 공을 던지거나 챌 때, 강한 회전이 가해진 공이 바로 라이징 패스트볼입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서는 아직 도입하지 않은 초고속 카메라.

보스턴 레드삭스는 성적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킴이 던지는 패스트볼 중 회전수가 많은 공은 대부분 스피드가 평균 이상의 공이었습니다. 다음 자료는 구속과 라이징 패스트볼에 대해 알아본 것입니다.”

도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94마일(151km) 42%

93마일(150km) 17%

92마일(148km) 0%

91마일(146km) 0%

“구속이 떨어지면 라이징 패스트볼도 날아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게일은 차분하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보시는 화면은 라이징 패스트볼 다음으로 위력적인 공입니다.”

타자들은 화면을 보고 혀를 찼다.

“빌어먹을 스플리터군.”

과거 마이너리그에서 김민과 한 팀에서 뛰었던 스미스는 김민의 시그니쳐가 스플리터라 말하기도 했다.

“킴의 스플리터입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빠르게 떨어지며, 구속 또한 높습니다. 이 공의 범타 비율은 패스트볼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게일이 화면을 조작하자 공이 떨어지는 부분이 확대되었다.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떨어지는 각도가 생각보다 작습니다.”

타자들은 게일의 설명에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으음…….”

그들은 김민의 스플리터가 상당히 낮게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느린 화면으로 재생된 스플리터는 그들이 타석에서 느낀 것과 달리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격수 노라가 손을 들며 말했다.

“내가 타석에서 본 스플리터는 달랐습니다.”

게일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같은 것입니다. 단지 느낌이 달랐던 것뿐입니다.”

“느낌이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킴의 스플리터는 패스트볼 구속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스플리터들보다 더 크게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노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좀 잘못된 것 아닙니까? 구속이 비슷하다면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구별하기 힘든 것이지 더 크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더 크게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노라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요?”

게일이 화면을 바꾸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킴은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는 떠오르는 공을 던집니다. 이 공을 보고 난 직후, 이 스플리터를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떨어지는 각이 더 크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노라는 그제야 게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위로 떠오르는 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공의 위력이 증대된다는 말이군.’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게일이 레이저 포인트를 움직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타자의 바깥쪽에서 형성되는 공일 때 더 큽니다. 즉, 안쪽으로 파고드는 공보다 바깥쪽에서 움직이는 공이 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호이스 감독과 반헬 투수 코치는 서로를 마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게일의 설명을 듣고 난 뒤, 김민이 왜 집요하게 바깥쪽을 고집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게일의 분석은 정말 상세하군.’

‘투수 쪽 분석에 있어 게일은 일가견이 있어.’

게일이 콘솔을 몇 번 조작하자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다음 공은 볼티모어와 텍사스전에서 나온 공입니다.”

김민의 스플리터는 마치 포크볼처럼 크게 떨어졌다.

타자들은 그 공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마구군.”

“저걸 어떻게 쳐야 하지?”

게일이 레이저 포인터를 움직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킴이 던지는 스플리터 중 가장 뛰어난 공입니다. 저희는 이 공을 파워 스플리터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성격이 급한 라파엘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은 됐고, 공략 방법이나 가르쳐 주십시오.”

“공략 방법은 평범한 스플리터와 같은 궤적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입니다.”

“저렇게 빠르게 떨어지는 공인데 평범한 스플리터처럼 공략하라고요?”

게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게일!”

라파엘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게일은 침착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상당히 놀랐지만, 파워 스플리터는 사실 대단한 공이 아닙니다. 이 공은 다른 투수들이 던지는 스플리터와 비슷한 각도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일 뿐입니다.”

호이스 감독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비슷한 공인데 다르게 보인다? 그렇다면 라이징 패스트볼과 스플리터의 시너지와 같은 시너지 효과를 생각하면 되는 건가?”

“그렇습니다. 라이징 패스트볼을 본 뒤, 파워 스플리터를 보게 되면, 평범한 스플리터가 아니라 포크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호이스 감독은 문제의 시작이 라이징 패스트볼에 있다고 보았다.

“94마일에 육박하는 빠른 공 다음에 들어오는 공은 다 조심할 필요가 있겠군.”

“그렇습니다.”

게일은 김민의 공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던진 공부터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일의 브리핑은 1시간 이상 이어졌다.

타자들은 그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 * *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브리핑은 과학적이면서도 철저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브리핑과 완전히 달랐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써클체인지업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알고도 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패스트볼을 노려라?”

“그렇습니다.”

타자 입장에서는 흑백처럼 선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브리핑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되지 않았다.

“브리핑이라고 하더니, 별거 없군.”

“그러게 말이야.”

탬파베이 타자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록튼과 김민은 라커룸에서 브리핑을 받는 대신 불펜에서 몸을 풀었다.

팡! 팡!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민에게 공을 넘겨 주었다.

“나이스 볼.”

김민이 공을 받으며 물었다.

“오늘 공은 어때?”

“나쁘지 않아.”

“그뿐이야? 100점 만점에?”

“90점.”

“좋네.”

김민은 미소를 짓곤 불펜 투구를 이어갔다.

오늘 그가 상대해야 하는 투수는 전설적인 대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였다.

‘외계인과 같은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지게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어.’

마이너리그에서 7년을 보내던 그 시절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환상 속의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 그는 그 환상 속의 존재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메이저리그는 더 이상 환상이나 꿈이 아니야.’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그라운드로 돌렸다.

홈팀인 보스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와 수비 위치를 잡고 있었다.

록튼 역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곧 시작하는 것 같군.”

“그래.”

“몇 점이나 낼 수 있을까?”

“글쎄.”

이번에는 김민도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피칭을 현장에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시즌 5차전이 시작되었다.

팡!

“스트라이크!”

1번 타자 칼튼은 페드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는 배트를 짧게 잡고 저항했으나 4구만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자 카를로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끝까지 따라갔지만 2루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페드로, 오늘 경기도 대단합니다.”

“지난 시즌 사이영상 주인공이 오늘도 놀라운 피칭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김민은 몸을 푸는 것마저 잊고 경기에 집중했다.

“만화에서 나오는 공 같아.”

록튼도 페드로의 써클체인지업에 혀를 내둘렀다.

“타석에서 저런 공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는군.”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1회 초 공격은 안데르센의 삼진과 함께 끝났다.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들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1이닝 동안 2삼진. 페드로에게는 이 정도가 기본이야.”

“어제도 이겼고, 오늘도 이길 테지. 남은 것은 내일 정도인가?”

“내일도 이겨서 지난번에 실패한 스윕을 선물하자고.”

“오케이.”

레드삭스 선수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했다.

김민은 그런 레드삭스 선수들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후…… 펜웨이 파크인가?’

펜웨이 파크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왼쪽 외야에 서 있는 거대한 그린몬스터였다.

11m짜리 그린몬스터가 세워진 이유는 펜웨이 파크의 왼쪽 펜스가 극단적으로 짧기 때문이었다.

‘그린몬스터가 없었다면 평범한 외야 플라이가 홈런이 되는 코미디를 볼 수 있었겠지.’

김민은 이 그린몬스터가 좌타자의 홈런을 상당히 억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린몬스터가 투수의 친구는 아니야.’

그린몬스터로 홈런은 억제할 수 있었지만, 2루타는 그렇지 못했다.

그린몬스터를 맞고 튕겨나 나오는 많은 2루타들은 보스턴 투수들을 시즌 내내 괴롭혔다.

엘린의 평가에 따르면 펜웨이 파크의 2루타 확률은 악명 높은 쿠어스 필드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펜웨이 파크는 장타가 많이 나오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아.’

김민은 공을 던지기 전 보스턴 더그아웃을 살짝 살폈다.

‘타자 친화적인 구장에서 사이영상이라니, 페드로는 얼마나 대단한 거야?’

그는 그 어떤 투수도 페드로처럼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자 위치로.”

주심의 한마디에 1번 타자 노라가 타석에 들어섰다.

김민과 록튼은 노라의 위치를 보곤 미간을 좁혔다.

‘극단적으로 라인에 붙었다.’

‘바깥쪽 공을 노골적으로 노리는 건가?’

보스턴과는 두 번째 만남.

노라는 1차전과 달리 배터 박스에 바짝 붙어서 김민의 바깥쪽 공을 노리고자 했다.

‘게일의 공략법이 통할지 모르겠군.’

타자가 배터 박스에 바짝 붙게 된다면, 투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안쪽에 공을 던져 타자의 허를 찌르는 것.

두 번째는 타자가 원하는 바깥쪽에 유인구를 던져서 맞춰 잡는 것.

김민은 망설이지 않고 첫 번째 공략법을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안쪽을 향해 밀려들었다.

‘노라,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아.’

그는 배트를 낸다고 해도 제대로 된 히팅 포인트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라는 김민의 예상을 깨고 안타를 만들어 냈다.

딱!

경쾌한 타구가 유격수 머리 위를 통과해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안타! 초구를 노려 안타를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 노라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요.”

김민은 안타를 맞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였군.’

그는 노라의 배터 박스 위치와 타격을 보곤 보스턴 타자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보스턴이 얕은 수를 썼어.’

호이스 감독은 선두 타자가 빠르게 출루하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 노라지. 반헬 그렇지 않은가?”

반헬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는 김민의 선전이 딱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알고도 칠 수 없는 공이 아닌 이상, 메이저리그의 현미경 분석을 이길 수는 없다.’

게일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라이징 패스트볼과 파워 스플리터. 두 가지 공은 확실히 뛰어나다. 하지만 페드로의 써클체인지업처럼 알고도 칠 수 없는 그런 공은 아니야.’

그는 오늘 펜웨이 파크에서 김민을 쓰러뜨리고자 했다.

김민은 초구 안타를 맞은 뒤 볼 배합을 완전히 바꾸었다.

슉!

두 번째 타자 클리어를 상대하는 초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스플리터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안쪽 스플리터가 타자의 배트를 유인해냈다.

클리어는 헛스윙 이후에 미간을 좁혔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스플리터잖아. 저 녀석 초구부터 유인구를 던졌어.’

호이스 감독은 김민의 유인구에 미간을 좁혔다.

“흠, 볼 배합을 바꿨군.”

반헬 투수 코치는 볼 배합을 살짝 바꾸는 정도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플리터만 계속 던질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달아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운트를 잡기 위해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던지는 순간 위기가 닥칠 테지.’

김민은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립을 고쳐 잡곤 스트라이크존에 패스트볼을 꽂아 넣었다.

팡!

“스트라이크!”

주심의 오른손이 올라가자 게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것은…….”

김민의 두 번째 공은 게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코스에 꽂혔다.

“킴, 높은 코스에 공을 던져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다소 높다고 생각했는데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군요.”

김민이 카운트를 잡은 공은 한가운데 높은 코스였다.

클리어는 배트를 내리곤 김민을 쏘아보았다.

‘바깥쪽이나 안쪽이 아닌 한가운데 높은 코스라. 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군.’

게일의 공략법에는 이런 높은 코스의 공략법이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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