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샬로트 스톤 크랩스 04
스미스는 팀의 두 번째 포수, 다시 말해 하킴의 백업 포수였다. 그에게 선발 출장이란 미끼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어서 장비를 챙겨 오라고.”
“킴, 약속 지켜야 해.”
토니는 방을 향해 뛰어가는 스미스를 보곤 김민에게 말했다.
“킴, 정말로 포수 교체를 요구할 생각인가? 하킴이 알게 된다면 마음이 상할 텐데 말이야.”
“하킴도 전 경기 출장은 힘들 겁니다. 제 선발 때 쉬게 해 주면 체력도 세이브 되고 좋죠.”
잠시 뒤 김민과 스미스 그리고 토니가 연습장에 들어섰다.
“스위치는 이 단자함에 있어. 셋 모두 꺼야 해.”
“알겠습니다.”
토니는 김민의 대답을 듣곤 숙소로 되돌아갔다.
남은 것은 김민과 스미스였다.
“스미스, 플로리다는 밤공기가 좋은데.”
스미스가 장비를 한쪽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워밍업 없이 공을 던지면 근육에 무리가 갈 거야. 워밍업부터 하자고.”
그는 퉁명스러운 데가 있었지만, 행동과 말에 포수 특유의 세심함이 묻어났다.
“오케이. 몸부터 풀어야지.”
김민은 빠르게 몸을 풀었다.
‘비디오 캠이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
메이저리그 구단은 투수의 투구 동작을 파악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하곤 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김민은 몸을 재빨리 풀곤 글러브를 들었다.
“초구는 한가운데로 갈 거야.”
“오케이.”
스미스가 자세를 잡곤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간다!”
김민의 외침과 함께 초구가 날아들었다.
팡!
미트의 울림은 나쁘지 않았다.
“괜찮아. 80마일 후반은 나왔을 거야.”
스미스는 미트에서 공을 뺀 다음 김민에게 건네주었다.
김민은 공을 받은 뒤 두 번째 공을 던졌다.
팡!
스미스는 이번 공을 받은 뒤 고개를 갸웃했다.
“킴, 궤적이 조금 다른데?”
“쓰리쿼터로 던져 봤어.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말이야.”
“쓰리쿼터라고? 시즌 중에 투구폼을 바꿀 생각이야? 그건 좋지 않아.”
김민이 공을 받으며 말했다.
“바꿔서 나아진다면 얼마든지 바꾸겠어. 메이저리그는 평범하게 해서는 올라갈 수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보다 이번 공 어땠어.”
스미스가 미트를 툭 치며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는데.”
“오케이. 그럼 다시 한번 반복한다.”
김민은 오버핸드와 쓰리쿼터를 번갈아 가면서 던졌다.
스미스는 10개쯤 공을 받곤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투구폼을 바꾸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까?”
김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연습한 쓰리쿼터가 오버핸드와 같은 정도의 위력이라면 이건 분명 쓰리쿼터가 낫다는 뜻이다.’
그는 글러브를 빼곤 스미스에게 손짓했다.
“스미스, 도와줘서 고마워.”
“어이, 이게 전부야?”
“아까 말했잖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뿐이야.”
스미스가 장비를 챙기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킴, 다음 경기 선발 출전, 약속했어.”
김민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오른손을 내밀었다.
“약속은 지킨다니까.”
3일 뒤, 김민은 약속을 지켰다.
“플레이볼!”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한 김민의 파트너는 스미스였다.
넬슨 감독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킴이 스미스를 지명할 줄은 몰랐어.”
“스미스는 하킴에 비해 경험이 많은 편입니다. 그 점을 높이 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경기를 보면 알게 되겠지. 어떤 면이 마음에 들어 스미스를 지명하게 됐는지 말이야.”
김민은 첫 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켰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여섯 개의 공을 던졌는데 이 중 다섯 개가 볼이었다.
스미스는 김민의 제구가 어긋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킴, 힘을 내달라고, 네 제구가 흔들리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잖아.’
그러나 김민의 흔들리는 제구는 의도된 것이었다. 그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 주변에 공을 던진 것이었다.
‘반 개 정도 빠진 공이 모두 볼 판정을 받았어. 오늘 존은 넓지 않군.’
파업 시즌 이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타자에 유리한 쪽으로 리그를 운영했다.
그 여파는 마이너리그에까지 미쳤다.
김민은 마이너리그 스트라이크 존도 타자에 유리하게 조정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랬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어차피 모든 투수가 동일한 조건에서 공을 던질 테니까 큰 상관은 없어.’
그는 세트 포지션으로 빠르게 공을 던졌다.
틱!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흘러갔다.
‘더블이군.’
김민은 물론 스미스도 더블 플레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땅볼 유도에 성공했어! 그대로 더블 플레이다!’
그러나 크랩스의 내야 수비는 1회부터 말썽이었다.
“유격수가 공을 빠뜨렸어!”
“백업도 없어! 타자와 주자 둘 다 살았어.”
“나이스!”
유격수 다리 사이로 흘러나간 공은 중견수와 좌익수 사이로 굴러갔다.
노 아웃 1, 3루.
시작부터 위기.
김민은 모자를 벗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볼넷 뒤 실책. 어째 지난 경기하고 패턴이 비슷하군.”
그는 모자를 쓰기 전 고개를 유격수에게 돌려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유격수 칼튼은 김민의 사인에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사실 그는 유격수보다는 1루수나 3루수가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
하지만 구단 방침에 따라 코칭 스탭은 칼튼을 유격수로 육성 중이었다.
‘노 아웃 1, 3루. 쉽지 않은데.’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확인했지만, 상대 타선이 만만치 않았다.
3, 4, 5번으로 이어지는 호타순.
게다가 팀 순위도 크랩스보다 두 계단이나 높았다.
김민은 투구 전 스미스를 마운드로 불렀다.
“킴, 방금 실책은 신경 쓰지 마.”
김민이 글러브로 입을 가린 뒤 말했다.
“신경 쓰지 않아. 그보다 원 바운드 볼 처리할 수 있어?”
“원 바운드? 커브를 낮게 떨어뜨릴 거야?”
“아니, 스플리터를 던질 거야.”
스미스가 눈을 크게 떴다.
“스플리터를 던질 줄 알아?”
싱글A 투수들은 프로 경력이 짧았기 때문에 아마추어 때부터 사용하던 커브나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때문에 스플리터나 커터 또는 투심을 던지는 투수는 팀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는.”
스미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킴, 네가 날 선택했으니, 오늘만큼은 널 실망시키지 않겠어. 어떻게든 잡아 줄 테니까 마음먹고 던져.”
낙차 큰 브레이킹볼은 포수에게 큰 부담이었다.
김민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미스를 마운드까지 부른 것이었다.
‘10년 전에는 꽤 던졌는데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겠어.’
그가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사용한 것은 국내에 복귀한 뒤였다.
몇몇 야구팬들은 그가 스플리터를 무리하게 던졌기 때문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민이 스미스에게 말했다.
“스플리터 사인은 모자에 손이야.”
“사인 내기 전에 모자 만지기?”
“그렇지.”
“알겠어.”
스미스가 홈플레이트로 돌아가자 바로 경기가 재개되었다.
탁!
초구는 파울.
두 번째 공은 볼.
세 번째 커브가 다시 커트 되었다.
“잘 따라가고 있어!”
“적시타를 부탁해!”
홈팬들의 응원과 함께 그라운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원 투인가?”
김민은 카운트를 확인하곤 손으로 모자를 만졌다.
스플리터 사인이었다.
스미스는 사인을 확인하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스플리터가 온다.’
그가 미트를 앞으로 내민 순간 김민이 투구를 시작했다.
슉!
스플리터의 구속은 상당히 빨랐다.
얼핏 봐도 85마일(137km) 이상.
타자는 한가운데 패스트볼로 판단해 배트를 내밀었다.
‘강하게 당긴다!’
그러나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떨어졌다.
김민이 마음먹고 던진 스플리터가 제대로 들어갔다.
‘패스트볼이 아니라고?’
배트가 허공을 가른 순간 공이 스미스의 가슴을 강타했다.
퍽!
스미스는 미트로 막을 자신이 없어 원바운드 공을 몸으로 막아 낸 것이었다.
‘막았어.’
타격 코치 후안은 스미스의 낮은 블로킹 자세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블로킹 자세가 아주 좋습니다. 킴이 스미스의 블로킹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 같군요.”
넬슨 감독도 동의했다.
“출장이 많지 않아 몰랐는데 수비력이 나아졌군.”
죽기 살기로 들어간 블로킹.
그 블로킹은 코칭 스탭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스미스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재빨리 주어 1루 주자를 견제했다.
1루 주자는 감히 2루 도루를 시도하지 못했다.
김민은 첫 아웃 카운트를 잡곤 고개를 끄덕였다.
‘스플리터는 여전히 쓸 만해.’
마라클스 코칭 스탭은 방금 아웃당한 3번 타자를 불러 마지막 구종을 물었다.
“포크볼인 것 같습니다.”
“포크볼이라고?”
“노모하고 같은 구종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미라클 코칭 스탭은 타자의 대답에 미간을 좁혔다.
“탬파가 동양인 투수를 트레이드했다고 하더니 포크볼러였나 보군.”
“경기가 쉽지 않겠군요. 우리 팀 타자들은 포크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패스트볼을 골라 때리는 수밖에.”
4번 타자 본은 2라운드 11번 지명을 받은 선수였다. 그의 파괴력은 상위 리그에도 정평이 나 있었다.
‘포크볼러라고? 그런 장난이 내게 통할 것 같아?’
그는 소매를 두 번 걷어 올리곤 타석에 들어섰다.
이것은 타격 전 그의 징크스였다.
김민은 매서운 눈매의 4번 타자를 보곤 살짝 놀랐다.
‘소매 두 번…… 본이잖아.’
그와 본은 2004년 트리플A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즉, 본은 4년이 지난 뒤에도 마이너리그를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콜업은 그만큼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