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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76화 (외전 완결) (176/176)

<176화>

* * *

스위퍼가 털고 일어섰다. 그의 주변에는 요한이 두고 간 낚싯줄과 불탄 듯 거뭇거뭇하게 끊어진 끈이 널려 있었다.

이와 손바닥이 얼얼했다. 천금 같은 기회를 얻었는데 포박을 끊는다고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스위퍼가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놈들이 되돌아오기 전에 보라를 찾아야 했다.

“옥상!”

‘하 정말 아다리가 안 맞네.’

스위퍼가 투덜거렸다. 때마침 놈들이 일을 마치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되돌아올 것이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딘가로 황급히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요한인지 뭔지 하는 형씨가 시선을 끌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위퍼가 잽싸게 지하로 다시 내려갔다. 매장은 넓었고 경계는 허술했다. 스위퍼가 좀비 한 마리를 발로 차 계단 아래로 밀어 넣었다.

“아, 시X 깜짝이야!”

“뭐야?”

“좀비 한 마리가 튀어나왔어.”

“호들갑은.”

좀비에 시선이 팔린 사이 스위퍼가 기둥을 끼고 휙 돌아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이쯤에 사람들을 가둬두고 있었다.

스위퍼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점점 더 음습하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시체처럼 널브러진 생존자들이 가득 찬 공간을 마주했다.

낯선 이의 기척이 들리자 사람들이 썩은 동태처럼 죽은 눈을 들어 올렸다. 얼마나 먹지 못했는지 비쩍 곯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굴려봐도 찾는 이가 없었다.

“누구…….”

“혹시, 꼬마 한 명을 못 봤어요? 요만한 여자 꼬맹인데.”

“모, 몰라요.”

“제길. 여기가 아니라고?”

“저기 그런데 누구…….”

“아, 지나가던 부랑자예요. 신경 쓰지 마시길.”

스위퍼는 자신을 향해 입을 오물거리는 사람들로부터 순식간에 떨어져 나왔다. 스위퍼의 움직임이 점점 조급해졌다.

어디, 어딨는 거야?

제발 좀 나와라……!

사람을 가둬둘 만한 곳은 닥치는 대로 뒤지고 있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마음이 조여온다.

탕! 다다다다!-

“아, 씨 뭐야?”

순간 들려온 총성에 스위퍼가 시선을 돌렸다. 옥상 쪽이었다. 그리고 그 총성은 신호탄이었다. 총성으로부터 몇 분의 시간이 지나자 백화점 전체가 어수선하게 들썩거렸다.

“좀비가, 좀비가!”

로비로 나온 스위퍼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화점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좀비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달리는 것에 가까운 속도로.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좀비 크레이지 모드가 지금 터진다고? 하필, 지금? 진짜?

스위퍼가 소리 없는 고성을 질렀다. 대체 일이 어디까지 꼬여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망할!

더 이상 골드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 또한 몰려드는 좀비 떼에 팔려 자신이 소란을 부려도 신경 쓰지 못할 거다. 문제는 빨리 보라를 찾지 못하면 꼬맹이가 좀비 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부터 찾자.’

스위퍼는 우선 총성이 들렸던 옥상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샅샅이 뒤지기로 했다. 만약 보라가 손발이 자유롭다면 분명 옥상으로 갈 거다. 지난 두 번의 크레이지 모드에서 탈출로는 모두 옥상이었으니까.

그러나 옥상에서 스위퍼를 기다리는 것은 보라가 아니었다. 피바다였다.

골드문 생존자들의 시체가 수십 구 쌓여있었다. 온몸에 총알구멍이 난 채로. 옥상에는 핏물이 고여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스위퍼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 형씨 솜씨군.’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솜씨였다.

스위퍼는 짧게 감탄을 끝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탕!-

귓가를 때리는 단발의 총성. 총성을 따라간 시선의 끝에는 쓰러진 요한과 그를 부축하는 낯선 사내, 그리고 약 10m 정도 떨어진 위층에서 권총을 든 상무가 있었다. 상무는 비릿하게 웃으며 홱 뒤로 돌았고, 사내는 대검을 휘두르며 쓰러진 요한을 끌었다.

스위퍼는 곧장 전속력으로 상무를 향해 뛰었다. 놈을 잡으면 이 숨바꼭질도 끝난다.

그리고 딱 한 층을 더 내려간 순간, 스위퍼의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3층 사무실 안쪽에서 좀비 한 마리가 걸어오고 있었다.

“…….”

손끝이 떨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이 망할 꼬맹이야…….”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두드려 맞은 듯 얼얼했다. 그녀의 혈색은 방금 좀비가 된 듯 푸른 기가 보였다. 이마와 목에 상처가 보이고 양쪽 볼은 얻어맞은 듯 퉁퉁 부어 있었다. 그 가녀린 육체가 본능적으로 피를 갈구하듯 스위퍼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르렁거리는 목소리 위로 생전의 목소리가 겹치듯 들려왔다.

‘아저씨, 십 년만 기다려요.’

스위퍼가 천천히 몸을 숙였다.

‘아저씨.’

숨이 가쁘게 차올랐다.

‘아저씨, 아저씨.’

그 얇고 청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스위퍼가 자조하듯 내뱉었다.

“이래서, 어린아이는 정말 질색이었어.”

그는 천천히 보라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입을 쩍 벌리는 순간 움찔하고 움직임이 천천히 멎었다. 목 뒤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스위퍼가 천천히 일어섰다.

“복수는 해 주마. 꼬맹이.”

스위퍼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 * *

꺄악!

비명이 울렸다.

상무와 두 부장은 각기 한 손에 생존자를 붙잡은 채 질질 끌고 백화점 밖을 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상무가 반복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상황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튼튼하기 그지없던 왕국이었다. 사람들을 지배하고 여자를 탐해도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절대 왕국.

하지만 왕국은 순식간에 산산 조각났다. 요한과 스위퍼라는 이상한 개자식들이 들이닥쳐 식구들을 죽여 대는 것도 모자라 좀비들이 미쳤다.

잘 닦아놓은 왕국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상무는 청년의 뺨을 후려치며 으르렁거렸다.

“살고 싶으면 달려. 응? 달리다 보면 또 모르잖니, 저 좀비 밭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상무가 이죽거리며 세 명의 생존자들을 걷어찼다. 한 명은 그대로 핏물 웅덩이에 곤두박질쳐 좀비 밥이 되었다. 득달같이 달려든 좀비들이 살을 뜯고 내장을 파헤쳤다. 기겁한 두 사람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그사이 가운데 길이 열렸다.

“권 부장, 오 부장. 뚫어라.”

“…예.”

세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좀비들을 후려치고 베고 찌르며 끊임없이 길을 막는 좀비 떼를 뚫었다.

탕! 탕!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는 총을 쏴 보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점점 좀비들만 몰려들 뿐이었다. 무아지경으로 좀비 떼를 뚫고 근처 요양병원으로 들어왔을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른 뒤였다.

“X발…….”

상무는 물어뜯긴 상처를 쳐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유리문 밖에는 먼저 좀비가 된 충성스러운 두 부하가 갇혀있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이대론 못 죽는다, 이대론…….”

생에 대한 의지가 끊임없이 불타올랐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병원에 굴러다니는 약을 상처에 쏟아부었다. 통증에 절로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러다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총상과 물린 상처가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가 뜬 상무가 미간을 좁혔다.

‘왜 좀비가 안 되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좀비로 변하지 않았다. 혈색이 사라지고 몸에 열기가 돌긴 하지만 어쨌든, 변하진 않은 그대로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상무가 마침내 목젖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 하하! 으하하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좀비에 물려도 변하지 않는다면 아지트가 터지는 것 따위가 대수랴.

나는 그래, 여기서 죽을 위인이 아니다.

한참을 웃어젖히고도 성에 차지 않았다.

드르륵-

“……?”

느닷없이 창문 열리는 소리에 상무가 인상을 찡그렸다. 열린 창틈으로 낯익은 얼굴의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야차였다.

“네, 네놈은…….”

“안녕, 이 개자식아.”

스위퍼가 인사와 동시에 상무에게 달려들었다. 상무가 기겁하며 권총을 들어 격발기를 당겼으나, 달각거리며 빈 탄약에 공이 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악, 아아악!”

스위퍼의 도끼가 상무의 허리에 틀어박혔다가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열린 복부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내가, 여기서, 죽을…….”

스위퍼가 억센 손아귀로 놈의 머리를 붙잡고 잘려있는 파이프에 내다 꽂았다. 입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밖의 두 골드문 좀비 또한 마찬가지로 옆에 나란히 꽂아주었다.

“십자가형이다 이 자식들아.”

퉤, 뱉어진 침이 상무의 얼굴에 튀었다.

스위퍼가 담배를 꼬나물었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울 시간이 흐르자 좀비로 변한 상무가 자신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신이 버리지 않았긴 개뿔. 천벌이다.”

복수는 완수했다.

만약 놈을 죽이지 못했다면 평생을 후회로 남았을 복수.

‘복수는 해 줬다. 편히 가라 꼬마야.’

스위퍼는 마지막으로 보라를 기리는 성호를 그린 후 주저앉았다.

‘이제 어쩐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거지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줄담배를 피우다가 끝내 생각이 닿은 곳은 요한이었다.

어쨌든 골드문 생존자들을 작살내 준 은인이다. 동시에 자신의 탈출과 복수에 도움이 된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시작은 상당히 꼬이긴 했지만, 은원은 확실히 해야 했다. 갚을 빚이 있다.

‘살아있으려나.’

살아있을 거다.

그 가까운 거리에 총을 맞았는데도 총상과 혈흔이 없었다. 하체보다 상체가 살집도 단단하게 올라 있었다.

방탄복을 입은 거다. 신발에 탈출 장비를 넣고 다닐 정도면 그 정도 대비는 해두었겠지.

충격에 기절한 모양이지만, 근처에 덩치 큰 형씨도 있었으니 분명 살아남았을 거다. 만약 죽었더라도 최소한 생사 정도는 확인해야 했다.

스위퍼가 몸을 움직였다. 달라붙는 좀비들을 발로 걷어내며 철제 환풍구를 기어올랐다. 퉁퉁거리며 환풍구에 몸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한참을 헤맨 뒤에야, 두 사람을 발견했다. 안색은 파리했으나 다행히 살아있었다.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혼자 떠나도 위험하긴 매한가질 거고. 이제 어쩔 셈이요.”

“새로운 길을 알아봐야겠지요. 어느 쪽이든 뚫을 만한 곳이 있을 겁니다.”

“내가 길을 알아.”

스위퍼가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환풍구 쇠 덮개를 발로 차 떨어트린 뒤 아래로 내려갔다. 두 사람의 놀란 기색이 선연했다.

“나도 같이 좀 하자. 그 탈출.”

그러고선 요한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 형씨. 우리 구면이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멍청한 얼굴을 하는 게 너무 안 어울려서 절로 웃음이 났다.

“살아있었군.”

“누가 골드문 개자식들을 작살내 준 덕분에?”

그의 말에도 요한은 덤덤했다. 마음 한쪽에는 보라를 잃은 충격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으나, 동시에 동류를 만난 기쁨이 모순적으로 뒤섞였다. 그 복잡한 심경 속, 감정을 정리하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래오래 사세요, 아저씨.’

그래, 건방진 꼬맹이야.

네 몫까지 벽에 똥칠하면서 오래오래 살련다.

스위퍼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밀어내지 마, 친구. 나를 받아들여.

나 또한 오늘의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강한 동료가 필요하니까.

너도 그렇지 않아?

요한은 그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외전 완결>

지금까지 <리턴 서바이벌>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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