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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14화 (14/296)

14화 운영의 마술사 01

브라이언은 볼펜이 아닌 연필을 들고 있었다. 이는 아직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의 노트에는 어제 경기를 보며 적은 내용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 킴은 경기 초반 제구가 흔들리는 약점이 있다. 덕분에 1회 실점 비율이 높다. 2점 이상 실점한 경기 중 절반이 1회부터 실점을 기록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7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긴 했지만, 1회 2실점으로 어렵게 출발했다. 초반 흔들리는 제구를 고치지 않고서는 더블A는 몰라도 메이저리그 진입은 힘들 것이다.

그가 연필을 멈춘 순간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브라이언?”

고개를 돌리니 대학 선배인 투수 코치 샘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샘! 괜찮습니까?”

“자네야말로 스카우트 일은 잘돼 가나?”

브라이언은 탬파베이 스카우트 팀 소속이었다.

“그레이 팀장의 성화가 대단합니다. 단장에게 깨졌다는 소문이에요.”

“코칭 스탭에게 리포트 쓰게 하는 건 언제 끝나는 건가?”

“글쎄요. 그건 저희 팀장님이 아니라 단장님 지시라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샘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에게 리포트를 쓰게 하고, 스카우트까지 파견하면 일을 두 번 하는 것 아닌가?”

“위쪽에서는 그렇게 해도 못 미덥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트레이드도 실패했고…….”

샘이 목소리를 높였다.

“못 미더운 건 바로 그들 자신이야. 특히 구단주는 최악이지.”

탬파베이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두 가지는 바로 홈구장의 위치와 구단주를 비롯한 구단 수뇌부였다.

브라이언이 구단주를 변호하듯 말했다.

“빈스는 구두쇠이긴 하지만 직접 모든 것을 챙기는 꼼꼼한 분입니다.”

“구단주가 직접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외부음식 반입을 체크하는 게 꼼꼼한 건가? 그건 말이야. 장군이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탄피를 줍는 것과 같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구단주를 향한 샘의 반감은 컸다.

브라이언은 샘의 일갈에 변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그가 침묵하자 샘도 더는 그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에 들린 노트에 주목했다.

“그건 뭔가?”

샘의 물음에 브라이언이 대답했다.

“킴에 대한 스카우트 리포트입니다. 잘못된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위에 보고하기 전에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샘이 노트를 받으며 물었다.

“자네 스카우트 팀에서 몇 년 있었지?”

“올해 3년 차입니다.”

샘은 노트를 한번 훑어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후…… 3년이나 됐는데 선수 보는 눈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브라이언은 샘의 한마디에 기분이 상했다.

“샘, 말이 좀 지나칩니다. 여기 적힌 내용은 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샘이 오른손 검지를 들며 말했다.

“잘 들어 브라이언, 킴은 초반에 제구가 흔들리는 게 아니야.”

브라이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구가 흔들리지 않는다고요? 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1회 기록은 분명 초반 제구력 실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현장 출신이 기록에 의존하는 건가?”

“샘, 기록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건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프로 선수는 기록에 근거해 연봉을 받습니다. 만약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 선수의 잃어버린 연봉은 누가 보상한단 말입니까?”

샘이 던지듯 말했다.

“아무도 보상하지 못하지. 그래서 연봉 협상은 공평한 게 아니야. 브라이언, 프런트 일을 하더니 감이 완전 죽었군. 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스미스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거야.”

브라이언은 샘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고 포수에게 말을 돌리는 겁니까?”

“투수 코치인 내가 찬사를 늘어놔야 듣지도 않을 텐데 뭐 하러 말한단 말인가? 그리고 난 그 빌어먹을 리포트를 끝내야 한단 말일세.”

샘은 한바탕 쏘아붙인 다음 연습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브라이언은 인상을 찌푸린 뒤 다음 장을 넘겼다.

- 킴의 무기는 다양한 구종이다. 그는 적어도 여섯 가지 이상의 구종을 던지며, 그 때문에 배터박스에 선 타자는 초구로 어떤 공이 날아올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여기까지 적은 뒤, 손을 멈췄다.

“아무래도 샘의 말이 걸리는군.”

브라이언은 직접 김민의 전담 포수 스미스를 만나보기로 했다.

5분 뒤.

“스미스, 잘 지내나?”

스미스는 브라이언을 알아보곤 미트를 벗었다.

“브라이언, 아직 스카우트 팀에 있습니까?”

“아직이라니, 지난해 정식 직원으로 승격했다고. 이제 어엿한 프런트 일원이야.”

스미스가 미트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킴을 보러 오신 거죠?”

“어떻게 알았지?”

“저희 팀에서 가장 핫한 투수니까요.”

“샘은 비협조적이더라고.”

스미스가 장비를 하나씩 벗으며 말했다.

“코치님은 리포트 때문에 바빠서 그럴 겁니다. 그 빌어먹을 리포트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면 안 되는 겁니까?”

“그건 단장님 지시야.”

“그 단장, 트레이드마다 실패하는 것 같은데 안 잘립니까?”

브라이언은 현장에서 느낀 반감이 상상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단장을 거의 잡아먹기 직전이군. 팬들까지 저런 상태라면 오래가지 못하겠어.’

그가 살짝 말머리를 돌렸다.

“샘이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코치님이요?”

“킴에 대해 알고 싶으면 자네에게 물으라고 하더군.”

스미스가 펜스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일단 전담 포수긴 하지만 킴의 공을 받은 지 3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게다가 킴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선수입니다.”

“3개월이면 꽤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나? 버릇이라던가? 투구에 관한 습관 같은 것도 알 수 있을 텐데?”

스미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습관이라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지?”

“1회에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는 겁니다.”

“마이너리거가?”

스미스가 고개를 브라이언에게 돌렸다.

“브라이언, 메이저리거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전에는 마이너리거였습니다. 마이너리거라고 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지 못할 이유는 없죠.”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1회 존을 확인하는 투수는 많지 않아. 제구력이 뛰어난 에이스급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예, 그날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는 건 보통 포수의 역할이죠.”

투수 스스로 각 코너를 찌르며 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제구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킴의 제구력은 확실히 메이저리그 에이스급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는 존을 확인합니다. 1회 실점을 각오하면서까지 말이죠.”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그럴 이유가 있나?”

“저도 그게 의문이라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킴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메이저리그는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가는 곳이 아니야. 메이저리그는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선수만이 설 수 있는 곳이야.’ 대답이 대단하죠?”

‘메이저리그 선수, 아니 에이스가 되기 위해 김민은 메이저리그 에이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말인가?’

브라이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그냥 흉내를 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스미스가 피식 웃었다.

“그렇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데 아니더군요.”

브라이언은 킴이 단순한 유망주가 아닌 대단한 무엇을 감추고 있는 선수처럼 느껴졌다.

“설마 존을 체크한 뒤 제구력이 점점 좋아지는 건가?”

“그럴 리가요? 그런 투수가 마이너리그에 있을 리 없죠. 킴은 1회에 존을 체크하면서 그날 경기의 플랜을 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브라이언의 눈이 10센트 동전처럼 동그래졌다.

“감독도 아니고 투수가 플랜을 세운다고?”

“킴의 경기 운영은 대단히 정교합니다. 그는 자신이 짠 틀 안에서 경기를 운영하고 타자를 잡아냅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는 것도 그 운영의 일부죠. 그는 정말 대단한 투수입니다.”

“자신이 운영하고 타자를 잡아낸다. 투수가 직접 사인을 내는 것도 그 때문인가?”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킴의 볼 배합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브라이언은 스미스의 말에 마른침을 삼켰다.

‘스미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킴은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투수란 뜻이 된다.’

그가 생각했던 김민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완성되지 않은 유망주였다.

하지만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김민은 스스로 게임 플랜을 세운 뒤 그것을 완벽히 수행하는 운영의 마술사였다.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군.”

스미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킴을 만나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겁니다. 러닝을 나갔거든요.”

브라이언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제 등판한 투수가 러닝이라고?”

“킴은 러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아요. 등판 전날도 러닝을 하죠. 뭐 비가 오거나 하면 멈추지만…… 아시잖아요. 플로리다의 여름에는 비가 없다는걸.”

브라이언은 김민이 더 이상 마이너리그 유망주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않았을 뿐, 실력이나 포텐은 메이저리그급이라는 건가?’

그는 입구에 서서 김민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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