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스위퍼는 자신을 덮치는 좀비를 피해 곧바로 위쪽으로 올라갔다. 안팎으로 좀비들이 들이닥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질서와 통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부터는 각자 제 목숨 하나를 보전해야 하는 순간이다.
3층 게이트 입구까지 올라온 스위퍼는 호흡을 고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풍경이 살벌했다. 마치 밀물처럼 밀려드는 좀비 떼. 흡사 사탕이 떨어진 곳에 몰려드는 개미들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아직 체육관 전체가 둘러싸이진 않았어.’
분명 체육관을 둘러싸고 있는 좀비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많았지만, 넓은 체육관을 모두 감싸지는 못했다. 주로 소란이 나는 입구, 철제 사다리 등 인간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곳 주변으로 좀비들이 모이고 있었다.
어쨌든 정상적인 경로로는 탈출이 불가하다. 이미 너무 많은 좀비가 몰려 있었다.
“holy shit…….”
“아저씨.”
“어?”
“어지러워요, 내려주세요.”
어깨에 매달려 있던 보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위퍼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녀를 내려놓았다. 땅에 발을 디딘 보라가 헛구역질하듯 웩웩거렸다.
“다 끝났네요.”
보라의 시선이 외부로 향했다. 그녀는 체념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꼭 보답을 드리고 싶었는데.”
“아직 안 끝났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꼬마야.”
“아저씨껜 너무 받은 게 많아서 죄송하고 감사해요. 살아남으면 꼭 보답하고 싶었는데.”
“네가 뭘 줄 수 있다고, 인마. 됐다.”
“원하신다면 신부라도 되어드리려고 했죠.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셔야 하겠지만…….”
“으하하, 여물지도 않은 꼬맹이는 안 원하는걸?”
스위퍼가 폭소하듯 웃자 보라가 희게 따라 웃었다. 스위퍼가 덕분에 웃는다며 보라의 이마에 딱밤을 때린 후, 난간 기둥을 몇 번 흔들어보더니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긴 내려갈 수 있겠네.”
“여길 내려가신다고요?”
“그럼. 나 스위퍼야.”
“예?”
“가야지. 이대로 여기서 죽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쪽이 좀비가 가장 적어 보이네. 일단 내려갈 수 있어. 문제는… 내려간 다음 어떻게 좀비들을 따돌리느냐인데… 자칫하면 그냥 둘러싸여서 비명횡사할 것 같단 말이지. 탈것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스위퍼의 고민에 보라가 말을 꺼냈다.
“민재 아저씨한테 오토바이가 있어요.”
“뭐? 정말로?”
“네. 저기, 주차장 끝에 보이시죠? 저게 민재 아저씨 오토바이에요. 가끔 이곳에 올라와서 여차하면 저걸로 도망갈 거라고 했거든요.”
“키는?”
“아저씨한테 있겠죠.”
민재는 스위퍼가 처음 왔던 날, 그에게 흡연실을 알려주고 담배 한 갑을 받아갔던 청년이었다. 그가 인상착의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스위퍼가 굳은 얼굴을 했다. 해볼 만한 도박이다. 크고 튼튼한 차량이면 더 좋겠지만, 애매한 차량보다는 차라리 기동력 좋은 오토바이가 좋을 터였다.
스위퍼가 좋아, 하고 혼잣말하고선 보라에게 숨겨두었던 나이프 하나를 꺼내 작은 손에 쥐여 주었다.
“꼬마야, 잠시 여기서 기다리렴. 꼭꼭 숨어 있어.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
“…아저씨?”
“금방 올게.”
그가 활짝 웃었다.
“대답해야지?”
보라도 함께 웃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스위퍼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주고선 곧바로 발을 튕겼다. 그의 몸이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삼 층, 이 층, 일 층을 뛰어 내려온 스위퍼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좀비 한 마리를 후려쳤다. 달려들던 좀비는 종이쪽처럼 날아가 처박혔다.
머릿속에서 몇 분 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어깨에 메고 올라오던 시점, 분명히 민재의 모습을 봤다. 그가 정확히 기억한다면 1층 3번 게이트 방향이었다.
다시 한번 그에게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던 좀비의 머리가 깨져나갔다. 그리고 민재를 마주했을 때, 그는 이미 좀비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고 생각했다. 순순히 넘기지 않으면 빼앗아라도 갈 생각이었으니까.
스위퍼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그의 무릎을 내리찍듯이 하단발차기를 휘둘렀다. 좀비가 휘청거림과 동시에 날아간 손도끼가 놈의 머리와 목을 분리했다.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던 민재의 머리가 딱딱거리며 이빨을 부딪쳤다. 그때, 뒤에서 좀비 한 마리가 덮치는 낌새가 느껴졌다. 스위퍼가 곧바로 상체를 숙이며 놈을 메치듯 집어던졌다.
“끝도 없이 달려드네, 정말.”
한순간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좀비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게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왔다.
스위퍼가 서둘러 핏물을 쏟고 있는 민재의 품을 뒤져 오토바이 키를 꺼냈다.
목표를 달성한 그는 곧바로 삼 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숨이 찼다.
어지간하면 체력이 달리지 않는 그도 점점 지쳐 가는 느낌이었다.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이었고, 긴장의 연속이었으니까.
“……꼬맹아?”
그러나 3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보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좀비 시체 하나만 벽에 기대듯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꼬마, 꼬맹이!”
스위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보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좀비 시체가 꿈틀거렸다. 스위퍼가 손아귀에 힘을 꽉 준 순간, 좀비 시체가 쓰러지고 그 아래에서 담요를 뒤집어쓴 보라가 기어 나왔다.
“쉿. 저 여기에 있어요.”
“뭐, 하고 있어?”
“텔레비전에 보니까 이렇게 하면 좀비들이 못 알아보더라고요.”
스위퍼가 그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거 네가 한 거야?”
그가 좀비 시체를 가리키자 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떨리는 손에는 스위퍼가 건네준 대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장하다. 가자.”
스위퍼가 3층 기둥에 탈취 방지 끈을 묶고선 천천히 내려갔다. 등 뒤에서 그의 목을 꽉 붙잡은 꼬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내려가자 그들을 발견한 좀비들이 몇 마리 몰려들었다. 스위퍼가 매달린 채 앞발로 좀비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땀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몇 마리를 박살 내자 바닥에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으로 스위퍼가 가볍게 착지했다.
“전력으로 따라와.”
“네? 네!”
스위퍼가 내달렸다.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좀비들이 접근할 때마다 뛰어올라 머리를 깨고, 발로 차 밀고, 다리를 잘라냈다.
“하아!”
마치 한 마리의 들개처럼 달려들어 길을 텄다.
“으아압!”
마침내 오토바이 앞에 도착한 스위퍼가 시동을 걸자 부르르릉- 하고 요란한 시동음이 터져 나왔다. 스위퍼는 보라를 등 뒤에 태우고 손잡이를 힘껏 당겼다.
꺅,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오토바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런 그들 앞에 좀비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스위퍼가 힘껏 오토바이의 앞바퀴를 들어 올렸다.
“꺼져! 게라아아아아웃!”
콰직!
충격에 비틀거리던 오토바이가 잠시 휘청이더니 다시금 균형을 잡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그 자리엔 이륜차의 핏자국만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 * *
2017년 6월.
좀비 아포칼립스 발발 6개월째.
상동역.
차가웠던 겨울과 굶주렸던 봄이 지나가고 어느덧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위퍼는 노루발을 아래쪽으로 끼워 굳게 닫혀 있던 철제 셔터를 뜯어냈다.
유리문을 깨고 들어간 스위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셔터가 닫혀 있던 만큼 안의 물자가 보존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산산 조각났다. 건물 안쪽에서부터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었다.
편의점 안쪽은 텅텅 비어있었다.
‘또 그 자식들인가.’
스위퍼가 이마를 몇 번 만지작거렸다. 최근 인상을 좀 자주 썼더니 이마에 주름이 진 것만 같았다.
노루발을 빙빙 돌리던 스위퍼가 그대로 걸어가 건물 안쪽을 훑어봤다. 역시 건물 안은 매장 하나 남기지 않고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모든 게 빨려 있었다.
‘개자식들.’
근래 이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신경에 거슬리는 집단. 현대백화점 골드문 상무와 그 졸개들. 제법 잘 싸우는 장정들을 중심으로 주변 상가들을 털고 다니는 약탈자 집단이었다. 그들을 약탈자라 정의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빈 상가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있으면 그들의 물건, 심하면 사람까지 납치해 가는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하로 만들고 싶어 하는 상무였기에, 최소한 스위퍼와 그 식구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스위퍼 또한 그들을 죽여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
다만 며칠 전 크게 한 번 부딪친 이후부터 이쪽 거리로는 넘어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사이 약속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린 것이다. 적당히 해서는 멈추지 않을 놈들. 스위퍼는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때 쿵, 하고 옆 건물에서 소리가 났다. 놈들이 아직 근처에 있었다. 스위퍼가 몸을 날렸다.
역시나 바로 옆 건물에서 물자를 채워나가는 놈들이 보였다. 피가 덕지덕지 묻은 낡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내들.
스위퍼는 말을 꺼낼 것도 없이 기습했다.
놈들은 한 무리당 한 명씩은 꼭 총기를 들고 있었다. 그 무리의 대장만 제압하면 그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야, 빨리빨리 해- 컥!”
반자동소총을 어깨에 걸고 있던 사내가 단말마를 토하며 휘청거렸다. 곧바로 그에게서 소총을 빼앗은 스위퍼가 개머리판으로 달려드는 사내를 후려쳤다.
“이, 개자식이 또…….”
“조폭 형씨들, 이쪽으로는.”
콰직!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쿵! 소총이 몽둥이처럼 붕붕 날아다녔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었지만, 그의 날렵한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스위퍼가 양손으로 찔러넣듯 소총을 휘두르자 총구에 콧잔등을 맞은 사내가 마지막으로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곱게 곱게 말하니까, 들어 먹지를 않네. 팔다리가 부러져야 정신을 차리지?”
“으, 으윽…….”
“총은 압수야. 여기서 턴 거 전부 놓고 가. 그리고 거기 상무 아저씨한테도 전해. 이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다음번에는 정말 좋게 안 끝난다. 형씨들.”
스위퍼의 협박 섞인 말에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사내가 끙끙거리며 말을 이었다.
“상무님이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다시 볼 때는 정말 죽는다고. 너도, 네 식구도… 크악!”
그러나 그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스위퍼의 대검이 그의 허벅지를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나 본데.”
분명 그의 얼굴은 웃는 상이었지만, 시퍼런 서슬처럼 선연한 살기가 흘러나와 넘실거렸다. 스위퍼가 대검을 쥔 손을 힘껏 비틀었다. 비명이 쏟아졌다.
“개수작 부리면 진짜, 다 잡아 죽일 거야. 형씨들. 알겠지?”
그것은 흡사 으르렁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