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6화 (6/296)

6화 샬로트 스톤 크랩스 01

도렐 투수 코치와 공항으로 가는 길.

김민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틴캡스에서 뛰는 내내 도렐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기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을 깬 것은 김민이 아닌 도렐이었다.

“플로리다에 가 봤나?”

김민이 고개를 돌렸다.

“아뇨.”

“플로리다는 좋은 곳이지.”

“도렐은 가 봤습니까?”

“물론 내 고향이 새러소타라고.”

새러소타는 플로리다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였다.

“따뜻한 햇볕과 바닷바람 그리고 환한 얼굴을 한 사람들. 모든 것이 좋은 동네야.”

도렐이 이렇게 부드러운 사람이었던가?

“새러소타가 고향인데 꽤 멀리까지 오셨네요?”

“직업이 직업이니까. 킴은 나보다 더 멀리서 오지 않았던가?”

“태평양을 건넜죠.”

“그렇게 어두운 얼굴 할 필요 없어. 탬파는 기회의 땅이니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998년 창단한 이 팀은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김민의 기억이 맞다면 이번 시즌도 탬파는 꼴찌였다.

탬파가 꼴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2000년대 중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앞으로도 쭉 꼴찌를 기록할 예정이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실력은 아니지만 3년 정도 갈고 닦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평소 도렐의 음성은 고압적이었다.

하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옆집 아저씨같이 부드러웠다.

‘도렐은 선수를 키우기 위해 일부러 고압적인 말투를 사용했던 건가?’

10년의 코치 경험.

그 덕분에 김민은 도렐의 행동이나 생각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도렐, 제게 가장 부족한 것이 뭘까요?”

도렐은 뜻밖의 질문을 받은 듯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글쎄…… 킴의 부족함이라…….”

그는 말없이 1분 정도를 운전한 뒤 답을 내놓았다.

“킴의 가장 부족한 부분은 장점이야.”

“예?”

“특출난 부분. 즉 자신만의 무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김민이 도렐에게 되물었다.

“상대를 제압할 만한 구종이 없다는 뜻입니까?”

“구종도 그렇고. 딱히 이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단 말이지.”

도렐의 지적은 꽤 정확했다.

김민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됐지만,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그가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년의 야구 경력 덕분이었다.

‘강속구를 가진 것도, 뛰어난 구종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구력이나 체력이 압도적인 것도 아니고…… 도렐 코치의 말이 맞아. 지금의 난 아무 강점이 없는 무색무취 투수다.’

도렐이 핸들을 살짝 꺾으며 말했다.

“대답을 하긴 했는데. 질문이 썩 좋지 않군.”

“질문이 좋지 않다고요?”

“우린 선수의 장점을 보지 단점을 보지 않아. 따라서 그 질문은 아웃이야.”

“아…….”

메이저리그식 선수 육성.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한다.

이와 같은 육성법은 선수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식 육성법이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기가 부족하거나 김민처럼 특출 난 장점이 없는 선수들은 꽃을 피워 보기도 전에 도태될 가능성이 컸다.

“솔직히 킴은 위험했어.”

“…….”

“팀의 30번째 선수였으니까.”

틴캡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이었다.

파드리스는 스몰마켓 구단이었기 때문에 비용에 민감했다.

그래서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구단들은 선수 한 명이 추가될 때마다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선수를 방출하곤 했다.

김민이 20년 전 방출 되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 호투로 30번째에서는 벗어났지. 하지만 지난 경기와 그 전 경기는 정말 안 좋았어. 감독과 수석코치가 모두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고. 덧붙여 말하면 킴처럼 계약금이 작은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해.”

김민은 알폰소에게 홈런을 맞고 무너진 오늘 경기는 기억했지만, 그 전 경기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제구가 불안했던가? 아니면 무모하게 승부 하다가 장타를 맞았던가?’

도렐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이번 경기는 좋았어. 도망가는 피칭이 적었으니까. 용맹한 전사처럼 공을 던지더군. 공에 자신감을 되찾은 건가?”

“알폰소 같은 타자를 상대로 물러서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러서면 이길 수 없다. 맞는 말이야. 알폰소에게 등을 돌리면 그것으로 끝이지. 상대는 알폰소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

도렐은 김민이 트레이드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제대로 키워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군.’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탬파에서 킴을 지명했을 때, 마치 스틸 픽(낮은 순번에 뛰어난 활약)을 당한 기분이었어.”

“탬파가 왜 절 지목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오늘 전까지 김민은 팀의 30번째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메이저리그 팀인 탬파베이에서 주목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탬파 스카우트가 오늘 구장을 찾았던 모양이야.”

“그럼 스카우트가 즉석에서 절 데려가겠다고 결심한 겁니까?”

“트레이드는 원래 2:4 트레이드였어. 우리가 2명이고 그쪽이 4명이었지. 한데 탬파에서 불리한 트레이드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탬파가 거래를 깨려 하자 우리 쪽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 틴캡스 선수 중 한 명을 내어주겠다고.”

“아무나 말입니까?”

“그래 아무나. 사실 이쪽은 덤 같은 거지. 중심은 트리플A 유망주 2명이니까.”

파드리스가 아무나 보내 주겠다고 제안한 것은 틴캡스가 싱글A, 그것도 하위 싱글A였기 때문이었다.

상위 싱글A는 상위 지명권자가 제법 많았기 때문에 아무나 라는 말을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반면 하위 싱글A는 1년 계약 또는 하위 라운드 지명자가 대부분이었다.

“스카우트는 오늘 경기만 보고 데려갈 선수를 정한 거군요.”

“탬파는 선발 투수 위주로 봤던 것 같아.”

“제가 지명된 것은…….”

“오늘 호투도 있지만, 동양인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봐야겠지. 킴이 잘 커 준다면 구단 수익에 상당한 도움이 될 테니까.”

도렐은 공항까지 가는 동안 트레이드 전후 사정과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김민은 도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20년 전 자신이 왜 방출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 * *

김민은 공항에 도착한 뒤 도렐과 작별을 고했다.

도렐은 그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메이저리그는 꿈을 꾸는 자에게만 열려 있는 곳이야. 절대 그곳을 포기해선 안 돼.”

“알겠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김민은 도렐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인 뒤 탑승구로 향했다.

‘도렐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어. 당시 내 시야가 좁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보였던 거야.’

그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신문을 여럿 구매했다.

20년 후 미래에서 왔기 때문에 최근 소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김민은 비행하는 동안 신문, 특히 경제면을 꼼꼼하게 읽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써먹어 보려고 한 것이다.

야구 선수 이전에 그도 사람이었다.

“틀렸어.”

김민이 틀렸다고 말한 것은 구글이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은 순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IT 벤처 기업은 구글 정도인데. 벌써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답이 안 나와.’

김민은 2000년 구글을 조그만 벤처 기업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구글은 이미 수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할 만큼 성장한 상태였다.

그가 가진 푼돈으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애플이나 삼성 정도인가?’

애플이나 삼성은 구글보다도 훨씬 컸다.

미래의 수익을 노리고 두 기업의 주식을 살 수는 있지만, 가진 돈이 너무 적어 큰 이익은 기대할 수는 없었다.

‘소설처럼은 안 되는 거구나.’

투자 전문가나 경제에 밝은 경우가 아니고는 2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야구 선수는 야구로 승부는 보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 * *

탬파 국제공항.

김민을 마중 나온 것은 탬파베이 프런트 직원이었다. 그의 곁에는 먼저 도착한 유망주 한 명이 서 있었다.

“킴 선수는 샬로트 스톤 크랩스로 갈 겁니다. 그리고 데릭 선수는 아직 팀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구단 숙소에서 며칠 기다리면 팀이 정해질 겁니다.”

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탬파의 날씨, 좋지 않습니까?”

김민은 쏟아지는 햇살을 손으로 막으면서 대답했다.

“인디애나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는군요.”

“그렇죠? 탬파는 최고입니다.”

데릭은 탬파가 어색한지 이마를 찌푸렸다.

“숙소는 여기서 먼 겁니까?”

“다리만 건너면 됩니다.”

탬파베이 구단이 위치한 곳은 탬파가 아닌 세인트피터즈버그였다.

세인트피터즈버그는 탬파 서쪽에 위치한 인구 25만의 도시로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철자까지 완벽하게 같았다.

두 도시가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세인트피터즈버그를 만든 피터 디멘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출발하죠.”

차는 공을 빠져나가 해안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몇 분 뒤, 다리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이야. 이거 차가 막히는군요.”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탬파와 세인트피터즈버그를 연결하는 다리는 상습 정체 구간 중 하나였다.

다시 말해 그는 다리의 교통 체증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곧 풀릴 겁니다.”

다리의 교통 체증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흥행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훗날 탬파베이가 지구 선두를 달릴 때도 탬파에 사는 팬들은 야구장을 찾기보다는 TV 시청을 선택하곤 했다.

김민이 탬파베이 홈구장에 도착한 것은 약 2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길이 생각보다 많이 막혔습니다. 데릭 선수는 오른쪽 구단 사무실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킴 선수는…… 저하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머네요. 하하하…….”

싱글A 구단 샬로트 스톤 크랩스의 연고지는 플로리다 서남부 포트 샬로트.

세인트피터즈버그에서는 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차는 남쪽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브레이든던과 세인트피터즈버그를 연결하는 남쪽 다리는 탬파쪽 다리와 달리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이제야 달릴 맛이 나는군요.”

차의 속도계는 80마일(130km)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김민이 위쪽 손잡이를 잡으며 물었다.

“이렇게 과속해도 되는 겁니까?”

“퇴근 시간이 지났거든요. 그건 그렇고 두 사람 모두 왜 탬파 공항으로 표를 끊은 겁니까?”

“네?”

“공항은 세인트피터즈버그에도 있다고요. 두 사람이 이쪽 공항에 내렸다면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었을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세인트피터즈버그에도 국제공항(세인트 피트-클리어워터 국제공항)이 있었다.

다만 이곳에 취항하고 있는 항공사의 수는 탬파 국제공항보다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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