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시범 경기 02
세 번째 연습 경기가 끝난 뒤 다섯 명의 선수가 캠프를 떠났다.
두 명은 예상하지 못한 부상으로, 나머지 두 명은 연습 경기 부진으로, 마지막 한 명은 불성실한 태도로…….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메이저리그로 향하는 문이 닫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스프링 캠프에 처음 참가한 선수들은 동료들의 탈락 소식에 흠칫했다.
“이렇게 빨리 캠프를 떠나다니…….”
“4타수 1안타가 탈락할 정도의 성적인가?”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이미 캠프를 경험한 적이 있는 선수들은 신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25명이 남을 때까지 매주 탈락자가 나올 거야. 그리고 그들이 탈락한 이유는 딱 한 가지야. 팀에서 필요하지 않은 선수.”
연습 경기 1차전 설리반과 불화로 위기에 처했던 록튼, 그는 3차전 활약으로 탈락 명단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배터리 코치가 펜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첫 경기는 록튼이 부진했다기보다 설리반이 부진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불펜 코치가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 록튼의 수비력은 흠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친구 수비는 좋더군. 블로킹도 좋고, 포구도 나쁘지 않더군. 다만, 볼 배합은 아직 의문표가 붙어 있어. 이걸 떼지 못하면 메이저리그 콜업은 힘들 거야.”
세 번째 경기는 투수인 김민이 직접 볼 배합을 했기 때문에 록튼의 볼 배합 능력은 의문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킴은 역시 킴이었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의 발언에 이반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킴의 열렬한 지지자군.”
“킴과 같은 선수를 어떻게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바이슨, 연습 경기는 연습 경기일 뿐일세.”
바이슨이 두 손을 살짝 펴며 말했다.
“그럼 시범 경기에 올려보도록 하죠.”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네.”
블렛소가 이반 감독에게 물었다.
“첫 3연전입니까?”
이반 감독이 고개를 내저었다.
“홈 시범 경기는 메이저리그 삼총사가 나설 거야. 그쪽도 컨디션 점검을 해야 하니까.”
이반 감독이 메이저리그 삼총사라 부른 이들은 지난 시즌 탬파베이 선발 로스터를 책임졌던 부르스, 렉터, 클락을 말했다.
세 선수는 모두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20경기 이상 출전해 100이닝 이상을 던졌다.
탬파베이는 이들을 제외하면 선발로 1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가 없었다.
“그럼 킴의 선발 등판은 원정 시리즈가 되겠군요.”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를 타는 건 역시 루키의 몫이지.”
스프링 캠프 원정 경기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메이저리거들은 홈경기를 더 선호했다.
* * *
김민은 경기가 끝난 뒤 자신의 투구에 B+를 주었다.
‘메이저리거란 위압감에 눌려 패턴을 바꾸고 말았어.’
닐슨과 티노는 트리플A 타자들보다 뛰어난 타자들이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들과 비교하면 기량이 많이 떨어졌다.
김민은 그들을 상대로 도망치듯 패턴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메이저리거란 명성에 눌려 있는 건가?”
그는 노트를 정리하곤 고개를 내저었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틀 뒤.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다.
많은 팬들이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탬파베이보다는 뉴욕 메츠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중요한 건 ‘메츠가 올해 지구 우승을 탈환할 수 있는가?’야.”
뉴욕 메츠는 지난해 94승을 거두고도 95승을 거둔 애틀랜타에 지구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메츠 선수들과 팬들은 올해야말로 애틀랜타를 누르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오늘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뉴욕 메츠의 시범 경기를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시범 경기 개막전이 열릴 때마다 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구나!’라고 말입니다.”
중계 차량과 스탭 그리고 기자들이 마이너리그 구장을 가득 채웠다.
연습 경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활기였다.
“이게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인가?”
“ESPN 중계차는 처음 봐.”
더블A나 싱글A에서 올라온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눈이 커졌다.
반면 트리플A 선수들은 긴장감이 높아졌다.
“드디어 시작이군.”
“아아, 이게 본 게임이지.”
“여기서 못 치면 바로 마이너리그야.”
일주일에 여섯 게임.
여섯 게임이 끝날 때마다 다섯 명, 아니 그 이상의 인원이 캠프를 떠나게 되어 있었다.
“첫 주는 어떻게든 버티자고.”
“물론이지.”
개막전은 탬파베이의 에이스 부르스와 메츠의 신성 카펠라가 맞붙었다.
카펠라는 탬파베이 타자들을 상대로 96마일(154km)의 강속구를 선보였다.
“카펠라가 좋군.”
“지난해 11승은 우연이 아닙니다.”
카펠라는 올해 목표를 15승으로 잡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탬파베이 타자들은 카펠라의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이반 감독은 며칠 전과 달리 얼굴이 어두웠다.
“98마일(158km)도 아니고 96마일(154km)에 배트가 늦다니, 캠프에서 뭘한 거야!”
탬파베이 타선이 터진 것은 카펠라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난 다음이었다.
탬파베이 타자들은 트리플A 출신 던컨을 상대로 7안타를 몰아치며 6-4로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반 감독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마이너리거를 상대로 해낸 다득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바이슨 수석 코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범 경기는 시범 경기일 뿐입니다. 시즌에 들어가면 다들 달라질 겁니다.”
메츠와 같은 강팀에게 시범 경기 부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탬파베이 같은 약팀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시범 경기조차 못하는 팀이란 낙인이 찍힐 수 있었다.
이날 경기는 경기 후반 타선이 폭발한 탬파베이가 승리를 가져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경기 결과는 2승 1패로 좋습니다만…….”
“25인 싸움에서는 완패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두 팀 모두 같았다.
하나 메츠 선수들은 탬파베이 선수들과 클래스가 달랐다.
그들은 센스와 재능만으로도 탬파베이 선수들을 압도했다.
기자들 역시 메츠의 빠른 발과 강한 타격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올해도 메츠는 우승 후보군.”
“주전들의 컨디션이 좋아. 이번 시즌이라면 월드시리즈에 올라갈지도 몰라.”
“그에 비해 탬파는 올해도 힘들겠어. 꼴찌 탈출도 버거워 보이니…….”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올해도 탬파는 글렀어.”
김민은 이번 시즌 메츠의 성적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메츠가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너진 BK와 리베라 그리고 양키스.’
뉴욕 양키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맞붙었던 2001년 월드시리즈는 마이너리거였던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시리즈였다.
3차전이 끝난 뒤 블렛소가 김민을 따로 불렀다.
“킴, 준비는 되었겠지?”
이틀 전 김민은 블렛소로부터 시범 경기 선발 등판을 통보받았다.
“물론입니다.”
“좋아, 내일 자네의 실력을 모두에게 보여 주게.”
김민의 상대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였다.
다음 날.
김민과 선수들은 원정 경기 버스에 올랐다.
그레고리는 메이저리그 전용 버스의 화려한 시설에 크게 놀랐다.
“같은 버스인데 왜 이렇게 다른 거야?”
베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메이저리그 버스니까.”
베런은 시범 경기에서 6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단 하나의 장타도 뽑아내지 못했다.
“의자부터 팔걸이까지 모두 달라.”
김민 역시 메이저리그 원정 버스는 처음이었다.
‘프로야구 장비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메이저리그와는 차이가 있군.’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용하는 장비와 교통수단은 호화롭다고 말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버스는 1시간 30분가량을 달려 원정 경기장에 도착했다.
“같은 스몰마켓이라 그런지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는군.”
그레고리가 베넌에게 물었다.
“그래도 피츠버그는 우리보다 낫지 않아?”
“낫긴, 똑같이 69승이야.”
2001년 현재 피츠버그는 탬파베이와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약팀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탬파베이와 약점이 반대라는 것이었다.
탬파베이가 괜찮은 투수력에 허약한 타선을 보유하고 있다면, 피츠버그는 괜찮은 타선에 한심한 투수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피츠버그 선발 투수 중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은 에이스 카진 뿐이었고, 2선발부터는 평균자책점이 4.80 이상이었다.
기자들은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탬파베이 투수진에 피츠버그 타선이라면 와일드카드 정도는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피츠버그 선수들은 상대 팀 선발 투수를 확인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선수인데?”
“난 봤어.”
“어디서?”
“지난 가을 리그에서 한 번 상대했지. 스플리터가 좋은 친구야.”
“스플리터라니, 고약한 취미를 가졌군.”
피츠버그 선수들은 탬파베이가 미래의 유망주를 마운드에 올렸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친구들은 원정에서 빠진 건가?”
“타자는 그래도 몇 명 들어갔더군.”
“흠, 빠진 건 투수뿐이란 건가?”
“아마도.”
김민은 불펜에서 록튼과 연습 투구로 몸을 풀었다.
팡! 팡!
그러나 60% 정도 수준의 힘으로 던진 공은 평가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록튼은 나이스 볼을 연발했다.
“나이스 볼.”
이반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김민의 진면목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대거 선발 로스터에 등록했더군.”
바이슨이 로스터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아마 주전 선수들의 감을 끌어올리려는 것 같습니다.”
“킴이 그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다면 25인 로스터도 고려해 볼 수 있겠지.”
현재 탬파베이 선발 자리는 두 자리가 공석이었다.
이반 감독은 이 두 자리를 스프링 캠프 경쟁을 통해 채우려 했다.
한마디로 김민에게 피츠버그전은 기회이자 위기였다.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누구? 킴 말인가?”
“그렇습니다.”
“5이닝 3실점 정도면 어떨까 싶군.”
바이슨이 상대 벤치를 보며 말했다.
“너무 커트라인이 낮군요. 시범 경기라면 더 높여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이반 감독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무리야. 상대는 피츠버그라고.”
피츠버그 타선의 무게감은 탬파베이와 완전히 달랐다.
이반 감독은 김민이 5회까지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팀에서 피츠버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선발 삼총사 정도뿐이다. 킴이 그들을 막아 낼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일 테지.’
연습 투구를 마친 김민에게 록튼이 다가왔다.
“킴,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던가?”
록튼이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쳇, 운이 좋지 않아. 하필 피츠버그라니.”
그는 차라리 메츠를 상대하는 게 더 나았다고 생각했다.
김민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록튼, 어려운 상대를 제압해야 비로소 높은 평가를 받는 거라고.”
“그렇지만 피츠버그는 너무 위험하다고. 두 자릿수 홈런 타자만 여섯 명이야.”
“진정해. 시범 경기라고. 그 여섯 명이 모두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오늘 로스터에 오른 피츠버그 강타자는 제트, 브라운, 오도네바였다.
특히 제트는 지난해 35개의 홈런 123타점, OPS 1.023을 기록한 슈퍼스타였다.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탬파베이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늘도 탬파베이 공격은 맥이 없었다.
상대 선발의 구위에 눌려 그레고리와 하킴이 나란히 내야 땅볼로 물러났다.
3번 타자 베넨이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때렸지만, 닐슨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공수교대.”
“오케이.”
김민은 록튼과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