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65화 (165/176)

<165화>

외전. 코드 네임 스위퍼

2016. 12.

인천.

“…그렇게 된 이야기야. 뒷이야기는 상상에 맡길게.”

-이봐, 스위퍼! 그렇게 끊으면 어떻게 해?

“뭐야, 뭘 기대한 건데?”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줘야 할 것 아니야.

“그건 너무 자극적이라고. 응? 어린 데이트 어플 형씨. 어린애 정서에는 안 좋다니까. 아무튼, 그럼 이번에도 보고 잘 부탁해. 아멘.”

-이봐, 야! 야!!

스위퍼는 현황 보고를 마치고 깔끔하게 뒤돌아섰다. 수화기 너머로 뭐라 뭐라 구시렁거리는 게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목표물을 확보했고 처리까지 확실하게 했으면 된 거지, 무슨 과정 보고까지 받겠다고.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은 중요한 게 아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귀찮으니까.

뚝. 스위퍼는 투박하게 생긴 구형 전화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디자인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쌍팔년도 구형 휴대 전화기라니.

물론 이래 봬도 도청과 감청 방지용으로 본사에서 보급해 준 임무용 전화기였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원리는 몰라도 딱 하나의 번호와만 연결되게 되어 있고, 그 번호는 해외에 있는 임무 하달용 중개소였다.

스위퍼는 깔끔하게 뒤처리된 현장에서 나와 천천히 걸었다. 사람 하나가 비명횡사했으나 현장에는 증거도 증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인천항을 통해 밀입국한 국제범죄자. 족적이 남을 리가 없다. 살흔 따위도 전혀 없다. 스위퍼는 파견 요원 중에서도 일 처리가 은밀하기로 유명했으니까.

그의 입술 사이로 휘파람이 새어 나왔다. 임무도 끝냈겠다, 한동안은 자유시간…….

-띠리리릭.

이 아니군.

스위퍼는 끊기가 무섭게 울려 대는 임무용 휴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역시 아무리 봐도 디자인은 개구리다니까.

“당소, 스위퍼.”

-어, 나야. 보고 건 처리됐어. 금방 입금될 거야.

“아아, 땡큐. 수고했어.”

-복귀는 언제 할 거야?

“글쎄, 오랜만에 고향 땅에 왔으니 좀 쉬었다가 나갈까 하는데. 한국에 다른 건은 없지?”

-없어. 지금 동북아시아 쪽 전체를 통틀어도 별로 건수가 없어. 본사에서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 쉬면서 기다려도 될 것 같아.

“그래, 뭐. 한국 예쁜이 언니들이랑 데이트나 좀 하다 들어가지 뭐.”

-사고 치지 말고.

“이봐, 형씨. 날 대체 뭘로 보고.”

-지난번 광저우 건.

“어, 미안합니다. 얌전히 지낼게요.”

광저우 건을 들먹인다면 또 내가 할 말이 없지.

스위퍼가 광저우에서 본의 아니게 난동을 부렸던 일화를 떠올리며 꼬리를 내렸다. 도박이 이래서 나쁜 거라니까.

스위퍼는 머리를 긁적이며 화제를 돌렸다.

“근데 이 호출기는 대체 언제 바꿔 주는 거야? 차라리 내 개인 카톡으로 미션을 주라고. 응? 최신 문물 좋잖아.”

- 화제 돌리기 하나는 능구렁이 수준이라니까. 곧 신형 나온다고 하니까 제발 사고나 치지 말고 있어.

“라져.”

블데는 몇 번이고 신신당부한 뒤 전화를 끊었다.

참 나, 누굴 사고뭉치 어린애로 보는 거야, 뭐야.

스위퍼는 억울했다. 물론 전적이 있어 크게 따질 수는 없었지만.

“날씨 한 번 좋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날씨는 선선했다. 며칠간 서늘하더니 오래간만에 풀린 날씨였다.

하늘을 맑았고 오후 거리는 한적했다.

스위퍼는 한적한 오후 거리를 거닐었다. 한바탕 술이라도 마실까 하다가 접어두었다. 입금일에 파티를 벌이면 탕진하기 일쑤였다.

그는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빠져나와 동쪽으로 이동했다.

도보로 한 시간쯤 이동하면 세워 둔 자전거가 있다. 최대한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이동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대중교통이나 자가 차량, 택시 등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신분은 완벽했다. 프리랜서 보험 외주 판매상이라는 멋들어진 직업이 있었으니까. 물론 실적은 몇 달간 0건이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인천-부천 경계선 쪽으로 이동한 스위퍼는 잠시 아파트 단지 초입의 맛집에서 우아하게 9천 원짜리 함박 스테이크를 썬 뒤 입가심을 위해 스타벅스 테라스에 앉았다.

“흠, 흠.”

잘 다듬어진 양 가르마 히피 펌을 테라스에 비추어 보며 몇 번 만지작거린 뒤 턱을 쓰다듬었다. 바꾼 스타일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잘생겼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최소한 멋지긴 했다.

스위퍼는 머리칼에 살짝 튄 보일락말락 하게 굳은 핏덩이를 살짝 떼어낸 뒤 커피를 홀짝였다. 임무 수고료가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좀 죽이고 있을 생각이었다.

“저…….”

스위퍼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젊은 여성을 발견했다. 수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다가오는 모양새가, 딱 봐도 번호를 얻기 위한 구애의 몸부림이었다.

스위퍼가 한숨을 쉬었다.

이거 봐, 아직 안 죽었다니까.

나란 남자, 죄 많은 남자.

스위퍼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머뭇거리는 게 귀여워 보이긴 했다.

심심하던 차였으니, 좀 놀아줄까나.

“예?”

“실례지만,”

“괜찮아요. 폰 주…….”

“기운이 좋아 보이시는데, 혹시 도를 믿으세요?”

스위퍼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순발력을 발휘했다.

“Pardon?”

* * *

“아하하, 그래서 외국인인 척했다고?”

“어, 그 누님이 영어까지 잘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스위퍼는 그랑시아 아파트 근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몇 번 만에 헌팅에 성공한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딱히 흑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은 없었고, 시커먼 사내새끼는 싫었을 뿐이었다.

얘기나 좀 하다가 해 떨어지면 마침 오늘은 A매치 경기도 있는 날이겠다, 같이 맥주나 마실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녀도 그가 썩 재밌는 모양이었다.

시시콜콜한 수다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밤이 되자 길거리가 어수선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먹거리 골목이라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시선을 돌렸다.

헌팅녀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슬슬 자리를 옮길 타이밍인가.

“누님, 뭘 그렇게 봐?”

“응. 유튜브. 실시간 인기 급상승 영상이 있는데, 이거 봐봐.”

여자가 묵직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야, 이거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다닌담. 스위퍼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화면을 보고 있자 여자가 덧붙였다.

“서울 쪽에서 무슨 난리가 났나 본데, 좀 이상해. 영화 촬영 같기도 하고.”

“방금 올라온 동영상이네. 좀비?”

“응. 특수촬영 같지?”

흐음, 스위퍼가 턱을 쓰다듬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특수촬영 같지는 않았다. 직업 특성상 진짜 피와 분장을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때마침 등 뒤에서 낯선 사내가 비척비척 걸어왔다.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으나, 힐긋 보고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선 눈앞의 예쁜이에게 집중했다.

“특수촬영보다는 CG 같네. 기술 좋은걸.”

“에휴. 오늘 같은 날은 혼자 있기 무섭겠어. 끔찍한 걸 봐서 그런가.”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선 사르르 눈웃음을 쳤다. 시그널이다.

이것 봐라. 앙큼한데. 좀 어울려 줄까나.

스위퍼는 잽싸게 신호를 받아 물고선 따라 눈웃음을 쳤다.

“누님, 아까 자취한댔지?”

“응? 응.”

“마침 내가 잘 데가 없는데.”

“뭐야아, 완전 직설적이고.”

“이 정도 와꾸면 좀 직설적이어도 되잖아?”

“응. 안 돼. 돌아가.”

“…어, 이게 아닌데.”

헌팅녀가 다시 한번 사르르 웃었다. 그녀는 돌아가라며 두세 번 연속으로 손사래를 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 순간 뒤쪽에서 접근하던 남자가 방향을 틀어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먼저 발견한 스위퍼가 인상을 썼다.

뭔가 이상한데, 라고 느낄 즈음 여자가 그의 시선을 따라 뒤돌아봤다. 그 순간 사내가 덮치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꺅, 하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단말마의 비명은 사내의 이가 목덜미 깊숙이 처박힌 순간 끔찍한 괴성으로 바뀌었다.

“아아아악!”

사내는 그녀의 가녀린 목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올 정도로 강하게 물어뜯었다. 스위퍼가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여인도 발버둥을 치며 일어섰지만, 금세 균형을 잃고 그를 향해 쓰러지듯 다가왔다.

찰나의 시간, 스위퍼의 시선에 사내의 모습이 스쳤다.

가까이서 보니 이상하다. 얼굴에 핏기가 없고 눈이 시뻘건 데다 피부가 온통 회백색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

‘좀비?’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가 좀비를 단 채 그에게 접근했기 때문.

스위퍼가 반사적으로 발로 그녀의 배를 차 밀었다.

“아, 누님, 미안.”

그런 다음 곧바로 사내의 관자놀이를 쳐 그 충격으로 소개팅녀에게서 떨어트렸다. 그녀는 충격과 고통에 뒤범벅된 얼굴로 목을 붙잡고 소리를 질러 댔다. 주변에서도 비명과 시선이 혼잡하게 휘날렸다.

스위퍼에게 얻어맞은 사내는 금세 균형을 잡고선 달려들었다. 스위퍼가 인상을 찡그렸다.

‘상당히 세게 쳤는데?’

사내의 입에서는 인간의 목소리라곤 볼 수 없는 울부짖음이 새었다. 흡사 맹수가 그르렁거리는 것 같기도, 목에 가래가 끓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접근하는 사내의 허우적거림을 손쉽게 피해냈다.

‘어, 몸이…….’

몸이 가볍다.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원래부터 날쌘 그였으나, 오늘따라 더욱 몸이 가벼웠다.

스위퍼는 손날로 최대한 세게 사내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사내가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기절시킬 기세로 후려쳤으니,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터다.

“누님, 괜찮아?”

스위퍼가 손을 덜덜 떨고 있는 헌팅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쓰러트렸던 사내가 다시 일어나 달려들고 있었다.

“젠장, 뭐야?”

다시 한번 그의 배를 밀치듯 걷어찬 후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다시, 그리고 그다음에도 또다시 일어섰다.

‘도대체…….’

마침내 스위퍼가 테라스에 있던 의자를 들어 사내를 후려쳤다. 힘 조절이 안 돼 바닥을 나뒹구는 사내를 보며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진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반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매장 안쪽에서는 입을 틀어막고 공포에 질린 채 구경하고 있는 고객들이 즐비했다.

‘아, 젠장. 또 사고 쳤네.’

웬만해서는 조용히 있으려고 했더니만 이번에는 진짜 눈에 띄어버렸다.

스위퍼가 자책하며 경련하듯이 부르르 떠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일단 119에 전화를 거는데. 모든 회선이 통화 중이었다. 급하게 연락한 112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어디에선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대피하라는 방송이었다.

하,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미안, 누님. 잠시 여기 있어. 병원 다녀올 테니까.”

스위퍼는 여자를 의자에 기대어 앉힌 후 근처 병원으로 내달렸다. 아까 봤던 ‘좀비 영상’이 눈에 아른거려 업고 가기에는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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