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30화 (30/296)

30화 첫 번째 오프 시즌 02

레이너는 탬파베이 운영팀 부팀장으로 3년째 마이너리거에 대한 협상을 맡고 있었다.

그가 뚱뚱한 청년에게 되물었다.

“콜업 보너스로 20만 달러(2억5천만 원). 괜찮은 겁니까?”

콜업 보너스는 보통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과 비슷하거나 더 많았다.

그러나 엘린이라는 에이전트가 제시한 김민의 콜업 보너스는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 이하였다.

레이너는 풋내기 에이전트가 금액을 잘못 산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김민의 낮은 콜업 보너스는 구단주의 취향을 저격하는 것이었다.

엘린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대신 유니폼 판매 수익을 조정할까 합니다.”

“유니폼 판매 수익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이너는 엘린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다.

‘콜업 비용을 낮추고 유니폼 판매 수익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는 생각인 모양이군. 하지만 우리 팀은 가장 유니폼이 많이 팔리는 선수도 1만 장이 안 나간다고. 풋내기 에이전트가 팀을 착각한 모양이야. 우리 팀은 양키나 레드삭스가 아니란 말이지.’

그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굳은 표정을 지었다.

“힘들 텐데요? 뭐, 들어나 보도록 하죠.”

엘린이 요구 사항을 말했다.

“장당 10달러(12,400원)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가 아니라 균일가로 하자는 말씀입니까?”

“예.”

엘린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마이너리그 계약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반면 레이너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장당 10달러라면 5%인 지금 유니폼 수익의 거의 2배로군. 1만 장을 팔았을 때 수익은 10만 달러(1억2천4백만 원). 단순 계산만으로는 나쁘지 않은 장사군.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어.’

그는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것도 아닌 마이너리거가 유니폼 판매 수익을 논하는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된다고 해도 100장이면 많이 파는 거겠지. 마이너리거라면 마이너리거답게 식대나 장비에 관한 옵션을 거는 게 옳아.’

레이너가 구단측 조건을 엘린에게 제시했다.

“8달러로 하죠.”

엘린은 즉시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안 됩니다.”

“그럼 9달러.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레이너의 단호한 태도에 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조건은 저희 고객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제 협상력에 실망해 다른 에이전트를 찾을지도 모르죠.”

레이너는 엘린의 어두운 얼굴을 보곤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여기서 더 깎는 건 무리인 모양이군. 킴이 풋내기 에이전트를 해고하고 다른 에이전트를 고용하면 곤란하지. 유니폼 수익은 뜬구름 잡는 소리니, 이쯤에서 타협하도록 하자.’

그가 선심 쓰는 듯 말했다.

“좋습니다. 벌당 10달러로 하죠. 하지만 나머지 사항은 우리 쪽 요구를 따라야 합니다.”

엘린이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엘린은 모든 것이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설픈 에이전트를 연기했지만, 다음 계약 때는 다를 거야.’

그는 구단 사무실을 나온 뒤 주차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킴, 다 잘 되었습니다.”

그의 통화 상대는 김민이었다.

“10달러까지도?”

“예, 레이너가 순순히 들어 주던걸요.”

“순순히 들어줬다고? %가 아니면 힘들었을 텐데…… 엘, 수고했어.”

“아닙니다. 협상은 에이전트의 기본이죠.”

그는 전화를 끊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K 코퍼레이션의 고객은 김민 한 명만이 아니었다.

* * *

김민은 40인 로스터에 더블A 승격까지 결정되었지만, 스프링 캠프 때까지는 포트 샬로트에 머물게 되었다.

“킴, 우린 네가 안 돌아오는 줄 알았다.”

스미스가 미소를 짓자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윈터 미팅 때 트레이드되는 줄 알았나?”

“그게 아니라 바로 비스킷스로 날아가는 줄 알았지.”

김민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일 좋은 건 비스킷스를 건너뛰고 탬파로 날아가는 거야.”

트리플A도 아니고 더블A를 건너뛰고 메이저리그.

이것은 예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 애리조나는 어땠어?”

김민에게 질문을 던진 선수는 볼튼이었다.

“그저 그랬지.”

“그저 그렇다니, 야구 천재들이 모인 리그잖아. 소문에 따르면 올스타전도 나갔다면서?”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스타전에서 홈런 맞을 뻔했다고. 경기장을 넘어가는 대형 타구였는데 다행히 폴대를 휘어져 나갔지. 운이 아주 좋았어.”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김민은 3번 타자 알버트 프린스에게 초대형 타구를 허용했는데 폴대를 휘어져 나가 파울이 되었다.

그는 이 타구를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3할 30홈런 100타점을 밥 먹듯 넘긴 괴물을 상대로 파울 홈런이면 선방한 거야.’

알버트 프린스는 다음 시즌 내셔널 리그 신인왕을 시작으로 실버슬러거, 골드글러브, 홈런왕, 타점왕, 타격왕, 안타왕, 득점왕, 리그 MVP, 행크아론상, 로베르토 클레멘테상까지 수상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레전드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김민만이 알고 있는 미래였다.

‘가능하다면 프린스도 우리 코퍼레이션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아쉽군.’

미래의 레전드를 고객으로 삼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러나 프린스에게는 이미 노련한 에이전트가 붙어 있었다.

“볼튼은 어땠어?”

“나도 그저 그랬어. 킴이 없으니까 봐 주는 사람도 없고. 스미스하고 둘이 훈련은 조금 지겨웠지.”

“세 명이 되었으니, 조금 나아질 거야.”

김민은 도착 당일부터 훈련에 참가했다.

세 선수는 함께 일어나고 함께 먹었으며, 함께 훈련했다.

훈련장 관리인 토니는 세 선수 모두 크게 될 것 같다고 스탭들에게 말했다.

“그럼 세 명 모두 다음 시즌 크랩스를 떠나는 겁니까?”

“아마 그렇게 되겠지.”

“그럼 여기도 쓸쓸해지겠는데요?”

“지금 시기에 여기 선수들이 있는 게 더 이상한 거야.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숙소에서 숙식하다니, 쯧쯧…….”

토니가 버튼을 누르자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어냈다.

“킴! 같이 가자고.”

목소리를 높인 선수는 볼튼이었다.

그는 김민과 함께 매일 아침을 러닝으로 시작했다.

김민은 러닝이 투수 훈련의 기본이라 말했다.

“러닝은 투수에게 그 어떤 훈련보다 중요해. 러닝으로 하체와 기초 체력을 다져 두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공을 가졌다고 해도 오래 던질 수 없단 말이지.”

오프 시즌 동안 볼튼의 체력과 하체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그리고 부실했던 하체가 단단하게 고정되자 바뀐 투구폼으로도 97마일(156km)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팡!

“나이스 볼!”

스미스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볼튼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김민은 함께 훈련하는 동안 볼튼과 스미스를 K 코퍼레이션으로 끌어들였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시즌보다 나아졌어. 확언은 하지 못하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메이저리그에 얼굴을 비출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K코퍼레이션도 제대로 된 에이전트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메이저리그는 아직 그도 밟아 보지 못한 땅이었다.

하지만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김민은 메이저리그를 간접 체험했다.

‘야구 천재와 괴물이 넘쳐나는 메이저리그.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야 해.’

김민은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느꼈던 부족함을 오프 시즌 동안 채울 작정이었다.

“킴, 킴은 왜 투구 훈련을 많이 하지 않는 거지?”

볼튼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투구 훈련을 많이 하면 밸런스와 리듬을 잡을 수 있어서 좋지. 하지만 어깨가 그만큼 소모되고 말아. 한마디로 많이 던지고 싶어도 던질 수 없다는 말이야.”

그는 많이 던지기보다 집중력을 가지고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볼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집중력을 가지고 던지라면 라이브 피칭 때처럼 던지라는 건가?”

“가능하다면 진짜 타자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던지는 게 좋겠지. 카운트도 머릿속으로 체크하고 구질과 로케이션도 점검하면 더 좋고.”

“흐흠,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볼튼이 어깨를 으쓱하자 김민이 얼굴을 굳혔다.

“볼튼, 메이저리그는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알겠어! 그렇게 정색하지 말라고. 집중력을 가지고 연습할게.”

김민은 볼튼을 위해서 배트를 들고 배터박스에 들어서기도 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고 했다.

12월 24일.

세 사람은 그라운드 위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았다.

“여긴 조용하고 좋네.”

“뉴욕이었다면 여기저기에서 캐롤이 울리고 있겠지.”

“스미스, 고향이 뉴욕이었어?”

“아니, 브루클린.”

“그럼 뉴욕이잖아. 여자 친구도 뉴욕커였어?”

볼튼이 목소리를 높이자 스미스가 미트를 치며 말했다.

“아,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리고 진짜 뉴욕은 맨해튼뿐이라고.”

잠시 뒤, 볼튼의 공이 스미스의 미트에 들어갔다.

팡!

스미스는 볼튼의 공이 지난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킴의 지도가 제대로 적중했어. 볼튼의 공은 싱글A 이상이야. 고향에서 돌아온 팀원들이 보면 깜짝 놀라겠는걸. 흠…… 뒤떨어지고 있는 건 나 혼자인가?’

그는 매일 200개의 배팅 연습을 하고 있지만, 타격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개인 인스트럭터를 고용할 수도 없고, 후안이 가르쳐 준 것을 반복하는 수밖에.’

스미스가 미트에서 공을 빼며 말했다.

“나이스 볼!”

두 사람은 30분 정도 투구 연습을 한 뒤 휴식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킴은 요즘 혼자 투구 연습을 하던데 괜찮은 건가?”

“저건 투구 연습이라기보다 자세를 바로잡는 거야.”

“자세?”

“자신에게 맞는 투구폼을 찾으려는 것 같아.”

볼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지금 자세도 괜찮은 것 같은데 왜 바꾸려는 걸까?”

“바꾼다기보다는 보완이라고 봐야겠지.”

김민은 스미스의 말대로 투구폼을 보완하고 있었다.

‘여기서 상체가 빨리 열리면 곤란해. 팔이 빠르게 돌면 어깨에 과부하가 걸릴 거야.’

그가 투수들을 가르치는 사이 투구 메커니즘은 변화를 거듭했다.

한때는 좋은 투구폼으로 각광을 받았던 인버티드W, 그러나 인버티드W를 장착한 에이스들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지면서, 인버티드W는 부상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인버티드W만 아니면 된다는 이론까지 등장했다.

하나 투구폼 문제는 인버티드W만이 아니었다. 인버티드W가 아닌 투수들도 토미존 수술이나 허리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투구 이론가들은 물리학을 넘어 해부학적 이론까지 들고나와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정답은 없었다.

김민이 20년 전으로 돌아오기 직전 최신 이론은 공의 궤적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손을 떠나기 직전까지 공의 궤적이 직선으로 이뤄지는 경우 어깨와 팔꿈치에 큰 부담이 가해져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부상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버티드W와 W투구폼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문제였다.

김민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공의 궤적을 최대한 포물선으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었다.

‘포물선으로 궤적을 그려도 충분한 위력을 낼 수 있다.’

그는 강력하면서도 부상 위험이 없는 이상적인 투구폼을 찾고자 노력했다.

1월 1일.

세 사람은 나란히 그라운드에 누웠다.

“새해가 되자마자 잔디 위에 누울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야.”

“킴, 고향에는 돌아가지 않는 거야?”

볼튼의 물음에 김민이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20년 전에는 부모님이 그리워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비행기를 탔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메이저리그로 가는 길은 옆을 돌아봐서는 안 되는 벼랑길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야.”

“그래?”

스미스가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볼튼, 그건 킴이 말이 맞아.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때까지는 오직 야구만 생각하는 게 좋아.”

볼튼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정말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 있는 걸까?”

그는 자신의 공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볼튼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킴, 하나 부탁해도 돼?”

“뭔데?”

“스플리터 가르쳐 주면 안 될까?”

김민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내 시험을 통과하면.”

김민의 시험은 막대 기둥 위에 담뱃갑을 공으로 맞춰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볼튼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좋아! 하겠어.”

“준비는 직접 하라고.”

“물론이지.”

스미스가 뛰어가는 볼튼을 보며 말했다.

“킴, 스플리터…… 진짜로 가르쳐 줄 거야?”

“하체가 안정되었으니, 이제 배워도 된다고 생각해.”

“저 녀석이 스플리터를 완성하면 정말 무서운 투수가 될 거야. 괜찮겠어? 킴보다 먼저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수도 있다고.”

볼튼이 메이저리그 콜업의 라이벌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김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볼튼에게 따라잡힐 정도라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는 게 나아.”

그는 올해가 지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 이름을 올릴 작정이었다.

‘목표는 가을 확장 로스터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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