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51화 (51/296)

51화 첫 승리 03

“트로피카나 필드는 처음이지?”

에두아르도의 물음에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완전 처음입니다.”

완전 처음.

생소한 대답이었지만, 이는 본심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었다.

지난 생에서도 그는 트로피카나 필드만큼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는 매일 보게 될 거야.”

에두아르도는 신참들에게 홈구장을 소개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저기 지붕에 나무의 나이테 같은 철골이 보이지? 모두 4개인데, 여기선 저걸 캣워크라 부르지. 쓰임새는 제법 있는 편이야. 조명도 달려 있고, 보수할 때도 저곳을 이용하거든.”

트로피카나 필드는 메트로돔이나 도쿄돔과는 확실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투수들은 캣워크를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저곳에 맞으면 타구 판단이 애매해지니까.”

“만약 공이 캣워크에 맞은 뒤, 내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록튼이 묻자 에두아르도가 짧게 대답했다.

“더블(2루타).”

김민은 트로피카나 필드가 돔 구장이면서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봐서는 왜 투수 구장인지 모르겠어. 높은 펜스 때문인가? 아니면 넓은 외야?’

에두아르도가 김민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다른 돔구장과 달리 상승 기류가 전혀 없지. 한마디로 우리 홈구장에서는 외야 플라이가 바람을 타고 펜스를 넘어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바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구장.

얼핏 들으면 이게 무슨 장점인가 싶었다.

하지만 높이 뜬 플라이볼은 바람에 의해 비거리가 3~5m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투수들에게 안정감 있는 투구를 가능하게 했다.

‘우타자에게 힘들어 보이는 깊은 외야. 바람까지 없다면 우타자들은 저곳을 넘기는 게 좀처럼 쉽지 않을 거야.’

트로피카나 필드는 넓은 외야와 무풍이라는 특징 때문에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조금 더 유리한 구장으로 분류되었다.

‘투수 친화적인 구장에 좋은 수비수들. 탬파베이 투수진이 리그 평균인 것은 자랑할 만한 일까지는 아닌 것 같군.’

그는 탬파베이 투수진이 실제로 리그 평균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리그 평균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는 지금 탬파베이 투수진이 메이저리그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외야로 이동하지.”

에두아르드는 김민과 록튼 그리고 설리반을 데리고 트로피카나 필드의 외야로 이동했다.

“이곳은 가오리를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곳이야.”

트로피카나 필드의 명물 가오리.

넓은 수조 벽면에는 가오리를 만지는 요령이 적혀 있었다.

“톰, 잘 있었나?”

에두아르드가 손을 들자 키가 큰 관리인이 미소를 지었다.

“에두아르드, 병아리 산책인가?”

“올해도 내가 맡게 되었어.”

톰은 루키들에게 가오리 먹이를 한 줌씩 쥐여 주었다.

“입장객들에게는 유료지만, 자네들에게는 무료로 나눠 줌세.”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가오리에게 먹이를 주고 그것을 먹는 모습을 관찰했다.

“데블 레이스라는 팀명은 이 가오리에게서 따왔다고 하지.”

김민이 가오리에게 손을 데려는 순간 톰이 짧게 말했다.

“스트라이크야!”

김민은 손을 멈칫하곤 고개를 돌렸다.

“스트라이크가 좋은 것 아닌가요?”

톰이 어깨를 으쓱하며 벽면의 그림을 두들겼다.

그림에는 다음과 같이 표시되어 있었다.

가오리 등: 스트라이크.

가오리 날개: 홈런.

“홈런이 좋은 거지.”

“전 투수잖아요.”

“킴, 타석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김민은 가오리 날개를 만지며 말했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 리그라면 설득력이 더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톰은 김민이 만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시아 출신답지 않게 발음이 좋군. 혹시 이곳에서 태어난 친구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궁금함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톰이 지적한 김민의 영어 실력은 그의 강점 중 하나였다.

김민은 다른 아시아 선수들과 달리 팀메이트들과 의사소통이 확실했다.

“그라운드로 내려가지.”

세 선수는 에두아르드를 따라 그라운드로 내려왔다.

“트로피카나 필드는 인조잔디야. 그래도 잔디 질은 아주 좋아.”

김민이 잔디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타구 속도는 어떤가요?”

“타구 속도? 아, 내야를 따라 구르는 타구의 속도 말인가?”

“네.”

“다른 구장보다 빠르지. 하지만 내야수들의 수비력이 좋아서 문제가 되진 않아.”

3루수 안데르센의 수비가 조금 약하긴 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수비는 수준급이었다.

‘천장과 캣워크 때문에 플라이볼 투수가 불리할 줄 알았는데 타구 속도가 빠르다면 그라운드볼 투수가 더 어렵겠는걸.’

김민의 플라이볼과 그라운드볼의 비중은 반반이었다.

이는 그가 스플리터와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봤으면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메이저리그 홈팀의 라커룸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세 루키는 광활한 클럽 하우스에 시선을 빼앗겼다.

“여기가 전부 클럽하우스라고요?”

에두아르드가 두 손을 펼치며 말했다.

“어때? 스몰마켓인 우리 팀도 이 정도는 된다고.”

빅 마켓의 호사스러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클럽 하우스는 루키들에게 충분한 충격을 주었다.

“와우! 여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인가 봐.”

록튼이 어린아이처럼 클럽 하우스 안을 뛰어다녔다.

김민은 화려한 시설보다는 편의 시설에 더 관심을 보였다.

“클럽 하우스는 인터넷이 되는 모양이군요.”

“인터넷? 물론이지. 이곳에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다소 거만했던 설리반도 이번만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식당이 따로 있잖아. 마이너리그와는 완전히 다르군.”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작은 라커룸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의 두 배쯤 되는 라커룸을 가지고도 그곳이 아닌 클럽 하우스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규모가 완전히 달라.”

에두아르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의 라커를 소개하지.”

그는 라커룸으로 들어가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라커를 하나씩 가리켰다.

“저곳은 록튼, 저기는 설리반, 그리고…… 저쪽은 킴의 라커야.”

김민의 라커는 다른 선발 투수와 함께 오른쪽 벽에 위치했다.

에두아르드가 라커를 살피는 김민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나?”

“좋은 라커군요.”

“킴, 메이저리그 라커는 처음인 모양이군. 이곳에 마음을 빼앗기면 다시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 없지.”

메이저리그의 화려함을 맛본 선수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서도 그것을 절대 잊지 못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게. 출근 시간이 머지않았어.”

잠시 뒤, 탬파베이 선수들이 한 명씩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여, 에두아르드 오늘 일찍 왔군.”

“루키들 교육이 있어서 말이야.”

“아, 루키들…….”

안데르센이 록튼과 김민을 확인하곤 오른손을 들었다.

“메이저리그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는 밝은 성격을 지닌 선수였다.

30분 정도 지나자 거의 모든 선수가 출근을 마쳤다.

“오늘은 보스턴과 경기다. 다들 준비하도록!”

수석 코치 바이슨의 한마디와 함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향했다.

* * *

보스턴 레드삭스.

그들은 아직 밤비노의 저주를 풀지 못한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레드삭스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1차전 중계를 맡게 된 헐리와 마이크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이크입니다.”

중계진을 비췄던 카메라가 관중석으로 방향을 돌렸다.

트로피니카나 필드 홈 개막전.

4만6천 석에 이르는 좌석은 완전히 매진되어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가자! 레이스!”

곳곳에서 레이스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김민은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에서 경기를 보고자 했다.

“킴, 이번 시리즈 3번째 경기 선발 아니야?”

에두아르드의 물음에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더그아웃에서 보는 게 더 나을 거야. 타자들의 습관이나 타이밍을 볼 수 있거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오늘은 불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에두아르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 그것도 나쁠 건 없지. 선발 투수로서 불펜 투수들과 친해지면 좋은 게 많거든.”

불펜 투수와 선발 투수의 관계는 좋은 편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훨씬 나았다.

물론 김민이 불펜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더그아웃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경기를 관전하고자 했다.

‘가능하면 야수 입장에서 경기를 보고 싶어.’

김민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트로피카나 필드의 특이한 구조와 설계 때문이었다.

그는 트로피나카 필드의 특징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시작된 홈 개막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1선발이자 에이스인 부르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부르스는 팀의 기대에 맞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이 펜스를 때렸다.

“노라! 펜스 직격 2루타입니다!”

1회 초에 3실점.

에이스의 자존심은 레드삭스의 강타선 앞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김민은 레드삭스 타자들의 배트가 무섭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레드삭스가 이 정도라면 최강이라는 양키스 타선은 얼마나 대단한 거지?’

2회에도 레드삭스의 맹공이 이어졌다.

“부르스! 다시 점수를 빼앗깁니다.”

“레드삭스 선수들의 컨디션이 아주 좋군요.”

부르스는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았다.

‘제길……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치 배팅볼을 때리듯 때리는군.’

3회 말 탬파베이가 2점을 뽑으며 추격했지만 스코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가자! 레이스!”

“투지를 보여 줘!”

곳곳에 목소리를 높이는 팬들이 있었지만, 그 숫자도 1회에 비하면 확실히 줄어 있었다.

“어렵겠는걸.”

김민이 낮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레드삭스가 적시타를 때리며 리드를 5점으로 벌렸다.

스코어는 어느덧 7-2.

부르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의 오늘 성적은 5와 2/3이닝 8피안타 3사사구 7실점.

에이스의 위용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 투구였다.

“설리반 준비해.”

설리반은 선발이 아닌 불펜에 합류해 롱릴리프로 활약하고 있었다.

불펜 코치는 그에게 다음 투수로 투입될 수 있다는 사인을 주었다.

팡! 팡!

설리반의 패스트볼이 불펜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7회 초.

설리반이 투입되었다.

승패는 이미 상관없는 상황.

관중들은 루키 투수의 홈 데뷔전에 주목했다.

“설리반이군.”

“저 친구는 미네소타전이 좋았어.”

“실점 없이 1이닝을 막았었지?”

“1과 1/3이닝이야.”

설리반은 95마일(153km)의 패스트볼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타자는 삼진 아웃.

팬들은 루키의 호투에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경기는 설리반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군.”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타자가 설리반으로부터 3루타를 뽑아내면서 관중들을 침묵시켰다.

“가르시아! 좋은 배팅입니다!”

“레드삭스의 배트가 오늘도 뜨겁군요.”

설리반은 3루타를 맞은 뒤, 다음 타자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지만, 그 사이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다.

보스턴 9:3 탬파베이.

보스턴 레드삭스의 리드가 6점으로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김민은 불펜에서 야수들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탬파베이는 확실히 수비가 좋은 팀이야. 공격력만 조금 더 나아진다면 중위권은 가능하겠어.’

그는 손에 노트를 쥔 채 야수들의 동선과 움직임을 선과 그림으로 알기 쉽게 기록했다.

보스턴 11:6 탬파베이.

이날 경기는 결국 보스턴의 대승으로 끝났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이것으로 3연패.

코칭 스탭의 표정은 당연히 어두웠다.

“에이스를 내고도 졌군.”

“부르스의 볼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홈 개막전을 위해 아낀 게 독이 된 건가?”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과 코치들은 다음 경기만큼은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탬파베이는 보스턴에 끌려갔다.

4회 초.

보스턴 4:2 탬파베이.

레드삭스는 이날 많은 득점을 올리진 않았지만 탄탄한 투수력으로 탬파베이 타선을 틀어막았다.

“론도 말이야. 5점대 투수가 맞는 건가?”

“오늘만큼은 페드로 못지않군.”

2001년.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00년 시즌 믿기지 않는 활약으로 메이저리그 모든 시즌, 모든 투수를 합해 WAR(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 1위를 달성했다.

이 시기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정점에 서 있었다.

“이번 시리즈에 페드로가 나오던가?”

“아마 안 나올걸?”

“여섯 번째 경기 아니야?”

“여섯 번째 경기는 맞는데 저쪽에서 발렌타인을 낸다는 소문이야.”

“뎁스가 두꺼운 팀은 다르군.”

보스턴 레드삭스는 에이스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에게 하루 더 휴식을 주고 다음 홈경기에 등판시킬 예정이었다.

록튼이 김민에게 다가와 말했다.

“킴, 다행이야. 내일 선발, 페드로가 아니래.”

김민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쉽게 되었어.”

록튼은 눈을 크게 떴다.

“아쉽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레전드와의 승부, 결과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록튼은 김민의 대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페드로 마르티네스라면 유력한 300승 투수 후보지. 그런 레전드와 선발 대결을 펼칠 수 있다면 훗날 손자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될 거야.”

2001년 초까지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기세는 300승에 도전할 만했다.

하지만 2001년 중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어깨 부상을 당하고 만다.

결과는 시즌 아웃.

다음 해 부활한 페드로는 2점대 평균자책점과 20승 그리고 200K(삼진)에 성공하지만,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최강의 투수와 맞붙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어.’

김민은 부상으로 약해진 페드로가 아닌 외계인 페드로와 정면승부를 펼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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