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54화 (54/296)

54화 보스턴 레드삭스 03

3회 초.

김민은 하위 타순과 1번 타자 노라를 상대로 깔끔한 투구를 선보였다.

특히 노라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낸 안쪽 스플리터는 해설진으로부터 절묘하다는 극찬까지 받았다.

“노라가 두 타석 연속 출루에 실패하는군요.”

“오늘 보스턴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노라가 출루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이스 감독은 루키 투수에게 이렇게 눌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94마일(151km) 패스트볼, 그보다 느린 스플리터와 커터. 대체 왜 공략을 못 하는 건가? 노라는 100마일(161km)도 공략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닌가?”

반헬 투수 코치가 담담하게 말했다.

“킴은 로케이션과 제구가 좋습니다. 구속이 빠르지 않다고 해서 쉽게 볼 수는 없습니다.”

“설마 킴이 1선발 부르스보다 낫다는 건가?”

“오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1, 2선발을 차례로 무너뜨린 보스턴 타선이 루키에게 묶여 있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오늘 경기는 뭔가 잘못되어 있어.”

4회 초.

드디어 보스턴이 1점을 따라붙었다.

“이제부터 추격이라고.”

“빅이닝을 만들자!”

첫 득점에 보스턴 더그아웃의 사기가 순식간에 높아졌다.

그러나 김민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후속 타자를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쳤다.

“킴, 헬리오를 더블 플레이로 처리하면서 더 이상 실점하지 않습니다.”

“오늘 스플리터가 아주 좋군요. 느린 화면으로 보면 정말 멋진 타이밍에 떨어졌습니다.”

중계진은 연신 김민의 스플리터를 극찬했다.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다닐로프가 수건을 건넸다.

“나이스 피칭. 위기를 잘 넘겼군.”

다닐로프는 이번 시즌 5선발로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3선발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고마워.”

김민은 수건을 받은 뒤 그것으로 땀을 닦았다.

‘후…… 위험했어.’

라파엘에게 정면승부를 하다가 2루타를 맞은 것이 화근이었다.

‘괴물을 상대할 때는 조금 더 집중력을 높여야 해.’

다닐로프가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젊은 친구가 담력이 대단해. 라파엘을 상대로 그렇게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을 거야.”

“맞을 때 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생각은 그렇게 하지. 하지만 실제로 스트라이크를 넣는 투수는 드물어.”

다닐로프는 보스턴 타선을 상대로 적극적인 승부를 펼치는 김민이 부러웠다.

“다닐로프는 몇 년 차죠?”

“부상을 포함하면 7년.”

“FA계약은…….”

“다음 시즌이야. 부상이 너무 길었거든.”

그는 어느 팀에나 있는 사람 좋은 선배였다.

탬파베이 타선은 1회 말 화끈하게 3점을 뽑아낸 이후 쭉 침묵을 지켰다.

이반 감독은 타선의 침묵이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가면 위험한데?”

바이슨 수석 코치도 같은 생각이었다.

“3회 이후 한 명도 출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친구, 구속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역시 운영인가?”

“최고 구속은 93마일(150km)이지만, 좌우 코너를 찌르는 제구력이 좋습니다. 발렌타인은 어떻게 보면 킴과 비슷한 유형의 투수입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말대로 두 투수는 비슷한 점이 많군. 그렇다면 공략법도 같겠군.”

5회 말.

발렌타인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김민은 불펜으로 자리를 옮겨 가볍게 연습 투구에 들어갔다.

“경기 후반에는 더그아웃에서 쉬는 게 어때?”

에두아르도의 조언에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몇 이닝 남지 않았습니다. 몸이 식지 않게 덥혀 두는 것이 좋아요.”

“완투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보스턴을 상대로 완투승이라니요.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펜스를 때렸다.

“나이스 배팅!”

아홉 타자 만에 나온 탬파베이의 안타.

주인공은 록튼이었다.

“록튼, 저 친구가 안타를 다 뽑아내는군.”

이반 감독의 말을 코스타 타격 코치가 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록튼은 더블A에서 괜찮은 타자였습니다.”

록튼은 수비가 좋은 포수로 분류되고 있지만, 드래프트 당시에는 뛰어난 장타력을 지닌 포수로 주목을 받았다.

에두아르도가 김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킴, 파트너가 안타를 때렸어.”

김민은 그의 말에 어깨를 한 번 으쓱했을 뿐이었다.

“록튼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타석에 4번 나가면 안타 하나 정도는 때립니다.”

“록튼은 자네 선발 경기에서 유독 잘하는 것 같아.”

“글쎄요.”

김민은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에두아르도의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록튼은 평소 선발이 아니라 백업으로 7회 또는 8회에 투입된다. 이렇게 경기에 나서는 것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좋은 경기력이 나오기 힘들다. 반면 선발로 출장할 때는 처음부터 자신의 기량을 모두 펼칠 수 있다. 성적이 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딱!

다시 한번 경쾌한 타구가 나왔다.

“발렌타인의 볼에 익숙해졌군.”

호이스 감독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다소 과한 제스처와 짜증을 내는듯한 높은 목소리로 유명했지만, 승부처가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반헬, 불펜을 준비하게.”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오늘 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알겠습니다.”

반헬 투수 코치가 불펜에 인터폰을 건 순간 세 번째 안타가 터졌다.

“탬파베이! 발렌타인을 공략합니다!”

“5-1까지 스코어가 벌어졌군요. 탬파베이 연승 탈출을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발렌타인이 너무 빨리 무너졌기 때문에 보스턴 더그아웃은 제대로 손을 쓸 수 없었다.

5회 말에만 4실점.

발렌타인은 시즌 최악의 피칭으로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고 말았다.

“수고했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제때 교체를 준비하지 못한 탓이지.”

보스턴 코칭 스탭은 무너진 투수가 아닌 자신들에게 패배의 원인을 돌렸다.

호이스 감독이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발렌타인을 보며 말했다.

“조금 더 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어.”

반헬 투수 코치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발렌타인의 상태를 살폈어야 했는데…….”

“발렌타인 같은 유형의 투수는 타순이 두 번 돌고 나면 위험해지지.”

“공이 익숙해지기 때문입니까?”

호이스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킴도 이번 회에는…….”

호이스 감독이 반헬 투수 코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킴은 조금 다른 것 같군.”

6회 초.

김민은 완전히 다른 볼 배합을 들고 나왔다.

그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타자들을 요리했다.

호이스 감독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로케이션 다음에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인가? 저 친구 무기가 몇 개인지 모르겠군.”

김민의 달라진 모습은 동료들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타자의 타이밍을 스피드로 빼앗고 있어.”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된 것 같군.”

렉터가 부르스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자네 자리가 위험하겠는걸?”

부르스는 이마를 찌푸렸다.

“킴은 아직 2경기밖에 등판하지 않은 애송이일 뿐이야.”

렉터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난 항복하겠어. 킴은 애송이가 아니라 무서운 신인이라고. 2선발 자리는 그에게 양보하지.”

보스턴 타자들은 패스트볼과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는 체인지업에 잇달아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코스타 타격 코치는 김민의 체인지업에 혀를 내둘렀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고 있어.”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저렇게 대단한 체인지업을 왜 경기 초반에는 던지지 않은 건가?”

코스타 타격 코치 대신 블렛소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대단한 체인지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킴의 체인지업은 체인지업이 갖춰야 하는 기본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드로의 무브먼트나 카밀의 구속 같은 무기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타자를 압도할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네 말에 따르면, 평범한 체인지업에 메이저리그 강타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인가?”

“낯선 공이기 때문입니다.”

“으음…….”

“보스턴 타자들은 5이닝 동안 김민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그리고 커터에 집중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아마 헛된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배트는 패스트볼과 스플리터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갔을 것이고, 타구의 질도 더 좋아졌을 겁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블렛소 코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턴 타자들이 킴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그리고 커터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구종과 멀어지고 말았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김민은 보스턴 타자들이 자신의 공과 익숙해진 바로 그 순간 새로운 구종으로 볼 배합을 완전히 바꾸었다.

‘새로운 볼 배합이 통하는 건 아마도 한 타순 정도…… 완벽히 막아 낸다면 3이닝이겠지만, 그건 힘들겠지. 2이닝 정도를 보는 게 정확할 거야.’

그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이닝이 7회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던지면 발렌타인처럼 당할 거야.’

탁!

“빗맞은 타구가 1루수 머리 위에 뜹니다.”

“레드삭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군요.”

팡!

1루수 그렉스가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잡아냈다.

“킴, 6회 초도 무실점으로 막아 냅니다.”

“탬파베이!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습니다.”

스코어 7-1, 이 정도 점수 차이를 역전시키는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로도 힘든 일이었다.

7회 초.

김민은 사사구 1개와 안타 하나를 내줬지만,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킴, 이번 이닝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겼습니다.”

“이번 회 노라의 좋은 타구가 나왔지만, 그렉텐의 주루 미스가 뼈아팠습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더그아웃에 들어오자 직접 다가가 교체를 알렸다.

“킴, 오늘은 정말 수고했네. 다음 이닝부터는 페냐가 맡아 줄 거야.”

김민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조금 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의 호투는 구겨졌던 구단주의 얼굴도 활짝 피게 만들었다.

“오늘 투구는 정말 멋지군.”

빈스 구단주의 칭찬에 홀먼 단장이 양념을 얹었다.

“시즌 최고의 피칭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스카이 박스에서 단 둘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홀먼.”

“말씀하시죠.”

“이반 감독 말이야. 이번 시즌은 힘들어 보이는군.”

홀먼 단장은 빈스가 이번 시즌 부진을 이반 감독에게 전가하려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독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양이군.’

“오늘 경기에 이겨도 2승 4패, 확실히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초반 감독을 경질할 수는…….”

빈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감독을 경질하겠다는 말이 아니야. 감독을 바꾸면 계약금이 2배로 들지 않나. 난 그냥 그 가능성을 물었을 뿐이야.”

홀먼 단장은 빈스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이반 감독, 계약금 때문에 목숨을 건졌군.’

보스턴은 패전 투수라고 할 수 있는 레이먼드를 7회 말 마운드에 올렸다.

“보스턴이 백기를 들었군요.”

호이스 감독은 연승이 3에서 끊긴 것이 아쉬웠지만, 패색이 짙은 경기에 불펜진을 낭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는 레이먼드로 끝내지.”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머레이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갔다.

“머레이! 투런입니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9-1까지 벌어졌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두 경기 동안 억눌렸던 울분을 토해 내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타자들은 레이먼드를 두들겨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11-1이라. 완전히 끝났군.”

김민은 아이싱을 받으면서 자신의 투구를 복기했다.

‘7이닝 1실점. 결과만 놓고 보면 최고야. 하지만 오늘 투구는 어느 때보다 운이 많이 따라 줬어.’

그는 운이 나쁜 날이었다면 5이닝 4실점 정도에 그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속을 높일 수 없다면 실투를 줄어야 해.’

경기가 끝난 뒤, 김민은 최고 수훈 선수인 머레이와 함께 인터뷰룸으로 향했다.

“머레이, 오늘은 정말 대단했어.”

머레이는 다섯 번의 타석에서 홈런 1개와 4타점을 몰아쳤으며, 대형 타구를 2개나 잡아내는 등 수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매일이 오늘 같으면 좋겠어. 하지만 좋은 날은 많지가 않지.”

두 사람은 인터뷰를 마친 뒤,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 * *

“아메리칸 리그 이주의 신인이 발표되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스즈키 이치로입니다! 그는 지난주 0.379의 타율로 신인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록튼은 TV를 보곤 혀를 찼다.

“이주의 신인은 킴이라고. 보스턴을 상대로 그렇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누가 있는데?”

김민은 이주의 신인 같은 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TV에서 보여 준 이치로의 재능이었다.

“이치로의 선구안은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것 같군. 하지만 배트 컨트롤은 무서울 정도야. 공 하나 정도 존에서 빠지는 공을 모두 안타로 만들고 있어.”

록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킴, 저 친구도 곧 만나게 되겠지?”

김민은 달력을 확인한 뒤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달은 힘들고, 다음 달은 돼야 만나게 될 것 같군.”

“다음 주 시애틀 3연전은?”

“다닐로프, 부르스, 렉터야.”

“킴은?”

“그 다음 시리즈.”

록튼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것 참 아쉽군. 누가 아메리칸 리그 최고 신인인지 알려 줄 기회였는데.”

“최고 신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 겨우 2경기를 던졌다고.”

“내가 보기에는 킴이 최고야.”

김민에 대한 록튼의 신뢰는 무한에 가까웠다.

2승

14이닝 2실점

평균자책점 1.28

삼진 9개

아직 주목하는 이가 많지 않았지만, 김민의 시즌 시작은 사이영상 페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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