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42화 (42/296)

42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02

“킴도 사람이군.”

“처음 봤어. 킴이 힘들어하는 모습…….”

김민은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상황은 동료들의 말대로 최악.

3회 초.

1아웃 주자 1, 3루.

이번 회에만 벌써 2명이나 홈을 밟아 스코어는 4-1로 벌어져 있었다.

‘악몽이라면 여기서 홈런을 맞고 깨겠지.’

세 번째 시범 경기.

상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카디널스는 훌륭한 팜과 육성 시스템으로 유명한 강팀이었다.

‘25인 로스터 합류 따위에 신경을 쓰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블렛소에게 25인 통보받은 직후부터 김민의 마음은 들뜨고 말았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있음에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모습이 그려졌다.

‘오늘 경기를 망치면 블렛소의 통보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겠지.’

그는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아무것도 보여 준 적이 없는 신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아니, 초심을 지켜야 해!’

김민은 오른손 검지를 어깨에 가져갔다.

- 바깥쪽 패스트볼.

가장 흔하지만 가장 김민다운 코스.

슉!

91마일(146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딱!

배트에 제대로 맞은 타구가 총알처럼 날아갔다.

“나이스 배팅!”

카디널스 벤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 순간 공은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김민은 주심으로부터 새 공을 받은 뒤 주자들을 살폈다.

‘타격과 동시에 모두 스타트를 끊었어.’

그는 주자들의 움직임이 전과 다르게 기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실전 모드에 들어간 거야.’

메이저리그 개막까지 열흘 남짓.

타자들의 컨디션은 시범 경기 초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코너로 들어가는 패스트볼을 쳐 내는가 하면, 스트라이크 존에서 떨어지는 커브를 받아쳐 2루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반 감독과 블렛소 코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25인 로스터 통보가 독이 된 게 아닌가 싶군.”

“상대가 좋지 않았던 것도 있습니다. 개막을 앞둔 카디널스는 무서운 상대입니다.”

“오늘은 마크 맥과이어도 안 나왔어.”

“그가 없어도 카디널스는 강합니다.”

김민은 다시 한번 주자를 체크한 뒤 승부구를 정했다.

- 바깥쪽 커터.

록튼은 미트를 가볍게 치곤 포구 동작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바람을 뚫고 날아갔다.

배트를 쥔 에라드는 지난해 42홈런을 기록한 슈퍼스타였다.

‘또 바깥쪽 패스트볼인가?’

그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배트 헤드가 공을 때렸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1루 베이스 쪽으로 떠올랐다.

“젠장!”

에라드는 뒤늦게 패스트볼이 꺾인 것을 보곤 욕설을 내뱉었다.

“1루!”

“주자 신경 쓰지 말고 침착하게 잡아!”

투수와 포수의 콜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맡겨 줘!”

1루수 모건은 뜬공을 처리한 뒤, 두 주자의 움직임을 빠르게 체크했다.

그의 동작 역시 시범 경기 초반과는 차이가 컸다.

“킴이 에라드를 잡아냈군. 한고비를 넘겼어.”

블렛소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이군요. 여기서 장타를 맞았으면 교체밖에는 답이 없었을 겁니다.”

이반 감독은 지금 상태로는 절대 개막전 선발에 나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한고비를 넘겼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음은 빌인가?’

빌 역시 김민에게 벅찬 타자였다.

그는 지난 시즌 18개의 홈런과 0.292의 타율을 기록한 강타자였다.

탬파베이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타자는 약물 의혹을 지닌 거포 그렉스 정도밖에 없었다.

김민은 초구로 안쪽 스플리터를 선택했다.

탁!

빗맞은 타구가 3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김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떨어지는 공을 끝까지 따라가서 컨택했어. 마이너리그와는 수준이 달라.’

5번 타자 빌의 컨택 능력은 4번 타자 에라드 못지않았다.

“스플리터를 던지면 헛스윙이 나올 줄 알았나?”

록튼은 빌의 트레쉬 토크를 담담하게 받아쳤다.

“어쨌든 첫 카운트를 잡았으니, 손해는 아닙니다.”

“그런가?”

원 스트라이크 노 볼.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평소라면 자신 있게 구종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상대는 풀 카운트에서도 홈런을 뽑아낼 수 있는 강타자. 어설픈 공은 절대 금물이야.’

그는 로진백을 만진 뒤, 구종을 결정했다.

- 바깥쪽 스플리터.

슉!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바깥쪽 코스를 노렸다.

‘바깥쪽?’

빌은 김민이 바깥쪽 커터로 에라드를 잡아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커터군.’

그는 공을 지켜보는 대신 팔을 쭉 뻗어 컨택에 나섰다.

‘홈런은 힘들겠지만, 안타 정도는 얼마든지…….’

배트가 공에 닿으려는 순간 빌의 예상과 달리 공이 크게 가라앉았다.

‘커터가 아니야!’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큰 바운드를 일으켰다.

팍!

볼 배합의 승리.

빌은 1루를 향해 뛰며 혀를 찼다.

‘스플리터를 연속으로 던졌단 말이지?’

이반 감독은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운드가 크다. 투수와 1루수의 수비가 매끄럽지 못하다면 내야 안타가 될 거야.’

1루수가 공을 향해 달려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투수 커버!”

김민은 1루수 모건의 콜 사인이 나오기도 전에 1루 베이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맡겨 줘!”

그의 매끄러운 수비는 신인의 그것이라 보기 힘들 정도였다.

록튼은 1루수 모건과 김민의 수비를 보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공이 글러브에 들어간 순간 1루심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아웃!”

아웃 판정과 함께 길었던 3회 초 수비가 끝났다.

“나이스 피칭.”

“킴, 베이스 커버 좋았어.”

동료들이 김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와 칭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코칭 스탭의 평가는 냉정했다.

“3회까지 4실점. 좋지 않군요.”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이래서는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무리야.”

“단장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단장의 비호가 없었더라면 내일 스프링 캠프 탈락이었겠죠?”

“아마도.”

이반 감독은 코치들의 혹평에 침묵했다.

‘한 경기 실패로 킴의 재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기에는 너무 이르다. 1년 정도 더블A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면 더 나은 선수가 될 거야.’

그는 단장과 구단주의 욕심이 선수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록튼을 불렀다.

“록튼.”

“무슨 일이야?”

“혹시 티핑 아닐까?”

티핑은 투수의 버릇을 뜻하는 메이저리그 용어였다.

일본과 국내에서는 흔히 쿠세라 불렀다.

록튼은 김민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 없어.”

“그런가?”

“카디널스 타자들은 공을 끝까지 보고 따라붙을 뿐이야. 네 팁을 알았다면 빌이 그런 타구를 만들어 냈을 리 없어.”

김민은 록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팁을 알았다면 제대로 1, 2루 사이를 꿰뚫었겠지.”

“게다가 이번 경기는 헛스윙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어. 이건 상대의 컨택 능력이 우리가 생각한 이상이라는 뜻이야.”

카디널스 타자들은 몸이 덜 풀린 피츠버그나 콜로라도 타자들과는 그 격이 달랐다.

그들은 메이저리그 경기처럼 김민을 공략했으며 빠지는 공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록튼이 장비를 벗으며 말했다.

“킴, 어떻게든 5회까지는 던지자.”

“그래야지.”

김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블렛소 코치에게 다가갔다.

“제 투구 수를 알고 싶습니다.”

블렛소 코치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록지를 살폈다.

“62개.”

“40개 정도 남았군요.”

블렛소 코치는 김민이 실점 없이 던진다고 해도 길어야 2이닝이라고 생각했다.

‘4회 초는 하위타순이니 실점 없이 넘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5회 초는…….’

그는 5회 초 다시 한번 큰 위기가 김민을 덮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킴이 5회 초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면 내 평가가 바뀌게 될 거야.’

블렛소 코치는 그만큼 김민의 5회 초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4회 초.

김민은 블렛소 코치의 예상대로 하위 타선을 잘 막아 냈다.

“나이스 피칭!”

“이번에는 삼자범퇴군.”

이반 감독의 표정도 3회 초보다는 나아졌다.

“4이닝 4실점이군. 6회까지 던질 수만 있다면…….”

그러나 블렛소 코치는 비관적이었다.

“지금으로써는 5회 초를 넘기기 힘들 겁니다.”

“뭔가 이유가 있나?”

이반 감독의 물음에 블렛소 코치가 대답했다.

“구속이 떨어졌습니다.”

이반 감독이 낮게 신음했다.

“으음…….”

선발 투수의 구속이 떨어졌다는 것은 체력이 다했다는 말과 같았다.

“얼마나 떨어진 건가?”

“88마일(142km)짜리 패스트볼이 들어왔습니다.”

“커터가 아니고 패스트볼이 확실한가?”

블렛소 코치가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그 공이 커터라고 해도 문제입니다. 전력분석팀의 보고에 따르면 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반 감독이 체념하듯 말했다.

“5회 초. 힘들겠군.”

김민은 땀을 닦은 뒤 물로 수분을 채웠다.

록튼이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한 회만 더 버티자.”

김민이 수건을 받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퀄리티 스타트는 이미 물 건너간 상황.

록튼은 선발 투수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 5이닝만큼은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틀렸지만, 킴은 할 수 있어. 어떻게든 5이닝만 막아 준다면 다음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경쟁해 볼 수 있어.’

그는 아직 김민이 25인 로스터에 든 것을 몰랐다.

4회 말.

탬파베이의 공격은 싱거울 정도로 맥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어진 5회 초.

블렛소 코치는 마운드로 올라가려는 김민을 불렀다.

그의 얼굴은 심상치 않았다.

“교체입니까?”

블렛소 코치가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2루 이상)에 나가게 된다면 교체될 걸세.”

김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위기의 5회 초.

김민은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블렛소 코치는 그의 미소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스피드건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킴은 지금 방전된 상태야.’

마운드에 오른 김민은 비장했다.

‘이번 회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선두 타자를 확인했다.

9번 타자 스웨거.

반드시 잡아야 하는 타자였다.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1, 2, 3번으로 넘어간다면, 빅이닝이 나를 덮칠 거야.’

김민은 스웨거를 잡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스 볼!”

록튼이 연습 투구를 받은 순간 카디널스 벤치가 움직였다.

“대타 마크!”

마크는 메이저리그 70홈런의 주인공 마크 맥과이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반 감독은 마크 맥과이어의 등장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 놈들이 킴의 숨통을 끊으려는 모양이군.”

이것은 블렛소 코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카디널스…… 잔인한 녀석들입니다. 루키의 자존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속셈이군요.”

12번이나 올스타에 뽑히고, 평범한 타자는 한 시즌도 넘기기 힘들다는 OPS 10할 시즌을 9시즌이나 경험한 타자 마크 맥과이어.

더블A조차 경험하지 않은 루키에게는 절망의 벽과 같은 상대였다.

마크 맥과이어가 그 거대한 근육을 자랑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풋내기가 좋은 공을 던진다지? 어디 한번 볼까?”

록튼은 마크 맥과이어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꼈다.

‘이길 수 없어. 상대는 지난 시즌 OPS 1.229를 기록한 레전드라고!’

그는 김민의 인생에 먹구름이 짙게 끼었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마크 맥과이어의 등장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게 바로 인생이지. 스프링 캠프에 처음 참가한 루키에게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라니, 당치도 않아.’

절망 대신 호기가 솟아올랐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

김민은 첫 번째 그립을 쥐었다.

- 바깥쪽 패스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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