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55화 (55/296)

55화 지구 라이벌 01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맑은 날만 계속 되면 그곳은 사막이 되고 만다.

비는 반드시 필요한 것.

인생과 야구도 그랬다.

좋은 일만 지속된다면 권태에 빠지기 쉬웠고, 승승장구하는 선수는 자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4월 15일 볼티모어전.

김민은 데뷔 이후 최악의 경기를 펼쳤다.

컨디션 난조로 제구가 평소보다 잘 되지 않았고, 수비 또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여기에 하나 더.

빗맞은 타구가 잇달아 안타나 페어가 되면서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딱!

높은 타구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홈런! 테하타의 솔로 홈런입니다!”

이것으로 5실점.

김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건 비가 아니라 집중호우인데…….”

그는 투수들에게 야구에는 고난이란 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가르치곤 했다.

하지만 이날 비는 한 번에 너무나 많이 내렸다.

“킴, 마운드를 설리반에게 넘기고 내려갑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처음 당하는 강판.

김민은 고개를 숙인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언젠가 비가 올 줄 알았지만,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왔어.’

5와 1/3이닝 5실점.

단 한 경기로 그의 평균자책점은 3.26까지 치솟았다.

물론 3.26이란 평균자책점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평균자책점은 탬파베이 선발 투수 중 가장 빼어난 것이었다.

“킴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반 감독은 그보다 더 답답했다.

오늘 경기까지 패하면서 4연패.

보스턴전 승리 후 반짝 2연승을 달렸지만, 이후 패배의 탑을 쌓고 있었다.

“12경기에서 4승 8패. 경질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이군.”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반격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반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공격과 수비, 어느 하나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결국 경기는 볼티모어의 8-4 승리로 끝이 났다.

“스윕(전패)이군.”

“루키인 킴은 그렇다고 치고, 부르스는 언제 에이스의 모습을 되찾는 거야?”

“2선발인 렉키도 마찬가지야. 퀄리티 스타트는 했지만, 2선발의 위용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홈팬들이지만, 지구 꼴찌란 성적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시리즈는 어떻게 되지?”

“토론토야.”

“쉽지 않은 상대네.”

“스윕이나 면하면 다행이겠지.”

스윕이나 면하면 다행.

이것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현실이었다.

탬파베이는 볼티모어에게 스윕을 당한 뒤 토론토와 보스턴을 잇달아 상대했다.

그리고 이 여섯 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며, 지구 최하위가 아닌 아메리칸 리그 최하위로 밀려났다.

“5승 13패.”

“끔찍한 성적이야.”

“5승 중 2승이 킴의 승리잖아. 이번 시즌 킴을 콜업하지 않았다면 아마 3승 15패였을걸?”

“그렇게 되었다면 100패가 아니라 120패, 페이스였겠군.”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 예약이네.”

메이저리그 팬들은 탬파베이의 지구 꼴찌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반 감독에게는 다음 경기가 중요할 거야. 다음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4연패니까.”

“킴이 과연 이반 감독의 목숨을 구해줄까? 지난 경기에서는 6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무너졌잖아.”

“내가 보기에 킴은 돔이 아닌 개방형 구장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아마추어 분석가들은 김민이 볼티모어 전에서 무너진 것이 돔 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표본은 많지 않았지만, 김민은 메트로돔과 트로피나카나 필드에서 좋은 성적을 냈어. 반면 볼티모어 오리올스 홈구장인 오리올 파크에서는 좋지 못했지.”

몇몇 팬들은 김민이 고전한 이유가 오리올 파크의 타자 친화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다음 경기에서 밝혀지겠지.”

김민의 다음 상대는 그에게 첫 패배를 안겨 주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였다.

김민은 조용히 그리고 철저하게 이날 경기를 준비했다.

‘지난 경기에서 볼티모어 타자들은 내 스플리터와 패스트볼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다음 경기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야.’

록튼의 증언에 따르면 볼티모어와 경기에서는 패스트볼의 볼끝이 아주 좋지 못했다고 했다.

“떠오르는 공이 전혀 보이지 않았어. 제구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고 말이야.”

김민은 컨디션이 나쁜 날은 제구력과 함께 볼끝도 함께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컨디션이 나쁜 날은 패스트볼 비율을 줄이는 게 좋겠어.’

경기 당일.

오늘 김민의 컨디션은 볼티모어 전보다 확실히 좋았다.

“몸이 가벼워.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야.”

지난 경기에서 패했기 때문일까?

동료들은 김민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가 없었다.

‘날 걱정하고 있군.’

그는 동료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배려는 좋지만, 난 경기 전 침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김민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유칼리스, 오늘은 괜찮나?”

유격수 유칼리스가 몸을 풀면서 대답했다.

“난 괜찮아. 킴은 어때?”

김민이 스트레칭을 마무리하며 말을 받았다.

“나도 나쁘지 않아. 오늘은 해가 보이지 않거든.”

오늘 경기는 폐쇄형 돔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펼쳐졌다.

김민의 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했다.

“킴, 혹시 흡혈귀 아니야? 햇살을 무서워하다니…….”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김민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불펜으로 들어섰다.

딸칵.

불펜에는 록튼이 장비를 착용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킴, 준비되었어.”

“오케이.”

두 사람은 바로 연습 투구에 들어갔다.

팡! 팡!

록튼은 김민의 볼끝이 지난 경기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볼이야.’

김민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팡!

70%의 힘으로 던진 공이 정확히 포수 미트를 때렸다.

그는 10개의 투구를 마친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록튼, 오늘 공은 어때?”

“나쁘지 않아.”

“겨우 그거야?”

록튼이 마스크를 벗은 뒤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전력투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어.”

김민은 그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거면 됐어.”

그는 좋은 기분으로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반 감독과 바이슨 수석 코치는 김민과 달리 초조한 표정이었다.

“홈에서도 볼티모어에게 지면 홀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지난 몇 년간 볼티모어는 탬파베이와 함께 동부지구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때문에 볼티모어에게 패한다는 것은 꼴찌에 한 발 더 다가선다는 것과 같았다.

“볼티모어도 최근 3연패입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라는 뜻이군.”

“오늘 이기는 쪽이 연패를 탈출하게 될 겁니다.”

볼티모어는 탬파베이를 홈에서 스윕했으나 양키스와 텍사스를 상대로 1승 5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들은 현재 7승 11패로 동부지구 4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1회 초.

김민은 첫 타자를 3구만에 2루 땅볼로 잡아냈다.

“킴, 첫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느린 화면을 보면,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커터가 아주 좋습니다.”

볼티모어의 1번 타자 스터키는 예상하지 못했던 커터에 미간을 좁혔다.

‘커터였나? 지난 경기하곤 레퍼토리가 다르군.’

김민은 경기 초반부터 커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친구들…… 오늘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을 거야.’

2번 타자 잠스는 김민이 던진 두 번째 공에 눈을 크게 떴다.

‘패스트볼이 떠오른다!’

틱!

배트 끝에 걸린 공이 포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포수가 침착하게 공을 처리합니다.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 킴, 두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합니다.”

“지난 경기와 달리 오늘은 시작이 좋군요.”

잠스는 지난 경기에서 4타수 2안타의 맹공을 퍼부었지만, 처음 접하는 떠오르는 공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떠오르는 패스트볼인가? 마치 로켓맨의 그것을 보는 것 같군.’

그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이 우연이길 바랐다.

“다음 타자는 3번 타자 에릭입니다.”

“에릭은 지난 경기에서 킴을 상대로 2루타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에릭은 자신이 김민에게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초구를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같은 투수가 맞는 건가?’

김민이 던진 초구는 94마일(151km)의 떠오르는 패스트볼이었다.

“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에릭을 상대로도 과감한 공을 던지는군요.”

에릭은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군.’

그는 떠오르는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췄지만, 김민의 선택은 커터였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1루 베이스 위에 떠올랐다.

“3번 타자 에릭! 1루수 플라이로 물러납니다.”

에릭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약이라도 한 거 아니야? 어떻게 며칠 만에 달라질 수 있지?’

중계진은 김민의 호투에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1회 초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킴의 호투와 볼티모어 타자들의 부진이라고 할까요? 전반적으로 히팅 포인트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킴의 볼끝이 살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은 전광판에 기록된 87마일(140km)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킴의 컨디션이 좋은 것 같군.”

“킴은 괜찮습니다만…… 상대 선발이 만만치 않아서 걱정입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코스타, 그렇게 걱정 말라고, 홈으로 돌아왔으니 타자들이 살아날 거야.”

오늘 볼티모어 선발 투수는 키였다.

키는 볼티모어의 에이스로 4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10승을 매년 기록하는 수준급 투수였다.

그는 지난해까지는 탬파베이의 에이스 부르스와 자주 비교되곤 했지다.

하지만 이번시즌은 달랐다.

부르스의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비교를 떨쳐 낼 수 있었다.

키가 마운드로 오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애송이가 1회를 괜찮게 시작했군. 하지만 오늘 경기 승리는 내 것이다.”

그는 에이스로서 팀의 연패를 끊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팡!

초구가 깔끔하게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예상대로 탬파베이 타선은 키의 상대가 아니었다.

“키도 좋습니다! 세 타자를 공 9개로 마무리합니다.”

“1회 초 킴의 투구수가 8개였으니, 둘이 합해서 20개를 넘지 않았군요. 양 팀 타선, 분발해야 합니다.”

2회 초.

김민은 깔끔한 피칭을 이어갔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큰 제스처에 홈팬들이 열광했다.

“K! K! K!”

중계진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커브를 던졌습니다!”

“헌터가 꽤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배트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4번 타자가 룩킹 삼진. 킴이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4번 타자 헌터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와서는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 어쭙잖은 잔재주를…….”

타격 코치가 물병을 건네며 물었다.

“헌터, 커브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건가?”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1-2에서 느린 커브를 누가 예상할 수 있겠습니까?”

“하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커브가 볼이 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타격 코치는 달라진 김민의 볼 배합에 속으로 혀를 찼다.

‘루키가 두 번째 경기에 패턴을 바꾸다니, 흔한 일은 아니야.’

김민은 오늘 바깥쪽 일변도에서 벗어나 위아래를 넓게 쓰는 피칭을 보여 주고 있었다.

딱!

5번 타자 릴리아노의 타구는 꽤 괜찮았다.

“홈런인가?”

“멀리 가고 있어!”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오리올스 타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멀리 날아간 타구는 펜스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아! 안 넘어갔어!”

“오늘은 운이 안 따라주는군.”

김민은 모자를 고쳐 쓰곤 로진백을 만졌다.

‘예상대로야. 트로피나카 필드에서 저 정도 플라이는 펜스를 넘길 수 없어.’

그는 다소 위험한 코스에 공을 던졌지만 결과는 플라이볼이었다.

“이번 타구는 담장을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큰 타구였지만, 트로피카나 필드의 좌중간을 넘기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이쪽은 상당히 깊죠.”

김민은 트로피카나 필드의 넓은 외야를 마음껏 이용했다.

그는 다음 타자 고든도 외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킴, 2회 초도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투구수 7개. 정말 효율적인 투구입니다. 탬파베이의 다른 투수들은 킴의 투구를 본받아야 합니다.”

볼티모어 타자들은 1회와 달라진 볼 배합에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매회 볼 배합을 바꾸는 건 아니겠지?”

“오늘 던지는 걸 보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한다면 정말 지독한 놈이군.”

김민은 보스턴 타선을 상대할 때보다도 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난 경기에서 당한 것을 배로 갚아주겠어.’

그의 지독한 투구는 3회와 4회까지 이어졌다.

“유격수 땅볼로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다시 삼자범퇴입니다. 지난 경기에서 5점을 뽑았다고 믿기지 않는 타선입니다.”

김민이 완벽한 투구를 펼치는 사이, 볼티모어의 에이스 키가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3루수 실책! 이것은 뼈아픕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0으로 앞서갑니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땅볼 타구가 빨라서 저렇게 늦게 글러브를 가져가면 공이 뒤로 빠지고 맙니다. 3루수 고든이 그 점을 잠시 잊었던 것 같습니다.”

볼티모어의 토미 감독은 껌을 씹기 시작했다.

그가 껌을 씹을 때는 대부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였다.

‘루키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고전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토미 감독은 타격 코치를 불러 조금 더 신중하게 승부에 임할 것을 지시했다.

“알겠나? 공을 적어도 3개는 지켜보라고 해.”

그가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김민이 4이닝 동안 겨우 35개의 공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5회 초.

볼티모어 타자들은 토미 감독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랐다.

그 덕분에 그들은 퍼펙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첫 주자가 볼넷을 골라 나갑니다.”

“이번 공은 잘 골랐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주자 출루.

하지만 그뿐이었다.

김민은 나머지 타자들을 삼진과 유격수 땅볼로 막아 내곤 이닝을 마쳤다.

5이닝 무안타 1사사구 무실점.

P그를 상대로 기다림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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