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70화 (170/176)

<170화>

사람들이 눈치를 보면서 스위퍼 근처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목적은 배낭. 그리고 식량. 딱 그뿐인듯했다.

스위퍼도 살기를 죽였다. 조금 건방지기는 했지만, 뭐 굳이 죽여서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두 사람이 천천히 각도를 벌렸다, 아마도 배낭만 탈취해서 도망치려는 속셈인 듯 보였다.

주변 사람들이 시선을 던졌으나 누구도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접근하는 사내들을 보며 보라가 배낭을 꽉 쥐었다.

“어이 꼬마야. 그거 내려놔도 돼.”

“하지만…….”

“어차피 그거에 손대지도 못할 테니까.”

대체 어떤 자신감이람.

보라는 워낙 당당한 태도에 저 또한 긴장이 풀려버리는 것을 느꼈다.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던 사람들은 이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자신을 향해 네 명. 가방을 향해 두 명. 네 명이 자신을 제압한 후 나머지 두 명이 가방을 뺏을 심산인 듯.

스위퍼는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며 곧바로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의 복부를 앞발로 걷어찼다.

“컥!”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말 그대로, 눈 한 번 감았다가 뜬 사이에 한 사람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단말마의 신음이 터졌다.

스위퍼는 곧바로 방향을 돌려 왼쪽에서 접근하는 사내의 무릎을 내리찍었다.

“아악!”

그다음 사내가 채 무너지기도 전에 발뒤축으로 오른쪽 사내의 턱을 후려쳤다.

부웅- 살벌한 파공음이 들리고 사내가 뒤로 크게 무너졌다. 한 사람은 복부를, 한 사람은 턱을, 한 사람은 무릎을 붙잡고 끙끙거렸다.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걸 느꼈는지, 세 사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머뭇거렸다.

스위퍼는 씩 웃으며 달려들었다.

자신을 향해 뻗치는 두 팔을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한 후 사내의 가랑이 사이에 팔을 끼워 넣어 번쩍 들어 밀어붙였다. 두 사람이 어버버 하는 사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순식간에 여섯 명이 제압당하는 걸 본 보라가 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스위퍼가 가장 말이 많던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는 넘어진 채 뒤로 물러났지만, 어느새 억센 스위퍼의 손에 붙잡혔다.

“뭐, 뭣… 잠깐….”

“이봐. 원래 대장은 책임을 지는 법이거든?”

스위퍼가 그의 팔을 뒤쪽으로 꺾었다. 본보기 삼아 팔을 부러뜨려 놓을 심산이었다. 아마 몇 달은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 놔야 할듯했다.

“잘 가 형씨. 까불지 말라고.”

“으아, 으아악!”

스위퍼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그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비명이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점점 강도를 높혀갔다.

“중위님!”

그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한 부사관이 사병들을 이끌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소란을 본 병사의 보고를 듣고 달려온 듯했다.

거참,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스위퍼가 아쉬움 가득한 숨을 내뱉은 후 순간적으로 힘을 줘 우득, 팔을 꺾은 뒤 젠체하며 일어섰다.

“염좌 정도로 봐줬다. 형씨. 감사해도 좋아.”

“큽, 크흑…….”

끙끙거리는 사내를 발로 툭툭 찬 뒤 스위퍼가 손을 탁탁 털고선 달려온 부사관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중위님, 이게 무슨 일…….”

“아아, 별일 아닙니다. 제 물건을 강탈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당방위로 몸을 지켰을 뿐이죠. 아하하.”

부사관이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에 나뒹구는 여섯 사람을 바라봤다. 평소에서 강도 높은 항의로 악명 높았던 무리였다. 부사관은 고개를 끄덕인 후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얘들아. 이분들 의무실로 옮겨.”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 중사가 스위퍼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골칫거리인 사람들이라도 보호 아래 있는 민간인들이었다. 폭력에 대한 따끔한 경고가 필요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그럼요.”

“하지만 중위님, 이런 소란은…….”

“곤란합니다. 그럼요. 질서유지를 위해서 이렇게 국군 장병분들께서 고생하시는데, 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렇지, 보라야?”

스위퍼가 보라에게 시선을 던지자 보라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녀린 초등학생이 가방을 붙잡고 울먹이는 모습은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들도 함부로 행동하면 크게 다친다는 걸 깨달았으니, 한동안은 조용할 겁니다.”

“허허.”

“아유, 중사님. 그 웃음은 뭔가요. 설마 제가 소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시나 본데… 오해라니까요. 오예가 아니라 오해. 여러분, 제가 소란을 일으킨 건가요?”

스위퍼가 활짝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다들 시선을 피할 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스위퍼가 성 중사를 향해 여봐란듯이 말을 덧붙였다.

“이것 보세요. 중사님.”

“그게…….”

어딜 봐서… 그냥 다들 겁먹은 것 아닌가?

“참, 성 중사님 이번에 1차 기동타격대 분대장으로 출동하신다면서요. 가시기 전에 한 대 태우시죠. 제가 특별히 중사님 것만 한 갑 챙겨드리죠.”

“헉,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럼 올라가서 한 대 피우면서 대피소의 질서유지를 위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할까요?”

“아, 예. 좋습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하는 분이실 줄 알았습니다. 으하하.”

스위퍼가 성 중사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그의 어깨를 감싸듯 안았다. 흡사 질질 끌려가듯이 끌려가던 성 중사가 병사들을 향해 뒤를 돌았다.

“다들 의무반에 가서 민간인들 상태 확인하고 보고해.”

“……예.”

성 중사가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자 남은 병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해산했다.

스위퍼가 보라를 향해 목욕탕 열쇠를 던졌다.

“보라야, 그거 배낭 사물함에 넣어놓고 열쇠 흡연실로 갖고 와.”

“예? 예… 아저씨, 싸움 잘하네요?”

“그럼, 인마. 그러니까 너도 개기지 마.”

“제가 언제…….”

스위퍼가 손을 휘휘 흔들며 흡연실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생존자들의 눈에 군인들과 친한 데다가 식량도 많은, 무서운 생존자의 모습이 단단히 각인됐다.

그들의 얼굴은 흡사 건드리면 X 되는 폭발물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 * *

그날 저녁, 대대장이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모두 한곳에 소집했다. 넓은 공간처럼 보였지만 육백여 명이 여유 있게 앉으니 제법 꽉 차게 느껴졌다.

중대발표가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수군거렸다. 스위퍼와 보라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위층에서 대대장이 내려와 운동장 앞쪽으로 걸어갔다.

“주목 부탁드립니다!”

목청 큰 병사 하나가 소리를 지르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곧이어 대대장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8771 장병 여러분. 그리고 부천시 주민 여러분. 대피소를 책임지고 있는 대대장입니다.”

조곤조곤하지만 작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법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망이 있는 건지, 통솔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그의 말에 집중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구호품이 없어 힘들어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부 제 불찰이고 책임입니다. 저희는 며칠간 정부의 구조를 기다렸지만, 정부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정부 기관 쪽에도 저희와 같은 타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픈 배를 붙들고선 구조만 바라고 있던 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전부 끝났어.

세상은 망했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

목청 큰 대대장의 목소리에 다시금 웅성거림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몇몇 과격한 민간인들이 소리쳤다.

“보호한다고, 이 상황이 뭐가 달라지나?”

“먹을 게 필요해요!”

“맞아!”

대대장이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생각보다 민심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었다. 역시나,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는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책이 있습니다. 스티븐 중위.”

대대장이 자신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보내며 손짓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스위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

나요?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면 나가기야 하겠다마는…….

스위퍼가 머뭇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다. 아까 난동 피웠던 그 깡패 새끼. 흡사 그러한 눈빛으로.

스위퍼가 대대장의 옆에 도착하자 그가 스위퍼의 손을 잡아 들어 올렸다.

“여기 이분은 UN군에서 파견 나온 대한민국 출신의 장교입니다.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의 구조를 위해 어렵사리 모셨습니다.”

마치 사람들의 머리 위에 동시다발적으로 느낌표가 뜬 듯한 광경이었다. 적의와 경계는, 순식간에 경의로 바뀌었다. 희망. 그리고 기대로.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빤스런 할 시기가 빨라지겠군. 스위퍼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진짜입니까?”

용감한 청년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원하신다면 앞으로 나오세요. 신분증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달리듯 뛰어나왔다. 그러고선 스위퍼가 내민 위조 신분증을 여기저기 훑어보고선 침음을 내뱉었다.

“지, 진짜잖아…….”

“그러니 여러분들은 구조가 진행될 때까지. 안전하게 저희의 통제에 따라 주시면 되겠습니다. 만약,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군의 통제에 따라주지 않으신다면, 정말 안타깝지만 다른 민간인분들의 안전을 위해 여러분의 보호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임 오버였다.

이미 대부분 사람이 그의 감언이설에 속아 완전히 넘어갔다. 그는 유능한 군인이자 동시에 정치인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아이를 안고 있던 아낙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어요. 당장 식수도 너무 부족하고요, 그 구조라는 건 언제 오는 거죠?”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는 저희끼리 힘을 합쳐 버텨야 한다는 것 정도는 확실합니다.”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민간인 생존자 여러분들.”

대대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금일부터, 본 부대는 기동타격대를 운영하여 외부에서 민간 군수품을 조달할 계획입니다. 절대 여러분을 굶어 죽게 하지 않아요. 성 중사.”

“예, 대대장님.”

“준비는 끝났지?”

“예. 그렇습니다.”

성 중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뒤쪽의 사람들은 불렀다. 하사 한 명과 열한 명의 사병이 이 열로 서 있었다. 뭔가 단단히 각오한 듬직한 모습에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안전하게 임무 수행 후 돌아오도록. 여러분의 어깨에 모두의 희망이 걸려 있다.”

“예. 알겠습니다.”

성 중사와 기동타격 1번대는 대대장에게 경례하고 출발했다. 그 모습을 생존자들이 고스란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종의 쇼였다. 그리고 일이 그의 생각대로 풀린다면, 그 쇼는 아주 좋은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그러나.

정확히 20시간 뒤, 나갔던 군인들은 빈손으로 되돌아왔다.

돌아온 수는 고작 절반.

운동장 바리케이드 주변에는 더 많은 좀비가 둘러쌌다.

그날 새벽, 연락을 받고 대피소로 옮겨 왔던 전사자의 홀어머니가 자살했다.

비극의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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