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33화 (33/296)

33화 스프링 캠프 02

첫 번째 연습 게임.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이 경기는 몸을 푸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는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이날 경기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첫 번째 무대였다.

“첫 경기에 실수하면 그대로 아웃이야.”

“나도 알고 있다고.”

트리플A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노장들도 오늘만큼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플레이볼!”

주심의 사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첫 투구군요.”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는 공인 심판도 함께하고 있었다.

오늘 마스크를 쓴 주심 역시 메이저리그 공인 심판이었다.

“설리반이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됩니다.”

홀먼 단장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것은 구단주 빈스였다.

“계약금을 200만 달러(24억8천만 원)나 준 선수가 위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곤란하지.”

빈스는 구단에서 지출한 돈을 마치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처럼 생각하곤 했다.

“설리반은 그 이상 값을 해 줄 겁니다.”

홀먼은 구단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부진한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잘리지 않는 것은 구단주의 비위를 잘 맞추기 때문이었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에 홀먼이 미소를 지었다.

“좋은 패스트볼입니다.”

설리반은 첫 경기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 줄 생각이었다.

‘마이너 공놀이는 지쳤어.’

그는 스프링 캠프에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를 확정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란 벽은 생각처럼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딱!

두 번째 던진 공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크다!”

코칭 스탭의 목소리와 함께 홀먼이 미간을 좁혔다.

‘하필 1번 타자에게 장타를…….’

오늘 1번 타자로 나온 선수는 트리플A 출신 해먼드였다.

야구 경력만 놓고 보면 해먼드가 설리반을 압도했다.

그러나 해먼트는 나이가 많아 프런트의 눈 밖에 난 선수였다.

툭.

펜스에 맞은 공이 투 바운드로 튕겨 나왔다.

“수비가 어설퍼! 그대로 달려!”

해먼드는 중견수가 공을 더듬는 사이 특유의 빠른 발을 이용해 3루에 안착했다.

펜스 직격 3루타.

“나이스 해먼드!”

“멋진 러닝이야!”

B팀 동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구단주인 빈스는 설리반이 첫 타자에게 3루타를 맞자 얼굴을 찌푸렸다.

“돈값을 못 하는 친구군.”

홀먼은 구단주의 분노가 일까 두려워 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수비가 문제입니다. 제대로 수비했다면 3루에 들어가지 못했을 겁니다.”

“2루든 3루든 어쨌든 장타 아닌가?”

“…….”

트리플A 타자들이 중심이 된 B팀의 타격은 설리반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설리반은 2번 타자를 내야수 플라이로 잡아냈지만, 3번 타자 데이빗에게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적시타를 맞고 말았다.

“나이스 배팅!”

“잘했어! 데이빗!”

트리플A 출신 선수들이 기세를 높이자 홀먼 단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저 녀석들…… 첫 경기부터 일을 망치는군.’

이후 설리반은 4번 타자 클리어를 볼넷, 5번 도노반을 사구로 출루시켰다.

원 아웃 주자 1, 2루.

상황은 좋지 않았다.

“타임!”

타임을 걸고 마운드에 올라간 포수는 록튼이었다.

“진정해. 아직 1점밖에 주지 않았어.”

그는 투수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나 설리반은 록튼의 한마디에 짜증을 냈다.

“네 리드가 문제야.”

록튼은 순간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뭐 이런 자식이 있어.’

감독은 물론 구단주까지 지켜보고 있는 상황.

록튼은 애써 화를 참았다.

“알겠어. 그럼 리드를 바꾸지.”

설리반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알았으니 빨리 돌아가도록 해.”

그는 마음먹고 던진 공이 맞아 나가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내 공을 그렇게 쉽게 쳐 내다니, 우연일 거야.’

그러나 야구에 우연은 많지 않았다.

트리플A 타자들은 장타를 노리기보다는 정확한 스윙으로 설리반의 패스트볼을 공략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공과 패턴을 완벽히 파악했다는 뜻이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1, 2루 사이를 갈랐다.

“달려!”

3루 코치의 사인에 2루 주자가 홈으로 질주했다.

“세이프!”

우익수가 홈을 향해 송구했지만, 결과는 세이프.

“나이스! 클리어!”

설리반의 실점은 순식간에 2점으로 늘어났다.

홀먼 단장은 믿었던 설리반의 부진에 식은땀을 흘렸다.

“첫 경기라 긴장한 모양입니다.”

빈스는 유망주의 부진에 혀를 찼다.

“연습 경기에 긴장하는 새 가슴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더블A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설리반의 부진.

메이저리그 코칭 스탭은 그의 부진을 지나친 자신감에서 찾았다.

“구위는 나쁘지 않은데 공이 가운데로 몰리는군요.”

“조금 더 냉정하게 자신을 컨트롤하지 않으면 곤란해.”

트리플A 타자들은 더블A 타자들보다 잠재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당장 실력은 더 뛰어났다.

게다가 오늘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경험까지 풍부해 설리반으로서는 벅찬 상대였다.

“존, 자네가 설리반을 골탕 먹인 건가?”

이반 감독의 물음에 타격 코치 존이 고개를 내저었다.

“골탕이라니요. 전 단장님의 지시에 따른 것뿐입니다.”

“홀먼이? 홀먼이 뭐라고 지시를 했는데?”

“B팀 로스터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빼 달라고 했습니다.”

이반 감독은 존의 대답에 혀를 찼다.

“이건 홀먼 단장이 실수를 했군. 연습 경기에서 가장 무서운 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아니라 트리플A 선수들이라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연습 경기는 말 그대로 연습 경기일 뿐이었다.

그들은 마이너리그 투수에게 삼진을 당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마이너리거들은 달랐다. 그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플레이했다.

탁!

배트 중심에 맞은 타구가 중견수 정면으로 향했다.

“홈으로!”

공을 잡은 중견수가 다시 한번 홈으로 송구했지만, 3루 주자의 발이 더 빨랐다.

“세이프!”

이것으로 설리반의 실점은 3점으로 늘어났다.

“불펜을 가동하게.”

이반 감독의 지시에 불펜 코치가 투수 한 명을 불렀다.

“제임스.”

제임스는 지난 시즌 더블A로 승격한 유망주였다.

그는 김민과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는데 더블A에서도 좋은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홀먼 단장은 불펜에 제임스가 올라오자 입이 바짝 말랐다.

‘설마 1회 강판 되는 건 아니겠지.’

구단주까지 보고 있는 상황에서 1회 강판이라는 것은 그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 이상이었다.

‘설리반, 어떻게든 해 봐.’

홀먼 단장이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순간 다음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것을 본 빈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타자가 못한 건지 투수가 잘한 건지 모르겠군.”

이날 경기는 B팀 선발 투수로 등판한 클라우드가 더 돋보였다.

그는 3이닝 동안 안타 2개만을 내주며 무실점으로 A팀 타선을 봉쇄했다.

“클라우드는 좋군요.”

홀먼 단장의 말에 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시즌 확장 로스터 때 올라온 그 친구가 맞는 건가?”

“그렇습니다. 클라우드는 지난가을에 합류해서 괜찮은 성적을 냈습니다.”

클라우드의 선전으로 홀먼 단장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설리반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그는 2회와 3회를 무실점으로 넘겼지만, 매회 주자를 내보내면서 위태위태한 투구를 이어갔다.

이닝이 끝나자 그레고리가 김민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킴, 오늘 왕자님이 왜 흔들린다고 생각해?”

김민은 1회부터 설리반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답을 내놓았다.

“상대를 얕봤기 때문이야.”

마운드에 선 투수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했다. 하나 자신감이 지나쳐 상대를 얕보게 되면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었다.

“왕자님이 트리플A 타자들을 얕잡아 봤다고?”

“설리반의 시선은 메이저리그에 꽂혀 있어. 덕분에 트리플A 타자들이 보이지 않는 거야.”

“킴은 마치 왕자님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예상일뿐이야.”

베런은 말없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김민의 말에 동의했다.

‘킴의 말대로 설리반은 트리플A 타자들을 보지 않고 있다. 트리플A 타자들은 메이저리그 타자들보다 한 단계 아래, 하나 더블A에 비하면 기술적으로 완성된 경우가 많다. 그들을 상대로 어설픈 정면 승부는 위험하다.’

이날 경기는 B팀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다음 날 경기도 승리는 B팀.

A팀은 메이저리그와 더블A 출신으로 구성되었는데 몸이 덜 풀렸는지 플레이에 실수가 잦았다.

B팀의 기세는 연승으로 한껏 올라갔다.

“올해는 다들 기세가 좋아.”

“이런 기세라면 적어도 3, 4명은 로스터를 뚫을 수 있을 거야.”

“내일 선발은 누구더라?”

“킴이라고 하던데.”

“아, 그 동양인 투수.”

트리플A 타자들은 김민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스프링 캠프는 운이 좋군. 쉬운 선발이 계속해서 등판하고 있어.”

“뭐, 연습 경기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시작은 좋아.”

“그럼 내일 선취점 내기할까?”

“그건 너무 클린업에 유리하잖아. 첫 안타로 하지.”

“그쪽은 테이블에 유리하잖아!”

오늘 경기가 끝나면 첫 번째 탈락자가 캠프를 떠나게 될 것이다.

B팀 선수들은 적어도 자신들 팀에서는 탈락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민은 저녁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기록지를 살폈다.

‘클린업의 컨디션이 좋아. 스프링 캠프에서 맞춰 컨디션을 끌어 올린 게 틀림없어.’

트리플A 선수들이 주축이 된 B팀 클린업은 안쪽과 바깥쪽을 가리지 않고 쳐 내고 있었다.

‘이런 타선이면 상대하기 힘든데…….’

낮게 한숨을 내쉰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툭. 툭.

“열려 있어.”

김민의 한마디에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킴, 있어?”

“록튼!”

록튼은 지난 첫 경기 마스크를 쓴 뒤 두 번째 경기에는 벤치를 지켰다.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

록튼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킴, 내일 선발 포수로 나를 지명해 줬다면서?”

“애리조나에서 배터리를 이뤘으니까.”

“정말 고마워.”

록튼의 말은 진심이었다.

“설마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 오늘 찾아온 건 내일 경기 때문이야.”

록튼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의 수첩에는 B팀 타자들의 버릇이나 습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늘 벤치에서 관찰한 거야.”

록튼은 필사적이었다.

‘선발 포수로 나와 첫 번째 연습 경기를 망쳤어. 내일 경기도 망친다면 몽고메리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수밖에 없어.’

앨라배마주 주도 몽고메리에는 탬파베이 산하 마이너리그팀 비스킷스가 있었다.

록튼은 내일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민은 수첩에서 록튼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잘 정리했군.”

“내일 투구에 도움이 되겠어?”

“물론이지.”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록튼에게 말했다.

“록튼, 걱정할 필요 없어. 내일은 이길 테니까.”

록튼은 김민의 미소에도 얼굴을 풀지 않았다.

“킴, 지나친 자신감은 곤란해.”

“알고 있어. 설리반이 그것 때문에 무너졌으니까.”

김민은 B팀 타자들의 기세가 올랐다는 것과 그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록튼에게 물었다.

“내일 볼 배합, 내가 해도 괜찮지?”

록튼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킴이 해야지. 난 공을 받기만 할 거야.”

김민은 록튼이 자신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리조나 때와 달리 여유로움이 없어. 이러면 곤란한데…….’

그가 록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록튼. 나하고 내기 하나 하지.”

“내기?”

“내일 경기에서 내가 실점하면 저녁을 크게 쏘겠어. 대신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 록튼이 저녁을 쏘라고.”

“저녁 내기라고?”

“스테이크로 말이야.”

록튼이 김민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킴, 이건 단순한 연습 경기가 아니야! 캠프 생존이 달린 경기라고! 상대를 무실점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김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록튼 뭘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상대는 트리플A 타자들이라고. 그들을 얕보진 않겠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어.”

그는 말을 마친 뒤 자신이 정리한 기록지를 록튼에게 내밀었다.

김민의 기록지에는 록튼의 수첩보다 더 많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그 메모들은 상대 타자들과 투수의 구종에 관한 것들이었다.

‘킴은 나보다 더 철저히 내일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어…….’

록튼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난 킴이 설리반처럼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김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과보다는 긴장을 풀어 줬으면 좋겠어. 내일은 바운드 볼을 많이 던질 테니까.”

록튼이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얼마든지 던지라고, 다 잡아줄 테니까.”

“이제야 좀 얼굴이 나아졌군.”

* * *

다음 날, 세 번째 연습 경기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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