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5화 (5/296)

5화 리스타트 04

“존슨, 제대로 보고 때려!”

“존슨! 파이팅!”

“너만 믿는다!”

홈팬들은 5번 타자 존슨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김민은 20년 전과 달랐다.

알폰소에게 볼넷을 내주고 흔들리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차분하게 타자를 관찰했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그리고 5번 타순. 하위 싱글A라는 걸 생각하면 선구안이 부족한 파워형이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내 공으로는 이겨낼 수 없을 거야.’

싱글A에서 파워와 컨택을 모두 갖춘 선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눈에 띄는 약점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김민은 5번 타자 존슨의 약점을 선구안으로 판단했다.

‘선구안이 부족한 파워형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패스트볼이다. 지금 내가 그 공을 던질 수 있을까? 아니, 그 정도도 못 던져서는 마이너리그에서조차 살아남을 수가 없다. 반드시 던질 수 있어야 해.’

그는 헤슬러와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그리곤 호흡을 조절하고 투구에 들어갔다.

‘제발 들어가다오!’

슉!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 근처에서 형성되는 볼.

문제는 의도한 것보다 공 하나 정도가 더 빠졌다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타자를 유인하기 힘들었다.

‘틀렸어.’

김민이 체념한 순간 존슨의 배트가 움직였다.

그의 선구안이 예상한 것보다 더 나빴던 거다.

탁!

빗맞은 타구.

평범한 타자였다면 내야 플라이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존슨은 힘으로 내야를 넘겨 버렸다.

파워 역시 선구안처럼 예상이었다.

2루수 스털링은 공을 따라가다가 멈추곤 목소리를 높였다.

“해리!”

중견수 해리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맡겨 줘!”

자칫 잘못하면 행운의 안타가 될 수도 있는 타구.

해리는 전력으로 질주해 그 타구를 잡아냈다.

“나이스 캐칭!”

“나이스 플레이!”

러그너츠는 무사 1, 2루의 찬스를 잡았으나 단 한 점도 뽑지 못한 채 공격이 끝나고 말았다.

“좋았어. 무실점으로 막았어!”

무사 1, 2루의 위기를 실점 없이 넘긴 틴캡스.

선수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외야수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곤 그들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했다.

“해리, 나이스 캐칭.”

“오, 킴이 직접 맞아 주는 건가?”

“다음 회도 부탁한다고.”

투수 코치 도렐은 김민의 적극적인 행동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야수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 회를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야수들을 격려하는 것은 투수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톰슨이 다가왔다.

“1회부터 아슬아슬하구나.”

“제구가 잘되지 않아서 말이야. 몸이 덜 풀렸나 봐.”

“러그너츠는 조심해야 해. 중심 타선이 정말 강하단 말이지.”

김민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그라운드를 주시했다.

‘말로 가르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해내는 건 하늘과 땅 차이군.’

그는 1회 말 투구에 100점 만점에 40점을 주었다.

자신이 투수 코치였다면 경기가 끝난 뒤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2회 초.

위기 뒤 기회라고 했던가?

틴캡스 타선이 선취점을 뽑아냈다.

“나이스 배팅!”

“잘한다. 오스카!”

오스틴의 홈런으로 단숨에 2득점.

틴캡스는 2-0으로 러그너츠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김민은 타선이 힘을 내준 덕분에 여유를 가지고 2회 말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킴이 좋군요.”

“볼의 위력은 그대로인데 운영이 좋아졌군. 루키에게 보기 힘든 노련미야.”

2회 말 김민은 중전 안타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를 더블 플레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쳤다.

2이닝 무실점.

20년 전에는 이 시점에서 이미 3점을 내준 상태였다.

김민은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매회 그는 자신감 있게 공을 뿌렸다.

경기가 끝났을 때 그는 동료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킴, 축하한다.”

“오늘 정말 잘 던졌어.”

2이닝 7실점으로 무너졌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날 김민의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6이닝 2실점 1자책점 삼진 4개 볼넷 3개

승리 투수는 덤이었다.

틴캡스 선수들은 유니폼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에 올랐다.

숙소는 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모텔이었다.

김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투구를 꼼꼼하게 평가했다.

‘1회는 정말 좋지 않았어. 밸런스가 잡혀 있지 않았으니까. 2회에는 60점 정도…… 3회도 딱 그 정도였지. 4회는 좋지 않았어. 실책이 나왔다고 해도 거기서 그런 공을 던져서는 안 됐지. 야수를 믿지 못한 거야.’

그는 자신이 마치 코치처럼 저 자신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코치 시절 버릇이 나와 버린 건가? 그래도 경기를 복기한다는 건 나쁜 습관은 아니야.’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을 때였다. 톰슨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킴, 감독님이 버스 뒤에서 잠깐 보자고 하시더라.”

“날?”

“그래.”

김민은 눈을 크게 떴다.

‘감독이 버스 뒤로 부른다는 것은…… 승리 투수가 됐지만,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는 건가?’

그는 마른침을 삼키곤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설마 그때와 같은 말을 듣는 건 아니겠지.’

20년 전 이날.

김민은 버스 뒤에서 감독에게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킴, 왔나?”

감독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아마 20년 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김민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절 부르셨다고요?”

“오늘 호투…… 인상적으로 보았네.”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투구였어. 이건 빈말이 아니야.”

20년 전과는 다른 대사였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늘 투구에 대한 대화가 아니었다.

“난 자네의 포텐을 높게 보았지. 한데 위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군.”

“감독님…….”

김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드디어 방출인 건가?’

20년 전.

김민은 2이닝 7실점으로 무너진 뒤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2년 차 신인이 그것도 싱글A에서 방출 통보를 받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클 싹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었겠지.’

김민이 속으로 한숨을 내쉰 순간 감독이 말을 이었다.

“킴, 미안하게 됐네. 자네는 트레이드되었어.”

김민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트레이드라니요.”

방출이 아니었다.

‘오늘 투구로 인생이 바뀐 건가?’

감독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를 선택한 팀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일세. 어떤 마이너리그팀에 들어갈지 알 수는 없지만, 탬파에 가서도 잘해 주길 바라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메이저리그에 막 입성한 신생팀이었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면 도렐이 차를 가져올 거야. 도렐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정리하게.”

원정 경기.

그것도 버스 뒤에서 전해진 트레이드 소식.

김민은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할 틈조차 없었다.

감독은 어깨를 두드리며 떠났고, 김민은 주차장에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버스가 떠난 뒤 김민은 풀썩 주저앉았다.

“탬파베이라. 7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팀이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그와 조금도 인연이 없는 팀이었다.

“탬파베이가 우리나라 투수와는 어땠더라.”

김민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래, 탬파베이, 서지은이 활동했던 팀이었을 거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아마 2006년? 아니 2007년이던가? 그쯤이었을 거야.’

당시 김민은 국내 복귀를 고민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다른 선수에게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부우우웅…….

낯선 배기임과 함께 캠리(도요타의 중형 세단) 한 대가 그의 앞에 섰다.

“킴, 타라고.”

도렐 투수 코치였다.

김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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