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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7화 (7/296)

7화 샬로트 스톤 크랩스 02

존이라 불리는 프런트 직원이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해는 졌지만 아직 퇴근 안 한 직원이 있을 겁니다.”

“저곳이 숙소입니까?”

“해안가를 바라보고 있는 멋진 숙소죠.”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멋지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존은 길게 이어진 단층 건물로 김민을 안내했다.

‘상위 싱글A 팀이니까. 틴캡스 숙소보다는 낫겠지만, 어차피 마이너리거 팀, 큰 차이는 없겠지.’

마이너리그 숙소는 국도변 모텔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살짝 못한 정도였다.

“여깁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호텔 로비처럼 꾸며진 휴게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김민은 화이트 톤의 깔끔한 인테리어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가 마이너리그 숙소 맞나? 리조트 아니야?’

존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 없나?”

잠시 뒤 안쪽에서 머리카락이 반쯤 빠진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이게 누구야? 존이잖아.”

“토니, 아직 퇴근 안 했나?”

“누가 온다고 해서 말이야.”

존이 김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야.”

토니는 김민의 검은 머리카락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 친구로군. 태평양을 건너온 특급이.”

태평양을 건너온 특급.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찬사였다.

트레이드 과정에서 무슨 말이 오간 것일까?

“킴이라고 합니다.”

“킴, 반갑네. 난 토니야. 숙소와 연습장을 관리하고 있지. 플로리다에 온 것을 환영하네.”

토니는 김민과 악수한 뒤에 프런트에서 키를 가져왔다.

“407호가 자네 방일세. 저쪽 복도로 나가서 오른쪽이야. 그리고 짐은 그게 다인가?”

“예, 이게 전부입니다.”

“좋아. 우리 기숙사는 1인 1실이니까 큰 불편은 없을 거야.”

틴캡스에서 김민은 톰슨과 함께 방을 썼다.

“다 1인 1실입니까?”

“여긴 그래. 그리고 여자를 숙소에 데려오면 안 돼, 애완동물도 마찬가지야. 약(마약)은 절대 안 되고, 마리화나를 피워서도 안 돼. 숙소에서 음주는 자유지만 다음 날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마시면 아마 팀에서 방출될 거야. TV도 마찬가지야. 너무 늦게까지는…….”

토니는 지켜야 할 규칙을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는 말을 마치곤 한 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인적 사항은 작성해서 내일 아침까지 줘. 그리고 유니폼은 내일 오후 중으로 준비가 될 거야. 내일 아침 연습 때는 이걸 입도록 해.”

그가 가리킨 유니폼에는 에릭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마 김민과 트레이드되어 샌디에이고로 날아간 선수의 것 같았다.

“혹시 인터넷이 되는지 알 수 있습니까?”

“인터넷?”

“네.”

“그런 건 몰라.”

인터넷의 나라 미국이었지만, 2000년 초반만 해도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인터넷을 쓰려면 시내까지 가야 할 것 같군.’

토니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김민에게 말했다.

“그럼 좋은 꿈 꾸게.”

“퇴근하시는 겁니까?”

“이제 가야지. 자네 때문에 이 시간까지 머물러 있었던 거야.”

“수고하셨습니다.”

토니는 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숙소를 나섰다.

혼자 남은 김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기척이 없는 걸 보면 팀원들은 원정을 나간 모양이군.’

딸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쾌한 냄새가 났다.

방 컨디션은 김민이 생각한 이상이었다.

“이야. 이거 완전 호텔 방이군. 플로리다는 날씨만 좋은 게 아니었네.”

마이너리그 7년 중 1년 정도는 플로리다에서 뛸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긴 내게 선택권이 있던 적이 없었지.”

김민은 틴캡스에서 방출된 뒤로는 항상 팀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여기서는 조금 오래 뛰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경기를 뛰었지.”

선발로 6이닝 101구나 던졌는데 아이싱은커녕 샤워조차 못 한 상태였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정말 숙소는 끝내주는군.”

마치 고급 리조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만큼은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잠에서 깨면 20년 뒤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

그러나 20년 뒤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시작한 아침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김민은 해변으로 나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경치는 정말 끝내주는군.”

멕시코 만의 바다와 날씨는 카리브해 못지않았다.

“아침부터 러닝인가?”

토니의 인사에 김민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팀은 원정입니까?”

“모래 돌아올 거야.”

그가 플로리다에 도착한 날 원정을 떠난 것 같았다.

“식사는 휴게실에서 같이 하지. 오늘 식당은 열지 않거든.”

“알겠습니다.”

러닝을 마치고 식당에 들어서자 토니 외에 두 명의 선수가 더 있었다.

“이쪽은 스미스고, 저쪽은 브래들리야. 두 명 모두 부상이 있어서 원정을 함께하지 못했지.”

“킴이라고 해.”

두 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인사를 받았다.

“스미스야.”

“난 브래들리.”

숙소는 좋았지만, 식사 자체는 그리 좋지 못했다.

‘아침이라 그런 건가? 식단은 틴캡스와 차이가 없네.’

식사가 끝난 뒤 김민은 토니에게 노트 한 권을 얻었다.

“일기라도 쓰려는 건가?”

“훈련일지를 만들려고요.”

“훈련일지?

“그냥 일기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훈련일지.

김민은 팀에 신인 투수가 입단하거나 트레이든 된 선수가 도착하면 항상 그의 이름으로 된 훈련일지를 만들었다.

“훈련일지에 내 이름을 적어 넣게 될 줄이야.”

김민은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도렐의 말대로 난 특별한 것이 없는 투수다. 이대로 나간다면 몇 년 뒤에도 마찬가지겠지.’

그는 가장 먼저 룰모델이 될 수 있는 선수를 찾았다.

‘랜디 같은 선수는 나랑 전혀 안 어울리고, 같은 체형과 구속을 지닌 선수를 모델로 삼는 게 좋겠지.’

김민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대량 90마일(145km) 전후.

구속만 보면 마스터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렉 매덕스가 딱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구력은 매덕스와는 차이가 컸다.

게다가 매덕스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대부분 투심 패스트볼로 그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과는 무브먼트 자체가 달랐다.

‘무리야.’

그는 매덕스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키는 좀 차이 나지만 구속과 구종으로 보면 이 투수가 가장 근접할 것 같군.’

김민이 룰모델이라고 적어놓은 곳에 표기한 이름은 바로 ‘크리스 카펜터’였다.

크리스 카펜터는 통산 144승을 거둔 투수로 2005년 사이영상 수상, 2006년과 2011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였다.

그는 텍사스와 상대한 2011년 월드시리즈에서 1, 5, 7차전에 출전 등판 모든 경기를 퀄리티 스타트로 마무리하는 위력투를 선보였다.

‘패스트볼 구속은 대략 90마일 초반. 주 무기는 커브와 커터 그리고 서클체인지업. 뛰어난 제구력과 노련미로 타자를 잡아내는 스타일. 지금의 나로서는 먼 산과 같은 존재군. 하지만 매덕스의 마법과 같은 제구를 쫓아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현실성이 있지.’

2000년 당시 김민은 커브와 어설픈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미래에서 온 김민은 완성도는 떨어져도 앞에 언급한 카펜터의 구종을 모두 던질 수 있었다.

“카펜터의 투구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군.”

그가 코치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레전드 투수들의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지금 인터넷에서 그런 동영상을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프런트에 요청해 볼까?”

그는 숙소를 나와 구단 사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김민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 명의 직원이 일제히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김민, 킴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모자를 눌러쓴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아! 태평양을 건너온 특급이 바로 자네군.”

‘태평양을 건너온 특급이란 말은 대체 누가 만들어 낸 것일까?’

김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토론토 선발 투수의 비디오? 같은 지구 팀이니까 테이프는 몇 개 구해 줄 수는 있는데 방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을걸?”

“대여 가능한 곳이 없을까요?”

“글쎄.”

짧은 머리를 한 남자 직원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여는 찾기가 힘들 겁니다. 오래 쓸 거라면 중고로 구입하는 게 낫죠.”

김민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트 하나 사는 것도 부담이 되는 마이너리거에게 비디오 시스템 구축이라.’

20년 전이었다면 망설일 것도 없이 패스였다.

하지만 미래에서 온 김민은 달랐다. 그는 비디오 시스템을 통한 분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2시쯤 시내로 나갈 겁니다. 그때 함께 가도록 하죠.”

.

.

.

3시간 뒤.

김민은 먼지가 쌓인 비디오 플레이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제대로 작동할지 모르겠군. 설마 고장이 난 것은 아니겠지.’

그의 걱정과 달리 비디오 플레이어는 깨끗한 화질을 보여 주었다.

“잘 작동되네요.”

구단 직원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카펜터의 투구 영상을 손에 넣는 것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는 트로피카나 필드(탬파베이 홈구장)에 있을 겁니다. 전화로 연락을 했으니, 아마 2, 3일 뒤면 도착할 겁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래의 에이스를 위해서인걸요. 태평양 특급, 기대합니다.”

김민은 태평양 특급이란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들으면 포스팅 시스템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줄 알겠어.’

2000년 현재 메이저리그와 아시아 프로 리그의 포스팅 시스템은 아직 제대로 정착된 상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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