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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26화 (26/296)

26화 애리조나의 에이스 02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공이 그대로 펜스를 넘어갔다.

“깨끗한 홈런이군.”

“첫 타석, 그것도 초구에 홈런이라. 오늘은 힘들겠어.”

1회 말 1번 타자 오스만의 선두 타자 홈런은 김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

‘바깥쪽으로 하나 빠지는 패스트볼이었어. 그런데 그걸 감아서 넘기다니.’

괴력을 지닌 것은 시몬스만이 아니었다.

오스만은 시카고 컵스에 2라운드에 지명을 받은 선수로 대학 2년 차 때 대학리그 MVP를 수상한 유망주였다.

김민은 모자를 고쳐 썼다.

‘미래의 올스타다운 실력이군.’

오스만은 2년 뒤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3할 타율과 30홈런을 기록하며 슈퍼스타로 거듭난다.

전성기는 짧았지만, 그 짧은 전성기에는 어떤 타자 못지않은 스윙을 뽐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김민의 투구가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점 후 킴의 투구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군요.”

“지난 경기는 너무 깔끔했지. 그래서 좋은 밸런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갔어.”

“난 이렇게 생각해. 여기서 무너진다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딱 그런 레벨밖에는 안 될 거야. 즉 B레벨이지.”

진짜 위기는 주자가 득점권에 위치한 것이 아닌 점수를 준 다음이었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내준 점수를 잊고 투구에 집중해야 했다.

그것을 하지 못한다면 1점은 2점으로 2점은 다시 빅이닝으로 연결되었다.

‘잊자. 깨끗이 잊는다.’

투수 코치로서 선발 투수들에게 수없이 강조한 멘트였다.

김민은 오른손 검지를 왼쪽 어깨에 가져갔다.

- 바깥쪽 패스트볼.

록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인을 받았다.

‘방금 홈런을 허용한 바로 그 코스군. 같은 곳에 하나더라니, 대단한 강심장이야.’

제대로 들어간다면 범타를 유도해 낼 수 있었지만, 제구가 어긋난다면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타자를 상대해야 했다.

이윽고 김민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슉!

2번 타자 에드가는 바깥쪽 패스트볼을 보곤 이내 배트를 냈다.

‘바깥쪽 패스트볼이라고? 내 배트 스피드도 오스만 못지않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내야에 떠올랐다.

에드가는 이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나만 내야 플라이냐고!’

그는 불만을 터트렸지만, 이것이 바로 김민이 의도한 결과물이었다.

‘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당겨서 담장을 넘기는 건 괴물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스카우트들은 에드가의 타격을 보곤 고개를 내저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볼을 쳤으니 범타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에드가는 참을성이 부족해. 자기가 시몬스나 오스만인 줄 안단 말이야.”

팡!

2루수의 안정적인 포구.

다음 순간 스콜피언스의 첫 아웃카운트가 올라갔다.

“에드가에 비해 킴은 좋았습니다. 망설임 없이 같은 곳에 공을 넣었거든요.”

“릴리스 포인트도 변화가 없었어. 타고난 강심장이군. B레벨이 아니라 A레벨이야.”

브라이언과 클라인은 김민이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레이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막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았을 뿐이야. 여기서 방심해 긴장이 풀어진다면 어려운 1회 말을 경험하게 될 테지. 진짜는 지금부터야.’

그는 고개를 브라이언에게 돌렸다.

“방금 구속이 얼마나 나왔지?”

“93마일(150km)이었습니다.”

“전력투구란 말이군.”

김민은 첫 아웃 카운트를 잡았지만,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 긴장을 낮추고 싶어도 늦출 수가 없었다.

다음 타자는 론의 슈퍼스타 시몬스였다.

‘주자가 없는데도 위압감이 느껴지는군.’

그가 기억하는 미래의 시몬스는 볼티모어의 5번 타자였다.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는 대타자는 아니었지만, 레귤러로 살아남아 클린업에 자리를 잡았다. 홈런을 때린 오스만 못지않은 강타자. 마이너리그에서 경험했던 평범한 타자들과는 격이 달라.’

김민은 신중하게 초구를 선택했다.

슉.

바깥쪽으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은 1, 2번 타자를 상대했을 때와 같았다.

시몬스는 김민의 패스트볼에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걸 치는 건 좋지 않아.’

그는 오스만과 동등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와 같은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잠시 뒤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스플리터였다.

“시몬스가 인내심을 발휘하는군요.”

“요즘 감이 좋거든.”

시몬스는 개막전을 무안타로 끝냈지만 이후 다섯 경기에서 4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했다.

론이 보았다면 잘 참았다며 박수를 쳤겠지만, 그는 오늘 FA 협상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에 가 있었다.

“카운트 1-0. 자, 어떻게 할까?”

카운트는 분명 투수에게 불리했다.

그러나 김민은 동요하지 않았다.

슉!

다시 한번 바깥쪽 이번에는 시몬스도 기다리지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바깥쪽 승부군. 지난 경기와는 완전히 달라.’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 뒤에 꽂혔다.

“파울!”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나는 공이었다.

하지만 시몬스의 긴 팔은 그 공을 끝까지 쫓아왔다. 마지막 순간 컨택이 정확히 이뤄졌다면 1루 라인을 꿰뚫는 안타가 되었을 것이다.

‘이걸로 카운트는 1-1, 킴도 해 볼 만해.’

록튼은 다음 공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다시 바깥쪽을 선택했다.

슉!

시몬스는 바깥쪽 공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바깥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볼이었다.

‘걸어 내보내도 좋다는 뜻인가?’

카운트는 다시 나빠져서 원 스트라이크 투 볼.

“지독할 정도로 바깥쪽에 집착하는군요.”

“룰 모델이 톰 글래빈이라고 했나?”

“킴은 마스터(그렉 매덕스)와 글래빈의 중간쯤 될 겁니다.”

김민의 4구 역시 바깥쪽이었다.

‘패스트볼? 아니, 전력투구가 아니야.’

시몬스는 이 공도 지켜보기로 했다.

‘아마도 스플리터.’

그러나 이번에는 구속을 늦춘 패스트볼이었다.

팡!

미트에 공이 꽂히자 주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그레이가 브라이언에게 구속을 물었다.

“88마일(142km)입니다.”

그레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실투인가? 위험한 공을 던졌어.”

방금 공은 바깥쪽으로 나름 제구가 잘 되었지만, 시몬스가 노리고 들어왔다면 장타로 연결될 만한 공이었다.

하지만 시몬스는 김민의 스플리터를 의식해 배트를 멈췄고, 김민은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었다.

시몬스는 김민의 볼 배합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느린 패스트볼이라고? 두뇌 싸움으로는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인가?’

이윽고 다섯 번째 공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바깥쪽.

시몬스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뭐 하자는 거야! 내게 그런 공은 통하지 않아!’

그는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는 공이 아닌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이 이번에 던진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였다.

‘마지막 순간에 슬라이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시몬스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킴이 시몬스를 잡아냈습니다.”

“인내심 싸움에서 이겼군.”

스콜피언스 벤치는 김민의 볼 배합을 보곤 혀를 찼다.

“지독하군.”

“예, 정말 지독합니다. 다섯 개가 모두 바깥쪽이었습니다.”

“시몬스가 메이저리그 레벨이었다면 칠 수 있었을까?”

“아뇨. 시몬스는 이미 메이저리그 레벨입니다. 저걸 골라낼 수 있는 건 배리 본즈나 데릭 지터 정도겠죠.”

김민은 시몬스를 잡아내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걸로 한 고비 넘겼군. 하지만 안심하긴 일러. 다음 타자는 조. 스테로이드 냄새가 풍기는 녀석이야.’

조는 파워만큼은 시몬스보다도 위였다.

그러나 선구안에 있어서는 시몬스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김민은 이런 유형의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우익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또 바깥쪽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뻔히 보이는 볼이었어.”

“조는 왜 그걸 친 걸까요?”

“모르지.”

우익수는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냈고, 1회 말 스콜피언스의 공격은 솔로 홈런 한방으로 끝났다.

스콜피언스의 1-0 리드.

수비를 마친 야수들이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김민에게 말했다.

“킴,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가 바로 점수를 뽑아 줄 테니까.”

솔라 삭스의 성적은 4승 2패로 나쁘지 않았다.

김민도 타자들을 믿었다. 그는 5회 안에 역전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콜피언스의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는 무시무시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외침과 함께 타자가 고개를 숙였다.

브라이언이 빠르게 펜을 움직이며 말했다.

“체인지업이 좋군요.”

“좋다고? 아니, 그 이상이야. 저 각도를 보라고, 난 파워 커브인 줄 알았어.”

클라인은 브라이언 이상으로 상대 투수를 높이 평가했다.

그레이도 이번만은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음, 나쁘지 않아. 아니, 상당해. 저 친구를 데려올 수 없을까?”

“글쎄요. 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던 선수입니다. 데려오려면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기록은?”

“불펜 투수로 나와 2승 3패에 평균자책점 6.49입니다.”

그레이는 기록에 민감했다.

“불펜 투수로 6.49라. 메이저리그에서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군.”

애리조나 가을 리그는 이처럼 메이저리그를 막 경험한 선수도 섞여 있었다.

김민은 상대 좌완 투수의 위력적인 모습에 혀를 찼다.

‘등번호만 있어서 이름을 알 수가 없군. 누구지? 저렇게까지 잘 던지는 좌완이…….’

그는 상대 선발 투수 이름을 알기 위해 더그아웃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다음 순간 유령을 본 사람처럼 외쳤다.

“산타나!”

요한 산타나.

한때 메이저리그를 양분했던 슈퍼 에이스가 그의 눈앞에 있었다.

산타나는 5회 초까지 솔라 삭스의 타선을 유린했다.

솔라 삭스는 단 한 명의 주자도 베이스를 밟지 못한 채 퍼펙트로 눌리고 있었다.

“오늘은 투수전인데?”

“양 팀 모두 에이스를 내보낸 모양입니다.”

김민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1회 말 선두 타자에게 초구 홈런을 맞았지만, 이후 18명의 타자를 맞아 산발 3안타만을 내주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5회 말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여전히 1-0 스콜피언스의 리드였다.

“이것으로 킴의 실력은 증명이 되었군요. 다음 시즌에는 단순한 더블A가 아닌 40인 로스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레이도 이번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김민의 성적은 단연 뛰어났다.

특히 기록지를 중시하는 그레이로서는 그가 기록한 숫자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장님과 상의해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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