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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43화 (43/296)

43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03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맥과이어는 초구부터 적극적이었다.

‘바깥쪽이냐?’

탁!

배트에 스친 공이 그대로 백네트에 꽂혔다.

퍽!

맥과이어는 자신의 스윙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더그아웃에서 봤던 것보다 빠르잖아!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마지막 순간에는 살짝 떠오르기까지 했어. 아까 봤던 그 투수가 맞는 건가?’

그보다 더 놀란 이는 백네트 뒤에서 스피드건을 들고 있던 전력분석원이었다.

“94마일(151km)이라고? 믿을 수가 없군.”

사실 김민의 빨라진 구속은 스피드건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이반 감독은 맥과이어의 배트를 스치고 지나간 공을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블렛소, 방금 공…… 빠르지 않았나?”

블렛소 투수 코치는 구속에 가장 민감한 코칭 스탭이었다.

그는 눈짐작만으로도 어느 정도 구속을 맞출 수 있었다.

“적어도 93마일(150km)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4회 초에 88마일(142km)을 던지던 친구가 화장실이라도 간 모양이군.”

블렛소 코치는 한 가지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킴이 슈퍼스타의 등장에 기어를 바꿔 넣은 것 같습니다.”

기어를 바꿔 넣었다는 말은 지금까지 김민이 전력투구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오늘 경기 내내 그랬단 말인가?”

이반 감독의 물음에 블렛소 코치가 답했다.

“지금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루키가 시범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여유를 부렸다고? 믿기 힘든 일이군.”

“며칠 전 25인 로스터에 들었다고 알려 줬기 때문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블렛소 코치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김민이 맥과이어를 상대로 기어를 바꿔 넣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 경기 내내 힘을 비축한 것은 아니었다.

김민이 투구 수를 아끼기 위해 힘을 조절한 것은 마이너리거들을 상대한 4회 초뿐이었다.

즉, 4회 초 88마일(142km) 패스트볼은 체력이 부족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체력을 절약하려는 방편이었다.

김민은 첫 카운트를 잡곤 로진백을 만졌다.

‘70홈런을 친 전설적인 타자라고 하기에는 배트 스피드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 은퇴 시즌이 가까워졌기 때문인가?’

그는 맥과이어가 언제 은퇴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은퇴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잡을 수 있어.’

김민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두 번째 공은 바깥쪽이 아닌 안쪽을 노렸다.

‘안쪽 패스트볼? 그럴 리가 없잖아.’

맥과이어는 김민의 공을 어퍼 스윙으로 상대하고자 했다.

‘주 무기는 스플리터와 커터. 안쪽이라면 스플리터다!’

그러나 공은 떨어지지 않았다.

‘뭐야!’

맥과이어가 놀라는 사이 공은 배트를 지나져 그대로 포수 미트를 직격했다.

파앙!

94마일(151km) 패스트볼.

“스윙 스트라이크!”

‘좋은 울림이다.’

록튼은 만족한 표정으로 미트에서 공을 뺐다.

맥과이어는 두 번이나 떠오른 패스트볼에 미간을 좁혔다.

‘쳇, 까다로운 공을 던지는군.’

그는 배트를 툭툭 치곤 미간을 좁혔다.

“그걸 다시 한번 던져 보라고 그래.”

록튼은 맥과이어가 말한 그것이 공이 어떤 공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볼 배합은 제가 아닌 킴의 몫입니다.”

“그래?”

맥과이어는 김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나 더 던져 보라고 젊은 친구.”

투 스트라이크 노 볼.

평범한 투수라면 바깥쪽으로 하나쯤 유인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김민은 유인구를 생략했다.

‘상대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말자.’

그는 대타로 나온 타자가 리듬을 찾기 전에 끝내 버릴 생각이었다.

슉!

세 번째 공 역시 빨랐다.

맥과이어는 이 공을 패스트볼이라고 직감했다.

‘정말로 하나 더 던졌군. 훌륭한 배짱이야!’

그는 공을 쪼갤 듯 다운스윙을 이어갔다.

‘미안하지만 난 떠오르는 공을 처음 본 게 아니야!’

팍!

배트에 부딪힌 공이 큰 소리를 내면서 튀어 올랐다.

‘바운드가 높아!’

김민은 글러브를 쭉 폈지만, 공은 그의 키를 넘어갔다.

‘제길…… 조금만 더 팔이 길었더라면…….’

록튼은 마스크를 벗곤 벌떡 일어나 타구를 살폈다.

‘빗맞았는데도 바운드가 너무 커! 정말 믿기지 않는 힘이야!’

맥과이어의 타구는 그대로 2루 베이스를 넘어갈 기세였다.

그러나 유격수 유칼리스의 긴 팔이 마지막 순간 타구를 저지했다.

팡!

“나이스 캐칭!”

벤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순간 유칼리스가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곤 1루를 향해 빠르게 송구했다.

“아웃!”

맥과이어는 발이 빠른 타자가 아니었기에 절반도 채 가지 못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맥과이어를 잡아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넉넉한 아웃이군. 4회까지 했던 말은 모두 취소야. 킴은 정말 대단해!”

블렛소 코치는 미간을 좁혔다.

“대체 어디서 저런 배짱이 나오는 걸까요? 3개의 공이 모두 패스트볼이었습니다.”

이반 감독과 블렛소 코치는 김민이 처음부터 힘을 아꼈다고 완전히 믿게 되었다.

카디널스 코칭 스탭은 믿었던 맥과이어의 아웃에 혀를 찼다.

“타구가 빠져나갔다면 좋았을 것을…….”

“몸이 풀리지 않은 마크를 올린 게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루키를 무너뜨리는 전략은 실패했군.”

“마크의 컨디션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성공했을 겁니다.”

그들은 김민이 좋은 공을 던지긴 했지만, 승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마크 맥과이어의 좋지 않은 컨디션이라고 분석했다.

맥과이어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얼굴을 찡그렸다.

“저 친구 지저분한 공을 던지더군.”

“지저분한 공 말입니까?”

프린스의 물음에 맥과이어가 오른손을 들었다.

“이렇게 공이 떴어.”

프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가요? 제 타석에서는 그런 공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가을에도 킴은 그런 공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구종이 좀 많긴 했지만 다 무난했습니다.”

그는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김민을 상대로 장타를 뽑아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맥과이어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프린스,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루키인 프린스는 전설적인 스타 맥과이어의 한마디에 얼어붙었다.

“그, 그럴 리가요.”

맥과이어가 시선을 마운드로 돌리며 말했다.

“리가 저 친구를 상대로 얼마나 하는지 한번 보자고.”

리는 카디널스의 테이블 세터로 지난 시즌 21개의 도루를 기록한 준족이었다.

‘루키 친구, 마크를 잡았다고 안심하면 곤란해. 난 마크와 달리 정교하니까.’

그는 소매를 살짝 친 뒤 배트를 세웠다.

김민은 그의 타격 위치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쪽 공을 1루 쪽으로 밀 생각이군.’

배터박스 안쪽에 바짝 붙은 포지션은 페이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민은 페이크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 이유는 배트를 잡은 손의 위치 때문이었다.

‘바깥쪽으로 붙은 상황에서 배트까지 짧게 잡는다면 안쪽 공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페이크를 주는 타자라면 배트를 잡는 위치를 바꾸지 않아.’

코치 시절 김민은 이와 같은 사실을 투수들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슉!

안쪽으로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리는 허를 찔린 듯 미간을 좁혔다.

‘저걸 치면 무조건 땅볼이군.’

그는 공을 하나 거를 수밖에 없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김민의 이번 패스트볼은 맥과이어 때와는 전혀 다른 공이었다.

‘코스는 좋지만 평범한 공이군. 구속은 대략 90마일(145km)정도?’

리는 자신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공이라고 판단했다.

이윽고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이번 공도 빨랐다.

‘패스트볼? 설마 다섯 개 연속 패스트볼이라고?’

망설이는 순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팡!

“스트라이크!”

김민이 던진 공은 패스트볼이 아니라 커터였다.

커터는 스트라이크 존 안에서 변하며 카운트를 올렸다.

‘젠장,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을 그냥 보냈군.’

카디널스 코칭 스탭은 리가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코너에 몰리자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좀 말해봐.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리가 꼼짝도 못 하는 거야? 완전히 평범한 공이었잖아.”

투수 코치는 김민의 빨라진 구속 때문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 2마일 빨라졌다고 타이밍을 못 잡는단 말인가?”

투수 코치는 그 물음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메이저리거가 1, 2마일 차이로 타이밍을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리의 타격 위치가 바뀐 것을 확인했다.

‘바깥쪽을 포기했군.’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은 구종에 상관없이 모두 공략해 내야 했다.

김민은 리의 위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사인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기다렸던 코스로 하나 던져 주지.’

슉!

빠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았다.

‘이제 와서 바깥쪽이라고?’

리는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 내 타격 위치를 읽었어!’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루키가 타격 위치를 읽고 그것을 응용한다는 사실에 가볍게 놀랐다.

‘허를 찌른 건 높게 평가해 주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메이저리그 테이블 세터는 그냥 되는 게 아니야!’

리의 배트가 마치 자석이 달린 것처럼 배트를 향해 움직였다.

‘패스트볼을 그대로 밀어 주지!’

록튼은 리의 스윙 궤적을 보고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배트가 공을 따라 움직이고 있어!’

리의 동체 시력과 배트 컨트롤은 카디널스 최강.

웬만한 공은 그의 배트 컨트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김민이 던진 공은 웬만한 공이 아닌 진짜였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리는 자신이 삼진을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루키에게 내가 삼진이라고?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그의 배트는 마치 자석이 달린 것처럼 공을 따라갔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스플리터도 만만치 않았다.

배트가 공에 닿기 직전 낮게 가라앉으면서 배트를 피해 냈다.

“스플리터가 환상적으로 들어갔습니다. 킴이 제대로 기어를 넣었군요.”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투구에 감탄할 뿐이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려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물었다.

“한 명만 더 잡으면 5이닝 4실점인가?”

“그렇습니다.”

“인간미가 있어서 좋군. 오늘 경기도 7이닝 1실점 정도로 막았으면 시범 경기 플루크(거품)라고 생각했을 거야.”

시범 경기 플루크는 시범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신인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형편없는 성적을 내는 경우를 말했다.

김민의 다음 상대는 2번 타자 존 웨거.

존 웨거는 카디널스에서 리 다음으로 빠른 타자였는데 특정 포지션 없이 백업 내야수와 대주자로 활약하곤 했다.

‘존 웨거, 나쁘지 않은 타격 능력을 지녔지만 파워가 부족해서 내야 백업에 머물러 있는 타자. 5회는 여기서 끊는다.’

카디널스 벤치는 김민이 안정권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루키가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이번 승부는 쉽지 않겠어.”

“존의 컨택 능력과 스피드라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존이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초구는 앞선 두 타자와 달리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슬로우 커브?’

높은 곳에서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느린 커브.

존은 미간을 좁혔다.

‘날 얕보는 건가?’

김민의 느린 커브는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대로 내야를 넘겨 주지!’

배트가 움직이는 순간 김민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끼를 물었군.’

프로 타자들은 초구로 들어오는 커브나 슬로우 커브를 때리지 않고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팬들은 이런 경우 좋은 공을 그대로 흘려보낸다고 타자를 비난했지만, 프로 타자들이 이유 없이 공을 흘려보낼 리 없었다.

패스트볼을 예상하고 있는 타이밍에 커브가 들어온다면 히팅 포인트와 타이밍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초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느린 커브를 공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실익이 더 컸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초구를 공략했어!”

“저런 바보가!”

카디널스 선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높이 솟아오른 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견수 플라이군.’

김민의 예상대로 존은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비나 준비하자고.”

“너무 성급했어.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건데.”

중견수 플라이 아웃.

존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기다렸어야 했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김민에게 동료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나이스 피칭.”

“이번 회는 정말 좋았어.”

김민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블렛소 코치를 찾았다.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르겠습니다.”

블렛소 코치는 흔쾌히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게.”

김민이 6회마저 실점 없이 막아 낸다면 6이닝 4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피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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