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44화 (44/296)

44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04

5회 말.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상대 실책과 적시타로 2점을 뽑아내며 카디널스를 4-3까지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제 원 포인트 게임이 되었군.”

“게임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카디널스도 몰랐을 겁니다.”

탬파베이 코칭 스탭은 오늘 경기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음 회 수비가 중요하겠군.”

“킴이 버텨준다면 가능할 겁니다.”

김민은 글러브를 쥐곤 그라운드로 향했다.

‘이번 회에 상대할 타자는…… 프린스, 에라드, 빌인가?’

신인왕 예정인 슈퍼 루키, 지난 시즌 42홈런 강타자 그리고 어느 팀에서도 클리업을 칠 수 있는 컨택형 타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어도 셋 중 둘은 잡아야 해. 그리고 셋 중 누구에게도 장타를 맞아서는 안 돼.’

김민은 마운드에 오른 뒤 연습 투구에 들어갔다.

팡! 팡!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볼! 아주 좋아!”

그는 김민의 공이 5회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이면 6회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플레이!”

주심의 경기 재개 사인과 함께 3번 타자 프린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록튼은 순간적으로 프린스에게 뭐라 설명하기 힘든 위압감을 느꼈다.

‘루키인데 루키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애리조나 가을 리그 때와는 또 달라!’

김민은 프린스의 타격 자세를 세밀하게 살폈다.

‘안정적이면서도 여유가 있는 자세.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 어느 쪽이든 대처할 수 있는 타격폼이다.’

그는 프린스가 훗날 얼마나 대단한 타자가 될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단장이었다면 무슨 수를 내서라도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저 친구를 데려왔을 거야.’

김민은 프린스의 트레이드 가치를 메이저리그 No.1으로 평가했다.

‘미래는 접어 두고, 지금은 승부에 집중할 때다.’

그는 어깨에 오른손 검지를 가져갔다.

- 바깥쪽 패스트볼.

슉!

초구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날아왔다.

‘패스트볼?’

프린스는 날카롭게 배트를 휘둘렀다.

탁!

빗맞은 공이 1루 관중석을 향했다.

‘뭐지? 배트가 밀렸어.’

프린스는 김민의 패스트볼이 경기 초반과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흐흠, 마크가 말한 떠오르는 공은 아니야. 하지만 미묘하게 스피드와 궤적이 달라졌어. 킴은 공을 던지면서 컨디션이 살아나는 타입인가?’

그는 하나 더 공을 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안쪽으로 패스트볼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프린스는 김민이 로케이션을 이용한 피칭을 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두 번째 공은 그의 허를 완전히 찔렀다.

슉!

‘또 바깥쪽 패스트볼이라고?’

타자의 허를 찌른 볼 배합.

평범한 타자라면 그대로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린스는 달랐다.

그는 초인적인 반사 신경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딱!

날카로운 타구가 1루 페어 라인을 노렸다.

타구가 안으로 들어간다면 2루를 넘어 3루도 노릴 수 있었다.

팍!

라인 옆에 떨어진 공이 먼지를 일으키며 튀어 올랐다.

그 직후 1루심이 두 팔을 좌우로 벌렸다.

“파울!”

30cm 차이로 파울.

카디널스 더그아웃에 아쉬운 탄성이 흘렀다.

“아, 아까웠어!”

“여기서 빠졌으면 그대로 2루타 코스인데 말이야.”

“프린스는 확실히 대단해.”

김민 역시 이번 공은 위험했다고 생각했다.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배트가 나왔어. 볼 배합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군.’

프린스는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표정이 미묘했다.

그 이유는 방금 공이 그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떠올랐어. 이게 마크가 말한 떠오르는 공인 모양이군.’

그는 어퍼 스윙이 아닌 레벨 스윙으로 스윙을 바꿨다.

‘작은 떠오름 정도는 배트 컨트롤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맥과이어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충분히 떠오르는 공을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 하나 더 던져 보라고!’

김민은 록튼과 사인을 교환한 뒤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이번 공 역시 바깥쪽이었다.

프린스는 이 공을 치지 않고 지켜보고자 했다.

‘이번 공은 존을 벗어난다. 세 번 연속 패스트볼이 들어 올 리 없다.’

그는 애리조나 가을 리그 시절 김민의 투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김민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피칭으로 타자들을 제압했다.

‘십중팔구 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일 거야.’

그러나 공은 떨어지지도 휘어져 나가지도 않았다.

파앙!

포수 미트에 들어온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프린스는 자신의 룩킹 삼진이 믿기지 않았다.

‘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패스트볼이라고? 킴은 100마일(161km)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야!’

김민은 삼진을 잡은 뒤 그답지 않게 포효했다.

“좋았어!”

록튼은 김민 특유의 볼 배합과 운영이 완벽히 살아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타자였더라도 같은 코스에 세 번이나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이반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훌륭하군.”

김민에 대한 블렛소 투수 코치의 평가도 더욱 올라갔다.

“기어를 바꿔 넣은 뒤로는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마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운영과 볼 배합입니다.

카디널스의 토리 감독은 프린스의 삼진 이후 전력분석팀에 전화를 걸었다.

“킴을 완벽하게 분석해 주게. 사인을 낼 때 버릇은 물론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때 폼까지 모두 필요해.”

“기한은 언제까지입니까?”

“지금 당장!”

전력분석팀은 토리 감독의 호통에 마른침을 삼켰다.

“아, 알겠습니다.”

김민을 주목한 것은 카디널스의 토리 감독만이 아니었다.

“킴이라고 했나? 루키가 상당하군.”

“경기 초반 제구가 흔들렸던 것은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보스턴 레드삭스 전력분석팀으로 같은 동부지구 팀인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선수들을 분석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4마일(151km) 정도…….”

“구속에 비해 볼 끝이 좋아 보입니다.”

“흐흠, 구종이 다양한 게 특징인가?”

안경을 쓴 분석원이 메모를 확인하며 말했다.

“슬라이더, 커터, 스플리터, 그리고 커브를 던졌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스플리터였습니다.”

콧수염이 좌우로 늘어진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주 무기를 스플리터로 표기하지.”

“하지만 다른 공도 좋습니다. 스플리터만 표기하면…….”

“주 무기라고 하지 않았나. 당연히 다른 공도 표기해야지.”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김민이 4번 타자 에라드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냈다.

“에라드가 잡혔군.”

“에라드답지 않은 스윙이었습니다.”

“볼 배합에 말린 거야. 저 친구 공 끝 못지않게 운영이 좋아.”

김민은 공 두 개로 에라드를 처리한 뒤 소매로 땀을 닦았다.

‘겨우 두 개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거친 숨이 나오는군.’

구속을 최대로 끌어올린 전력투구와 일반적인 투구는 체력 소모에서 큰 차이가 났다.

게다가 김민은 이번 회 들어 모든 패스트볼을 전력으로 던지고 있었다.

‘몸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지만, 클린업을 상대로 여유를 가질 수는 없어. 다음 공도 전력투구다.’

그는 쉬어가는 타순인 9번 타순에서 체력을 세이브하지 못한 것이 대미지가 되어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다음 타자는 빌이군요.”

“빌까지 잡으면 6이닝 4실점이군.”

“에라드를 쉽게 잡은 걸 보면 빌도 어렵지 않겠죠?”

“아마 그렇겠지.”

보스턴의 두 전력분석원은 김민의 손쉬운 승리에 배팅했다.

그러나 결과는 두 사람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탁!

“파울!”

빌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풀카운트까지 버텼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김민은 빌에게 7개의 공을 던졌지만,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한 채 코너에 몰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김민의 투구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어떻게 된 거지? 타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어.”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 짧은 사이에 구속이 줄었습니다. 풀 카운트까지 간 건 아마 체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투구 수가 몇 개지?”

“83개입니다.”

“많은 투수구는 아닌데…….”

그의 말대로 투구 수 자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투수구만으로 체력 소모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김민은 마치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올라 있는 것처럼 공을 던지고 있었다.

“헉…… 헉…… 제길…….”

‘체력이 바닥이군. 악력이 떨어지는 순간 배팅볼을 던지게 될 거야.’

그는 자신이 투수 코치라면 교체 사인을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블렛소 투수 코치는 그에게 6회를 끝까지 맡길 생각이었다.

“마지막 타자가 어렵군요.”

이반 감독 역시 투수를 교체할 생각이 없었다.

“이 고비를 넘기면 킴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어.”

정규 시즌이 아닌 시범 경기.

이반 감독은 1승보다는 김민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타임!”

김민은 바로 공을 던지지 않은 채 공의 교체를 요구했다.

공을 주고받는 시간은 대략 5초 정도.

체력이 떨어진 김민에게는 그 5초란 시간도 소중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교체 사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을 조금 벌었군요.”

이반 감독이 턱에 난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이답지 않은 노련함을 가지고 있어. 솔직히 말해 킴 같이 노련한 투수는 내 취향이 아니야. 신인이라면 당연히 패기라고 생각하거든. 한데…… 킴은 조금 달라 노련하면서도 힘이 느껴진단 말이야.”

김민은 짧은 휴식으로 다음 공을 던질 힘을 얻었다.

‘다음 공. 다음 공으로 반드시 잡는다.’

그는 어깨에 오른손 검지를 가져갔다.

- 패스트볼. 높게.

록튼은 김민의 사인에 미간을 좁혔다.

‘킴, 이번 제구는 절대로 어긋나선 안 돼. 공 끝이 무뎌졌다고.’

높은 코스에 들어가는 패스트볼이 타자의 배트를 이기지 못하면 결과는 딱 하나뿐이었다.

‘홈런.’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크다!”

“넘어가는 건가?”

카디널스 벤치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공의 궤적을 살폈다.

“설마 넘어가진 않겠지?”

록튼이 마스크를 벗고 눈을 크게 뜬 순간 김민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플라이볼이란 사인?’

전력 질주한 중견수가 워닝 트랙(외야수가 펜스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고지역) 앞에서 글러브를 들었다.

빌의 타구는 높이 뜬 대형 타구였지만, 펜스를 넘어가기에는 부족했다.

팡!

글러브에 공이 들어온 순간 이반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냈군.”

“킴이 실점 없이 막아 냈습니다.”

6이닝 4실점.

전체적인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코너에 몰렸던 초반을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면서 마지막 공을 되새겼다.

‘1, 2마일만 구속이 더 나왔더라면 그렇게 멀리 가진 않았을 거야.’

그가 던진 공은 원하는 코스에 완벽히 제구가 되었다. 하지만 타자의 힘에 밀려 워닝 트랙까지 날아가고 말았다.

“킴, 수고했네.”

블렛소 투수 코치의 말에 김민이 글러브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오늘 투구는 여기까지야. 안으로 들어가서 아이싱을 받도록 하게.”

마음 같아서는 한 이닝을 더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가 생각한 두 가지는 바로 멘탈과 체력이었다.

이날 경기는 7회 말 대거 4득점을 올린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 직후 김민은 블렛소 코치에게 마지막 시범 경기 등판을 통보받았다.

“다음 경기는 LA 다저스일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