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1. 들켰다 (1/20)

1. 들켰다

[다음 주면 볼 수 있겠네. 보고 싶다.]

그 메시지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서진우가 좌석 시트에 몸을 눕힌다. 비행기는 아직 이륙 전이다. 정서원에게 날짜까지 속여 가며 몰래 귀국하는 보람이 있긴 할까. 숙맥 같은 정서원이 자신 몰래 다른 남자를 꾀어내는 능청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파릇한 중학생 때부터 지켜봐 왔던 사람이다. 다소 호기심이 많긴 했지만 동시에 겁도 많은 정서원에게 바람이란 섣불리 도전할 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싶다가도, 정서원이 다른 남자에게 끌어안긴 채 모텔로 향하던 사진은 서진우의 기나긴 믿음에 의심을 틔웠다. 곧장 사람을 붙여 행적을 파헤쳐 봤지만 그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형이 바람을 피웠다고.’

서진우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서울로 향하는 15시간의 비행이 터지기 직전의 분노를 간신히 짓누른다. 아무튼,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그만이었다.

* * *

가슴이 쓰라렸다. 정서원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화장실로 도망쳐 나와 주섬주섬 셔츠를 걷어 올렸다. 퉁퉁 부은 젖꼭지가 자기주장을 하듯 꼿꼿이 서 있었다.

납작한 가슴에 도착증이라도 있는 것인지 남자는 잠자리 때마다 정서원의 가슴을 집요하게 물고 빨아댔다. 다음 날이면 아무 자극 없이 홀로 곤두서 있을 정도로. 가슴을 만져지는 게 딱히 싫은 것은 아니었다. 남자는 가슴으로도 충분히 절정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곳저곳 아낌없이 쓰다듬으며 도와주었다. 어플로 만난 사람 중에 손꼽히게 매너가 좋았고, 성기도 컸으며, 좋은 곳을 흠씬 찌를 줄 아는 노련함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정서원은 쓰라림을 참고 다시 셔츠를 정돈하였다. 예민해진 가슴에 야릇한 전율이 스칠 때마다 남자가 해 준 조언이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애써 털어 냈다.

- 정 그러면 밴드라도 붙이지 그래요?

아니면 브래지어라도 사 드릴까? 다음엔 그거 입고 해 줄래요? 능글거리는 말을 생각해 주는 척, 다정한 척 쏟아 내던 사람이었다. 진짜 밴드라도 붙였다간 또다시 집요한 놀림을 받게 될 것이다. 정서원은 문득 서진우가 몹시도 보고 싶어졌다. 메신저를 확인해 봤지만 자신이 보낸 문자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었다. 그리움이 슬프도록 사무쳤다. 그래서 어플을 켰다.

‘키가 큰 사람이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정서원은 무수하게 쌓인 메시지를 내리고 내리며 서진우를 닮은 사람을 찾았다. 물론 연예인 중에서도 드문 피지컬과 페이스를 어플에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했지만 오늘은 딱히 연락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정서원이 한 명을 골라 답장을 보냈다. 

[오늘 만날래요?]

183cm라 적어 놨으니 실제로 보면 180cm를 겨우 넘길 것 같다. 180cm라 적어 놓은 사람은 실제로 178cm쯤 되겠지. 어플을 이용하며 터득한 쓸모없는 노하우는 그럭저럭 기대를 깎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한동안 화장실 칸막이에 틀어박혀 낯선 상대와 만날 약속을 잡던 정서원이 느지막이 자리를 나선다. 8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약속 장소로 향하면 될 것 같다. 남자 친구가 바람난 자신을 잡으러 뉴욕에서 날아오고 있는 것을 모르는 정서원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로 향했다.

오늘은 오후 강의였던지라 길게 시간을 죽칠 필요도 없었다. 주문했던 아이스티가 바닥나자 정서원은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남자에게서 온 메시지가 몇 개 쌓여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어제 너무 울던데.]

[사과하는 의미로 저녁 대접할게요^^ 서원 씨 좋아하는 걸로.]

남자의 패턴은 이제 둔한 정서원에게도 빤히 보였다. 어영부영 따라나섰다가는 비싼 밥 먹고 그만큼 침대에서 노동을 해야 하는 수가 있었다. 정서원은 어젯밤 저를 펑펑 울리던 남자를 떠올렸다. 조금만 훌쩍거려도 ‘아파?’, ‘힘들어?’, ‘괜찮아?’ 따위의 말을 늘어놓던 서진우와 달리, 남자는 나긋나긋 웃으며 우니까 더 보기 좋다는 소리나 해댔다.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서원 씨 또 어플 이용하는 건 아니죠?]

메시지를 마저 읽던 정서원이 화들짝 놀라 숨을 삼켰다. 어떻게 안 거지? 남자는 자신이 어플을 이용하는 걸 영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째 매번 어플이 삭제되어서 계속 재설치를 한다고 한탄했더니, 그는 약간 우스운 듯한 표정으로 “오류인가 보네요.”하고 말았었다. 나중에야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남자가 어플을 삭제한다는 걸 알고 잠금을 걸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아무리 비밀번호를 바꿔도 어플이 계속 삭제되는 것이다. 정서원은 그 사실을 조금 소름끼쳐 했지만, 그는 그저 지쳐 잠든 정서원의 지문을 이용했을 뿐이다.

[아니에요. 근데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못 만날 것 같습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긴, 회사원들은 아직 한창 일할 시간이었다. 정서원은 핸드폰을 다시 꺼놓고 책을 팔락팔락 넘겼다. 서진우가 없는 몇 주간 제대로 된 대학생 노릇을 하지 못한 탓에 해야 할 공부가 많았다. 막막한 것과 동시에 조금 후회가 되었다. 정서원은 틈만 나면 제가 먹여 살리겠다며 사탕발림을 하던 한 살 어린 애인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났다.

몇 시간 뒤, 샌드위치로 출출함을 적당히 달랜 정서원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약속 장소는 카페에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앞이었다. 정서원은 약속 장소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저 도착했어요, 메시지를 보내기도 전에 웬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저기, 혹시?”

고개를 돌려 보니 사진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대충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웃는 낯으로 서 있었다. 정서원은 어플 속 제 닉네임을 밝히며 남자와 제 키를 대략 비교해 보았다. 역시 180cm가 겨우 될 것 같다. 예상이 맞아떨어져 기분이 좋아진 정서원이 웃자 남자가 덩달아 실실 웃는다. 남자는 실물이 훨씬 낫다는 말을 지루하게 늘여가며 정서원을 자연스레 모텔촌으로 이끌었다.

“계속 메시지 보냈었는데 이제야 보게 됐네요.”

“아……. 제가 어플 확인을 잘 안 해서요.”

“그럼 제가 운 좋게 걸린 건가 봐요.”

정서원이 조금 서먹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낯을 많이 가리는 탓에 약속은 잘 정해 놓고도 막상 만날 때마다 긴장이 된다. 정서원은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손끝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혼자서는 도저히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매일같이 남자를 만났지만, 어째선지 만날수록 허전해진다. 진우와 닮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까? 지금은 한국에 없는 서진우가 몹시도 간절해졌다. 

“아…!”

그런데 문득, 누군가 뒤에서 팔목을 낚아챘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기가 무섭게 곁에 있던 남자가 주먹에 맞아 내동댕이쳐졌다. 정서원의 시선은 그에게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붙잡힌 팔목에 힘이 주어진다. 정서원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서있었다.

“형, 이런 데 있었네?”

수려한 얼굴이 만개하듯 화사하게 웃는다. 서진우. 지금,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정서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으나 되레 팔목만 더욱 세게 붙잡혀 끌려왔다. 그리운 향이 몸을 감싼다. 우습게도, 영 사태 파악을 못 하는 정서원은 순간 기분 좋은 안도감을 느꼈다.

“너, 씨발, 뭐야?!” 

길바닥에 나자빠졌던 남자가 뒤늦게 달려들었다. 서진우는 정서원이 도망 못 가도록 꽉 붙잡은 채로 달려든 남자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뻑!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비명을 내지른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정서원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에게 서진우는 언제나 귀엽고, 착하고, 순한 동생이었다. 이렇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바꿔 말하자면, 그렇게 순한 서진우가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를 만큼 화가 났단 뜻이리라. 정서원은 드디어 스스로 벌여 놓은 상황이 실감이 되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바람난 거 들켰나?”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난데없는 소란에 행인들의 시선이 꽂힌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알파와 그 손에 붙잡힌 채 겁에 질려 있는 오메가는 누가 봐도 뻔해 보였다. 남자가 정서원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정서원은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결국 남자는 당장에라도 저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는 서진우에게서 꽁무니를 뺄 수밖에 없었다.

소란이 잦아들자 그들에게 멈추었던 시선도 사라진다. 정서원은 자신의 어깨와 팔뚝에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듯 털어 주는 서진우를 보았다. 마주 볼 용기가 없는 시선은 목젖 근처에서 멈추었다. 

서진우는 제 시선을 피하는 정서원의 고개를 잡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뉴욕에 가 있는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눈치를 보고 있다. 반듯한 이목구비를 핥듯 음미하는 서진우의 손길은 부드러웠으나, 또 금세 사나워졌다. 윽, 그새 빨개진 손목을 다시 붙잡힌 정서원이 신음을 낸다. 그가 올려다본 서진우는 정서원이 서 있는 곳을 재차 확인이라도 하듯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골목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무표정에 서린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무서웠다. 시선을 피하기도 전에 서진우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리찍듯 정서원을 향했다. 정서원의 초조한 입술이 빠금 벌어졌다가 도로 닫힌다. 서진우가 진하게 웃었다.

“나 없는 동안 재밌게 놀았어?”

* * *

매서운 손길이 다짜고짜 뺨으로 날아들었다.

뒤늦게 불길처럼 찾아드는 통증을 느끼며 정서원은 맞은 뺨을 부여잡았다. 여태껏 한 번도 손을 올린 적 없던 진우였다. 정서원은 제 과오는 몽땅 젖혀 두고 당장의 서러움에 눈물부터 고였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내 정서원과 함께였던 서진우는 불면 날아갈까 쥐면 깨질까 저보다 한 살 많은 형을 금지옥엽처럼 챙겼었다. 손찌검은커녕 모진 말을 내뱉은 적도 없었다. 

“진, 진우야.”

“다른 새끼 좆 물었던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흐윽. 진우야, 왜 그래……. 나 무서워.”

“그 싼 입 닥치라고!”

무섭게 을러대는 목소리에 정서원이 질끈 눈을 감는다. 다행히 손찌검은 두 번 날라들지 않았다. 그는 서진우와 단둘이 있는 것이 난생처음으로 두려워졌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이 진우에게 제발 가엾게 보였으면 싶었다.

물론 배신감에 눈이 뒤집힌 서진우에게는 부질없는 눈물이었다. 서진우는 바들바들 떠는 정서원을 끌어다 침대 위로 내던졌다. 모텔의 노르스름한 주광등을 받은 몸이 울음과 함께 떨리고 있다. 귀하디귀한 그를 아무 데서나 품고 싶지 않아 몇만 원짜리 모텔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었는데 정작 정서원은 다른 놈과 이따위 곳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하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저를 두고 만난다는 새끼가 고작 그 정도 수준인 것도 열이 받았다. 형이 뭐가 모자라서? 서진우가 치미는 격분을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자 웅크린 몸이 더욱 서럽게 떨렸다.

“흑, 흐으, 읏.”

“형이 뭘 잘했다고 울어?”

분노에 잠긴 목소리는 늘 다정한 말만 들어온 정서원에게 몹시 낯선 것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자신이 알던 진우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정서원은 눈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찢어발기듯 옷을 벗겨 내는 서진우에게 얌전히 몸을 내주었다. 주광등 아래 훤히 드러난 몸에는 아직 지난 정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지난 두 달간 어머니를 따라 해외에 다녀온 서진우가 남겼을 리 없는 흔적들이었다. “씨발.” 그는 자그맣던 젖꼭지가 퉁퉁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욕설을 짓씹었다. 서둘러 아랫도리를 벗겨 내고 맥없이 움츠러드는 다리를 억지로 펼쳐 보자 그 안에도 흔적이 가득하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자그만 구멍에다 손을 대봤지만 역시나 부어 있다. 이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정서원이 정말 자신이 아닌 다른 새끼에게 몸을 내준 것이다.

“흑! 진, 진우야. 아파…….”

다리를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줬는지 정서원이 서럽게 울먹였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현장을 잡았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몸까지 확인했다. 도망치려는 정서원을 잡느라 그 좆 가벼운 새끼를 늘씬 패 주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오늘 예정보다 빨리 귀국하지 않았다면 정서원은 지금 그 양아치 같은 새끼한테 다리를 벌리고 앙앙 울어댔겠지. 갈 길 잃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씨발, 진짜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방금 그 새끼 이름 뭐야.”

“누, 누구……?”

“씨발, 형이랑 씹질 하려던 그 개새끼!”

“으, 흐윽. 몰라……. 어, 어플에서, 만난 거라…….”

“미쳤어? 어떤 새끼일 줄 알고 어플에서 만나? 제정신이야?”

“흐윽, 흑. 미안해, 진우야……. 잘못했어…….”

무섭게 을러대는 서진우에 놀란 정서원이 더욱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병신 같게도, 서진우는 그 설운 울음에 화가 누그러졌다가 이 꼴을 다른 놈에게 보였을 걸 생각하고는 다시금 열이 뻗쳤다. 애인의 외도를 확인하기 위해 아랫도리를 매만지던 손이 예고도 없이 불쑥 안으로 파고들었다. 웅크린 채 훌쩍거리던 몸이 파득 떨린다. 울음소리가 한층 커졌다.

“아! 아파, 진우야, 흑, 아파……!”

“닥쳐. 당장 박아 처넣고 싶은 거 간신히 참고 있으니까.”

“으, 흐끅. 흡.”

억지로 울음을 틀어막은 정서원이 눈을 질끈 감고는 통증을 참아 낸다. 그가 울 때면 부드럽고 상냥하게 어르고 달래 주었던 서진우는 이제는 눈물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만 인내심이 바닥난 손길로 마른 구멍을 쑤셔댈 뿐이었고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악, 아파! 진우야, 아파, 제바알. 흐으, 흐아앙…….”

“하아, 씹. 존나 조여…….”

“흑, 진우야, 제발 살살……. 너무 커……. 아파, 흑. 흐끅.”

“나 없을 땐 엉덩이 가볍게 놀리더니, 내 좆은 못 받겠어?”

“너무 커서……. 힉. 나 아파, 진우야. 흐끅, 흑!”

제대로 풀리지 못한 구멍으로 팔뚝만 한 좆이 꾸역꾸역 들어선다. 정서원은 배 속에 꽉 들어찬 것을 느끼며 울음을 헐떡였다. 언제 받아도 부담스러운 크기는 그러잖아도 겁을 잔뜩 집어먹은 정서원의 혼을 쏙 빼놓았다. 정서원은 울음을 삼키며 서진우를 바라보았다. 웃음기 없이 냉랭한 분노만 가득한 그를 보니 결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정서원은 베개에다 젖은 뺨을 문대며 애꿎은 시트만 잡아당겼다. 그 외면을 서진우가 턱을 붙잡아 직접 대면한다. 충분히 열리지 않은 몸에 퍽퍽 박아대는 몸짓은 그대로였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잇달아 터졌다.

“딴 데, 보지 마.”

“읏, 흐윽. 지, 진우야아. 응, 흐앙!”

이미 남자를 받는 재미를 아는 몸은 거친 섹스에도 쉽게 달아올랐다. 커다란 손에 붙잡힌 얼굴은 눈물을 한아름 매달고 있다가, 서진우가 한 번씩 안을 쑤실 때마다 방울방울 떨궈댔다. 아프다며 울어대던 소리에도 달짝지근한 애교가 섞이기 시작한다.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눈동자는 세상에 너 하나밖에 없다는 듯 애절하고도 간절하게 진우를 바라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우의 화를 돋우는 땔감이었다. 욕정과 분노로 형형해지는 눈동자 아래 무방비하게 노출된 정서원이 겁에 질려 눈을 내리깔았다. 물먹은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정서원, 씨발. 다른 새끼랑 할 때도 이렇게 예쁘게 굴었어? 그 새끼들 다 찾아내서, 눈깔을 파 버릴 거야. 씨발!”

“흐끅, 아니, 아니야. 진우야, 나, 너밖에 없어. 정말이, 흐앗, 아으응!”

“딴 놈이랑 붙어먹어 놓고, 씹, 그딴 말이 나와?”

“흐아앙! 너무 깊, 아아! 아흐으. 거기, 아! 흐응, 진우야, 좋아아!”

박히면 박히는 대로 팔딱거리던 정서원이 다리로 서진우의 허리를 감아올렸다. 감도 좋은 예민한 몸은 억울하고 서러운 것도 잊고 쾌락에 젖어들었다. 

서진우는 제 좆을 꽉꽉 무는 속살에 배 속 깊은 곳부터 욕망이 끓어올랐다. 전희는커녕 구멍을 풀어 주지도 않았는데 좋다고 좆을 빨아댄다. 아끼고 보듬느라 그간 양껏 박지도 못하고 참아 온 게 억울할 지경이었다.

“씨발, 정서원 이렇게 밝히는 줄 알았으면 참을 필요도 없었는데. 형 같은 걸레는 아껴 줄 필요도 없었어, 그치?”

“흑, 흐앙! 진, 진우야. 아파, 흐끅! 살살 해 줘, 제발. 힉, 으응!”

서진우는 좆을 물고 놔주지 않는 구멍에다 정을 내리찍듯 퍽퍽 깊숙이 박아댔다. 원체 커다란 좆은 울분을 푸는 것에 가까운 움직임에도 정서원이 느끼는 곳을 아낌없이 찔러 주었다. 그때마다 정서원은 입을 크게 벌리고 헐떡이다가 애가 타는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 가벼운 엉덩이는 푹푹 쑤셔 주는 좆을 놓치기 싫다는 듯 스스로 흔들리며 저 좋은 곳을 문질러댔다. 정서원의 턱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며 팔뚝에도 핏대가 매섭게 도드라졌다. 눈앞의 정서원이 쾌락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할수록 그 모습을 공유한 놈들을 당장 찢어 죽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분노가 눈꺼풀 뒤를 시뻘겋게 태워들었다.

“악! 진우, 흐아앙! 너, 너무 빨라, 흑! 진우야아, 살려 줘, 내가 잘못했어, 흐앙!”

“왜, 내가 안 쑤셔 주면 딴 놈한테 가서 벌릴 거, 씨발, 직접 쑤셔 주겠다는데. 어?”

서진우는 펑펑 울어대는 얼굴을 팽개치듯 놓고는 처박을 때마다 움직이는 몸을 붙잡고 피치를 올렸다. 어느덧 침대 헤드까지 밀려나 들썩거리던 몸이 서진우의 손아귀에 붙잡혀 도망치지도 못한 채 쏟아지는 격분을 온전히 받아 냈다.

“하악! 하으응, 앗! 그만, 안 돼에. 진우야아. 흐끅, 흐앙!”

“크윽, 씨발!”

정서원이 눈물만 글썽여도 살뜰히 보살피던 서진우는 그간 참아 온 울분을 터뜨리듯 사정없이 허리를 놀렸다. 폭력적일 만큼 무자비한 몸짓이고 쾌락이었다. 정서원은 제 몸으로 들이치는 쾌락에 속수무책으로 함락되어 갔다. 만져 주지 않았음에도 발딱 선 앞에서는 질질 물이 샜고 좆을 물고 있는 뒤는 이미 함빡 젖어 질척질척 소리를 냈다. 정서원은 커다란 몸에 깔린 채 손끝 발끝만 꿈틀거리다 이내 절정과 함께 자지러졌다. 오르가즘을 느끼면서 바르작거리는 몸을 따라 좆을 문 속살도 파득파득 떨리며 가득 조여 왔다.

“흑, 아! 진우, 진우야아. 흐아아아. 하악. 하아!”

“크윽. 하……! 미친, 정서원 존나 씹어대네.”

“흐으응. 하으. 진우야, 너무 좋아. 기분 좋아아. 흐윽.”

한차례 절정에 이르면서 힘이 빠진 다리가 침대 위로 풀어졌다. 쾌락의 끄트머리에 선 정서원이 황홀한 눈으로 서진우를 올려다본다. 아직 부족한지, 그가 두 다리로 서진우의 허벅다리를 비벼대며 보챈다. 그 사소한 습관은 서진우의 뱃속을 훌륭히 뒤집어 놓았다.

“흑! 진우야, 잠까안. 앗, 흐윽!”

“닥쳐! 형이 좋아하는 좆질 내가 해 준다잖아!”

서진우는 허우적대는 발목을 붙잡더니 정서원의 머리 옆에 붙을 정도로 몸을 접으며 깊숙이 찔러 넣었다. 자세가 바뀌며 삽입이 더욱 깊어졌다. 평소엔 잘 닿지 않는 부분까지 찔러든 좆은 예민한 부분을 아플 만큼 절제 없이 찔러댔다. 정서원의 유연한 몸은 무리한 체위 따위는 능숙히 받아들이면서도 갓 절정을 맞은 속살에 터뜨리는 쾌락엔 어쩔 줄 몰라 했다. 엉겁결에 진우의 팔뚝으로 감겨든 손끝이 드레스셔츠에 날카로운 자국을 남긴다. 서진우는 아까와는 다른 극점을 마구 파고들었다. 정서원이 고개를 젖히며 앙앙 자지러졌다.

“히끅, 진우야 잠깐. 앗, 흐아앙! 싫어어. 나, 나, 이상해. 흐윽!”

“내숭 떨지, 마, 가증스럽게.”

“하으응! 거기, 하앗. 너무 깊어! 흐끅!”

발목이 바로 머리 옆에 붙으며 덩달아 올라간 엉덩이는 좆의 출납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정서원은 제 엉덩이 사이를 드나드는 흉흉한 좆을 넋 놓고 보았다. 여린 속살에다 정을 찍어대는 좆은 찍는 족족 아찔할 정도로 황홀한 쾌락을 선사했다. 내내 헐떡거리느라 제대로 다물린 적 없는 입술에서 맑은 침이 흘러나온다. 잠깐이나마 말랐던 두 눈에도 축축하게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존나 밝히네. 좆질 해 주니까 좋아?”

“흐으응. 좋아, 좋아아. 잘못했어, 진우야. 하응! 앗, 안 돼, 쌀 것 같, 흐끅. 거기, 더! 아으응! 내가 잘못했어어. 흐윽.”

“정서원 씨발 네가, 뭘 잘못했는진 알아?”

“지, 진우 말고오. 다른 남자, 만나서어. 하으응! 아흐, 진우가, 내, 남친인데, 다른 남자랑 자서, 흑! 진우야아! 흐앙. 아아아.”

“그걸 아는 새끼가, 그러고 놀았어, 어?”

서진우는 불길 같은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나지막이 숨을 골랐다. 흥분과 격분이 섞인 숨소리가 짐승처럼 낮게 울린다. 격렬하던 좆질도 나붓나붓이 잦아들었다. 열락에 들뜬 정서원의 눈이 제 다리 사이로 얕게 드나드는 좆에 못 박힌다. 명백히 의도적으로 애를 태우는 몸짓이었다. 왜, 더 깊게 안 움직여 줘? 내내 최고점을 찍어대던 쾌락이 제발 밑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았으면 하는 난잡한 바람은 직접 안을 조이고 물어대는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정서원은 양팔로 서진우의 어깨에 매달리며 스스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서진우는 저를 간절하게 바라보며 보채는 정서원을 보다, 또다시 욕설을 씹어뱉었다.

“씨발. 너 지금 뭐 하냐?”

“진우야, 흐윽. 제발. 더, 더 해 줘. 응? 내가 잘못했어어. 흐끅. 형이 말 잘 들을게, 그러니까. 흑!”

“말 잘 듣는다고? 나 없는 동안 딴 새끼들 좆 물고 빨고 지랄하던 네가?”

“잘못, 했어어. 흐끅! 안 그럴게, 진우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에. 형이 잘못했어어. 흐윽, 진우야아.”

그렁대는 눈으로 애교 따위를 부리며 안겨드는 정서원은 서진우의 맘을 녹일 만큼 능숙했고, 그 능숙함은 되레 분노를 불렀다. 서진우는 냉랭한 열기가 득실대는 머리로 정서원의 목덜미나 사타구니, 그리고 허벅지 안쪽 등을 떠올렸다. 그런 곳에 제 이름 석자를 새겨 놓으면 정서원도 딴 놈에게 몸을 열진 못할 것이다. 남자를 끌어들이는 솜씨가 발정난 개 못지않으니 아예 목줄로 만들어 주어도 괜찮으리라.

“내 말, 잘 듣겠다고 했지? 응?”

“흐으읏!”

서진우가 좆을 길게 빼내었다가, 단숨에 짓쳐 들었다. 정서원이 목을 젖히며 신음을 내질렀다. 쾌감에 못 이긴 손끝이 잔뜩 오므라지며 서진우에게 애처롭게 매달린다. 서진우는 넋 놓고 헐떡거리는 고개를 붙잡아 흐린 동공과 억지로 눈을 맞췄다.

“씨발, 대답 안 해?”

“응, 으응! 대답, 대답할게! 하으응! 거기, 계속 해 줘. 너무 좋아, 진우야아!”

“오늘부터 내 집에, 들어와. 내가 주는 것만 입고, 내가 주는 것만 먹고, 내 집에서 조신하게 앉아서 기다려. 형이, 씨발 발정 난 개처럼 다른 개새끼들한테 씨나 받고 다니니까, 응? 내 맘 알지?”

“응, 응! 그럴게! 흐끅, 진우 말대로 할게.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앗, 아흐응! 진우야 너무 좋아아! 나, 나 쌀 것 같, 흐아아앙!”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고분고분 말대답을 하던 정서원이 그대로 절정에 다다른다. 정액 한 방울 쏟지 않은 드라이오르가즘이었으나 이번엔 정액 대신 소변처럼 말간 물이 픽픽 쏘아졌다. 기나긴 여운에 움찔움찔 경련하는 몸의 굴곡으로 말간 액체가 흐르고 고인다.

서진우는 정서원의 배 속 깊은 곳에 정액을 털어 넣으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제 몸 아래서 헐떡이는 정서원을 노려보았다. 그는 직접 만나지 못한 두 달간 잠자리에서 조르는 것에 한결 능숙해져 있었다. 심지어 자신과의 잠자리에서는 보여 준 적 없던 음란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이걸 누구에게 배웠을지 한 놈을 특정할 수나 있을까.

“정서원, 이젠 오줌도 못 가려?”

“흑. 미안해…….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기분 좋아서…….”

서진우가 눈물 젖은 뺨을 큰 손으로 닦아주자 정서원이 훌쩍거리며 얼굴을 기대 온다. 솥뚜껑 같은 손에 얻어맞았던 뺨이 빨갛게 부어 있다. 괘씸한 가운데서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괘씸하여 견딜 수가 없다. 잠깐이나마 삭여졌던 불길이 다시 힘을 받는다.

서진우는 사정을 끝낸 좆을 빼내곤 다소 폭력적인 손길로 정서원의 몸을 뒤집었다. 정서원이 늘어진 성기를 시트에다 비비며 흐느꼈다.

“아, 흐으응. 진우야.”

씨발. 등에도 이름 모를 새끼가 남긴 흔적이 가득했다. 서진우는 이제 완연한 폭력이 담긴 손길로 정서원을 짓누르고는 막 정액이 흘러나오던 구멍에다 다시 좆을 쑤셔 박았다. 정서원이 비명 같은 신음을 올렸다. 마디마디 길쭉하고 예쁜 손이 애처롭게 흐느끼는 등줄기를 쭉 훑었다. 불그스름한 흔적이 서진우의 손끝으로 짚어질 때마다 눈치 없이 밝히는 몸은 파득파득 허리를 휘어댔다.

“정서원, 이거, 누가 남겼어.”

“흑, 몰라. 아아응. 진우야아. 흐윽.”

“모른다고? 하, 씨발. 그거 하나 모를 만큼 벌려 준 남자가 많아?”

“아! 아파, 진우야! 흐끅. 흑! 잘못했어어.”

서진우가 정서원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로 말을 타듯 다시금 허리를 놀렸다. 팔뚝만 한 좆이 안으로 짓쳐들 때마다 봉긋한 엉덩이가 찰떡처럼 뭉개졌다. 봐주는 것 없이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정서원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더듬더듬 뒤로 손을 뻗어 손끝으로 서진우를 붙잡는다. 정서원은 정조를 확인한답시고 죄 벗겨 놓고는, 저 혼자 매끈하게 다림질 된 정장에 벨트만 끌러 박아대던 서진우가 그 가엾은 손짓을 무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내가 잘못했어, 흐끅. 진우야아. 나 무서워, 이거, 싫어. 힉. 흐윽. 흐아앙.”

어차피 서진우에게 이 섹스는 즐기는 목적이 아니라 제 분노를 쏟아 내는 수단에 불과했다. 저를 저버리고 다른 놈을 만나던 애인에게 지킬 도리 따윈 없었다. 그러나 원래 모든 싸움은 약점을 더 많이 잡힌 사람이 지게 되어있었다. 서진우의 눈길이 울긋불긋한 등줄기에서 그를 붙잡고 있는 손끝으로 흘렀다. 작게 혀를 찬 서진우가 결국 머리채를 놓고 정서원의 몸을 돌린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드러났다. 서진우가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대충 훔쳐 주자 정서원이 소심하게 그의 셔츠 자락을 집었다. 더 깊게 박아 달라 애원할 때는 애교도 퍽 잘 부리던 사람이 이럴 땐 또 염치가 있다.

서진우는 속에서 이글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고는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순화하여 내뱉었다.

“울지 마, 씨발 형이 뭘 잘했다고 울어?”

“으, 응……. 흑. 잘못했어, 진우야……. 미, 미안, 해…….”

“…….”

씨발. 정서원은 왜 질질 짤 때도 예쁘고 지랄이야. 이러니까 개새끼들이 꼬여들지. 서진우는 정서원의 잘못을 의식적으로 배제하며 서럽게 훌쩍이는 얼굴에다 맘껏 입을 맞췄다. “지, 지누야…….” 울음에 다 뭉개진 발음으로 저를 불러대는 게 또 귀엽고 짜증나서, 서진우는 제 아래서 꾸물거리는 다리 한쪽을 잡아 벌렸다. 유연한 몸이 부담 없이 휘어지며 아직 삽입되어 있던 좆을 부드럽게 받아들인다. 정서원은 개처럼 한쪽 다리만 들어 올린 자세로 푹푹 박음질을 당했다. 무섭다고 울던 사람이 좆질 몇 번에 금세 자지러졌다.

“히끅, 진우야. 앗, 아앙. 흐으응!”

“형은 씨발, 나한테 잘해야 돼.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 줄 알아?”

“응, 으응. 미안해, 흑! 잘못했어……. 앞으로 진우 말 잘 들을게, 흑. 흐앙!”

“하여간 정서원. 대답만 잘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진우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어쨌든 그는 정서원이 제게 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었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사저에다 가둬 놓고 엄선된 것만 보여 주고 먹여 주며 다시 그만의 서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온순하게 길들일 것이다. 서진우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만을 얌전히 기다릴 정서원을 상상하고는 내내 바닥을 치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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