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38화 (38/296)

38화 시범 경기 03

팡! 팡!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록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스 볼!”

김민은 록튼의 공을 받은 뒤 호흡을 조절했다.

‘긴장하지 말자 시범 경기일 뿐이잖아.’

그는 프로에서 시범 경기를 7시즌이나 치렀다. 그러나 그가 치른 시범 경기는 모두 코치 시절에 치른 것이었다.

선수로 시범 경기 마운드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떨리는 오른손을 보곤 길게 심호흡했다.

‘이럴 때는 20년 프로 경력이 무용지물이군.’

코치 시절 그가 시범 경기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본 것은 투수가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불펜과 연습 경기에서 아무리 훌륭한 공을 던져도 실전에서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시범 경기는 연습 경기나 불펜 투수보다 실전에 가까운 경기.

이 경기에서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시즌에 들어가서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그는 투수가 던지는 공 자체에 집중했다.

‘나의 공을 던지자.’

김민은 오른손 검지를 어깨에 가져갔다.

- 바깥쪽 패스트볼.

지난해부터 줄곧 해 오던 볼 배합.

록튼은 미트를 가볍게 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킴, 얼마든지 던지라고.’

타자는 자세를 낮추면서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

‘어떤 공을 던지는지 한번 보자고.’

다음 순간 김민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슉!

패스트볼이 바깥쪽 꽉 찬 코스를 노렸다.

‘좋은 공이다.’

록튼은 김민의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것은 김민의 컨디션만이 아니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1, 2루 사이를 통과했다.

초구를 통타한 안타.

“나이스 배팅!”

1루 관중석에 위치한 홈 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민은 1루에 나간 주자를 보곤 로진백으로 손을 뻗었다.

‘그래, 꽉 찬 공도 안타로 만들어 내는 게 메이저리거였지.’

1루에 나간 선수는 지난해 데뷔한 신인 오커였다.

오커는 신인왕 후보는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꿰찬 선수였다.

“오커가 좋군요.”

“바깥쪽 낮은 코스였던 것 같은데 잘 받아쳤군.”

파이어리츠 벤치는 첫 안타에 분위기가 좋았다.

“멀리서 온 팬들에게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회 말 선취 득점은 더 좋은 선물이 될 거야.”

오커의 안타는 피츠버그에서 애리조나까지 원정 온 팬들을 열광시켰다.

“나이스 오커!”

“잘한다! 올해는 20홈런 기대할게!”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는 각 팀의 스프링 캠프가 위치한 애리조나와 플로리다에서 열렸기 때문에 열성 팬들은 휴가를 내고 원정 응원을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첫 타자를 안타로 내보내자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느낌이 좋지 않은데.”

김민은 두 번째 타자를 상대로도 어려운 승부를 이어갔다.

탁!

빗맞은 공이 파울 라인을 벗어나면서 카운트는 2-2로 변했다.

‘쉽지 않아. 바깥쪽 패스트볼을 어떻게든 커트해 내고 있어.’

그는 피츠버그 타자들이 탬파베이 타자들과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이너리그 출신들도 쉽게 볼 수 없어. 확실히 타격에 강점이 있는 팀이야.’

탬파베이 타자들은 25인 로스터에 속해 있는 선수라고 해도 하나 정도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피츠버그 타자 중에는 그러한 약점을 지닌 선수가 드물었다.

특히 클린업은 컨택과 장타력을 동시에 보유한 선수들이 많았다.

탁!

다섯 번째 공도 커트.

김민은 여섯 개의 공을 던지고도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록튼은 김민이 투구 수 관리에 얼마나 철저한지를 알고 있었다.

‘킴이 투구 수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어. 피츠버그…… 예상대로 강했어.’

김민은 그립을 바꿔 쥐곤 1루 주자를 살폈다.

오커는 도루에 생각이 없다는 듯 베이스에 붙어 있었다.

‘시범 경기에서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인가? 하긴 시범 경기에서 도루 시도로 부상을 입는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겠지.’

그는 미간을 좁힌 뒤 바깥쪽 코스로 공을 던졌다.

슉!

빠른 공이 포수 미트에 빨려 들어갈 듯 날아갔다.

타자는 그 공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탁!

배트 끝에 걸린 공이 1루 라인을 향해 흘렀다.

“1루! 1루부터 처리해!”

록튼의 사인에 1루수 베런이 공을 잡아 주자를 터치했다.

그 사이 1루 주자 오커는 2루까지 진루.

상황은 1사 2루로 바뀌었다.

“7개를 던져서 드디어 아웃 카운트를 잡았군.”

이반 감독은 김민의 투구 수가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나 블렛소 투수 코치는 반대였다. 그는 김민이 많은 공을 던지긴 했지만 도망가는 피칭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자신의 공을 확실히 던지고 있어. 결과는 1사 2루지만, 공 자체는 나쁘지 않아.’

바이슨 역시 블렛소와 비슷한 시각으로 김민의 투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공은 커터였군. 패스트볼로 타자를 유인한 뒤 커터로 마무리. 볼 배합 자체는 연습 경기 때보다 좋아.’

피츠버그 코칭 스탭은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주자가 2루 이상에 위치)에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첫 공격에 득점 기회를 잡았군.”

“공교롭게도 제트가 타석에 섰군요.”

“마이너리그 투수에게는 악운이야.”

제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하는 강타자였다.

“어려 보이는 친구군.”

그는 배트를 두 번 두드리곤 타석에 섰다.

록튼은 메이저리그 4번 타자가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했다.

‘제트, 오늘은 3번을 치고 있지만, 시즌 중에는 항상 4번을 쳤어. 게다가 2년 연속 35개 이상의 홈런과 100타점.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빈틈이 없어. 킴에게 벅찬 상대야.’

김민은 공을 글러브에 넣은 뒤 살짝 눈을 감았다.

‘상대는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야. 패스트볼로 윽박지른다면…… 아니, 무리야. 제트 같은 선수는 재능만으로도 패스트볼을 쳐 낼 수 있어. 여기서는 허를 찌르지 못하면 이길 수 없어.’

그는 눈을 뜨곤 오른손 검지를 어깨에 가져갔다.

- 안쪽 패스트볼.

록튼은 그 사인에 살짝 놀랐다.

‘1회부터 로케이션인가?’

김민은 지독할 정도로 바깥쪽 승부에 집중하곤 했다.

그러나 제트를 상대로는 달랐다.

그는 바깥쪽 공을 하나둘 빼는 것만으로는 제트를 잡아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슉!

패스트볼이 타자 안쪽을 향해 날아왔다.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인가? 대담하군.’

제트는 안쪽 공을 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냈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김민은 제트의 표정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는 4번 타자가 시범 경기에 긴장하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는 타석에 선 제트에게 여유를 느꼈다.

실제로 제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는 김민이 다음 공으로 어떠한 공을 던지든 쳐 낼 자신이 있었다.

‘떨어지는 공이든 휘어져 나가는 공이든 상관없다고. 존 근처로 들어오기만 하면 따악이지.’

그의 자신감은 실력 그 이상의 것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김민의 손에서 두 번째 공이 떠났다.

슉!

제트는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변화하는 것을 보곤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정타는 힘들겠군.’

그는 공이 어떠한 방향으로 변하든 배트에 맞히기만 하면 내야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트는 공에 닿지 않은 채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제트는 자신이 헛스윙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스플리터에 헛스윙이라고? 설마!’

그는 고개를 돌려 김민을 노려보았다.

김민은 메이저리그 4번 타자를 앞에 두고도 전혀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예상보다 스윙이 어설퍼…… 저건 파워에 의존한다는 말인데. 설마 제트도 그런 선수였나?’

그런 선수란 뜻은 약물을 의미했다.

하지만 제트가 약물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자, 다시 던져 보라고, 스플리터 말이야.’

제트는 배트를 세우면서 슬라이드를 줄였다.

이건 보다 정확하게 공을 컨택하겠다는 뜻.

록튼은 바로 김민에게 타자의 자세를 살피라는 사인을 내보냈다.

‘다음 공은 조심해야 해. 제트의 파워는 어떤 공이든 외야로 내보낼 수 있어.’

김민은 록튼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곤 세 번째 사인을 내보냈다.

록튼은 그 사인을 보곤 크게 놀랐다.

‘킴, 그걸로 제트를 잡을 수 있겠어?’

그러나 김민은 사인을 바꾸지 않고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한가운데라고?’

제트는 한가운데 오는 공을 보곤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실투인가? 아니면 스플리터? 어느 쪽이든 좋아. 그대로 담장을 넘겨주지.’

그러나 그의 배트는 공과 큰 차이로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공을 받은 록튼과 배트를 휘두른 제트, 두 사람 모두 놀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났어.’

‘어떻게 이런 일이…….’

김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다음 공을 요구했다.

‘힘으로 치려고 하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의외의 결과에 탬파베이 벤치가 술렁였다.

“제트가 삼진으로 물러났군요.”

블렛소의 말에 이반 감독이 팔짱을 꼈다.

“1아웃 주자 2루. 욕심이 나서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군.”

김민이 승부구로 던진 공은 한가운데에서 살짝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즉, 김민은 공의 움직임이 아닌 스피드 변화로 타자를 잡아낸 것이었다.

“어쨌든 타자의 허를 잘 노렸습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볼 배합을 잘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했다.

“볼 배합은 확실히 좋아. 저 친구에게 우리 팀 주전 포수를 맡겼으면 좋겠어.”

뒤쪽에 앉아 있던 주전 포수 티노가 감독의 말을 듣곤 어깨를 으쓱했다.

“투수 출신 포수라. 2루 송구는 잘하겠군요.”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티노, 빈정거릴 시간이 있으면 킴의 볼 배합을 배우는 게 어때?”

티노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씀은 전력분석팀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전 그 친구들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볼 배합을 하니까요.”

피츠버그 벤치는 믿었던 제트가 삼진으로 물러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제트가 너무 큰 걸 노린 게 아닌가 싶군.”

“멀리에서 온 팬들에게 큰 선물을 해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쉽군요. 여기서 안타 하나면 선취점을 뽑을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4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오도네바였다. 그는 피츠버그를 이끄는 공격형 포수로 제트와 4번 자리를 번갈아 치곤 했다.

록튼은 오도네바의 떡 벌어진 어깨를 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산 넘어 산이군.’

김민은 오도네바에게 제트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 어깨와 근육…… 설마 또 약물인가?’

부풀어 오른 근육은 스테로이드의 상징.

물론 오도네바 역시 약물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저런 타자에게 존에서 하나둘 빠지는 공은 의미가 없어.’

김민이 볼 배합을 바꾸게 된 것은 상대의 무지막지한 파워 때문이었다.

슉!

초구가 안쪽을 향해 날아갔다.

오도네바는 안쪽 공을 보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트를 삼진으로 잡았다고 기고만장했군.’

강타자를 상대로 안쪽 공을 던진다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조금만 제구가 어긋나도 장타가 나올 수 있었다.

‘떨어져라!’

김민의 외침과 동시에 공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은 그대로 3루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오도네바는 김민이 패스트볼이 아닌 스플리터를 던졌다는 사실에 혀를 찼다.

‘비겁한 녀석!’

그러나 투수는 비겁할수록 좋은 성적을 내는 포지션이었다.

오도네바가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 녀석은 바다 건너에서 못된 것만 배워 왔어.”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말했다.

“예, 예, 그러시겠죠.”

2루에 있는 주자는 2아웃에도 불구하고 스타트를 빨리 끊지 않았다.

“오커는 오도네바를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터박스에 4번 타자가 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지.”

김민은 2루 주자 오커의 소극적인 주루 덕분에 타자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슉!

두 번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했다.

‘바깥쪽?’

오도네바는 이 공을 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투수가 안쪽과 바깥쪽 로케이션을 완벽하게 가져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팡!

미트에 꽂힌 공은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오도네바는 배터박스 아래 침을 뱉었다.

“퉤, 못된 것만 배워 왔어.”

김민의 제구와 집중력은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급이었다.

세 번째 공.

제트 타석에서는 바로 승부를 가져갔다.

하지만 김민은 이번만큼은 공을 하나 밖으로 뺐다.

“1-2군요.”

“이번에 승부해야 해. 다음 공까지 빠지면 불리해질 거야.”

오도네바 역시 이번에 승부구가 온다고 판단했다.

‘자, 어떤 공으로 승부를 할 거냐?’

그는 일단 패스트볼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90마일 초반 패스트볼로 날 잡는 건 무리. 십중팔구 스플리터나 체인지업으로 나올 거야.’

오도네바는 한 타이밍 늦춘 스윙으로 공을 띄우려 했다.

‘위로 퍼내면 게임 끝이야. 그대로 펜스를 넘어갈 테니까.’

슉!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은 빨랐다.

‘체인지업은 아니군.’

오도네바는 스플리터라고 예상하고 배트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공의 움직임은 정반대였다.

공이 눈앞에서 떠올랐다.

‘아래가 아니라 위라고? 바보 같은!’

그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순간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삼진.

경기장은 김민의 투구로 술렁거렸다.

“오도네바가 삼진을 당했어.”

“제트와 오도네바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다니, 저 투수는 대체 누구야?”

홈 관중들마저 김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