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시범 경기 01
4회 말.
탬파베이의 간판스타 홀리오의 투런 홈런이 터졌다.
관중석의 팬들은 홀리오의 시원한 홈런에 휘파람을 불었다.
“나이스 배팅 홀리오!”
“휘익! 휘익! 올해도 부탁한다!”
홀리오의 홈런은 메이저리거의 클래스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A팀이 이기겠는걸.”
“사실 A팀이 지는 게 말이 안 되죠. 로스터에 메이저리거가 몇 명인데…….”
스카우트 브라이언과 클라인은 오늘이 캠프 마지막 경기였다.
“자네는 포트 샬로트로 떠나나?”
“예, 크랩스부터 훑어볼 예정입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가 시작한 직후 마이너리그도 스프링 캠프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마이너리그 전담 스카우트였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스프링 캠프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 킴의 피칭을 볼 수 있다니, 행운이군.”
“클라인도 오늘이 마지막입니까?”
“그래, 난 몽고메리행이야.”
몽고메리에는 탬파베이 산하 더블A팀 비스킷스가 위치했다.
김민을 비롯한 더블A 소속 선수들은 스프링 캠프에서 탈락할 경우 몽고메리로 향했다.
“한 번 공격에 3점인가?”
“빅이닝을 만들지 못한 건 아쉽군요.”
“그래도 킴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3점의 리드.
김민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솔로 홈런이 나와도 2점의 리드. 팀원들에게 감사해야겠군.’
5회 초.
그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 회만 무실점으로 막아낸다면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킴, 부탁해.”
록튼의 말에 김민이 모자를 눌러썼다.
“이번 회도 무실점으로 막아 주지.”
5회 초 B팀의 공격은 6, 7, 8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
김민은 집중력만 유지하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공격 시작에 앞서 선두 타자가 교체되었다.
‘여기서 대타라고? 등번호는…… 닐슨인가?’
닐슨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타자로 지난해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경기가 더 많았다.
‘메이저리거인가? 상대가 닐슨이라면 쉽게 볼 수는 없겠지.’
닐슨 같은 유형은 시즌 초반 강한 경우가 많았다.
김민은 그의 컨디션을 고려해 구종을 선택했다.
‘안전하게 가자.’
슉!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스를 노렸다.
닐슨은 그 공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저 코스라면 걸치거나 나가겠군.’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은 존에서 하나 정도 빠져 있었다.
주심의 손 역시 올라가지 않았다.
“초구가 볼이 되었군.”
불펜 코치가 말을 받았다.
“지난 이닝하고 시작이 비슷하군요. 바깥쪽 패스트볼.”
“하지만 느낌이 좀 달라.”
이번 회에는 이반 감독의 감이 맞아떨어졌다.
닐슨은 김민이 던진 유인구를 치지 않고 끈질기게 늘어졌다.
카운트는 어느새 3-1로 바뀌었다.
B팀 선수들은 닐슨과 김민의 대결에 집중했다.
“투수에게 불리해졌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 스트라이크 존으로 패스트볼을 던질 수밖에 없을 거야.”
“내가 닐슨이라면 다음 공을 노리겠어.”
다음 공은 무조건 스트라이크.
그때였다.
낮은 음성이 선수들 사이를 갈랐다.
“난 기다릴 거야.”
기다린다는 말을 내뱉은 사내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주전 포수 티노였다.
그는 오늘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티노?”
선수들이 고개를 돌리자 티노가 말했다.
“오늘 녀석의 볼 배합은 유인구가 대부분이야. 가끔 허를 찌르는 스트라이크를 던지긴 해도 기본은 존에서 하나쯤 빠지는 유인구. 3-1이라고 해도 1루가 비어 있으니, 녀석은 스플리터를 던질 가능성이 커.”
닐슨도 같은 생각이었다.
‘녀석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가지고 타자를 유혹한다. 말려들면 곤란해.’
잠시 뒤, 4구가 날아왔다.
슉!
닐슨은 기다렸고, 공은 미트를 때렸다.
팡!
“스트라이크!”
안쪽 코너를 찌르는 스트라이크.
티노는 그 공을 보곤 혀를 찼다.
“저 녀석…… 강심장이군.”
카운트는 이제 3-2 풀 카운트.
타자와 투수 어느 쪽도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티노, 닐슨이 1루에 나갈 수 있을까?”
티노가 대답했다.
“닐슨이 나가지 못하면 곤란해.”
다음 타자는 타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이 있는 데릭.
여기서 닐슨이 아웃된다면 B팀의 공격은 더욱 어려워졌다.
“다들 정신 차려. 오늘 경기가 끝나면 몇 명은 짐을 싸야 해.”
티노의 한마디에 B팀 타자들이 움찔했다.
“아, 알고 있어.”
3번째 연습 경기.
오늘 경기가 끝나면 첫 번째 캠프 탈락자가 나왔다.
티노와 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닐슨과 김민의 대결이 끝났다.
“볼넷이야.”
“닐슨이 걸어 나갔어.”
“선두 타자 출루는 처음인가?”
“아마도.”
김민은 승부구로 바깥쪽 스플리터를 던졌고, 닐슨은 끝까지 참아냈다.
‘닐슨, 확실히 시즌 초에는 감이 좋군.’
김민은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타자 데릭만 잡아낸다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데릭 다음은 하위 타선에서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8, 9번. 얕보면 안 되겠지만, 중심 타선보다 무게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데릭이 타석에 들어서려는 순간 티노가 수석 코치이자 B팀의 감독 바이슨에게 다가갔다.
“바이슨, 대타로 나가고 싶습니다.”
바이슨은 티노의 요구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가 대타로? 이유가 뭔가?”
“저 친구의 공을 한번 쳐 보고 싶습니다.”
티노는 단순히 김민의 공을 쳐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김민이 주자를 1루에 두었을 때 어떤 공을 던지는지 타석에서 보고 싶었다.
‘킴, 네가 진짜라면 이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 낼 수 있을 거야.’
바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곤 티노를 대타로 기용했다.
“뭐, 킴에게도 나쁜 경험은 아니겠지. 블렛소, 대타일세.”
블렛소가 바이슨 대신 그라운드로 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타! 티노!”
A팀 벤치는 B팀의 강공에 술렁거렸다.
“대타야!”
“그것도 티노군.”
“B팀은 오늘도 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바이슨 코치는 이 경기를 연습 경기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이반 감독은 바이슨의 잇단 대타 기용에 미소를 지었다.
“바이슨, 저 친구 승부욕이 있군.”
“바이슨은 5회가 승부처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 선두 타자 출루. 승부를 걸어 볼 기회긴 하지. 하지만 티노는 찬스에 강한 타자가 아니야.”
김민은 대타로 메이저리거가 나서는 것을 보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흠…… 쉽게 가긴 힘들겠어.”
대타로 나온다는 것은 어느 정도 몸이 올라와 있다는 뜻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독이 오른 트리플A 타자보다는 몸이 덜 풀린 메이저리거가 더 나아.’
티노는 지난 시즌 0.261의 타율에 103개의 안타와 10개의 홈런을 때린 포수였다.
클래식 스탯만 본다면 크게 떨어지는 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이버 스탯으로 티노를 평가하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의 WAR은 0.4로 평균 이하라 할 수 있었다.
티노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평균 이하의 타자였지만 마이너리그로 내려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앞서 김민이 상대한 트리플A 타자들보다 뛰어난 마이너리그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티노는 어설픈 공을 쉽게 안타로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 싱글A의 풋내기. 어디 실력을 보자고.’
김민은 타석에 들어선 티노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가운데 섰어. 바깥쪽 공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뜻이군.’
그는 오른손 검지를 어깨에 가져갔다.
- 안쪽 패스트볼.
안쪽 패스트볼은 오늘 두 번째로 나온 사인이었다.
록튼은 김민의 사인에 긴장했다.
‘킴이 타자를 의식하고 사인을 바꿨어. 설마 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슉!
초구가 타자를 향해 날아갔다.
티노는 처음부터 초구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패스트볼인가?’
파앙!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판정과 함께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94마일(151km), 전력투구입니다.”
클라인은 이번 대결에 흥미가 일었다.
“어쩌면 이번 타석에서 킴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티노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봤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타자에 따라 볼 배합을 바꾼다는 건가? 뭐 나쁠 건 없지. 하지만 제구력이 따라줄지 모르겠군.’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찌르는 로케이션.
이것이 가능한 투수는 마이너리그에 많지 않았다.
슉!
2구가 포수 미트를 향했다.
‘바깥쪽!’
티노는 빠르게 스윙을 가져갔다.
메이저리그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그의 배트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탁!
배트 끝에 걸린 공이 1루 더그아웃 쪽으로 날아갔다.
“파울!”
1루심의 판정에 티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커터라고?’
김민의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존에서 살짝 벗어나는 컷패스트볼이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의 투구를 보곤 불펜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공, 어떻게 생각하나?”
“슬라이더나 커터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좋은 공이었어. 티노가 노리고도 칠 수 없는…….”
김민은 1루 주자를 한 번 견제하곤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높게 날아간 공이 마치 자이로드롭을 타는 것처럼 타자 앞에서 떨어졌다.
티노는 이 공에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이 들어왔다.’
위에서 떨어진 커브는 정확히 존을 통과했다.
브라이언은 김민의 커브가 아름다운 각도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킴이 드디어 커브를 던졌군요.”
“자네 리포트에 따르면 6가지 구종을 던진다고 적혀 있더군.”
“포심 패스트볼, 스플리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그리고 커터를 던집니다.”
“여섯 가지 중 세 가지만 제대로 던져도 좋은 투수인데…… 정말로 여섯 가지를 다 제대로 던질 수 있는 건가?”
브라이언은 스카우트 리포트에 각 구종마다 점수를 주었다.
포심 패스트볼 45점.
스플리터 60점.
슬라이더 40점.
체인지업 35점.
커브 35점.
커터 40점.
만점은 80점으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제외하곤 메이저리그 평균 이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 던진 커브를 보곤 생각이 달라졌다.
“제가 킴의 구종들을 너무 저평가했습니다. 킴은 각 구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티노는 룩킹 삼진을 당한 뒤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록튼, 이제는 직접 볼 배합할 때도 되지 않았나?”
록튼에게 티노는 메이저리그 콜업을 막고 있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
“킴과 같은 투수라면 제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티노는 쓴웃음을 짓곤 배터박스에 물러나왔다.
‘저런 볼 배합이라면 확실히 포수의 리드가 필요 없겠지.’
김민은 다음 타자를 상대로도 전혀 다른 볼 배합을 보여 주었다.
여섯 가지 구종을 안과 밖으로 던지자 타자들은 타이밍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연속 삼진.
B팀 벤치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플리터였어!”
“투 낫싱에 바로 승부군.”
“저 녀석 우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김민은 마지막 타자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곤 이닝을 마쳤다.
5이닝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 5K.
완벽에 가까운 투구내용.
구단주 빈스는 오랜만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 정체되어 있던 시청률도 바뀌게 될 거야.”
홀먼도 김민의 눈부신 투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처럼만 던지면 메이저리그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김민이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블렛소가 다가와 말했다.
“킴, 오늘 투구는 여기까지일세.”
연습 경기인 만큼 투수들은 많은 이닝을 소화하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돌아서는 김민에게 블렛소가 한마디를 던졌다.
“킴, 좋은 투구였네.”
그의 한마디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민은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블렛소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번 시즌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저 친구를 보게 될 것 같군.’
트로피카나 필드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홈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