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 01
메이저리그는 단장 야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단장의 역할이 컸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를 결정하고 트레이드를 추진하는 것은 모두 홀먼 단장의 몫이었다.
“시범 경기도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네.”
3월 중순.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는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홀먼 단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비 25인 로스터를 구성할까 생각하는데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 있나?”
단장의 물음에 구단 스탭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시작하시죠.”
예비 25인 로스터는 마지막까지 캠프에 남게 될 30명의 선수를 말했다.
“좋아, 다른 의견이 없다면 본건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지.”
홀먼 단장은 지난 시즌 활약했던 레귤러 20명을 우선 선발했다.
스탭들은 이들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연히 25인 로스터에 들 수 있는 이들이었다.
“자, 남은 것은 10명이군. 타자 6명, 투수 4명이 되겠지.”
로스터를 30명으로 줄인다는 뜻은 40인 로스터에서 10명을 뺀다는 말과 같았다.
“우선 타자부터 가지.”
열두 명의 후보를 여섯 명으로 줄이기 위한 회의가 30분가량 이어졌다.
그리고 6명의 탈락자가 나왔다.
탈락자 안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하킴과 베런은 아깝군요.”
타격 코치 코스타가 입맛을 다시자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베런이나 하킴 정도 재능으로 메이저리그는 무리죠.”
어감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코스타 타격 코치가 그레이의 한마디에 발끈했다.
“그레이가 추천한 노먼보다는 나을 텐데요?”
노먼은 그레이가 극찬한 유망주였지만 30인 로스터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자 운영팀장 코너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노먼도 좋고 베런도 좋은 선수입니다. 두 사람 모두 트리플A에서 조금 더 경험을 쌓으면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레이와 코스타의 신경전이 끝나자 회의는 투수 쪽으로 넘어갔다.
“설리반, 에릭, 카이번, 다닐로프, 헨슨, 킴, 로만 중 4명만 살아남게 될 거야.”
그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세 명만 탈락하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지.”
“이쪽은 조금 편하군요. 세 명만 탈락시키면 되는 거니.”
블렛소 투수 코치가 가장 먼저 지지 선수를 밝혔다.
“카이번을 우선으로 남겼으면 합니다.”
홀먼 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카이번을? 이유가 뭔가?”
“카이번은 중계와 셋업 어느 쪽이든 자기 몫을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선수를 선호했다.
홀먼 단장은 카이번의 효용성을 인정했지만, 그의 잠재력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일단 후보로 올려 두지. 하지만 카이번은 조금 약해. 다음!”
블렛소에 이어 이반 감독이 다닐로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다닐로프가 1999년 시즌 팀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홀먼 단장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에게 기회를 주자, 이 말이군. 알겠네. 다닐로프도 후보에 올려 두지.”
세 번째로 후보에 오른 선수는 김민이었다.
그를 지지한 사람은 스탭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내가 지지하는 선수는 킴일세. 시범 경기 2게임에 나와서 2승에 평균자책점 2.45, 흠잡을 곳이 없지.”
스탭들은 홀먼 단장이 설리반이 아닌 김민을 지지하고 나서자 깜짝 놀랐다.
“홀먼, 설리반이 아니라 킴을 예비 로스터에 넣으시는 겁니까?”
그레이의 물음에 홀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못 들어가면 누가 예비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킴은 더블A조차 경험하지 못한 선수입니다. 시범 경기 성적이 좋다고 해도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더 쌓아야 합니다.”
홀먼 단장도 오늘 아침까지는 그레이와 생각이 같았다.
2시간 전.
“오늘 예비 로스터를 구성한다지?”
홀먼 단장이 커피잔을 들며 구단주의 물음에 답했다.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호텔 로비에서 모닝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그 친구는 당연히 들어가겠지?”
홀먼 단장의 손이 멈췄다.
“그 친구라면…….”
“킴 말일세.”
“아, 킴은 이번에 더블A로 내려가서 경험을 쌓을 겁니다. 물론 올스타 브레이크 전에는 콜업…….”
빈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곤란해.”
“예?”
“난 그 친구를 개막전에서 보고 싶네.”
30인 예비 로스터도 아니고, 개막전.
이는 김민을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넣으라는 말이었다.
홀먼 단장은 놀라 커피잔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킴을 개막전 마운드에 올리란 말일세.”
홀먼 단장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넣는 것도 아니고 개막전 마운드라면…….’
빈스가 오른손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홀먼, 그 친구를 개막전 선발로 내보내면 큰 화제가 될 거야.”
더블A조차 거치지 않은 유망주가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로 등판한다.
이는 플로리다를 넘어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하지만 팀의 승리는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홀먼 단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홈이 아닌 원정 개막전이라고 해도 3선발은 내야 승산이 설 겁니다.”
빈스는 홀먼 단장의 저항에 단호하게 말했다.
“홀먼, 지난 시즌 우리 팀의 적자가 얼마인지 알고 있나?”
“그, 그것은…….”
빈스가 목에 힘을 주었다.
“우리 팀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나아가는 팀이 아니야! 우리 팀의 이번 시즌 목표는 팬들을 어떻게든 경기장으로 이끄는 거란 말일세! 킴은 그러기 위한 좋은 수단이야.”
빈스는 김민을 통해 아시아 마케팅과 신인 마케팅을 동시에 이루고자 했다.
“홀먼, 생각해 보라고. 킴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버텨만 줘도 아시아 기업들이 외야 광고판을 앞다투어 사갈 걸세. 어디 그뿐인가? 노모처럼 신인왕 경쟁이라도 하게 되면 유니폼과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릴 거야! 관중 수입까지 생각하면…….”
빈스는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가 그랬듯 김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킴이 로테이션에서 버틸 능력이 돼야 합니다.”
빈스는 홀먼의 저항에 얼굴을 굳혔다.
“자네는 시범 경기를 보지 않은 건가? 킴의 실력은 이미 검증이 끝났어.”
“빈스, 시범 경기와 시즌은 다릅니다.”
시범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루키가 정규 시즌에 난타당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광경이었다.
홀먼은 유능한 단장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네는 내가 야구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짠돌이 구단주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홀먼 단장은 강단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는 구단주의 분노에 몸을 움츠렸다.
“아, 아닙니다.”
빈스가 굳었던 표정을 살짝 풀며 말했다.
“킴을 개막전 선발로 낙점하고 언론에 이 사실을 흘리게. 킴이 개막전에서 승리한다면 확실한 마케팅이 될 걸세.”
개막전에서 김민이 승리한다면 빈스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반대로 패한다면 100패를 향해 나아가는 꼴찌 팀의 훌륭한 퍼포먼스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홀먼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홀먼에게 빈스는 조지 스타인브레너(악의 제국 양키스를 완성한 구단주)보다 무서운 구단주였다.
2시간 뒤.
탬파베이 스프링 캠프 회의실.
“그레이, 이건 그분께서 결정하신 거야. 내가 되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닐세.”
홀먼 단장이 그분이라 언급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빈스 구단주.
스탭들은 구단주가 언급되자 더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구단주가 킴을 찍었단 말인가?’
‘빈스는 킴의 어디에 꽂힌 걸까? 킴은 팬들을 열광시키는 강속구 투수도 아니잖아.’
‘구단주가 찍었다면 예비 로스터는 프리패스지. 어쩌면 25인 로스터에 들지도 몰라.’
짧은 침묵을 깬 것은 블렛소였다.
“킴이 예비 로스터에 들어간다면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홀먼이 대답하기 전에 그레이가 먼저 말했다.
“일단 롱릴리프로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너도 그레이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일단 릴리프가 좋겠죠. 이닝 부담도 적고, 불펜에서 경험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입니다.”
홀먼 단장은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뒤 고개를 내저었다.
“무조건 선발.”
무조건 선발이라는 말에 이반 감독이 이의를 제기했다.
“킴이 선발 로스터에 들어가면 터커와 해리스가 불만을 제기할 겁니다. 두 사람은 지난 시즌 선발로 뛰었으니까요.”
홀먼 단장의 머릿속은 빈스의 호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친구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군.’
그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7승 투수와 4승 투수가 불만을 제기한다고? 그게 어쨌다는 건가? 우리 팀에서 뛰기 싫으면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해!”
홀먼 단장의 강력한 한마디에 스탭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코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홀먼, 혹시 25인 로스터에도 포함되는 겁니까?”
홀먼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평소라면 한마디 했을 그레이도 이번만큼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단장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걸 보면 빈스가 강하게 킴을 미는 것 같군. 구단주가 민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지.’
홀먼 단장이 화이트보드에 김민의 이름을 적으며 말했다.
“25인 로스터만이 아니야. 개막전 선발로 킴을 올릴 걸세.”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
스탭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그들이 받은 충격은 홀먼이 받았던 충격과 같았다.
“25인 로스터도 과한데 개막전 선발이라니요!”
“아무리 원정 개막전이라고 해도 킴은 무립니다. 적어도 3, 4선발은 나서야 게임이 됩니다.”
“설마 킴을 선발 로테이션에 넣으라는 말씀은…….”
탕!
홀먼 단장이 탁자를 강하게 치며 말했다.
“우리가 월드시리즈에 도전하는 팀인가?”
홀먼 단장답지 않은 박력이었다.
물론 대사는 빈스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이번 시즌 우리 목표는 100승도 90승도 아닌 팬들을 구장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 * *
“킴.”
김민은 블렛소 투수 코치의 부름에 재빨리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블렛소는 주변을 확인한 뒤에 김민에게 말했다.
“팀에서 자네를 25인 로스터에 넣기로 했네.”
김민의 두 눈이 커졌다.
“네?”
예비 로스터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바로 25인 선발 로스터 등록이었다.
“선발 로테이션에도 포함될 걸세. 하지만 팀의 사기도 있고 하니, 당분간은 비밀로 하도록 하게. 자네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려 주는 건 선발로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네.”
김민은 이렇게 빨리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범 경기 성적이 좋았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게다가 선발 로테이션이라니, 메이저리그가 이렇게 쉬운 곳이었나?’
코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더욱 말이 안 되었다.
‘적어도 1, 2경기는 더 보고 결정해야 해. 시범 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설마 몰래카메라인가?’
그러나 블렛소 투수 코치가 몰래카메라에 가담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블렛소는 차마 김민에게 개막전 선발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킴, 믿기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자넬 높이 평가한 스탭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야. 그들에게 고마움을 가지게.”
김민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긴 꿈도 있는 건가?’
이것이 꿈이라면 깨지 않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