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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74화 (174/176)

<174화>

스위퍼는 한 손에 손도끼만을 그러쥔 채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다른 무장은 필요 없었다.

달리기에 가까웠던 걸음걸이는 점차 느려졌다.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니던 생각 회로가 점차 안정을 찾은 탓이다.

내 것을 빼앗기고 내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앞으로 다가올 전투에 대한 고양감은 점점 피를 차갑게 끓어오르게 했다.

마치 유령처럼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몇몇 좀비들조차 그가 지나가고 나서야 반응할 만큼.

백화점 입구에 도착한 스위퍼는 고민 없이 근처 지하철을 향했다. 이미 한 번 와본 적 있는 건물. 구조도는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스위퍼는 지하철과 연결된 통로를 이용해 백화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육체가 점점 그림자를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던 두 경계병이 잠시 눈을 비비더니 스위퍼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동공이 터질 듯 확장됐다.

“빠, 빨리 상무님께 보고해! 스위퍼가 왔- 컥!”

소리를 지르던 사내의 목에 손도끼가 틀어박혔다. 고통에 눈알이 터질 듯 튀어나왔다.

“으, 으아아…….”

또 다른 경계병이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으나 몇 걸음 가지 못했다. 허공을 가르고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온 손도끼에 두개골이 찍혀 쓰러졌다.

“…….”

스위퍼가 도끼를 흔들 듯 움직여 뽑아냈다. 새빨간 피가 꿀렁꿀렁 뿜어져 나왔다.

스위퍼가 신발 바닥을 시체의 옷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골드문 생존자들은 제법 그 수가 많았지만, 모든 통로를 지키기에는 백화점이 너무 넓었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각 층 구름다리로 연결된 종합쇼핑몰까지 감시해야 했으니 더욱 그랬다.

스위퍼는 백화점과 종합쇼핑몰을 잇는 2층 구름다리에서 천천히 백화점 내부를 훑었다.

처음 상무를 조우했던 날, 지난번에 왔을 그때처럼 건물 내에는 좀비들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함부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일부러 좀비들을 풀어놓은 거다.

‘악취미라니까.’

썩어 가는 시체들 때문에 풍기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스위퍼가 코를 틀어막으며 보라가 있을 만한 위치를 탐색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잡아 죽이고 싶은 게 굴뚝같았으나 난동 부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꼬마의 안전 확보와 구출이 먼저다.

그들은 자신을 위험요소로 생각하고 있고, 위험요소를 통제하기에 가장 좋은 인질은 보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절대 그녀의 신변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을 거다. 스위퍼는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는 사실, 그리고 반드시 구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내부를 샅샅이 훑던 스위퍼가 눈썹을 움직이며 급하게 몸을 숨겼다.

“……?”

뭐야, 저건?

자신 말고도 침입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온몸을 가죽옷으로 도배하고 코까지 가리는 손수건 마스크를 쓴 채 양손과 허벅지, 등 뒤에 살벌한 무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남자.

스위퍼가 본능적으로 그의 모습을 스캔했다. 눈썰미 좋은 자신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만큼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180cm는 될 법한 장신에, 제법 마르지 않은 다부진 몸.

한눈에도 한 가닥 하는 형씨라는 티가 팍팍 날 정도였다.

시야에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그의 움직임은 스위퍼를 점점 흥분의 도가니로 빠트렸다.

이동 속도는 느렸지만, 만나는 모든 골드문 생존자들을 철저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말이 제압이지, 사실상 확실한 사살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경추를 찌르거나 목을 꺾고 목젖을 찌르는 것도 모자라 확실하게 뇌를 찔러 후환을 없애는 작업까지.

그 실력을 봐서는 결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전담 미용사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예쁘게 이발한 투 블록에 대충 말려 넘긴 머리, 깔끔한 행색을 봐서는 이 난리 자체가 자신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오만함을 전신에서 뿜고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자신과 동류였다.

스위퍼는 보자마자 확신했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들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그와 손을 잡는다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한결 더 수월해지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스위퍼는 고민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당연하게도, 놀라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소란 없이 동맹을 맺고 싶었을 뿐.

“……!”

그러나 스위퍼는 반사적으로 발을 뻗었다. 등 뒤에 도착한 그가 사내를 부르려는 순간, 그가 홱 돌아서며 쇠뇌를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확 엄습해 오는 살기는 덤이었다.

확실하게 널 죽여 버리겠다는 그 살기에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반응해버렸다.

‘위험-’

스위퍼가 반사적으로 겨냥된 쇠뇌를 발로 쳐냈다.

‘뭐야?!’

다행히 쇠뇌가 발사되는 건 막아냈지만, 덕분에 심장이 철렁 가라앉을 뻔했다. 분명 기척을 죽였다. 접근을 알아챌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마치 읽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반응해서 자신을 공격했다. 스위퍼가 악물 듯 내뱉었다.

“뭐야, 다짜고짜.”

대화를 좀 하-

스위퍼는 허리춤의 권총을 향해 뻗어지는 손을 본 순간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저 허리춤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선연한 살기로 미루어 볼 때 분명 위험한 물건이 틀림없으리라.

동류라고 생각은 했으나, 저보다 더 독한 인간이다.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 아니 죽일 정도로 냉혈한 인간.

‘일단 제압해야 해.’

곱게 대화하는 것은 글러 먹은 데다 이렇게 위험하게 공방을 펼치는 건 피차 좋지 않았다.

첫인상이 나빠지는 건 아쉽지만, 일단 제압해야 했다. 제압할 수 있다. 어떠한 종류의 인간이든 1대1의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으니까.

패배라는 단어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스위퍼가 발을 뻗어 사내의 턱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발끝은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스치며 아슬아슬한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스위퍼의 동공이 터질 듯 확장했다.

‘미친. 방금, 예측했어?’

보고 피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이렇게 공격할 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발을 뻗기도 전에 고개를 먼저 숙였다.

‘괴물……!’

순간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두려움, 그리고 호승심이 일었다.

잠시의 소강상태에 두 사람의 눈빛이 부딪히듯 마주쳤다.

그만큼이나 그 또한 놀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 인간은 뭐지, 하는 분명한 당황. 스위퍼가 씩 웃었다.

놀랍지? 내 발차기 속도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우니까 말이야.

좀비 사태 이전보다 서너 배는 빨라진, 마치 초능력이라도 개화한 듯한 몸놀림이었다. 처음에는 저조차도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적응했다. 사실, 공격을 피해낸 것만 해도 손뼉을 쳐줄 만했다.

그때 낯선 사내의 발이 순간적으로 하단을 때려왔다. 예상치 못한, 너무나 간결한 움직임이어서 순간적으로 놓치고 말았다.

‘윽…….’

몸이 휘청했다. 그 순간 사내의 묵직한 몸이 자신의 위로 올라타 내리눌렀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이십 대 후반, 많이 쳐 줘도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행동 하나하나가 전장을 구르디 구른 백전노장 같다. 마치 이런 백병전은 익숙하다는 듯 시위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개싸움이라면 나도 지지 않아, 형씨.

스위퍼가 휘둘러지는 주먹을 고갯짓으로만 피해낸 후 짧게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정확하게 사내의 턱을 때렸다.

그가 움찔하며 순간적으로 힘이 풀린 사이, 두 발을 이용해 그를 던지듯 떨어트렸다. 그런 다음 가볍게 뒤구르기로 거리를 벌렸다.

“퉷.”

사내가 침을 뱉었다. 침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사내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오우, 개 빡쳤나 본데.

한 차례 공방이 다시 이어졌다.

스위퍼가 내지른 주먹을 사내가 피해내고, 사내가 찌른 무릎 차기를 두 손으로 방어했다. 이어지는 박치기.

쿵-!

사내가 휘청거렸다.

그럼, 내 머리는 돌보다 단단하지.

스위퍼가 히죽거리며 사내를 걷어찼다. 그가 데굴데굴 굴렀다. 사실상 승패는 정해졌…….

“워워.”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쏜다.”

일부러 맞은 다음 뒤쪽으로 굴러 거리를 벌렸군.

그에게 총 한 자루가 더 있었다. 스위퍼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진정해, 형씨. 대체 왜 갑자기 사람을 공격하고 난리야? 대화 좀 하자는데.”

제압을 하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나.

스위퍼가 침음을 흘렸다.

세상에, 내가 제압당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수상하게 먼저 접근한 건 네 녀석이지.”

“아, 그건 사과할게. 발소리를 죽이고 다니는 건 습관이라서.”

스위퍼는 말을 끝내고 나서 사내의 눈치를 봤다. 악의가 없다는 걸 보이기 위해 환하게 웃는 건 덤이었다.

“어차피 총 쏘면 둘 다 위험하잖아. 밑에는 조폭들이 가득하다고.”

그러니까, 그만 내려놓지그래?

그러나 스위퍼의 바람은 그가 소음기를 끼는 순간 산산 조각났다.

“그냥 대화를 하자는 것뿐이야.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

“용건을 말해.”

“아까부터 지켜보니까 이 백화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던데, 여기에 볼일이 있지?”

“알 바 아니지.”

거 참, 빡빡하게 구는 친구네.

“나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 협력하자.”

“일행은?”

스위퍼가 잠시 머뭇거렸다.

찰나의 시간 후 그는 일부러 거짓으로 대답했다.

“없어. 난 쭉 혼자 살아왔지. 어때? 난 스위퍼야.”

“스위퍼?”

“별명이야.”

“누가 그렇게 유치찬란한 별명을.”

“내가 지은 건데, 왜?”

유치찬란하다니. 그건 좀 상처인걸.

스위퍼가 손을 들고 있었다.

사내는 스위퍼의 몸통에 총구를 겨냥한 채 천천히 떨어트렸던 쇠뇌를 향해 접근했다. 순간 스위퍼의 몸이 움찔했다.

난 적의가 없다니까, 형씨.

스위퍼는 최선을 다해 어필했으나, 사내는 손에 쇠뇌를 쥐고서 그것을 그에게 겨냥했다.

“더 할 말은?”

“뭐…….”

설마,

소음을 없애기 위해 쇠뇌를 붙잡은 건가.

“없는 거로 알지.”

Damn it!

그 순간, 스위퍼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움직였다.

놈의 몸에서는 분명한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련 없이 죽이고 가겠다는 일말의 고민 없는 결정.

처음부터 협업이 불가능한 족속이었다. 스위퍼가 몸을 움직인 것과 쇠뇌가 발사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스위퍼는 순식간에 움직여 난간을 잡고 뛰어내렸다.

뛰어내림과 동시에 아래층의 난간을 붙잡고 튕겨 올라 문 앞에 있던 좀비 한 마리를 걷어찼다.

이렇게 된 이상, 강제 협업으로 가는 수밖에.

“아우 씨! 갑자기 쏘고 난리야!”

녀석은 강하니까 도구로서의 가치는 충분히 해 줄 거였다.

습- 스위퍼가 숨을 크게 들이켜고선 목청껏 외쳤다.

“침입자다! 삼 층에 침입자가 총을 들고 있다! 삼 층 올리브영 앞!”

그럼, 뒤를 잘 부탁해 형씨.

스위퍼의 몸이 몰려드는 좀비들을 요리조리 피해 매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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