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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15화 (15/296)

15화 운영의 마술사 02

“킴, 나는 브라이언이라고 하네.”

김민은 환하게 웃는 중년인을 보고 생각했다.

‘간편한 옷차림이긴 한데 훈련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군. 단순한 팬은 아니고, 기자나 스카우트 쪽인가?’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킴입니다. 한데 소개가 너무 짧은 것 아닙니까?”

브라이언은 김민에게 날카로운 인상을 받았다.

‘듣던 대로 야구만 열심히 하는 젊은이는 아닌 것 같군. 첫 대사부터 만만치 않아.’

그는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탬파베이 스카우트 팀의 브라이언일세. 싱글A와 루키 팀을 맡고 있지. 앞으로 종종 보게 될 걸세.”

“아, 프런트의 스카우트시군요. 그런데 스카우트가 왜 절 찾아오신 거죠? 스카우트가 선수를 직접 인터뷰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나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저쪽 벤치라도 가서…….”

김민이 브라이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아직 마무리 운동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마치고 가겠습니다.”

브라이언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그, 그래, 그럼 저쪽에서 기다리도록 하겠네.”

그는 김민의 첫인상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고 생각했다.

‘동양계 투수라서 영어에 약할 줄 알았는데 원어민 수준이라. 게다가 강단이 있어. 타자를 압도하는 피칭 내용도 좋고. 클라인은 이 모든 것을 알고 그를 택한 건가?’

클라인은 김민의 트레이드 전 경기를 관전한 스카우트였다.

그의 추천과 보고 덕분에 탬파베이는 김민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현재 더블A와 서쪽 마이너리그를 총괄하고 있었다.

“EX 스포츠는 킴의 이런 면을 알고 랭킹을 올린 건가? 모를 일이야.”

5분쯤 지나자 김민이 돌아왔다.

“브라이언,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브라이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죄송할 것이 뭐가 있겠나? 야구 선수는 운동이 제일 중요하지.”

“이해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 간혹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김민이 브라이언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브라이언이 부드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소문을 하나 들었어.”

“어떤 소문입니까?”

“자네가 1회에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한다고 하더군.”

김민은 스카우트가 이런 말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코칭 스탭 중 누군가가 프런트에 내 이야기를 흘린 모양이군. 그가 날 찾아온 것은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뜻이겠고. 선수 입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일은 손해 볼 것이 없지.’

프런트의 주목을 받는 유망주는 그렇지 않은 유망주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었다.

김민은 Yes나 No가 아닌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만 확인하는 게 아니죠. 구장의 풍향과 구질의 변화, 포수의 컨디션과 타자의 선구안, 그 밖의 모든 것을 1회에 확인하고 들어갑니다.”

브라이언은 김민의 대답에 섬뜩함을 느꼈다.

‘단순히 스트라이크 존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고? 마이너리그 선수가 이렇게까지 시야가 넓어도 되는 건가?’

김민은 충격을 받은 브라이언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구력이 좋은 날은 스스로를 시험하기도 하죠. 타자에게 얼마나 공을 가까이 붙일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러다가 사구가 나오기라도 하면…….”

“물론 제 패배죠. 투수는 타자를 베이스에 내보내지 않는 게 목표니까요. 그래서 제구력이 좋다고 판단되는 날이 아니면 시험하지 않습니다.”

김민은 브라이언의 얼굴을 보곤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쯤 해 두지. 더 나가면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볼 테니까.’

그가 브라이언에게 되물었다.

“이제 궁금하신 건 다 풀리셨나요?”

브라이언은 표정 관리를 위해 가볍게 기침을 했다.

“흠, 흠. 아니야. 아직 하나가 더 남았어.”

“더 남았나요? 말씀하시죠.”

“1회에 게임 플랜을 짠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김민이 역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건 선발 투수라면 누구나 다 하는 것 아닙니까?”

김민의 반문에 브라이언은 할 말을 잃었다.

‘선발 투수라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니…… 킴은 평범한 싱글A 투수들하고 다른 수준의 야구를 하고 있다.’

그도 한때는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선수였다.

그러나 브라이언의 꿈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더블A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고, 끝내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브라이언이 표정을 바꾸었다.

“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지.”

“더 물으셔도 됩니다.”

“아니야. 이번 물음이 마지막이야. 지난 시즌 싱글A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민이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며 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죠. 기량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평가였다.

브라이언은 김민이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은 투수로서 좋은 덕목이다. 하지만 너무 엄격한 것은 좋지 않다.’

연습에 지나칠 정도로 매진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김민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브라이언도 선수 시절에는 그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패배를 기록한 날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 지독함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었다.

브라이언의 경우 지나친 연습이 독으로 작용해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럼 1년 만에 부족한 기량을…….”

“아뇨. 전 지금도 기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경기가 잘 풀리는 것은 팀원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라이언는 김민의 마지막 대답에 속으로 혀를 찼다.

‘여기서 팀원의 도움이란 대답이 나올 줄이야.’

그는 마지막을 자조 섞인 조언으로 마무리하고자 했다.

“러닝을 다녀왔다고 들었네. 프로 선수가 자신을 갈고닦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가 있어. 러닝은 줄이는 게 좋겠어. 선발 투수가 체력 안배도 생각해야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였다.

“스케줄을 조금 더 조정해 보겠습니다.”

브라이언은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려 했다.

한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킴, 설마 러닝 뒤에 투구 훈련까지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투구 연습을 할 수 없어서 러닝을 하는 겁니다.”

“투구 훈련 대신 러닝이라. 러닝이 어깨를 소모하지 않기 때문인가?”

김민이 짧게 대답했다.

“그렇죠.”

브라이언은 그 짧은 한마디에 탄성을 터트렸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자네 같은 선수는 처음이야.”

10년 동안 투수를 길러낸 김민에게 효율적인 피칭 트레이닝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싱글A 투수가 그것을 해낸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싱글A 선수에게 그런 말씀은 곤란합니다. 믿기지 않는 실력을 가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는 수백 명이 넘으니까요.”

브라이언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실력 문제가 아닌 마인드 문제야. 이 친구는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올라간다.’

그는 지난 트레이드에서 승리한 것은 샌디에이고가 아닌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내 명함일세. 곤란한 일이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주게.”

김민이 자리를 뜨려는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뭔가?”

“이건 사실 운영팀에 부탁을 드려야 하는 건데. 인터넷을 숙소에서 사용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을?”

“인터넷에는 여러 선수의 자료가 있거든요. 신문이나 잡지로 자료를 모은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브라이언은 여기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모양이군.’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내 권한은 아니지만, 운영팀에 건의해 보겠네.”

“감사합니다.”

며칠 뒤, 그의 방에 인터넷 케이블이 연결되었다.

* * *

올스타 브레이크가 시작되면 마이너리그에 한 차례 변화의 바람이 몰아친다.

“하킴이 어제 숙소로 돌아왔더라.”

“더블A에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한 건가?”

“그것보다는 메이저리그에서 내려온 포수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라나 봐.”

메이저리그 팀들은 필요에 따라 유망주와 부상선수를 빠르게 교체했다.

탬파베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부족한 타자를 콜업하고 부진에 빠진 투수를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냈다.

“이번에는 누가 더블A로 올라가는 게 아닌 모양이네.”

“그래도 올라가긴 할걸? 가을에는 확장 로스터도 있고 하니까 말이야.”

크랩스 선수들은 더블A로 올라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김민을 지목했다.

그러나 더블A에서 요구한 것은 중심타선을 맡을 수 있는 파워 있는 타자였다.

투수는 한 명도 더블A 콜업을 받지 못했다.

“스나이더가 올라가다니 의외군.”

“맞아, 그 친구 핫코너 수비가 영 좋지 않잖아.”

“내가 듣기로는 포지션 변경을 한다고 하더라.”

“수비 부담이 없는 쪽이면 1루나 외야인가?”

“아마 외야가 되겠지.”

김민은 동료들이 상위 리그 콜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볼튼과 함께 투구폼 변경에 나섰다.

그에게 더블A는 언제 올라가도 상관없는 곳이었다.

‘시즌 중 투구폼 변경을 할 수 있는 찬스는 올스타 브레이크가 유일해.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볼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킴, 슬라이드를 그렇게 넓혀도 되겠어?”

“일단 해 보는 거야.”

“무리 아닐까?”

“무리라 느껴지면 그때 되돌려도 늦지 않아.”

볼튼은 김민의 도움으로 제구력이 많이 나아졌다.

‘지난번에는 킴이 날 도왔으니, 이번에는 내가 킴을 도와야 해.’

그는 휴가도 떠나지 않은 채 김민의 훈련에 동참하고 있었다.

“5cm 정도만 넓혀보는 건 어떨까?”

“그건 너무 짧고 7cm로 해 보자.”

두 사람은 스피드건까지 가져다 놓고 적극적으로 훈련하고 있었다.

팍!

볼판에 공이 꽂히자 볼튼이 목소리를 높였다.

“91마일(146km)!”

“오케이.”

김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재차 공을 던졌다.

팍!

이번에도 볼튼이 목소리를 높였다.

“90마일(145km)!”

김민은 잇달아 20구를 던졌는데 90마일이 가장 많았다.

볼튼이 공을 회수하며 말했다.

“91마일(146km)이 2개 92마일(148km)이 하나였어.”

“89마일(143km)은?”

“4개.”

김민이 긴 숨을 내쉬었다.

“아직 멀었군.”

투구폼을 변경해 구속을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김민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구폼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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