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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32화 (32/296)

32화 스프링 캠프 01

따사로운 햇살과 잘 관리 된 잔디 그리고 최신의 훈련 장비와 스탭들.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 분위기는 더없이 밝았다.

김민은 이곳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만났다.

“킴, 역시 올 줄 알았어.”

스프링 캠프 인원은 약 60명.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마이너리그 초청 선수와 해외 초청 선수를 합한 숫자였다.

“록튼, 잘해 보자고.”

애리조나 가을 리그를 함께 했던 7명 모두가 스프링 캠프 명단에 올랐다.

첫날은 코칭 스탭의 인사와 소개 그리고 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연습 경기 3경기 후에 바로 시범경기인가?”

“예정대로라면 그렇겠지.”

“진짜는 시범경기부터야. 그 전에 떨어지면 애초에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이겠지.”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는 KBO와 달리 단체 훈련 기간이 짧았다.

김민은 첫 훈련을 함께 하는 동안 선수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표정이 가장 밝은 건 지난해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었던 선수들이야.’

그들은 자신들이 이번에도 25인 로스터에 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음으로 표정이 밝은 선수들은 지난 시즌 확장 로스터로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들이군.’

이들은 대체로 표정이 밝았으나 순간순간 날카로운 인상이 느껴졌다.

세 번째로 표정이 밝은 선수들은 올해 처음 스프링 캠프를 찾은 이들이었다.

‘제일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지난 시즌 확장 로스터에 들지 못한 40인 로스터 선수들.’

그들은 처음 스프링 캠프를 찾은 싱글A나 해외 초청 선수들보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는 밝은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가 배틀로얄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겠지.’

한 주가 지날 때마다 많으면 5명, 적으면 3명 정도가 스프링 캠프를 떠났다.

이와 같은 과정은 최후의 25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스프링 캠프에 처음 참가한 선수들도 이 과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캠프가 시작되기 전 20명의 메이저리그 로스터가 확정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남은 자리가 딱 5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40명이 남은 다섯 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 그게 바로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야.’

물론 김민도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하는 40인에 속했다.

“킴, A조.”

김민은 투수A조에 속했다.

그레고리가 베런에게 말을 던졌다.

“킴은 항상 A조군.”

“에이스의 A니까.”

“킴이 캠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베런도 확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

베런은 김민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로스터를 뚫는 것은 높은 평가만으로는 부족했다.

‘시범경기에서 확실한 성적을 내지 않으면 아마 무리겠지.’

더블A를 거치지 않은 루키가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는 일은 5%도 되지 않았다.

그는 김민이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가능성은 그보다도 더 낮다고 생각했다.

‘아마 1%쯤 될 거야.’

이윽고 다음 선수가 호명되었다.

“설리반, A조.”

설리반은 홀먼 단장이 주시하고 있는 유망주로 지난 시즌 더블A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탬파베이 데일리는 이변이 없는 한 그가 올스타 브레이크 안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왕자님의 등장이군.”

그레고리는 설리반을 비꼬았다.

“실력이 있으니, 주목을 받는 것뿐이야.”

베런은 그레고리와 달리 선수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조셉, B조.”

조 편성이 끝나자 수석 코치 바이슨이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조 편성으로 훈련을 끝내겠다. 이만 해산!”

해산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미소를 지었다.

“1시간 만에 끝이군.”

“뭐 스프링 캠프는 언제나 그렇잖아.”

“어디 가서 맥주라도 한잔하고 싶군.”

“어이. 어이. 여긴 스프링 캠프라고.”

메이저리거들과 달리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미련이 있는 사람처럼 그라운드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김민은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로 가는 문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켜보고 싶은 거야.’

그는 그라운드에 미련을 두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미련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 뿐이다.’

* * *

다음 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투수조는 러닝과 워밍업을 시작으로 단체 훈련에 들어갔다.

“연습 경기까지 제대로 몸을 만드는 게 좋을 거야. 연습 경기 결과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들이 나올 테니까.”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마이너리그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어.’

‘돌아갈 땐 가더라도 첫 번째는 사양이야.’

김민은 훈련에 앞서 스프링 캠프 목표를 세웠다.

‘더블A 기록이 없는 내가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를 뚫는 것은 힘들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메이저리그 코칭 스탭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정도. 그들이 내 이름과 등 번호를 기억하게 만들겠어.’

메이저리그 코칭 스탭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마이너리거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메이저리그 코칭 스탭은 25인 로스터에서 부상 선수가 발생할 경우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선수를 프런트에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즌에 적어도 7, 8명은 부상으로 로스터에서 빠졌다.

투수 쪽으로 한정해도 3, 4명.

김민은 그 빈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킴, 캐치볼이다.”

“오케이.”

김민과 짝이 된 선수는 트리플A 선발 투수인 알렌이었다.

알렌은 벌써 세 번째 스프링 캠프였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를 벼르고 있었다.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는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올해는 투수 쪽 자원이 좋군.”

“설리반과 안드레가 눈에 띄는 자원입니다.”

안드레는 지난해 1라운드 3위라는 높은 지명을 받은 선수로 대학을 마치고 프로에 입단한 투수였다.

그는 현재 상위 싱글A에 속했으나 1, 2년 안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예정이었다.

“킴은 어떤가?”

수석 코치의 물음에 투수 코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저 동양인 투수 말이야. 애리조나 리그 성적이 좋았어.”

“글쎄요. 던지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수석 코치 바이슨은 호탕한 성격과 달리 기록을 꼼꼼히 체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투수 코치 블렛소는 감과 자신의 눈을 믿는 스타일이었다.

“베넨이 기대를 걸어 봐도 좋다고 말하더군.”

“베넨이라면…….”

“수석 스카우트 말일세.”

“아, 그 노련해 보이는 친구 말이군요. 그 친구가 풋내기를 40인 로스터에 올린 겁니까? 믿기지 않는군요.”

블렛소의 시큰둥한 반응에 바이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킴이 마음에 들지 않나?”

“운영팀에서 아시아 마케팅으로 영입한 선수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렛소는 김민에게 어느 정도 거품이 껴 있다고 생각했다.

‘노모 이후로 아시아 투수들에게 거품이 너무 껴 있어. 이라부 히데키가 대표적이었지.’

이라부 히데키는 일본의 강속구 투수로 많은 기대를 받고 양키스에 입단했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팀을 떠나고 말았다.

지난 시즌은 몬트리올 엑스퍼스에서 뛰었는데 2승 5패에 평균자책점이 7점대였다.

투수 코치가 수석 코치에게 물었다.

“저 친구 실력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실력을?”

“연습 경기 선발, 어떻습니까?”

“나쁠 건 없겠지. 하지만 첫 경기는 안 돼.”

블렛소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바이슨, 정해 둔 선수라도 있는 겁니까?”

“감독님이 설리반을 보고 싶어 하신다고.”

“아, 첫 경기는 설리반이군요. 알겠습니다.”

훈련 3일째.

20명이 넘는 투수들이 일제히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부터 사흘간 불펜 투구에 들어가겠다.”

투수 코치의 한마디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불펜 투구는 선수들은 물론 코칭 스탭에게도 아주 중요한 훈련이었다.

코칭 스탭은 선수들이 불펜에서 공을 던지는 동안 몸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는지를 판단해 훈련 스케줄을 조정했다.

“시작하지.”

블렛소의 한마디에 투수들이 투구가 시작되었다.

팡! 팡!

미트에 꽂힌 공들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소리가 좋군요.”

불펜 코치의 말에 블렛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시즌은 괜찮을 거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지난 시즌 꼴찌를 기록했지만, 투수진은 나쁘지 않았다.

블렛소는 자신이 키워낸 투수진에 자부심이 있었다.

‘아메리칸 리그 동부만 아니었더라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거야.’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역은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포진해 그 어느 지역보다 공격력이 강했다.

김민은 4번 불펜에서 록튼과 짝을 이뤄 공을 던졌다.

팡! 팡!

록튼은 김민의 공을 받으면서 연신 나이스를 외쳤다.

“아주 좋아!”

그는 진심으로 김민의 공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프 시즌 동안 무슨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시즌보다 패스트볼이 훨씬 좋아졌어.’

김민의 투구가 끝나자 투수 코치 블렛소가 4번 불펜에 위치한 스탭에게 다가갔다.

“구속이 얼마나 나왔지?”

“킴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 말입니까?”

블렛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94마일(151km)까지 나왔습니다.”

“94마일? 벌써 몸을 다 만든 건가?”

“마이너리거들은 연습 경기부터 전력투구니까요.”

메이저리거들은 스프링 캠프에서 몸을 만들지만, 마이너리거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최고 구속이 94마일이라고 봐도 되겠군.”

“경기에 들어가면 1마일 정도는 더 나올 수도 있습니다.”

블렛소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렇진 않을 거야.”

그는 실제 경기에 들어가면 구속이 1, 2마일 덜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마운드에서 느끼는 압박감도 커지겠지.’

94마일(151km)이라면 나쁜 구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속에 강점이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 정도 구속을 가진 투수는 제구와 구위 그리고 구종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김민은 다음 날도 같은 4번 불펜에서 공을 뿌렸다.

이날 최고 구속은 93마일(150km)로 어제보다 1마일 더 낮았다.

블렛소는 김민의 투구가 끝난 뒤 어김없이 스탭에게 다가갔다.

“93마일입니다.”

“구속이 낮아졌군. 벌써 체력 저하가 온 건가?”

“그것보다는 던진 구종이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구종?”

스탭이 기록지를 보며 설명했다.

“어제는 포심 패스트볼이 절반이었지만, 오늘은 5개에 불과했습니다.”

“브레이킹볼을 더 많이 던졌단 말인가?”

“오늘은 커터를 많이 던졌습니다.”

“커터?”

블렛소에게 커터는 의외의 구종이었다.

노모 히데오 덕분에 그는 아시아 투수들이 포크볼 계열의 공을 주로 던진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패스트볼과 5마일(8km) 정도 차이가 나는데 무브먼트가 꽤 괜찮습니다.”

“흠, 커터가 좋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군.”

3일째 되는 날.

블렛소는 4번 불펜 뒤에서 직접 김민의 공을 관찰했다.

팡! 팡!

포수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김민은 포수 뒤에 투수 코치가 서 있는 것을 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 괜히 긴장되는군. 내가 뒤에 서 있을 때 선수들이 이런 느낌이었군.’

그는 울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곤 침착하게 투구를 이어갔다.

팡! 팡!

블렛소는 미트에 공이 들어올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패스트볼이 좋군. 살짝 떠오르는 느낌도 있고, 아마 평균보다 회전수가 많을 거야.’

그는 직접 김민의 공을 보고 나서야 그의 공을 인정했다.

20개의 불펜 투구가 끝나자 그가 직접 김민을 불렀다.

김민은 살짝 긴장한 채 그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밸런스가 좋군. 누구에게 배웠나?”

“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김민은 스스로를 코칭했지만, 마이너리그 코치였던 샘의 공으로 돌렸다.

“샘이? 의외로군.”

블렛소는 샘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란 표정이었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내일 불펜 투구는 쉬도록 하게.”

연습을 쉬란 말에 김민의 표정이 굳었다.

“네? 그게 무슨…….”

블렛소가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3번째 연습 경기에 선발로 나서게 될 거야. 앞으로 4일 뒤니까 제대로 준비하게.”

연습 경기 선발.

김민은 예상보다 일찍 온 기회에 살짝 놀랐다.

‘벌써 선발이라고?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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