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3화 (13/296)

13화 투수전 03

6월이 지나면 서서히 팀 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올해도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도 어느덧 3.5 게임 차.

“올해도 꼴찌야.”

“신생팀이지만 좀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동부지구잖아.”

“하긴, 만만한 팀이 없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속한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치열한 지구로 손꼽혔다.

악의 제국 양키스와 그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 탄탄한 전력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화끈한 방망이의 볼티모어 오리올스.

“어느 한 팀 밀어내기 힘들지.”

“그나마 오리올스가 해 볼 만한데…… 그래도 우리 팀보다는 나으니 원.”

탬파베이 단장 홀먼은 세간의 평가를 아는 듯 얼굴이 어두웠다.

그가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 말을 믿고 트레이드했는데 이걸 어쩔 거야?”

지난봄 이뤄진 유망주 트레이드는 샌디에이고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김민이 싱글A에서 잘 던져 주고 있었지만, 트레이드의 중심은 트리플A 유망주 2명이었다.

샌디에이고로 간 유망주 2명은 메이저리그에서 주전 외야수와 불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반면 탬파베이로 온 유망주들은 트리플A에서조차 신통치 않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포텐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키우면 다음 시즌에는 분명 빛을 볼 겁니다.”

홀먼이 스카우팅 리포트를 내던지며 말했다.

“다음 시즌이라고? 즉시 전력을 주고 복권을 사 왔단 말인가?”

“트레이드는 손해와 이익을 동시에 수반합니다. 싱글A의 킴 같은 선수는 상당한 기량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홀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지난 트레이드가 싱글A 유망주 트레이드였나? 정신 차려! 이런 트레이드가 한 번만 더 나오면 자네는 끝이야.”

그레이는 숨을 들이켰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여긴 프로야!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라고!”

홀먼은 책상을 강하게 친 뒤 EX 스포츠에서 발표한 유망주 랭킹을 내밀었다.

“보라고! 지난 트레이드로 데려온 유망주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탬파베이의 팜 랭킹은 전체 30개 구단 중 24위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트레이드로 데려온 두 트리플A 유망주는 7위와 8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면서 홀먼을 화나게 했다.

“즉시 전력감을 주고 데려온 두 명이 7, 8위야! 이게 말이 되나? 자네가 말한 그 킴인가 하는 싱글A 투수도 10위인데 말이야.”

EX 스포츠는 탬파베이 유망주 10명을 선정하면서 그 마지막 자리에 김민을 넣었다.

EX 스포츠는 김민이 뛰어난 커맨드를 가졌으며, 탁월한 운영 능력과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레이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올스타 휴식기 동안 팀을 재정비할 거야. 마이너리그에서 올려 보낼 선수 목록을 작성하도록 해.”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단장실을 나왔다.

“휴…… 미치겠군.”

그는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능한 쪽도 아니었다.

“우리 팀에서 나간 선수들이 그렇게 터질 줄이야.”

그레이는 김민이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해고되었을지도 몰랐다.

* * *

“하킴, 볼드원.”

두 사람은 이름이 호명되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성공이야!”

“드디어 올라간다!”

넬슨 감독은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른 뒤 가볍게 박수를 쳤다.

“축하한다. 더블A에 가서도 잘해 주기 바란다.”

김민은 이번 승격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는 그의 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팀 내 탑10 유망주 또는 탑15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었다.

다만 탬파베이가 당장 필요한 것은 투수보다는 타자였다.

투수조 동료인 제임스가 김민을 위로하듯 말했다.

“킴, 실망할 필요는 없어.”

그의 말에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망이라니, 실망할 이유가 없잖아.”

“난 킴이 더블A로 올라갈 줄 알았어.”

“더블A로 올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아. 난 싱글A에서 그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김민은 진심으로 더블A를 원치 않았다.

‘더블A는 싱글A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대학을 졸업한 상위 라운드 지명자.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2, 3년 차 유망주,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예비 메이저리거. 그들과 경쟁하며 성적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자칫 잘못하면 좋았던 폼이 무너질 수도 있어.’

그가 경험한 더블A는 성장의 장이 아니라 경쟁의 장이었다.

김민은 더블A에 올라가기 전에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표도 끝났고, 러닝이라 하러 가야겠어.”

“또 러닝인가? 킴은 뛰는 게 좋은 거야?”

그는 투수 코치에게 했던 대답을 그대로 반복했다.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니까.”

김민이 훈련장 밖으로 나오자 키가 큰 선수 한 명이 따라붙었다.

“킴, 같이 뛰자고.”

그를 따라온 선수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볼튼이었다.

“볼튼?”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이야.”

김민이 속도를 살짝 죽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데?”

“스플리터를 배우고 싶어.”

볼튼에게 김민의 스플리터는 인상적인 무기였다.

“스플리터를?”

“불펜 투수에게 요긴한 구종이잖아.”

김민이 속도를 더 늦추며 말했다.

“난 좋지 않다고 생각해.”

볼튼은 김민의 반대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눈치였다.

“킴, 난 날로 먹으려 하는 게 아니야. 충분한 대가를…….”

“그런 게 아니야. 난 진심으로 볼튼에게 스플리터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볼튼에게는 내게 없는 무기가 있어. 그 무기를 살리는 게 먼저라고 봐.”

볼튼은 팀의 에이스인 김민에게 없는 무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게 그런 무기가 있다고?”

김민이 짧게 대답했다.

“구속.”

볼튼은 제구와 변화구가 모두 좋지 않은 투수였다. 하지만 구속만큼은 뛰어났다.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5마일(153km), 최고 구속은 98마일(158km)까지 나왔다.

“그런 강속구가 있다면 스플리터가 필요 없어.”

“…….”

“내가 볼튼이었다면 제구력에 더 신경을 썼을 거야.”

볼튼이 김민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스플리터라도 배우려 했어.”

“쉽지 않아도 해야 해. 제구력은 투수의 기본이니까.”

볼튼은 김민이 마치 코치처럼 느껴졌다.

“제구력을 늘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우선 밸런스를 잡고, 좋지 않은 습관을 버려야 해.”

“킴이 좀 봐 줄 수 있겠어?”

김민은 볼튼의 부탁에 미간을 좁혔다.

“봐 줄 수는 있지만…… 이건 샘 코치의 영역이야.”

“난 샘보다 킴이 더 잘 봐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김민이 망설이자 볼튼이 말했다.

“새 스파이크와 글러브, 그리고 배트까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볼튼은 김민의 낡은 스파이크와 오래된 글러브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곤 코칭과 바꿀 수 있는 카드로 새 장비를 제안했다.

김민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아픈 구석을 찌르는군.”

“시즌이 끝나면 다 새로 사야 하는 것들이잖아.”

에이스라고 해도 마이너리거인 이상 자비 구입이 원칙이었다.

“좋아. 하루에 한 시간씩 보름.”

“오케이.”

* * *

김민은 볼튼의 투구를 본 뒤 미간을 좁혔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지 않아. 너무 구속에 집착하고 있어. 1, 2마일은 버린다고 생각해야겠어.”

볼튼이 놀라 말했다.

“구속을 버린다고? 킴, 구속이 바로 내 무기라고 했잖아.”

“1, 2마일 낮아진다고 해서 어떻게 되진 않아.”

김민은 볼튼 옆에서 서서 다시 한번 투구할 것을 지시했다.

“우선 킥킹을 조금 낮춰. 그러면 던지기 수월할 거야.”

킥킹을 높게 할수록 패스트볼의 스피드와 구위가 좋아졌다. 다만 높은 킥킹은 밸런스 붕괴와 제구 불안, 과도한 체력소모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기, 딱 여기까지만 발을 올려서 던져 봐.”

볼튼은 김민의 지시에 따라 킥킹 높이를 조절해 투구했다.

팡!

첫 번째 투구는 별로 달라진 점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공을 던지자 어깨와 허리에 힘이 덜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놀라워, 킥킹을 낮춘 것만으로 던지기가 편해졌어. 이게 바로 핀 포인트 레슨인가?’

김민이 옆에 서서 말했다.

“구속은 살짝 줄었을 거야. 하지만 훨씬 낫지?”

볼튼이 투구를 멈춘 뒤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킴, 정말 대단해!”

투수 코치 샘은 멀리서 김민과 볼튼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새로운 구종이라도 연구하는 건가?”

곁에 있던 수석 코치가 미소를 지었다.

“서로의 무기를 나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볼튼에게는 좋은 일만은 아니야. 그에게 필요한 건 구종이 아니거든.”

투수 코치인 샘도 볼튼의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네가 신경 좀 써 주는 게 어때?”

샘이 반문했다.

“한 명 한 명 봐 주다가는 시간이 남아나지 않을걸?”

“흠, 리포트 때문인가?”

“그래 그 리포트. 경기가 끝날 때마다 제출해야 하니, 이게 뭔가 싶어.”

탬파베이 프런트는 마이너리그 코치들에게 경기 리포트 작성해 다음 날 아침까지 사무실에 제출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덕분에 코치들은 선수들에 대한 지도보다 리포트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샘을 비롯한 코칭 스탭은 탬파베이 프런트의 잘못된 운영이 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그러나 단장인 홀먼은 이것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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