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3화 (23/296)

23화 천재들의 리그 03

“주인공의 등장이군.”

론은 미소를 되찾았다.

시몬스는 이번 시즌 더블A를 초토화시키며 메이저리그를 예약했다.

“메이저리거가 어떤 것인지 풋내기에게 똑똑히 보여 주라고!”

론이 그에게 걸고 있는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김민도 시몬스가 뛰어난 타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블A에서 3할대 후반 타율에 20개가 넘는 홈런. 표본이 적어서 큰 의미는 없지만, 볼넷과 삼진의 비율도 인상적. 한마디로 지금의 나에겐 벅찬 상대야. 내가 잡아낼 수 있을까?’

그는 공을 꾹 쥐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내야 해.’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시몬스보다 더 뛰어난 타자들과 승부해야 한다.

특히 그가 속한 메이저리그 동부지구는 강타자들이 많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데릭 지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김민은 초구를 결정하곤 사인을 냈다.

록튼은 그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로 그것도 나쁠 건 없겠지.’

그는 김민의 연속삼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가자 시몬스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라함에게는 바깥쪽, 에드가에게 안쪽. 이번에는 어느 쪽이냐?’

그는 어느 한 쪽을 정하지 않은 채 패스트볼을 노렸다.

슉!

초구는 예상대로 패스트볼이었다.

‘별 볼 일 없는 공이군.’

메이저리그를 노리는 슈퍼 유망주에게 92마일(148km) 패스트볼은 너무 쉬운 사냥감이었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쭉쭉 뻗어 나갔다.

관중석에서도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그러나 김민은 대형 타구가 나왔음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주심에게 다음 공을 요구하는 사인을 보냈다.

다음 순간 공은 폴대를 지나쳐 파울이 되었다.

록튼은 그 모습에 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킴은 파울이 될 걸 이미 알았어. 제구에 자신이 있는 정도가 아니야. 확신을 가지고 공을 던지고 있어. 마이너리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이야.’

겉으로 보이는 김민은 자신감의 화신 같았다. 하지만 속은 그 반대였다.

‘반 개, 아니, 반에 반 개 만 더 가운데로 갔어도 담장을 넘어갔을 거야.’

그는 부족한 컨트롤과 구위로 괴물 같은 유망주를 상대하고 있었다.

관중들은 파울이 되었지만 시몬스의 무시무시한 파워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놀라워!”

“미네소타가 괴물을 키웠군.”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얼마나 해 줄까?”

“적어도 20홈런을 때려줄 거야.”

스카우트들도 시몬스의 파워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안쪽으로 잘 제구된 공이었는데 홈런성 타구를 날리는군요.”

“파워 툴은 80점 만점에 70점은 되겠어.”

“80점 만점이 아니고 70점입니까?”

“경기장을 못 넘겼잖아.”

한 스카우트의 농담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김민과 록튼 배터리는 웃을 수가 없었다.

특히 김민의 얼굴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조금 전 파워…… 스테로이드의 냄새가 나.’

약물의 시대.

메이저리그의 빅뱃 대부분은 스테로이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 공도 제구가 조금만 엇나가면 담장을 넘어갈 거야.’

쓰리쿼터로 투구폼을 바꾼 뒤 제구력에 큰 발전이 있었다.

하나 아직 핀포인트라 불릴 정도로 공을 제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브레이킹볼과 체인지업 제구는 아직 의문표가 붙었다.

김민은 어깨 위에 손가락 두 개를 올렸다.

- 커브.

록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걸로 되겠어?’

김민의 커브는 스카우트 리포트에서 B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쉽게 말해 실전에서 사용할 수준은 되지만 내세울 만한 브레이킹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슉!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공이 가운데서 바깥쪽을 향해 떨어졌다.

록튼은 공을 향해 미트를 내밀며 속으로 외쳤다.

‘배트를 내다오!’

그는 시몬스가 패스트볼과 스플리터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커브에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은 정확했다.

시몬스가 노리고 있는 공은 바로 패스트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배트를 내밀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는 김민의 커브를 골라냈고, 두 번째 공은 볼 판정을 받았다.

“카운트 1-1이야.”

“시몬스가 잘 참았군.”

김민은 시몬스가 두 번째 공을 참아낸 것을 보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걸 참아 내다니, 딱 치기 좋은 공이었을 텐데 말이야.’

약물로 선구안까지 좋아지진 않았다. 시몬스의 선구안은 타고난 것이었다.

“저 친구 마치 배리 본즈 같군.”

“나도 그 생각을 했어. 본즈처럼 약점이 없는 타자야.”

마이너리그의 배리 본즈.

그게 바로 시몬스였다.

론은 시몬스가 두 번째 공을 참아내면서 김민을 압박하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좋았어. 시몬스, 정말 훌륭한 선구안이야.”

동행한 수행원들 역시 시몬스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브라이언은 시몬스가 뛰어난 타자긴 하지만 김민이 상대하지 못할 타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킴, 겁먹지 말라고 상대는 똑같은 마이너리거야.”

그의 말을 들은 클라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브라이언, 여기서 그런 생각이면 당하고 말 거야.”

브라이언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클라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는 자신 있게 공을 던져야 합니다.”

“상대를 마이너리거로 보는 게 문제야. 시몬스를 잡으려면 그를 메이저리그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클라인은 시몬스의 타격 능력이 이미 메이저리그 레벨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파워, 컨택, 선구안…… 모두 메이저리그 레벨을 넘어섰어. 어설픈 메이저리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테지. 다음 시즌 시몬스의 메이저리그 성적이 궁금해지는군.’

김민 역시 클라인과 결론이 같았다.

‘지터 아래가 아니야. 메이저리그 레벨, 아니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승부해야 해.’

그는 손에 땀이 차는 것을 느꼈다.

“타임!”

김민은 잠시 타임을 걸고는 로진백을 만졌다.

‘원 스트라이크, 원 볼. 이번 승부는 다음 공이 중요하다. 제길……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시뮬레이션했잖아.’

그는 경기 플랜을 짤 때 머릿속으로 시몬스를 수도 없이 잡아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시몬스는 그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시몬스보다 훨씬 강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안타든 삼진이든 대부분 3구 안에 끝이 났다. 실전에서도 3구 안에 끝을 볼 수 있을까?’

그는 구종과 코스를 결정하곤 록튼에게 사인을 내보냈다.

록튼은 김민의 사인을 받곤 마른침을 삼켰다.

‘저기, 킴 그건 위험하지 않겠어?’

그는 오늘 경기 처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사인을 냈다.

그러나 김민은 고개를 흔들어 사인 변화가 없음을 알렸다.

록튼은 길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

그는 자세를 잡은 뒤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뒤, 패스트볼이 미트를 향해 돌진했다.

슉!

시몬스는 패스트볼을 보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이 패스트볼인가? 마이너리그 투수 치고는 배짱이 있군.’

타자 눈높이로 던지는 하이 패스트볼.

메이저리그에서는 제3의 유인구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 공은 카운트가 몰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위력이 반감되며, 제구에 실패할 경우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시몬스는 배트를 움직이며 생각했다.

‘좋은 높이군. 마이너리그 투수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제구야. 하지만 타자의 스윙에는 레벨 스윙과 어퍼 스윙만 있는 게 아니야.’

그의 배트가 그리고 있는 궤도는 다운스윙을 의미하고 있었다.

공을 위에서 아래로 찍어 치는 다운스윙.

2루타 이상의 장타 생산에는 비효율적이었지만, 내야를 꿰뚫는 타구를 만들어 내는 데는 이상적인 스윙이었다.

배트가 공을 찍으려는 순간.

공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떨어졌다.

탁!

배트는 공의 위쪽을 컨택했고, 공은 큰 바운드를 일으키면서 2루수 정면을 향했다.

시몬스는 1루로 뛰어가는 것도 잊은 채 김민을 쏘아보았다.

‘하이 패스트볼이 아니군! 거기서 잔재주를 부리다니! 비겁하다!’

김민이 그에게 던진 것은 하이 패스트볼 코스에서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룩튼이 이 공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스플리터 제구나 각도가 조금만 엇나가도 실투 중의 실투인 럭키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루!”

“맡겨 줘!”

팡!

공이 1루수 미트에 들어간 순간 스카우트들이 입맛을 다셨다.

“조금 더 시몬스를 보고 싶었는데 너무 빠르게 끝났군.”

“방금 시몬스가 때린 공 말이야. 포크지?”

“포크보다는 구속이 빨랐어. 아마 스플리터였을 거야.”

스카우트들은 시몬스와 김민을 주인공으로 노트를 채우기 시작했다.

론은 시몬스가 2루수 땅볼로 물러나자 분노로 주먹을 꾹 쥐었다.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고! 다음 회에는 이렇게 쉽게 안 될 거야!”

그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김민이 1회를 멋지게 클리어했다고 평가했다.

‘오만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80점 만점에 55점은 줄 수 있겠어.’

론은 김민의 실력을 미리 알았더라면 플로리다로 날아가서라도 잡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브라이언은 김민이 멋지게 1회 초를 마무리하자 목소리가 밝아졌다.

“킴이 해낼 줄 알았습니다.”

클라인도 김민의 선전을 칭찬했다.

“마지막 공은 참 좋았어. 타자의 계산을 완전히 엇나가게 만들었으니까.”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도 이번 회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로케이션이군. 제구에 50점을 줘도 괜찮겠어.”

스카우트 리포트의 만점은 80점이었지만 50점도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20-80점 리포트에서 50점은 메이저리그 평균을 의미했다.

수석 스카우트 베넨은 그레이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었다.

“55점.”

“이유는?”

“시몬스를 잡았으니까.”

그레이가 오른쪽 입술 끝을 올리며 말했다.

“이유가 빈약한데?”

“시몬스는 대단한 친구야. 다음 시즌 돌풍을 일으킬 테니까 잘 봐 두라고.”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은 채 2루수 홀에게 글러브를 내밀었다.

“나이스 캐칭.”

홀이 검은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나이스 피칭!”

두 사람은 글러브를 마주친 뒤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1회 초 솔라 삭스의 분위기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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