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45화 (45/296)

45화 메이저리그 데뷔 01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전의 한 야구장이었다.

당시 그는 선수였고, 나는 코치였다.

그러나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만남은 두 사람의 위치를 바꿔버린 것 같았다.

- 김민 코치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야구팬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별명이 하나 있다.

투 머치 토커.

말이 매우 많은 사람.

별명의 주인공은 박찬호.

투 머치 토커란 별명은 동료에 대한 관심과 팬에 대한 서비스가 과해서 생긴 것이었다.

김민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는 사내를 보고 한기를 느꼈다.

이것은 위압감과는 조금 다른 감각이었다.

‘하필 이런 때에…….’

아차 하는 순간 박찬호가 손을 흔들었다.

“김민이라고 했나?”

김민에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선배 이상의 존재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는 김민의 우상이자 목표였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표정의 인사.

박찬호가 희고 푸른 유니폼을 입은 채 오른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를 매우 좋아했다.

“이번에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올랐다지?”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김민의 대답에 박찬호가 활짝 웃었다.

“메이저리그는 말이야. 마이너리그와 완전히 다른 곳이지. 그러니까 그 차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김민은 결국 시작되어 버렸구나 싶었다.

‘경기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제발 1시간 이내로 끝내줬으면 좋겠어.’

박찬호의 프리 토킹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와 박찬호의 첫 만남은 1시간 30분이었지만, 그다음 사석에서는 6시간 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입성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첫 번째 등판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1994년이었지. 상대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고, 음 맞나? 아니야. 확실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어. 당시 난 완전히 풋내기였지. 메이저리그가 어떤 곳인지 정확히 몰랐고, 내가 어떤 타자들과 대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 내가 알고 있는 건 내가 그곳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어. 김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김민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 네.”

박찬호는 김민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치 자네 얼굴 같았어. 내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날씨가…….”

그는 등판 당시 날씨와 벤치의 모습 그리고 주변 관중들의 웅성거림까지 거침없이 묘사하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날 주시하고 있었지. 몇몇은 쌍안경으로 날 바라보기도 했어. 메이저리그 루키가 첫 공을 던지는 순간 곳곳에서…….”

김민은 코칭 스탭이나 동료들이 자신을 구해 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두 한국 선수의 만남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듯 주변을 멀리 돌아가곤 했다.

“자네와 오늘 대결할 친구는 데런 드라이포트인데. 그 친구는 말이야. 나하고 같은 해 데뷔했지. 하지만 그 친구의 첫 시즌은 나 못지않게 좋지 않았어.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마이너리그로…….”

투 머치 토커의 마이너리그와 인생사는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킴, 불펜 투구에 들어가야지.”

블렛소 투수 코치의 구조가 아니었다면 김민은 마운드에 오를 때까지 그의 메이저리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박찬호가 오른손을 흔들며 김민의 선전을 기원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 또 이야기하자고.”

김민은 영혼이 빠져 버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뵙겠습니다.”

불펜으로 돌아온 김민.

그가 한숨을 내쉬자 록튼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리 표정이 좋지 않아?”

“머릿속이 지끈지끈해서.”

“박, 동향 사람 아니야?”

“좋은 사람이긴 한데…… 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투 머치 토커인가?”

“그 별명 알고 있는 건가?”

록튼이 마스크를 쓰며 말했다.

“별명이 그거야? 설마,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말이 많아졌던 것뿐일 거야. 나도 고향 친구를 만나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곤 해.”

록튼은 마지막까지 25인 로스터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그의 경쟁 상대는 지난해 백업 포수로 활약했던 포터.

포터는 록튼과 마찬가지로 수비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코칭 스탭은 록튼과 포터의 장점을 이렇게 말하곤 했다.

- 포터는 장타력이 있고, 록튼은 젊다.

현재 기량에 있어서는 포터 쪽이 미세하게 나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기량만으로 로스터를 정하지 않았다.

유망주의 포텐, 즉 발전 가능성도 한몫을 했다.

“오늘도 멋지게 던져 보라고.”

“그래야지.”

김민은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팡! 팡!

패스트볼이 차례로 미트를 직격했다.

“나이스 볼!”

록튼은 김민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컨디션이면 상대가 누구라도 할 만해.’

김민과 대결할 LA 다저스의 선발은 데런 드라이포트.

데런 드라이포트는 지난해 12승 9패에 4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한 수준급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데뷔조차 하지 못한 김민과 비교하면 경력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김민은 위축되지 않았다.

‘데런 드라이포트는 지난해까지 좋았지만, 이번 시즌은 아니야.’

데런 드라이포트는 이번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한 뒤, 추락해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커리어가 끝나버리고 만다.

1회 초.

김민은 다저스 타선을 상대로 안타 2개를 내줬지만,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위기 관리 능력이 괜찮군.”

“하지만 안타 2개는 정타였어.”

“구위가 약하다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그래.”

관중석에 모여든 메이저리그 전력분석팀은 모두 여섯.

그중 넷은 다저스를 분석하기 위해 온 팀들이었다.

“탬파베이는 신인을 로스터에 올렸군.”

“선발로 올라오긴 했지만, 불펜에서 키워 보겠다는 생각 같습니다.”

“뭐,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지. 월드시리즈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팀이니까.”

“그렇죠. 인터리그 때도 일정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스카우트와 전력분석팀들의 시선은 김민이 아닌 데런 드라이포트에게 쏠렸다.

데런 드라이포트는 탬파베이의 허약한 타선을 상대로 6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피칭을 보여 주었다.

“역시 데런이군.”

“이번 시즌도 10승은 떼놓은 당상입니다.”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

이반 감독은 타선의 침묵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올해도 힘든 건가?”

오늘 경기 위안이 있다면 김민이 5이닝 동안 1점으로 버텨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홀먼 단장이 의외로 눈썰미가 있는 건가? 킴은 괜찮게 해 주고 있어.’

그러나 그는 타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 꼴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다저스와 3연전을 끝으로 시범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플로리다가 아닌 애리조나에서 시범 경기를 진행했다. 다들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감독의 물음에 코치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투수 쪽은 괜찮습니다. 선발 삼총사는 물론 불펜진도 견고합니다. 여기에 더해 킴이 선발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고, 설리반도 시범 경기 후반에는 나아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설리반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에 콜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 시즌도 투수진만큼은 리그 평균은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대편에 앉은 코스타 타격 코치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킴과 베런 그리고 노먼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레이가 한 살 더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번 시즌 추가된 전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냉정히 말해 공격력은 지난 시즌보다 후퇴한 상황.

이반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프런트의 솜씨를 믿어 볼 수밖에.”

탬파베이 프런트는 부족한 타선을 트레이드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포수 쪽은 어떤가?”

감독의 물음에 하울러 불펜 코치가 대답했다.

“지난 시즌과 비슷합니다. 주전은 티노고 백업 한 자리를 두고 록튼과 포터가 경쟁 중입니다.”

“자네는 어느 쪽을 지지하나?”

“둘 중 누가 낫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이반 감독이 오른손 검지를 들며 말했다.

“각자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흠, 그건 우리가 아닌 프런트에서 결정할 사항인 것 같군.”

코칭 스탭들의 회의가 끝난 뒤, 홀먼 단장이 구단 스탭을 한곳에 모았다.

오늘의 주제는 당연히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였다.

이날 회의는 예비 로스터 때와 다르게 길지 않았다.

30분 남짓 이어진 회의에서 25인 로스터가 결정되었다.

1시간 뒤.

록튼은 하우저 불펜 코치의 부름을 받았다.

“부르셨습니까?”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결국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쁘진 않았어. 지난 시즌보다 2주나 더 버텼으니까.’

록튼은 이번 스프링 캠프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하우저 코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록튼, 축하하네.”

록튼은 귀를 의심했다.

“설마…….”

“자네가 25인 로스터에 들었어.”

코칭 스탭은 경험 많은 포터 대신 잠재력이 풍부한 록튼을 선택했다.

“킴에게 감사하게. 그가 아니었다면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없었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킴이 아니었다면 벌써 짐을 싸서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겠죠.”

록튼이 선택된 이유 중 하나가 김민과의 궁합이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개막전 선발로 등판할 김민을 위해서라도 록튼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록튼의 부족한 타격 능력을 걱정했지만, 포터의 공격력도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다.

“짐을 챙겨서 복도에 놓게. 메이저리거는 스스로 짐을 옮기지 않으니까.”

록튼은 메이저리거란 말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메이저리거라고? 믿기지 않아.’

같은 시각 김민도 블렛소 투수 코치를 만나고 있었다.

“킴, 선발 로스터에 든 건 알고 있겠지?”

“전에 코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자네의 등판 일정이 잡혔어.”

김민은 당연히 5선발이라고 생각했다.

‘개막전은 3선발 클락이 나갈 테고, 홈 개막전은 에이스 부르스, 중간에 휴식일이 있으니, 5선발인 나는 4월 중순은 돼야 등판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선발 등판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블렛소 투수 코치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정을 내놓았다.

“킴, 개막전 선발을 축하하네. 사흘도 남지 않았으니, 잘 준비하도록 하게.”

개막전 선발 등판.

홈 개막전이 아니라고 해도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제가 정말로 개막전에 등판한단 말입니까?”

“날 믿지 못하겠나?”

“아, 아닙니다.”

믿을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팀에서 날 4선발로 평가한 건가?’

4선발과 5선발은 숫자 하나 차이가 아니었다.

5선발의 경우 휴식일 때문에 등판 간격이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았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롱 릴리프로 강등되거나 마이너리그로 내려지기도 했다.

반면 4선발은 휴식일과 등판 간격이 완벽하게 보장되었고, 부진한 경우도 5선발과 로테이션을 바꾸는 정도에 그쳤다.

4선발과 5선발은 대우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킴, 개막전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지?”

“미네소타 트윈스로 알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미네소타로 날아갈 거야. 짐은 복도에 놓아두게.”

블렛소 코치는 말을 마친 뒤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김민은 개막전 선발이라는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개막전 선발…… 25인 로스터에 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도 충격적이군.’

* * *

메이저리그 선수는 짐을 들지 않는다.

이것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대우를 상징하는 말이었다.

메이저리그 스탭들은 아침부터 바빴다. 그들은 숙소 복도를 지나며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내놓은 짐을 모아 카트에 실었다.

“빨리해. 아침 비행기야.”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짐과 장비는 트레일러에 실려 공항으로 직행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탄 버스와 그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는 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활주로로 직행했기 때문에 일반 승객들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장비들을 볼 수 없었다.

“모두 탔으면 출발하게.”

“알겠습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캠프를 떠나 공항을 향했다.

1시간 뒤.

김민과 록튼은 눈을 크게 떴다.

“소문은 들었지만, 버스가 정말로 활주로를 달리고 있어.”

“버스에서 비행기까지 논스톱. 메이저리거들만 받는 특별대우야.”

고참 선수들은 두 사람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들 처음 활주로에 들어온 모양이군.”

“아, 나도 처음에는 저랬어.”

탬파베이 선수들은 버스에 내리자마자 전세기로 향했다.

전세기의 목적지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미니애폴리스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연고지이자 미네소타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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