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40화 (40/296)

40화 시범 경기 05

3회 말.

김민은 블렛소 코치의 예상대로 첫 번째 타석과 다른 볼 배합을 들고 나왔다.

그는 위력적인 커터로 연속 범타를 유도했다.

탬파베이 중계진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킴이 다시 한번 타자를 요리합니다!”

“이번 커터도 아주 좋았습니다. 타자가 히팅 포인트를 전혀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민은 8, 9번 타자를 공 5개로 처리한 뒤 1번 타자 오커와 마주쳤다.

오커는 1회 그에게 안타를 뽑아낸 타자였다. 그는 이번 타석에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저 친구 주 무기는 스플리터가 아닌 커터인가?’

그는 배트를 살짝 눕혔다.

이것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에 대한 대처였다.

알고 있으면 당하지 않는다.

오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김민의 커터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고 강했다.

탁!

배트 끝에 걸린 공이 2루수에게 향했다.

‘알고도 당했다고? 믿을 수가 없군.’

오커는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웃!”

바이슨 코치는 김민이 세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내는 것을 보고는 매우 만족했다.

“킴의 시범 경기 스타트가 아주 좋습니다.”

이반 감독도 이번에는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좋은 승부야. 과감하게 타자가 노리고 있는 코스에 공을 던져 투구 수를 줄였어.”

홀먼 단장은 오늘 보좌진과 함께 내야석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킴은 오늘도 잘 던지는군. 어디서 저런 보물이 왔는지 모르겠어.”

“지난 트레이드가 재평가받을 날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재평가라, 나쁘지 않은 말이군.”

구단주 빈스는 플로리다로 날아가고 없었지만, 홀먼은 김민에 대한 지지를 바꾸지 않았다.

4회 초.

탬파베이 타자들이 연속 안타를 뽑아내며 피츠버그 투수진을 몰아붙였다.

피츠버그 벤치는 선발 투수를 내리고 구원 투수를 올렸지만, 탬파베이의 기세를 막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기자들은 차례로 무너진 피츠버그 투수들을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명불허전이군요. 피츠버그 투수진은 정말 약한 것 같습니다.”

“탬파베이 배트도 막지 못하다니, 올해 성적도 암담하겠군.”

아직 시작하지 않은 2001년 시즌.

김민이 경험한 미래대로라면 피츠버그는 그간 자랑했던 팀 타선이 침묵하며 충격적인 100패 시즌을 달성하고 만다.

재미있는 것은 탬파베이 역시 100패 시즌을 달성하며 두 팀이 꼴찌의 극을 보여 줬다는 사실이었다.

[탬파베이 6:0 피츠버그]

전광판의 스코어는 피츠버그 코칭 스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시범 경기라고 해도 마이너리그 투수에게 0점으로 눌린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번 공격은 2, 3, 4번으로 시작하는 호타순입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타격 코치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김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2번 타자 브라운을 상대로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이야.”

“브라운은 초구를 쳤어야 했어.”

동료들의 말대로 초구를 흘려보낸 것이 패착이었다.

김민은 카운트의 우위를 바탕으로 브라운을 흔들었다.

안쪽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

브라운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타격 코치의 호언장담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피츠버그 감독은 미간을 좁혔다.

“이런…… 정규 시즌이 한 달도 남지 않았어. 지금 상태로 시즌에 들어가면 또 꼴찌야.”

김민은 첫 아웃 카운트를 잡곤 모자를 고쳐 썼다.

‘더는 떨리지 않아.’

1회부터 느꼈던 떨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범 경기 마운드에 적응을 마친 것 같아.’

3번 타자 제트는 대기 타석에서부터 김민을 유심히 관찰했다.

‘킴이라고 했나? 공 끝이 좋아. 그냥 배트에 맞춘다고 안타를 만들 수 있는 투수가 아니다. 조금 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해.’

그는 김민이 삼총사라 불리는 선발 자원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고 인정했다.

‘초구는 이번에도 바깥쪽일까?’

피츠버그 타격 코치가 두 손에 바람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제트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타석에서는 뭔가 보여 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시범 경기였지만 그라운드에 예상하지 못한 긴장감이 일었다.

“제트가 심상치 않은데?”

“장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킴에게 조심하라고 사인을 내는 게 좋겠어.”

탬파베이 벤치에서 오랜만에 사인이 나왔다.

- 장타를 조심해.

록튼은 벤치의 사인을 그대로 투수에게 전달했다.

김민은 벤치에서 낼 법한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좋군. 내가 벤치에 있었어도 같은 사인을 냈을 거야.’

그도 제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록튼이 미트를 툭 치면서 제트에게 말했다.

“제트,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지 말라고 시범 경기일 뿐이잖아.”

제트가 김민을 주시하며 말했다.

“시범 경기라고? 하지만 상대는 있는 힘을 다해 던지고 있어. 전력투구에는 이쪽도 전력으로 맞서는 게 예의야.”

초구는 바깥쪽 커터였다.

딱!

제트의 배트는 커터를 깎아내듯 공략했다.

“파울!”

배트의 날카로움은 전 타석과는 비할 수 없었다.

‘이 녀석 진심이야.’

록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김민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커터를 저렇게까지 칠 수 있다니, 팔이 길어서 가능한 건가?’

약물로 만든 강함은 약하다?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약물이든 노력이든 강함은 변하지 않았다.

강함은 강함 그 자체였다.

따악!

두 번째 타구가 3루 폴대를 살짝 벗어났다.

“1m만 안쪽으로 들어갔어도 홈런이었어.”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제대로 받아쳤군.”

“킴의 스플리터에 이렇게까지 타이밍을 맞춘 타자는 처음이야.”

탬파베이 코칭 스탭의 손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승패나 스코어와 상관없이 긴장되는군.”

“오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민은 전광판을 확인하곤 로진백을 만졌다.

‘여기서 하나 정도 맞아도 6-1. 스코어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아.’

그는 제트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슉!

세 번째 공이 안쪽 코스를 노렸다.

제트는 이 공을 치지 않고 기다렸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볼이군.”

“제트가 잘 골랐어.”

피츠버그 동료들은 제트의 선구안을 칭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트! 풋내기에게 메이저리그의 강함을 알려 주라고!”

“제트, 너만 믿는다!”

김민은 록튼으로부터 공을 받은 뒤 길게 심호흡했다.

‘카운트 1-2, 승부구를 던질 찬스다. 하지만 어떤 공을 던져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군.’

마운드에 오르기 전에는 안쪽 스플리터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커터로 승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트는 두 공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패스트볼? 아니야. 그건 너무 위험해.’

그는 1회 제트를 잡아냈던 체인지업을 머릿속에 그렸다.

‘제트 같은 타자가 같은 공에 두 번 당할까? 하지만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다면 체인지업을 쳐 낼 수 없을 거야.’

타이밍이 다른 두 가지 공을 동시에 공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김민은 승부구로 다시 한번 체인지업을 선택하려 했다.

그러나 그립을 잡은 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이걸로는 못 잡아.’

그는 투구에 들어가는 대신 발을 뺐다. 그리곤 주심에게 공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킴이 타이밍을 끊었습니다.”

“노련한 운영이군. 신인답지 않은 모습이야.”

김민은 새로운 공을 받은 뒤 마음을 정했다.

‘좋아. 홈런이 되더라도 이걸로 승부하겠어.’

그는 포심 그립을 쥐었다.

포심 패스트볼.

가장 빠르고 강한 공으로 타자를 윽박지를 생각이었다.

슉!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한 속도로 포수 미트를 향했다.

제트는 기다렸던 공이 아니라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체인지업을 기다렸는데 패스트볼이군. 게다가 떠오르기까지 하다니…… 이건 당할 수가 없군.’

눈높이로 날아오는 하이 패스트볼.

공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해도 제트는 이 공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탁!

배트에 스친 공이 그대로 포수 미트에 꽂혔다.

팡!

파울 팁 삼진.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제트는 고개를 숙인 채 배터박스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분한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력 승부. 나쁘지 않은 느낌이야.’

그는 이번 승부를 통해 컨디션을 상당히 끌어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킴이 제트를 잡아냈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킴의 클래스를 너무 낮게 본 것 같군. 저 친구 머지않아 우리 팀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할 거야.”

탬파베이 코칭 스탭은 김민의 선발 진입 가능성을 한 단계 높였다.

물론 아직 확정을 논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지난 시즌 선발로 활약했던 투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이날 김민의 최종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6이닝 2피안타 1실점 5K.

피츠버그 강타선을 상대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성적.

동료들은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손을 내밀었다.

“나이스 피칭.”

“킴, 정말 좋았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던질 수 있는 거야?”

김민이 동료와 하이파이브하며 대답했다.

“좋은 성적은 다 록튼 덕분이야.”

그는 포수에게 공을 돌릴 줄 아는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라커룸으로 들어서자 트레이너가 아이싱을 시작했다.

“킴, 훌륭한 투구였어.”

“고맙습니다.”

트레이너가 팔과 어깨에 얼음팩을 감으며 말했다.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자네의 투구를 보고 싶군.”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

차가운 감각이 팔을 감싸 안았다.

탁!

잠시 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등장했다.

“킴, 오늘 투구는 정말 좋았어.”

김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다음 등판은 5일 뒤일세.”

선발 등판 통보는 그가 캠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잘 준비하겠습니다.”

블렛소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곤 더그아웃으로 사라졌다.

* * *

피츠버그 3연전이 끝나고 스프링 캠프에 한파가 몰아쳤다.

“아홉 명이나 떠났어.”

“남은 것은 45명인가?”

“앞으로 20명은 더 떠나야 해. 생존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40인 로스터에 든 선수들조차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록튼이 김민을 향해 말했다.

“그레고리 방이 비었어.”

그레고리는 두 사람과 함께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 참가했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그는 시범 경기에서 1할대의 빈타를 보인 끝에 캠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베런도 위험해.”

베런은 홈런 1개와 4타점을 올렸지만, 타율이 썩 좋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그도 캠프를 떠나게 될 것이다.

“록튼, 떠난 친구들보다 남은 선수들을 바라보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떠난 이들을 바라보며 걱정하기보다는 남은 이들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슬슬 투수조의 윤곽이 나오고 있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투수진은 보통 12명으로 운영되었다.

이것을 조금 더 세분화하면 선발 투수 5명에 불펜 7명이었다.

김민은 불펜 7명보다는 선발 5명을 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펜은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당길 수 있지만, 투수의 수명을 줄일 뿐이야.’

이 시기 메이저리그 불펜은 철저한 투구 수 관리보다는 젊은 투수나 유망주를 싼값에 쓴다는 마인드가 널리 퍼져 있었다.

불펜에 오른다는 것은 혹사를 어느 정도 각오해야 했다.

‘선발 삼총사는 정해졌고, 선발 로테이션에 남은 것은 두 자리, 아마 나와 설리반 그리고 해리스와 터커가 경쟁하겠지.’

해리스와 터커는 지난 시즌 땜빵 선발로 출발해 후반기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렸던 선수들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25인 로스터에서 탈락한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

“요즘 킴이 잘하고 있던데 위험하지 않아?”

“킴? 싱글A에서 올라온 친구 말인가?”

“그래, 지난 피츠버그전에서 선발승을 올렸다고.”

터커의 말에 해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범 경기는 시범 경기일 뿐이야. 우린 메이저리그에서 승리 투수가 된 경력이 있다고.”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한 것과 시범 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그 차이가 컸다.

“그래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코칭 스탭이 무시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 봐야 불펜에서 시작하겠지. 더블A도 거치지 않은 녀석을 선발 로테이션에 넣을 수 있겠어?”

“듣고 보니 그러네.”

블렛소 역시 어느 정도는 이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김민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면 롱릴리프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쪼잔한 사내는 이들과 생각이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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