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68화 (168/176)

<168화>

대대장에게 보고하겠다고 부리나케 달려나갔던 일병은 반 시간이 되기 전에 되돌아왔다. 체육관 내를 뛰어다녔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모습이었다. 상병이 일병을 항해 물었다.

“뭐래?”

“그, 우선 입소 절차 진행하고 바로 면담하러 오라십니다. 사인은 나중에 하셔도 된다고.”

일병의 말에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선 스위퍼에게 목욕탕 열쇠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 사물함 열쇠입니다. 1층 입구 쪽에 개인 짐을 보관할 수 있으니 사용하시면 됩니다. 대신 위험한 흉기는 반입이 불가능하니, 저희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아아.”

스위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도끼는 녹색 보관함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상병이 머뭇거리며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죄송한데… 저희가 지금 보급품 상황이 안 좋아서 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상위부대에서 지원이 도착하면 꼭 챙겨드리겠습니다.”

“어, 괜찮아. 밖에서 많이 챙겨왔으니까.”

스위퍼가 괜찮다는 듯 그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몸을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리던 상병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안에 들어가시면, 도난에 주의하십쇼.”

“왜,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나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썩 귀여운 걱정을 해주는데.

스위퍼가 픽 웃어준 뒤 그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리고 배낭을 둘러맸다.

“대대장실은 3층입니다.”

“오케이.”

스위퍼는 개인 물품 보관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배낭을 집어넣은 뒤 곧바로 대대장실로 향했다.

흘깃 눈에 들어오는 대피소의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피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기보다는, 흡사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들 같았다.

사람들은 실내운동장 여기저기에 널브러지다시피 누워있었고, 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투덜거리며 짜증을 부리거나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시체처럼 있었다.

‘상당히 심각한데.’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둑어둑한 실내운동장 상황은 그의 눈에 당장에라도 문제가 터질 활화산처럼 보였다.

‘흠.’

동시에 궁금해졌다. 어쨌든 이 난리 통에 안전하게 쉘터를 구축한 대피소의 대장이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대대장실 앞에 도착한 스위퍼가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대대장실은 햇빛이 잘 들어오는 사무실 형태의 공간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대대장 앞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대장은 안경을 살짝 들어올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예. 반갑습니다. 수도군단 예하 8771부대 대대장, 신형철 중령입니다. 유엔군 소속이시라고요?”

“예. 스티븐 리 중위입니다.”

신 중령이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자 스위퍼가 그 손을 맞잡았다. 찰나의 시간 동안 서로를 살피는 듯한 시선이 스쳐 지나갔다.

중령이라는 계급치고는 제법 젊은 티가 났다. 강퍅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제법 단단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신 중령 또한 자신을 투시하듯 바라봤다. 허공에서 마주친 눈빛에 시간이 잠시간 멈춘 듯했다.

“이것 참. 일단 앉으세요.”

신 중령이 검은색 소파에 몸을 기대며 반대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에는 일병이 들고 나갔던 위조 신분증이 들려 있었다.

이리저리 신분증을 만지작거리며 확인해보지만, 아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할 거다. 철저하게 똑같이 만들어진 신분증이었으니까.

몇 분간 신분증을 만지작거리던 신 중령이 테이블에 신분증을 내려놓고 그에게 쭉 밀어냈다.

“어쩌다가 혼자 움직이게 되시었죠?”

“휴가 겸 특수임무를 맡아 잠시 한국에 들렀다가 이번 일이 터져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 사실 부대에 연락해서 구조요청을 해 놓은 상태이긴 합니다만,”

신 중령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달라졌다.

“그 전에 근처 대피소 상태를 확인하려고 들렀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태가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요.”

“유엔과 연락이 됩니까?”

스위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험 판매상으로 잠입했던 때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안색이었다. 지금은 연기가 중요한 타이밍이었고, 연기라면 통달하다시피 했다.

“예, 뭐. 되었었지요.”

“보셨겠지만, 상황이 어렵습니다. 혹시 유엔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대대장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상기되어 있었다.

“진정하시고요, 대대장님. 현재 상황이 어떻습니까?”

스위퍼는 그에게 바통을 넘겼다. 대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숨을 옅게 내쉬고는 담담하게 상황을 풀어나갔다.

계엄령 발포 이후 군 정부는 수도방위사령부, 수도군단, 기타 사단 등 전방의 몇 부대를 제외한 주요 사단급 예하 대대를 재편성해 임시 대피소를 운영하게 지시했다.

제법 효율적이고 유연한 대처였다. 그리고 보급까지도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지시 이후로 사령부와 상위부대의 모든 연락이 뚝 끊겨버렸다. 자연스럽게 지휘체계의 혼란이 왔다.

보급도 마찬가지였다.

보급이 들어오지 않고 자체적으로 보급이 진행되지도 않으니 고작 일주일 만에 상황은 벼랑 끝에 몰렸다.

그래서 신 중령은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섣부르게 움직이기보다는 일단 내부를 정비하고 추가 감염자가 없게끔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에 적합한 판단이리라.

안전주의적이고 합리적이군. 스위퍼는 속으로 중얼거리고선 다른 말을 꺼냈다.

“대피소를 정비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제 생각에는 주변 좀비들을 먼저 정리해야 할 듯한데요. 주변에 정리되지 않은 좀비들이 너무 많아서 이동하기도 다른 생존자들을 받기도 어려워 보이니까요.”

“… 저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시기상조인 이유가 있어요.”

“이유요?”

“첫째로 총성이 들리면 주변 좀비들이 죄다 몰려올 것이고, 둘째로 병사들은 실전 훈련이 거의 되지 않은 사병들이니 실전에서 어떤 안전사고가 일어날지 몰라요. 마지막으로….”

신 중령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뒤이었다.

“상부에서 사살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달된 명령은 생존자를 보호하고 격리하라는 명령이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치료제가 개발될지도 모르니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발포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겠죠. 초기에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여론에서 감염자들을 죽여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갑론을박을 펼치지 않았습니까. 우리를 포함한 인근 부대에서도 난색을 띠고 있는 건 맞아요. 어떻게든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소탕 작전을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자니 앞선 두 가지 이유가 걸리고.”

대대장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인근 성질 급한 지휘관이 있는 부대는 벌써 자체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곳도 있었습니다만, 작전 수행일 이후부터 연락이 완전히 두절됐어요. 변고가 생긴 겁니다.”

“좀비들의 집중 타격 대상이 된 건가요?”

“그럴 확률이 높겠죠. 말씀드렸다시피 병사들은 사격장 과녁에 대고 일 년에 두어 번 쏴본 게 훈련의 전붑니다. 실전에서 어떤 안전사고가 발생할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해요.”

“흐음…….”

“기동타격대를 운영하기엔 배치된 병력이 부족한 데다가, TV 수신이 끊기기 전 방송됐던 ‘치료제 개발’ 언급 때문에 저 좀비들을 함부로 죽이기도 껄끄럽습니다. 대피소 여론이 안 좋아요. 실제로 저들 중에선 집에 좀비가 된 가족을 그대로 가둬 놓고 대피한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대대장은 한숨을 한번 푹 내쉬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외부자가 없는데도 내부에서 자꾸만 감염자가 발생합니다. 한번 난리가 날 때마다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고 그때마다 생존자들은 내보내 달라고 난리죠. 총체적 난국이죠. 하지만.”

신 중령은 말을 이어갔다.

“이제 한계입니다. 지휘관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됐어요.”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중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진짜 유엔군이라면 유엔에 구조요청을 보내주세요.”

“구조요청은 이미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난리는 서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대대장,”

“뭐라고요?”

“님.”

신 중령이 벌떡 일어났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이 사태가 벌어졌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구조요청은 보냈지만, 그 상황이 언제 진행될지는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일단 음, 다른 지역에서 먼저 사태를 정리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한국은 제가 볼 땐 초동대응에 완전히 실패한 듯 보이니까.”

“하…… 그런.”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그럴 것이다. 안 그래도 응답하지 않는 정부와 군 상부가 원망스러울 텐데, 전 세계적인 난리라는 말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겠지. 내심 주변국의 구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담배 한 대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금연 중이라.”

잠시 마른세수를 벅벅 하던 신 중령이 굳은 표정으로 스위퍼를 바라봤다.

“스티븐 중위, 그 일은 일단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요하시다면요.”

“지금 부대원들과 생존자들의 심리상태가 거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이 이상 안 좋은 소식을 전하면 어떻게 될지…….”

“그건 그렇죠. 뭐, 자살하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화장실에 봉 같은 건 다 떼셨죠?”

신 중령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가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한 가지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다른 소속이 있으시니 명령이나 과한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아, 예. 편하게 말씀하세요.”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셨다고 하셨으니 제격인듯합니다. 생존자 중 건장한 장정들을 추려 기동타격대를 구성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싫습니다. 부담스럽거든요.”

“…….”

칼 같은 거절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신 중령이 말문을 닫았다.

편하게 말하랬지 다 들어준다고는 안 했는데. 이 형씨, 왜 이러시나.

“그, 그럼 생존자들에게 UN군에서 파견되어 곧 구조 활동이 시작한다고 공표하는 것쯤은 괜찮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스위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괜찮겠지. 왠지 대형 사기극이 되어 가는 기분이지만, 여차하면 발 빼면 그만이니.

“그 정도는 가능하죠. 사실이니.”

그의 말에 신 중령의 표정이 활짝 폈다.

“대대장님은 어쩌시게요?”

“기동타격대를 만들어야지요. 보호소민들이 너무 많이 주리고 있어요. 민간 물자 조달을 해야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파이팅.

스위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스티븐 중위.”

“예. 저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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