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알겠어, 모르겠어?”
스위퍼가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렸다. 다리를 찔린 부장이 부르르 떨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형씨들한테 해를 끼치지 않을 테니까. 꼭 전하라고. 가 봐. 형씨들. 다신 보지 말자.”
위협은 충분했다. 특히나 자신에게 직접 상해를 입은 저 인간은 앞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다. 허벅지 근육을 반쯤 찢어 놓았으니까.
씰룩거리며 빠져나가는 남자들을 보며 스위퍼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저들을 다 죽일 수도 있었다. 훗날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들은 전부 죽이고 백화점을 기습해서 잔당들까지 싹 다 죽여버리는 게 후환이 없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판단이다.
자신과 같은 요원들이 최소한 둘, 셋만 더 있었어도 미련이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저 놈들이 자신을 위협요소로 생각해서 건드리지 않기를, 최대한 방비를 해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한구석에 찝찝한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믿을 만한 동료가 더 있었으면, 아예 뿌리째 뽑아버리는 건데.’
스위퍼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아지트로 이동했다. 주변에 따라오는 듯한 기척이 있는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면서.
‘시선이…….’
스위퍼가 멈칫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기척은 전혀 없는데, 묘하게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천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스위퍼가 고개를 갸웃한 후 상가 단지 골목으로 들어가 주변의 부비트랩을 더 단단히 강화했다.
그런 다음 일부러 아지트 근처를 빙빙 돌아 아지트로 되돌아갔다.
아지트 안에는 저녁을 준비하는 채수, 채연 남매가 있었다.
“스위퍼, 왔어?”
두 사람이 반갑게 스위퍼를 맞이했다. 약 두 달 전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일행이었다.
첫 만남은 특별할 것 없었다.
이곳에 둥지를 트고 둘이서 살아가고 있을 때 도망친답시고 좀비들을 끌고 침입했던 사람들이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설치해 두었던 트랩에 걸리는 바람에 양심이 찔린 스위퍼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구출했고, 그때부터 함께 생활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심을 내보였으나, 그들 사이를 이어준 것은 보라였다.
보라가 채연을 잘 따르기도 했거니와, 보라를 혼자 두고 물자를 구하러 다니는 게 불안하던 차에 그들이 각종 궂은일에 꼬마의 보모 역할까지 맡아주니 스위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여는 건 금방이었다.
보라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부득불 얘기해도 믿지 않는다는 점과 여기까지 살아남은 사람치고는 너무 무르다는 점만 빼면, 좋은 일행이었다.
“보라는?”
스위퍼가 그릇에 올려둔 음식 하나를 손으로 주워 먹으며 물었다.
“안에 있어. 스위퍼! 음식 손으로 먹지 말라니까!”
“아아 누님, 배고프다고.”
손을 닦고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채 짐짓 무서운 체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스웠다.
고작 한 살 차이인데 누나 노릇을 하다니. 재밌는 인간이라니까. 정작 그들을 먹여 살리는 건 자신인데도.
스위퍼가 손을 휘휘 내젓고는 탁자 위에 봉투들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좀 많아.”
“와, 정말이네?”
“조금씩 가져오지. 위험했을 텐데.”
두 사람의 걱정 섞인 말에 스위퍼가 입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놈들이 가져가라고 예쁘게 포장해놓은 바람에.”
“놈들?”
“어, 골드문 놈들. 형씨, 누님도 조심해. 놈들이 자꾸 넘어오니까.”
스위퍼는 여상하게 던진 말이었으나, 채수가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분노와 죄책감이 반반쯤 섞인 어조였다. 그는 스위퍼의 강함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홀로 동생을 위험한 곳에 던져놓고 자신이 그의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다.
“미안하다, 스위퍼.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아냐, 형씨. 형씨가 싸움을 잘 했어도 둘이서는 힘들지. 참, 그리고 이거.”
스위퍼가 채수에게 총 한 자루를 건넸다. 채연에게 주었던 총 이후 두 번째 총기였다.
“오늘 얻은 거야. 만약 여차하면, 그걸 써. 좀비 상대로는 쏘지 말고 침입자한테만 쓰는 거야. 쏜 순간 지옥문이 열릴 거니까.”
“알고 있어. 이야기했었잖아.”
채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아지트가 들통나면 그것을 사용하라는 의미일 터다.
어쨌든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위퍼는 계속해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고 그때가 되면 보라를 지켜야 하는 건 그들의 몫이었으니까.
“총알 별로 없더라. 참고해.”
스위퍼가 채수의 등을 툭툭 치고선 보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잠든 듯 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었다.
스위퍼가 그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 손으로는 잡지를 주워들고 한 손으로는 담배를 물었다. 그러나 그의 허벅지에 가느다란 손이 얹혔다.
“…안 잤냐.”
“간접흡연은 나빠요. 어린아이에게는 특히나.”
“어 미안. 자는 줄 알았지.”
“인간은 잘 때도 호흡을 해요, 아저씨.”
“그래? 그건 몰랐네.”
“담배 끊는다면서요.”
“아, 끊었어. 이 잔소리쟁이 꼬마야. 물기만 한 거야, 물기만.”
“…….”
“진짜라니까?”
보라가 인상을 쓰자 스위퍼가 계면쩍다는 듯 으하하 웃으며 순순히 담배를 집어넣었다.
“몸은 좀 어때?”
“죽을 만큼 아프긴 한데, 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약해 빠져가지고.”
“…죄송해요.”
요즘 들어 그녀가 앓는 날이 잦았다. 채연의 말로는 영향 불균형과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는데, 특정하게 어디가 아프다기보다는 그저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았다.
보라가 꼬물거리며 스위퍼의 무릎에 머리를 벴다. 스위퍼가 슬쩍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뜨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오늘은 네 집 근처를 다녀왔는데 주변에 멀쩡한 쉘터가 없더라.”
“그렇구나.”
“좀비 새끼들이 죄다 털어먹어서 남은 사람들이 없어. 아마 우리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겠지.”
“…….”
“걱정하지 마라. 살아 있다면 언제든 만나게 되겠지.”
“네. 살아 있다면.”
단념한 듯한 말투에 스위퍼가 그녀의 이마를 딱 때렸다.
“아야!”
“내가 그 애늙은이 같은 표정 하지 말랬지?”
스위퍼의 말에 보라가 이마를 부여잡고 울상을 지었다.
“잠이나 자. 새 나라의 어린아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애 취급하지 마세요.”
“애를 애라고 하지 뭐라고 해?”
피, 입술을 삐죽 내민 보라가 스위퍼의 무릎과 배 사이로 파고들었다. 스위퍼가 그녀의 머리를 슥슥 매만졌다. 잠시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야. 노래 잘하네.”
“히히.”
“세상이 멀쩡했으면 가수 같은 거 해도 괜찮았겠는걸.”
“가수는 성공하지 못하면 돈 못 벌어요. 성공하기는 힘들고. 제 꿈은 공무원이에요. 칼퇴근 후에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잠드는 거요.”
“이 염세적인 꼬맹이 같으니. 어릴 땐 좀 꿈을 크게 가져도 돼.”
“그래 봤자. 지금은 진짜 꿈일 뿐인걸요.”
보라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마도 슬슬 잠이 오는 듯했다. 스위퍼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속도를 줄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고르다.
스위퍼가 그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선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래오래 살아라.”
“네. 아저씨도요.”
“…안 잤네.”
허벅지에서 보라의 얼굴이 히죽 웃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스위퍼가 잠든 보라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듯 숨을 내뱉었다.
* * *
팍! 스위퍼가 휘두르는 손도끼에 좀비들의 머리가 깨져 나갔다. 그런 후 차를 박살 내자 주변에 있는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스위퍼가 재빨리 반대편으로 몸을 뺐다.
이제 어느 정도 좀비들의 습성이 파악됐다. 놈들은 시각, 후각, 청각으로 먹잇감을 찾는다. 그중에서 가장 컨트롤하기 쉬운 부분은 청각이었다.
지금처럼 놈들을 소음으로 한 곳으로 몰아두면 확실히 행동이 수월해졌다.
물론 그런 다음에도 조심할 부분은 있었다. 특히 미처 소리의 원천지로 들어가지 못한 움직임이 불편한 좀비들에게 당하는 경우.
자신도 몇 번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고, 그 때문에 죽은 동료도 몇 명 있었다. 그걸 제외하면 괜한 소음을 내서 좀비들을 몰려들게 하지만 않는다면 딱히 위험은 적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점점 익혀가고 있었다.
다만 결정적인 위협 한 가지. 미친 좀비들의 습격.
놈들은 원인은 몰라도 특정 시기가 되면 정신 나간 짐승들처럼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늑대인간마냥 보름달이 뜨면 그러는가도 싶었지만, 또 마냥 그런 것은 아니었다.
원인 파악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좀비들이 미쳐 날뛰면 한 지점으로 움직인다. 그때 최대한 그 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했다.
나중에 들어가 본 그 목표 지점에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다. 세 번 모두 그랬다.
드르륵-
스위퍼가 생수통을 가방에 넣으며 셔터를 닫았다. 이놈의 식수는 다른 것보다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탈이었다. 식수를 구하는 것 때문에 항상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식량은 라면으로 어떻게든 때울 수 있었지만, 물은 달랐으니까. 뭐, 대부분 유통기한이 다다른 라면이었어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물자는 한정되어 있었고 혼자서 충당할 수 있는 식량은 거의 그날그날 먹을 식량이 다였다. 음식을 가리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스위퍼가 물자 수급을 마무리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최근 그놈의 골드문 자식들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멀리 나오지 못했다.
그때였다.
탕!
“……?”
단발의 총성이 귓가를 때렸다.
제법 가까운 거리. 그리고 방향은,
보라의 아지트가 있는 곳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스위퍼가 순식간에 내달렸다. 내달리던 스위퍼의 발이 어느 순간 멈칫했다. 그의 시선에 세 구의 시체가 들어왔다.
부비트랩에 걸린 검은 정장 차림의 시체, 그리고 머리가 깨져 죽은 여자의 시체.
마지막으로….
‘제길…….’
허벅지를 찔리고 입이 찢긴 채 절명한 채수의 시체.
머릿속에는 아니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피는 점점 싸늘하게 식어갔다.
어떻게 이 근처를 알아낸 놈들이 부비트랩에 걸리고, 여자를 이용해 채수를 끌어낸 거다.
대체 왜 여기까지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거듭했었으니까.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좋으나 사람만 좋은 게 문제였다.
그들 또한 자신의 부비트랩 때문에 구함을 받았으니,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마땅히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스위퍼는 고구마를 한 사발 들이킨 기분을 느끼며 달음박질쳤다.
‘역시, 다 죽였어야 했어.’
결국, 제 실책이다.
자신을 회유하고 휘하에 들어오게 설득하려는 모습에서 인간성을 느낀 자신이 잘못된 거다.
위험해지더라도 모두 죽여버렸어야 했다. 썩어빠진 놈들이 언제까지고 눈엣가시인 자신을 방관할 거라고 그저 겁을 주고 거리를 유지하는 게 답이 아니었다.
“…….”
아지트에 들어간 스위퍼를 반긴 것은 어지럽혀진 공간, 그리고 복부에서 피를 흘리는 채연의 따듯한 시체였다.
식량과 총기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보라가 없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