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메이저리그 데뷔 02
미네소타 트윈스 코칭 스탭과 전력분석팀은 개막전 선발이 공개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킴민이라니, 어떤 선수입니까?”
“이번 시즌 처음으로 스프링 캠프에 참여한 루키입니다. 시범 경기에서 4차례 선발 등판했지만…… 개막전 선발로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허를 찔렸습니다.”
그들이 김민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과 스플리터와 커터가 좋다는 것뿐이었다.
잘만 감독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데이터가 많이 부족하군요.”
“탬파베이가 승리를 포기한 것일까요?”
코칭 스탭은 탬파베이가 도박이 아닌 포기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력분석팀의 생각은 달랐다.
“개막전부터 포기는 있을 수 없습니다. 킴민이란 선수 의외로 복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시범 경기 성적이 좋습니다.”
미네소타의 잘만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시범 경기는 시범 경기일 뿐입니다. 시범 경기 성적을 참고한다면 우리 팀의 존스도 사이영상 후보입니다.”
같은 지구에 속해 있는 보스턴과 양키스는 김민의 선발 등판을 의무적이라도 체크했으나, 다른 지구 팀인 미네소타는 김민이 선발로 나올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민의 투구폼이나 볼 배합, 운영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했다.
“데이터가 전무한 싱글A 루키, 뭐 붙어 보면 알겠죠.”
타격 코치는 자신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투구 코치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무명의 선수라고 해도 마이너리그 데이터는 분명 있을 겁니다. 마이너리그 스카우트 팀에서 작성한 자료를 참고하면 어떨까 합니다.”
전력분석팀 팀장 에드몬드가 A4용지를 꺼내 스탭들에게 돌렸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께 나눠드린 것이 바로 킴의 마이너리그 스카우트 리포트입니다.”
투수 코치는 스카우트 리포트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우완, 그리고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 투구폼은 쓰리쿼터,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1마일(146km),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삼고 있으며 바깥쪽에 치우친 투구를 한다. 안쪽 제구력은 미지수로 남아 있으며 가끔 던지는 커브와 슬라이더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다.”
그는 스카우트 리포트를 읽곤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정도로는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로 나올 수 없습니다.”
에드몬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래서 당혹스러운 겁니다. 개막전 선발에 나올 수 없는 투수가 선발로 나왔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ESPN은 난리더군요. 탬파베이 역사상 처음으로 더블A도 거치지 않은 루키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다고 말입니다.”
잘만 감독이 두 손을 펴며 말했다.
“어쩌면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겠다는 생각 말입니까? 하지만 원정 개막전 아닙니까? 홈도 아닌데 우리 쪽에서 열리는 개막전에 시선을 맞춰 봐야 무슨 득이 있을까요?”
듀크 불펜 코치가 손을 모으며 말했다.
“프로파간다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위장 선발 말입니까?”
투수 코치의 물음에 잘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가능성이 있군. 우리가 루키에게 맞춰 타선을 짜면 2회에 렉터나 클락이 짠하고 나타나는 거지.”
렉터와 클락은 탬파베이 선발 3총사 중 두 명이었다.
“그럼 위장 선발에 맞춰 로테이션을 짜 보겠습니다.”
잘만 감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어느 쪽에도 치우칠 필요 없어. 우리가 전력으로 탬파베이에 밀릴 리가 없지 않은가? 밸런스 잡힌 타선이면 충분해.”
지난 시즌 미네소타의 성적은 탬파베이보다 낫다고 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1패가 더 많아 탬파베이보다 못한 꼴찌 팀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달랐다.
경쟁력을 가진 루키와 유망주들이 대거 라인업에 포진되면서 미네소타는 중위권 도약을 노렸다.
잘만 감독은 탬파베이와 미네소타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을 웃음거리라고 생각했다.
“피어리와 헐크는 메이저리그에서 3할을 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어디 그뿐인가? 말론은 우리가 그토록 찾던 4번 타자야. 이번 시즌 트윈스는 달라.”
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2001년 시즌 미네소타는 젊은 선수들이 대폭발하며 꼴찌에서 지구 2위로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코치들 역시 잘만 감독과 생각이 같았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 타선이면 싱글A 루키쯤은 상대가 안 되죠.”
“3회 전에 마운드에서 넉 다운시켜버릴 겁니다.”
미네소타 코칭 스탭과 전력분석팀은 선수들을 믿고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 *
개막전 당일.
홀먼 단장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여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개막전에 나설 킴 선수가 궁금하다고요? 저도 궁금합니다. 킴이 얼마나 뛰어난 성적을 올릴지 말입니다. 제가 킴을 과대평가한다고요? 설마요. 전 객관적인 시선에서 선수를 보려고 노력하는 단장입니다.”
그는 말을 잠시 쉬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이제 노모 히데오는 잊으십시오. 킴이 그의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아시아 특급, 아니, 아시아에서 날아온 몬스터, 그가 바로 킴입니다. 다들 체널을 고정하고 오늘 개막전을 시청해 주십시오. 킴이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여 줄 것입니다.”
자신감 넘친 인터뷰에 미네소타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 말도 안 되는 소리!”
“머리가 검은색이면 다 노모 히데오가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요즘 메이저리그에 아시아 선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야?”
“그러게 말이야. 언제부터 아시아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다고!”
김민은 단장이 과장된 인터뷰를 하든 말든 불펜에서 조용히 공을 던졌다.
팡! 팡!
록튼은 김민이 오늘따라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 킴이라면 경기 전에 이런저런 농담을 했을 텐데. 오늘만큼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 등판.
아무리 김민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후……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 등판이라니, 코칭 스탭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군.’
그가 말을 줄인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사흘 전.
탬파베이 전력분석팀은 김민에게 미네소타 타자들의 데이터를 건네주었다.
김민은 그것을 받자마자 혀를 찼다.
“우리 팀 못지않게 젊은 선수들이 많아. 게다가 이 선수 중 절반은 훗날 메이저리그 스타가 될 선수들이잖아.”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그는 미네소타의 젊은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민은 전력분석팀에서 보내온 마이너리그 자료들을 한쪽으로 치웠다.
“피어리는 미래의 MVP 후보고, 헐크는 월드시리즈 MVP를 받았지. 말론 역시 1, 2시즌 안에 포텐이 폭발할 거야. 마이너리그에서 고전했던 자료들은 의미가 없어. 이들을 메이저리그 레귤러라고 생각하고 경기 플랜을 짜야 해.”
그는 20년 전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하나 나오는 것이 많지 않았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피어리의 컨택이 뛰어나다는 것과 헐크의 약물과 근육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정도. 자세한 것은 몸으로 부딪쳐 봐야 알 수 있겠어.”
데이터가 없는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구단 스탭이 문을 열고 김민과 록튼을 향해 말했다.
“경기 시작 10분 전입니다.”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알려 줘서 고마워.”
원정팀 선발 투수는 1회 말에 등판하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었다.
“킴, 슬슬 스피드를 올려 볼까?”
김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조금 더 지켜보자고.”
“오케이.”
개막전 시작에 앞서 여러 가지 식전 행사가 진행되었다.
팀 레전드의 인터뷰, 퇴역 용사의 시구, 그리고 단장과 시장의 개막 인사가 이어졌다.
주심의 힘찬 사인이 나온 것은 이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다.
“플레이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시작되었다.
미네소타의 선발은 에이스인 레드.
그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뒤 그립을 고쳐 잡았다.
“레드! 화이팅!”
“믿는다! 레드!”
레드에 대한 미네소타 팬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슉!
빠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왔다.
팡!
“스트라이크!”
레드는 그 믿음에 보답하듯 강속구로 1번 타자 칼튼을 압도했다.
팡!
잇달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꽂혔다.
칼튼은 긴장했고, 레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번 타자로 나선 칼튼이 힘없이 삼진으로 물러섰다.
“나이스 피칭!”
“역시 레드!”
이반 감독은 칼튼의 삼진에 이마를 찌푸렸다.
“뻔한 슬라이더잖아! 조금 더 참고 볼 수는 없는 건가?”
코스타 타격 코치가 이반 감독을 위로하듯 말했다.
“개막전 첫 타석이라 긴장한 것 같습니다.”
2번 타자 카를로스도 좋지 않았다. 그는 초구를 공략했지만, 유격수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투수를 도와주는 건가? 초구 아웃이라니!”
이반 감독은 더그아웃 펜스를 잡은 채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감독 중 한 명이었다.
세 번째 타자는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던 3루수 안데르센이었다.
“안데스센까지 힘없이 물러나진 않겠지.”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트가 헛돌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탬파베이는 올해도 다를 게 없군.’
레드는 자신감을 가지고 탬파베이 타자들을 요리했다.
탁!
빗맞은 공이 1루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내야 플라입니다! 레드! 안데르센을 잡아내고 1회 초를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역시 레드는 레드군요. 개막전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이반 감독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번 시즌도 쉽지 않겠군.”
지난 시즌 꼴찌 팀에게 쉬운 시즌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잘할 수는 없는 건가?’
이반 감독은 한 명쯤 ‘툭’ 하고 뛰어난 루키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킴은 준비되었나?”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준비되었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 팀 루키의 피칭을 한번 보도록 하지.”
덜컹.
불펜 문이 열리며 김민이 마운드로 나왔다.
그는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을 보곤 마른침을 삼켰다.
‘메이저리그 개막전. 꼴찌 팀이라고 해도 관중이 가득 들어차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구장 휴버트 험프리 메트로돔은 1988년 개장한 도쿄돔의 모델이 될 정도로 유명한 돔구장이었다.
메트로돔은 공기 주입식 돔으로, 초기에는 상승 기류 때문에 홈런이 대량 생산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현재는 공기 조절기를 설치하고 펜스 높이를 높여 홈런 문제를 해결한 상태였다.
김민은 메트로돔 마운드에 올라 연습 피칭에 들어갔다.
팡! 팡!
느슨하게 시작했던 피칭이 점점 빨라졌다.
팡! 팡!
록튼은 김민의 패스트볼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킴의 패스트볼이지.’
팡!
마지막 연습구는 전광판에 93마일(150km)이란 숫자를 찍었다.
그러나 관중들은 93마일이라는 숫자보다는 김민이란 투수 자체에 주목했다.
“킴이라고? 처음 보는 투수잖아.”
“저런 투수가 탬파베이에 있었나? 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 데려온 선수 아니야?”
“그렇다면 의외로 잘 던질 수도 있어.”
2000년 초반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일본 선수 영입에 적극적이었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 재개 사인과 함께 김민이 투구에 들어갔다.
초구는…….
- 바깥쪽 패스트볼.
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공이었다.
슉!
투수의 손을 빠져나온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돌진했다.
‘패스트볼이라면 거절하지 않겠다.’
1번 타자 카인이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탁!
빗맞은 공이 1루 파울 라인에 떨어졌다.
“파울!”
1루심이 두 손을 활짝 펴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초구 94마일(151km)이 나왔습니다!”
“구속 자체는 나쁘지 않군요.”
캐스터와 해설자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처음 등판한 루키에게 호의적이었다.
“과감하게 초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었습니다.”
“루키다운 패기라고 생각합니다.”
“루키하면 패기죠?”
“그렇습니다. 루키가 도망치는 피칭을 한다면 노련한 타자들의 사냥감이 될 뿐입니다.”
김민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로진백을 만졌다.
‘공을 놓을 때 느낌이 좋아.’
그는 오늘 경기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다.
1번 타자 카인은 김민의 초구가 살짝 떠오른 것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단순한 패스트볼이 아닌가?’
그는 김민이 포심 패스트볼과 다른 뭔가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잠시 뒤,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이번 공은 바깥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패스트볼.
카인은 메이저리그 테이블 세터답게 이 공을 참아냈다.
“카운트 1-1입니다.”
“카인이 좋은 선구안을 보여 주는군요. 지난 시즌 출루율 0.367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0.367의 출루율은 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었다.
‘어이, 루키. 바깥쪽만으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김민은 카인의 날카로운 선구안에 볼 배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마이너리그 타자들과는 다르군. 빠지는 공에 배트가 나오지 않아.’
그가 선택한 세 번째 공은 안쪽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
타자의 배트가 크게 헛돌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인은 마지막 순간 떨어진 공을 보고 혀를 찼다.
‘쳇, 스플리터가 주 무기라고 했었지. 떠오른 공 때문에 잊고 말았어.’
그는 다음 공으로 다시 바깥쪽 패스트볼이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스플리터가 올 수도 있지만, 두 번이나 연속으로 스플리터를 던지진 않을 거야. 아마 그 이상한 패스트볼이 날아올 가능성이 커.’
그는 스플리터를 조심하면서 바깥쪽 공을 노렸다.
슉!
네 번째 공은 그의 예상대로 바깥쪽으로 빠른 공이었다.
‘왔다!’
카인의 배트가 날카롭게 공을 노렸다.
그러나 공의 움직임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흘러나간다고?’
탁!
배트 끝에 걸린 공이 투수 앞에 떨어졌다.
‘커터!’
카인은 김민의 구종을 파악했으나 너무 늦고 말았다.
“1루!”
김민은 침착하게 공을 잡은 뒤,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했다.
“아웃!”
이반 감독은 김민이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생각했다.
“킴이 날 살려 주는군.”
“5회까지 2실점 이하로 버텨 준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탬파베이 코칭 스탭은 개막전 승리가 김민의 손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