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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48화 (48/296)

48화 메이저리그 데뷔 04

“잘 버텨 주는군요.”

“예상 이상이군.”

기자들은 홀먼 단장이 근거 없이 호언장담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가 이기면 제대로 된 기사 하나 나오겠습니다.”

“화제성만 따지면 탬파베이가 이기는 게 좋겠지. 하지만 싱글A 루키에게 패한 미네소타 쪽도 생각해 보라고. 잘만 감독에게는 악몽이 따로 없을 거야.”

미네소타 트윈스의 분위기는 개막전답지 않게 가라앉아 있었다.

관중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싱글A 루키에게 눌려 있는 이유가 뭐야!”

“에이스를 고독하게 만들지 말라고!”

레드는 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를 상대하는 탬파베이 타선은 7, 8, 9번.

7번 타자 닐슨은 레드의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레드, 가운데로 하나 던져 보라고.’

배트를 세우자 빠른 공이 날아왔다.

‘가운데!’

그러나 공은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미끄러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날카로운 슬라이더.

이반 감독은 답답한 듯 물을 찾았다.

“누가 닐슨의 어깨에 들어가 있는 힘을 좀 빼 줘.”

닐슨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제대로 된 스윙을 하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콜에 관중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잘한다! 레드!”

“K! K! K!”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 레드가 빠른 승부를 이어갔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닐슨은 꽉 찬 공이라 생각해 배트를 휘둘렀지만,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버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메트로돔을 메운 5만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K! K! K! K!”

불펜 의자에 앉아 있던 설리반은 미간을 좁혔다.

“더럽게 시끄럽군요.”

다닐로프가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함성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다음 타자인 유칼리스도 역시 삼진.

메트로돔은 홈런이 아닌 삼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K! K! K! K!”

대기 타석에 선 칼튼이 배터박스에 들어선 록튼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록튼, 삼진만 당하지 말라고.”

록튼 역시 삼진만큼은 피할 생각이었다.

‘레드의 피칭에 날개를 달아 줄 수는 없지.’

슉!

초구는 빠른 공이었다.

‘슬라이더? 아니면 패스트볼?’

잠시 멈칫한 순간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코너를 찔렀다.

팡!

“스트라이크!”

김민의 패스트볼보다 빠른 공.

록튼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95마일짜리 공으로 코너를 찌르다니, 이게 메이저리그 에이스의 제구력인가? 마이너리그와 차원이 달라.’

그는 배트를 짧게 잡았다.

그 순간 미네소타의 포수 피어리가 말했다.

“록튼, 삼진에 신경을 쓰다가는 한 명도 출루하지 못할걸?”

록튼은 피어리와 싱글A에서 수차례 마주한 바 있었다.

“그렇다고 스윙을 크게 가져가면 삼진의 탑을 쌓을걸?”

“하하하, 그건 그렇지.”

피어리는 탬파베이 타선으로 레드를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록튼…… 네가 좋은 포수란 건 인정하지만 네 배트는 그렇지 않아. 네 실력으로 레드의 공을 때리는 건 무리야.’

잠시 뒤,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록튼은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슬라이더가 아니야! 패스트볼이다.’

그의 배트가 코너를 노리는 공을 끝까지 따라붙었다.

툭!

배트 끝에 맞은 공이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너무 얕아!’

록튼은 조금 더 배트에 힘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하지만 공은 이미 떠오른 다음이었다.

“포수!”

“오케이!”

피어리는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그대로 공을 잡았다.

“포수 파울 플라이. 킴에게 휴식시간조차 보장하지 못했군.”

이반 감독은 타자들의 공격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가 시간을 조금 끌어 볼까요?”

블렛소 투수 코치의 물음에 이반 감독이 고개를 흔들었다.

“몇 초 시간을 끌어서 나아질 것이 뭐가 있겠나. 주심의 심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이번 회는 록튼이 마지막 타자였어. 자네가 시간을 끌지 않아도 괜찮아.”

“포수가 장비를 착용할 시간만큼 더 쉴 수 있다는 뜻이군요.”

김민은 포수인 록튼이 마지막 타자였기에 다른 회보다 조금 더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짧은 휴식시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시즌 중반도 아니고, 개막전. 체력이 부족하다면 스프링 캠프를 제대로 치르지 않은 것이겠지.’

그는 큰 걸음으로 마운드를 향했다.

“플레이!”

김민은 패스트볼 그립을 잡고, 평소처럼 바깥쪽에 공을 넣었다.

슉!

다음 순간 공은 1, 2루 사이를 통과했다.

“안타다!”

“첫 안타야!”

미네소타 코칭 스탭은 첫 번째 안타가 나오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때렸군.”

“선두 타자가 출루했습니다. 이번에는 선취 득점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민은 선두 타자를 출루시켰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바깥쪽 공을 제대로 밀었군. 메이저리그 타자에게 코스를 읽히면 이렇게 된다는 건가?’

그는 그래도 바깥쪽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겁을 먹을 때는 아니야.’

두 번째 타자에게도 바깥쪽 패스트볼.

다만 이번에는 공을 하나 정도 더 바깥으로 뺐다.

슉!

8번 타자 스펜서는 장타력이 있는 선수였지만, 선구안이나 배트 컨트롤은 앞선 타자들보다 못했다.

그는 하나 정도 빠지는 공에 그대로 배트가 나오고 말았다.

툭!

배트 끝에 걸린 공이 1루로 향했다.

“2루는 늦었어! 타자를 잡아!”

포수의 콜에 따라 수비가 빠르게 이뤄졌다.

1루수 그레이가 공을 잡아 김민에게 토스했고, 김민은 재빨리 1루 베이스를 터치했다.

“아웃!”

1루심의 아웃 판정과 함께 상황 종료.

미네소타 잘만 감독은 타자가 아웃 되었지만,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원 아웃 주자 2루. 주자가 드디어 스코링 포지션에 들어갔군.”

타격 코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2루 주자는 루키인 킴에게 상당한 압박일 겁니다. 아마 볼 배합이 변할 겁니다.”

김민은 글러브에 공을 넣은 뒤 다음 타자를 확인했다.

‘9번인가?’

내셔널 리그였다면 9번은 만만한 투수였다.

그러나 아메리칸 리그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았다.

9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것은 유격수 사일론이었다.

“사일론! 한 방 부탁한다!”

“깔끔하게 안타 하나 가자!”

김민은 투구 동작으로 들어가는 대신 발을 빼고 2루 주자를 견제했다. 그리곤 다시 공을 받은 다음 로진백을 만졌다.

‘타이밍은 끊었고. 자, 이제 어떤 공을 던질까?’

잠시 망설이던 그가 초구 사인을 결정했다.

- 바깥쪽 패스트볼.

세 타자 연속 바깥쪽 패스트볼.

잘만 감독은 그의 고집에 혀를 내둘렀다.

“볼이 되긴 했지만, 또 바깥쪽이군.”

“안쪽은 제구가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투수란 말인가?”

“이번 타석에서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하죠.”

타격 코치는 배터박스에 서 있는 타자에게 재빨리 사인을 냈다.

9번 타자 사일론은 코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은 버리고 바깥쪽을 집중 공략하라는 뜻이군. 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위치를 바꾸면 투수도 알아차릴 텐데…….’

메이저리그 투수 중에는 노골적인 바깥쪽 공략에 힛 바이 피치 볼(데드볼)로 응대하는 투수도 있었다.

‘설마 루키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

김민을 상대로 배터박스에 바짝 붙는 전술은 처음이 아니었다.

록튼은 미네소타의 전술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킴은 바깥쪽밖에 던지지 못해서 바깥쪽을 고집하는 게 아니야. 미네소타는 카운트 하나를 버렸군.’

김민이 바깥쪽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쪽 공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사인은 여지없었다.

- 안쪽 패스트볼.

92마일(148km) 패스트볼이 안쪽 스트라이크 존을 노리고 들어왔다.

슉!

사일론은 안쪽을 깊이 찌르는 공에 혀를 찼다.

‘이건 커트도 불가능하잖아.’

그가 멈칫하는 사이 공이 미트를 때렸다.

팡!

“스트라이크!”

잘만 감독은 안쪽 코너를 파고든 공에 두 손을 가슴 높이까지 들었다.

“우리가 당했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안쪽에 꽂았습니다.”

사일론은 첫 번째 스트라이크 이후 위치를 수정했다.

‘용서가 없는 친구군. 이제 안쪽도 던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바깥쪽으로 하나 꽂아 달라고.’

그는 배터박스 가운데 서 있었지만, 히팅 포인트는 여전히 바깥쪽 공에 맞추고 있었다.

잠시 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깥쪽 코스에 공이 날아왔다.

‘좋았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배트를 내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누군가 공을 포크로 찍은 것처럼 공이 떨어졌다.

‘스플리터!’

툭.

배트 아랫부분에 맞은 공이 크게 튀어 올랐다.

“1루!”

바운드가 컸기 때문에 2루 주자가 3루로 내달리는 것은 저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2루수 칼튼은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3루를 한 번 확인했다.

‘늦었어.’

그는 할 수 없이 1루로 송구했다.

팡!

“아웃!”

주자가 3루까지 들어갔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아웃 카운트가 늘어났다는 것은 비보였다.

“투 아웃 주자 3루라. 이번에는 사일론이 성급했군.”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패스트볼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 타자가 카인이라는 사실이야.”

1번 타자 카인.

그는 뛰어난 배트 컨트롤을 가진 타자로 앞선 타석에서 김민의 공을 한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루키 친구, 두 번째 타석부터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록튼은 카인의 컨택 능력을 경계했다. 그는 지금이 볼 배합을 바꿀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킴, 카인부터는 쉽지 않아. 볼 배합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나 김민의 사인은 1회와 같았다.

- 바깥쪽 패스트볼.

‘킴, 카인이라고.’

록튼은 사인을 받는 대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사인을 냈다.

그러나 김민의 사인은 바뀌지 않았다.

록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아, 킴…… 그 공은 위험하다고.’

마음 같아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사인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투수가 결심을 굳힌 상황에서 포수가 그것을 뒤엎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할 수 없지.’

미트를 내밀자 바깥쪽으로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슉!

카인은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볼 끝이 좋은 패스트볼. 하지만 두 번 통하진 않아.’

그는 완벽한 타이밍에 배트를 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래쪽 코너가 아니라 위쪽이라고?’

김민의 패스트볼은 같은 바깥쪽이었지만, 낮은 코너가 아닌 높은 코너를 공략해 들어왔다.

한마디로 이번 패스트볼은 높이가 다른 공이었다.

팡!

공이 미트에 들어온 순간 주심이 멋진 제스처와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히팅 포인트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에 헛스윙은 당연한 일이었다.

타격 코치는 믿었던 카인의 헛스윙에 고개를 갸웃했다.

“카인이 욕심을 부린 걸까요? 코스를 알고도 헛스윙을 했군요.”

“내가 보기에는 같은 공이 아닌 것 같군. 전력분석팀에 연락해 봐.”

타격 코치가 재빨리 인터폰을 들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가 두 번.

“전력분석팀입니다.”

“이번 공이…….”

타격코치와 전력분석팀 사이에 말이 빠르게 오갔다.

탁.

타격 코치가 인터폰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감독님의 눈이 옳았습니다. 초구는 바깥쪽이지만 높은 코스였다고 합니다.”

“바깥쪽은 그대로 두고 높이만 조절했군. 재미있는 친구야.”

잘만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민을 주시했다.

두 번째 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공이었다.

가운데서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볼 배합은 초구가 아닌 두 번째 공부터 바뀌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인은 스플리터에 크게 스윙하곤 노성을 토했다.

“제기랄!”

김민의 스플리터는 낙차가 포크볼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에 속았다고 해도 큰 헛스윙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큰 헛스윙이 나온 것은 카인이 떠오르는 공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록튼은 김민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무기가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높은 코스를 노리면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떠오르는 공과 떨어지는 공. 이것은 단순한 이지선다가 아니야.’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승부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를 노렸다.

‘빌어먹을! 하나 기다려 주지도 않는 건가!’

카인은 어떻게든 그 공을 쳐 내려 했지만, 타이밍과 히팅 포인트가 전혀 맞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가장 위험한 순간, 가장 위험한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김민이었다.

“카인! 94마일(151km) 패스트볼에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좋은 공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공은 배리 본즈도 꼼짝하지 못할 그런 공입니다.”

백네트 뒤에 위치한 기자들은 슬슬 개막전 기사를 고치기 시작했다.

- 메트로돔에서 열린 개막전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투수전으로 전개되었다. 양 팀의 선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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