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34화 (34/296)

34화 스프링 캠프 03

초구.

투수가 타자에게 첫 번째로 던지는 공.

초구는 타자와 투수 그리고 심판에게 각각 의미가 달랐다.

그러나 ‘셋 중 누구에게 가장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답은 당연히 투수였다.

선발 투수는 보통 한 경기에 100개 전후의 공을 던진다.

그 100개의 공 중 가장 중요한 공이 바로 1회에 던지는 초구였다.

초구로 던진 공의 제구가 어긋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경기가 꼬이고, 초구 제구가 잘 되면 기분 좋게 다음 공을 던질 수 있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

타석에 선 타자가 투수를 노려보았다.

‘어떤 공을 던질 거냐? 설마 초구부터 유인구를 던지진 않겠지?’

김민은 초구로 바깥쪽 패스트볼을 택했다.

바깥쪽 패스트볼은 그가 가장 많이 던지는 코스와 구종.

한마디로 가장 자신 있게 제구할 수 있는 공이었다.

그러나 김민은 공이 손끝을 떠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슉!

공이 바람을 가르며 포수 미트를 향했다.

타자는 첫 기회이자 첫 사냥감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예상대로 패스트볼이군.’

배트가 움직였고, 잠시 뒤, 배트와 공이 충돌했다.

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백네트 뒤로 날아갔다.

“파울!”

타자는 뒤로 날아간 파울 타구를 보곤 미간을 좁혔다.

‘스윙이 늦었나? 그런 것 같진 않았는데.’

김민은 전광판의 카운트를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어.’

첫 번째 투구 이후 그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의견을 내놓았다.

“동양인 투수군.”

구단주의 한마디에 홀먼 단장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킴은 지난 시즌 트레이드로 합류한 유망주입니다. 저 친구가 잘 커 준다면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빈스는 무엇보다 돈을 좋아하는 사내였다. 그는 돈이 되는 선수가 곧 능력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흠, 저런 선수가 우리 팀에 있었나?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니, 메이저리그에 어서 올라왔으면 좋겠군.”

홀먼은 구단주의 후한 평가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있다면 구단 매출이 3%는 늘어날 겁니다.”

빈스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3%로 되겠나? 5% 아니, 10%는 늘려야지. 이왕이면 외야 광고판도 늘었으면 좋겠군.”

빈스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지불할 광고 수익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수석코치 바이슨은 B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투수 코치 블렛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직 전력투구는 아니군요.”

“90마일 초반이라.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블렛소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군.”

“며칠 전 불펜에서 직접 킴의 패스트볼을 확인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좋았습니다.”

바이슨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 관심이 없는 척하더니, 불펜 투구까지 확인했군.”

“선발 예정인 투수니까요. 투수 코치가 투수의 투구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민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슉!

이번 공도 바깥쪽 패스트볼.

1번 타자 해먼드는 같은 코스에 같은 공이 날아오자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날 얕보는 것도 아니고, 뭐 이런 투구가 다 있어.’

배트가 무서운 속도로 공을 향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은 이번에도 파울이었다.

“공이 1루 쪽에 떨어졌군.”

바이슨은 아직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블렛소는 두 번째 공이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킴이 구속을 조절했군요.”

“음?”

“같은 코스의 두 번째 공이 1루 관중석으로 날아갔습니다. 해먼드의 빠른 스윙을 생각하면 공의 구속이 달랐다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바이슨이 김민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빠른 공, 더 빠른 공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던지기에는 구속이 모자랐을 텐데…….”

“그래서 초구에 전력을 다한 게 아닐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초구를 90마일(145km) 또는 91마일(146km) 정도로 던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은 아마 94마일(151km)쯤 될 겁니다.”

바이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초구에 그런 위험한 공을 던졌다고? 믿을 수가 없군.”

김민이 던진 두 개의 공은 같은 코스에 같은 구종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공은 블렛소의 말대로 구속이 달랐다.

록튼은 연속으로 파울이 나온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고 생각했다.

‘코스 자체는 같지만 제구가 미묘하게 달랐어. 초구는 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이었고, 두 번째 공은 존에 살짝 걸치는 공이었어.’

한마디로 초구는 치기 좋은 구속이었지만 볼이었고, 두 번째 공은 타이밍을 맞추기 힘든 대신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이였다는 뜻이었다.

‘대단한 볼 배합과 제구력이야. 설리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그는 설리반이 김민보다 나은 것은 패스트볼의 구속뿐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공.

김민은 이 공을 승부구로 정했다.

‘해먼드, 이걸 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을 거야.’

슉!

손끝을 떠난 공이 맹렬히 회전했다.

해먼드는 바깥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곤 혀를 찼다.

‘파울 2개로 얕보인 건가? 트리플A 타자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3개 연속 패스트볼이냐?’

그는 싱글A 투수에게 얕보였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휙!

배트가 크게 헛도는 사이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해먼드에게는 최악의 결과였다.

B팀 동료들은 해먼드의 삼진에 어깨를 으쓱했다.

“해먼드, 하나 참지 그랬어.”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이었잖아. 거기서 스트라이크를 던질 리가 없지.”

“이건 해먼드가 성급했어.”

“맞아, 어제 너무 잘 맞아서 욕심을 낸 거야.”

김민이 세 번째로 선택한 공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해먼드는 뒤늦게 김민이 던진 공이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슬라이더라는 사실을 깨닫곤 강하게 머리를 두드렸다.

“바보 같이 속았어! 패스트볼이 아니라 슬라이더였다고!”

대기 타석에 있던 2번 타자 구아가 해먼드를 위로했다.

“해먼드, 자책할 필요 없어. 저 녀석이 슬라이더를 던지는 건 나도 몰랐으니까. 나라도 속았을 거야.”

B팀 타자들은 김민의 주 무기를 스플리터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민이 첫 타자에게 승부구로 던진 공은 크게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였다.

이 같은 볼 배합은 록튼에게도 의외였다.

‘킴은 며칠 동안 불펜에서 스플리터와 그 못지않은 커터를 던졌어. 당연히 그 둘 중 하나가 승부구로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승부구로 던진 건 슬라이더였어.’

순간 록튼은 김민이 선발을 예상하고 불펜 투구의 구종을 조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펜 투구에서 많이 보여 준 구종은 다른 선수들을 속이기 위한 사보타주였나?’

그러나 이 생각은 너무 멀리 간 것이었다.

김민은 이제 막 스프링 캠프에 합류한 마이너리그였다.

선발 등판을 염두에 두고 불펜 투구의 구종을 정할 리가 없었다.

김민이 슬라이더를 승부구로 택한 것은 해먼드의 컨디션이 정면 승부로 이겨내기에는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두 경기 동안 보여 준 B팀의 컨디션은 상당하다. 그걸 무시하고 정면 승부를 가져가면 설리반의 실책을 재현할 뿐이야.’

트리플A 타자들이 중심이 된 B팀에게 싱글A에서 올라온 김민은 풋내 나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구아, 제대로 보고 치라고.”

“네 선구안이면 충분히 안타를 뽑아낼 수 있을 거야.”

B팀 벤치에서 동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구아는 해먼드가 장타를 노리는 스윙으로 일관해 삼구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90마일 초반을 던지는 투수에게 삼구삼진은 오버야.’

그는 신중하게 기다리면 김민의 공을 충분히 쳐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팡!

초구가 미트에 들어왔으나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구아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는 볼이군.’

김민은 초구가 볼이 되었지만 위축되지 않았다.

‘구아가 초구를 지켜본 것은 해먼드의 삼구삼진 덕분이겠지.’

그는 두 번째 공도 같은 코스에 던졌다.

이번 공도 바깥쪽 패스트볼.

구아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뻗었다.

탁!

1루 선상으로 날아가는 타구.

구아는 발을 빨리하면서 타구의 방향을 살폈다.

팍!

공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튀어 오른 곳은 1루 라인 바깥쪽이었다.

1루심이 양손을 길게 펴며 목소리를 높였다.

“파울!”

김민은 페어가 될 뻔한 타구를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페어를 각오하고 같은 코스에 패스트볼을 던진 것이었다.

록튼은 김민의 두 번째 공이 상당히 위험했다고 판단했다.

‘킴은 대체 왜 같은 투구를 반복한 걸까?’

그가 알고 있는 김민의 구종은 여섯 가지였다.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는 김민이 같은 공을 반복해서 같은 코스에 던질 이유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민은 그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로 톰 글래빈처럼 되려고 하는 건가?’

카운트 1-1.

김민은 세 번째 공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바깥쪽.

록튼은 김민의 바깥쪽 고집에 보통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구종은 다르지만 또 바깥쪽이군.’

슉!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간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구아는 떨어지는 공을 보고 아차 싶었다.

‘스플리터!’

탁!

배트에 맞은 공이 유격수 정면을 향했다.

“유격수!”

포수의 콜에 유격수가 글러브를 내밀며 대답했다.

“맡겨 줘!”

유격수는 바운드를 정확히 맞춰 포구한 뒤 가볍게 1루에 송구했다.

구아는 빠른 발을 최대한 살려 보려고 했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웃!”

바이슨은 기민이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베넨의 눈이 정확하군. 좋은 투수야.”

블렛소는 아직 좋은 투수라는 평가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트리플A 테이블 세터를 잡아냈다고 좋은 투수라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블렛소, 이 친구야. 왜 이렇게 평가가 박하나?”

“박한 게 아니라 선수를 정확히 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바이슨이 입술 끝을 올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바깥쪽을 상당히 고집하는군. 저 친구 안쪽 제구가 나쁜 것 아니야?”

안쪽 제구가 나쁜 투수는 바깥쪽 제구가 좋다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데이빗이 아마 바이슨의 물음에 답을 줄 겁니다.”

데비잇은 팔이 길고 파워가 있었기 때문에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만으로는 상대가 어려운 타자였다.

김민은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은 뒤 유격수를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나이스 캐칭!”

유격수 레다가 1루수로부터 공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는 어려울 게 없지.”

김민은 투 아웃을 잡았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지난 시즌 트리플A에서 뛰었지만, 메이저리그에 두 번이나 콜업된 경험이 있는 선수다. 게다가 이틀간 맹활약으로 상당히 감이 올라가 있는 상태. 바깥쪽으로는 어려울 거야.’

탬파베이 타선이 메이저리그 최약체이긴 하나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정도면 쉽게 볼 수가 없었다.

록튼은 김민의 초구 사인에 고개를 갸웃했다.

‘낮은 스플리터라고?’

바깥쪽도 아니고 가운데서 떨어지는 스플리터.

김민답지 않은 초구 선택이었다.

하지만 록튼은 그 사인을 받아들였다.

‘무조건 킴을 믿는다.’

그의 스프링 캠프 생존은 김민의 투구에 달려 있었다.

김민이 실점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록튼은 김민의 파트너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김민이 설리반처럼 무너진다면 록튼은 그 책임을 지고 마이너리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록튼은 자신의 운명이 김민의 손끝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슉!

패스트볼이 한가운데를 향해 날아왔다.

‘바깥쪽이 아니라 한가운데 럭키볼이라고? 이건 실투인가? 그렇다면 쌩큐다!’

데이빗은 의심 없이 마음껏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고 배트는 공의 윗부분을 때리고 말았다.

팍!

크게 바운드를 일으킨 공이 2루수를 향해 날아갔다.

록튼이 재빨리 일어나 콜을 했다.

“2루수!”

2루수는 빠르게 전진하면서 바운드를 맞췄다. 그리곤 튀어 오르는 공을 잡아 1루에 빠르게 송구했다.

팡!

1루수 미트에 공이 들어간 순간 1루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아웃!”

수석코치 바이슨은 2루수의 수비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바운드를 맞추기 힘든 타구였는데 잘 처리했군. 지난해보다 확실히 수비가 좋아졌어.”

블렛소는 바이슨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김민의 안쪽 제구능력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데이빗이 너무 빨리 끝나 버렸군요. 공을 조금 더 봤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삼자범퇴로 이닝 종료.

록튼이 마운드에서 내려온 김민을 향해 물었다.

“킴, 마지막 공 말이야. 왜 그런 볼 배합을 한 거야? 데이빗이라면 안쪽 공이 더 좋지 않았어?”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대답했다.

“타자가 노련하지 않다면 투구 수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투구 수.

이건 록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킴은 1회를 마치는데 공을 7개밖에 던지지 않았어. 설마 연습 경기에서 완봉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연습 경기는 이기는 것이 아닌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한 경기였다.

당연히 기록보다는 플레이와 퍼포먼스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김민은 투수구까지 신경을 쓰는 꼼꼼한 투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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