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32번 대형으로!”
노인은 나이에 맞지 않은 쩌렁쩌렁한 목청을 자랑했다. 그의 외침을 들은 분대장들은 힘껏 복창하더니 순식간에 트럭에서 뛰어내려 자리를 잡았다.
신입 조원들도 부랴부랴 그를 뒤따랐다. 불과 일 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사람들이 잘 훈련된 군사들처럼 퍼져나가 사주경계를 시작했다. 철옹성 같은 전투태세였다.
“북쪽 전방에 좀비 출현!”
소란을 들은 좀비들이 죽음의 기운을 스멀스멀 풍기며 하나둘 기어 나왔다. 부패하고, 잘리고, 부서진 채 도저히 인간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없는 몰골.
좀비들을 마주한 경험이 적은 올리비아가 흠칫했다. 괜한 긴장감에 손을 두어 번 쥐었다가 펴고 팔을 쓱쓱 쓰다듬은 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놀랍게도, 신입 조원 중 자신이 가장 긴장한 듯했다. 다른 조원들은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었다.
훈련할 때는 그렇게 어리바리해 보이더니, 과연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인가. 올리비아가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수색 4조 조원들은 공영주차장의 좀비들을 정리한 뒤 스쿼드별로 흩어졌다.
<우리는 이 건물부터 이쪽 블록이다.>
분대장을 따라 도착한 곳은 평범한 상가 건물들이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분대는 신입 분대가 끝이었다. 새롭게 투입되었어도 1인분은 해내라는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북서쪽 좀비 두 구 출현!>
긴장할 새도 없이 건물 안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리비아!>
분대장의 외침에 올리비아가 좀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분대장이 외치면 구역을 담당하는 조원이 전진해 처리한다. 다섯 명이 전진해서 좀비들을 처리하고 두 명이 백업하는 진형이었다.
올리비아가 침착하게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좀비의 관자놀이를 쳐냈다. 전투 훈련 시작 이후부터 계속해서 손에 쥐고 있던 무기는 어느덧 제 손만큼이나 익숙했다.
빡빡하게 긴장했던 근육들이 첫 번째 좀비를 박살 낸 순간부터 느슨하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약하다.
대련이랍시고 격투술 상대를 자처했던 캠프 요한의 수색 조원 중 누구도 이렇게 나약하게 나자빠지지 않았었다.
부웅-!
힘차게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쇠붙이가 좀비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그들에게 질 것 같지도 않았지만, 설령 위험에 빠지더라도 저 눈빛 흉흉한 분대장이 사태를 좌시하고만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한치의 방심도 없이 다섯 조원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지적과 백업을 아끼지 않았으니까.
임무는 수월했고, 생존자들은 강했다. 어느덧 남아 있던 일말의 긴장감들도 파스스 식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정지. 모두 포인트로 되돌아와 휴식한다. 밥 먹자.
무전기 너머로 용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의 지시를 확인한 분대장이 정지 신호를 보낸 후 뒤돌아섰다.
<수고했어. 돌아가자.>
대기 포인트는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하던 넓은 아스팔트 주차장이었다. 주변에는 3미터가량의 철책이 둘려 있고 철책을 차량이 받치고 있어 제법 안전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주차장으로 되돌아오자 신입 스쿼드 뒤로도 속속들이 사람들이 도착했다. 조용했던 주차장이 금세 왁자지껄하게 변했다.
<…….>
올리비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 조원은 언제 전투가 있었느냐는 듯 행색이 깨끗했다.
복장에 피가 튄 것도 신입 스쿼드 대원들이 유일했다. 올리비아가 놀란 눈으로 그녀의 분대장을 바라보자 그 또한 행색이 깨끗했다. 분대장이 희미하게 웃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 피가 많이 튀면 빨래하기가 귀찮아지거든.>
이 정도의 안정감을 지니기 위해 그들이 쌓은 좀비 시체가 얼마일지, 그녀로서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분대별로 식사 받아가!”
기존에 차량을 지키던 인원들은 이미 식사를 마쳤는지 경계를 섰고 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 올리비아와 신입 조원들도 지급된 전투식량들을 뜯었다.
<자.>
분대장이 뜨거운 물을 퍼 와서 신입들의 전투식량에 부어주었다. 전투 중에는 한없이 사납게 구는데, 평소엔 제법 다정했다. 이곳 생존자들 대부분이 그랬다. 평소에는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서글서글한데, 좀비만 눈앞에 두면 육식동물처럼 돌변한다.
올리비아가 데워진 전투식량을 한술 떠먹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맛없다.
<분대장님, 사람들이 엄청 익숙해 보이네요.>
조원 중 한 명이 분대장을 향해 조잘거렸다. 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꾸했다.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지겹지. 이 세상에 좀비 천지가 아닌 곳이 없으니까.>
<힘들지 않으세요?>
<이 개밥 같은 전투식량 먹는 게 힘들지. 전투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
<이히히, 그러게요. 요즘 군대는 전투식량도 잘 나온다던데. 아무튼, 빨리 가서 집밥 먹고 싶다.>
<이건 기성 전투식량이 아니라서 그래. 캠프에서 개발한 보급품이지. 저 질량, 고열량, 고 방부제.>
몸에도 별로고 맛도 없지.
분대장이 덧붙였다.
<많이 먹어라. 그래야 좀비가 되어도 덜 썩을 테니까.>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이곳 분위기는 식사 시간만큼은 조금 자유로운 듯했다.
분대장이 말없이 일회용 스푼을 깔짝이던 올리비아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올리비아는 하진 조장님이랑은 무슨 관계야?>
<무슨 관계냐니…….>
<왜, 자꾸 너 보러 찾아오시는 것 같던데.>
<아무 관계 아닙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니요, 아무 관계 아닙니다!>
<대단한 분이지. 잘 잡아 두는 게 좋을 거야.>
분대장은 희희낙락하며 떠들었다. 쿨하게 생겨서는 생각보다 남의 연애사에 관심이 많네.
밥이 생각보다 잘 넘어가지 않았다. 돼지죽을 넘기는 듯한 식감이었다.
맛없다… 라고 중얼거리던 올리비아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이 캠프에 합류하기 전에는 먹을 게 없어 풀죽을 쑤어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제법 먹을 만한 음식을 먹으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요즈음 참 편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훈련 기간엔 식사만큼은 정말 훌륭하게 나왔으니까.
띠리리릭.
분대장의 어깨에서 무전기 알림음이 흘러나왔다. ‘아직 시간이 안 됐는데?’라는 생각도 잠시, 곧바로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새어 나왔다. 식사하던 사람들의 손짓이 뚝 멎었다.
-북서쪽에서 좀비 다수 출현. 이쪽으로 옵니다.
“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건데.”
근처에서 밥을 먹고 있던 용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그를 따라 몇몇 조원들이 따라 일어났다.
용 노인은 곧바로 가장 높은 트럭의 킹캡 위로 올라가 북서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 인상을 쓰며 허공에 손짓하자 누군가 쌍안경을 휙 던졌다.
그 모습을 본 신입 조원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분대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래요?>
<뭐가 나타났나 본데, 빨리들 먹자.>
분대장은 다시금 예의 그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조원들은 설마 별일 있겠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빠르게 음식물을 씹어 넘겼다. 올리비아도 억지로 밀어 넣듯이 식량을 흡입했다.
무전기에서 쉴 새 없이 무전이 흘러나오고 분위기가 점점 급변했다.
“뭐야, 웨이브잖아?!”
그 말은 곧 신호탄이었다.
노인의 말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조원들이 황급히 식량들을 내려놓고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웨이브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곧,
-조장님! 북서쪽에서… 지원을!
“뭐?”
-변종입니다!
이런 시부럴.
노인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망할 놈의 변종새끼들은 도대체가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기어 나온다.
상황도 안 좋다. 소규모 수색도 아니고 대규모 수색이다. 여기서 크게 타격을 입었다가는 캠프 자체의 피해가 크다.
“뭔 놈이냐?”
-아이언피스트입니다!
철갑형 변종. 난이도 7.5의 아이언피스트. 지금 전력으로는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었다.
“빌어먹을. 조금만 시간 벌어!”
-……예!
용 노인이 입술을 짓이겼다. 그들에게 시간을 끌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시간을 벌어주지 못하면 최소한의 대처도 할 수 없다.
“살아라, 애새끼들!”
대답은 없었다. 벌써 전투태세에 돌입한 듯.
“분대 전원 전투태세로! 9번 대형! 차량으로 벽 쳐! 리디, 동쪽 입구! 강호, 서쪽 입구! 나머진 북쪽 본다! 입구는 세 개만 뚫어!”
<분대 전원 전투태세로! 9번 대형!>
여기저기서 임무 복창 소리가 들리고 분대장이 신입 조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전투다.>
<무슨…….>
<긴장해. 변종이 나타났다.>
이론으로만 마주했던 그 변종?
변종의 무서움을 마주할 것도 없었다. 바로 옆에서 좀비들과 싸울 때도 긴장한 기색 없던 신입 조원들이 ‘변종’이라는 단어에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곧 분대장들 호출이 있을 거야. 나 없다고 흐트러지지 말고 자리를 지켜. 올리비아. 네가 임시로 분대장을 맡아. 각 길목을 막은 부대에 탄창만 보급해주면 돼.>
<예.>
“빨리, 빨리! 전 분대장들 선봉으로! 야! 캠프에 지원 신호 넣어! 이런 시부럴! 변종이 왜 여기서 나와! 병아리들은 전부 뒤로 빼!”
노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처음 봤다.
그는 황급히 트럭으로 달려가더니 짐칸 덮개를 벗기고 뼈대를 내리자 고정된 기관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헬기 띄운답니다!”
“김가을이!”
“예!”
“주차관리센터 건물 가서 헬기장 깃발 올려!”
“옛!”
여덟 명의 분대장 중 한 명이 빠져나갔다. 나머지 일곱 명이 거의 일렬로 섰다. 그 뒤로 사람들이 약간의 간격을 두고 부채꼴처럼 그들을 뒤받쳤다. 변종을 상대로 많은 수가 달려들어봐야 희생자만 커질 뿐이다. 싸울 줄 아는 놈들이 덤벼들어야 한다.
용 노인이 조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분대장들이 변종에만 신경 쓸 수 있게 해라, 알겠냐!”
“예!”
“대답은 잘하지! 쉬이-펄!”
‘…어쩌라고.’
조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떨고 있는 놈들이 못마땅한 노인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놈들이라도, 변종과의 싸움 앞에서는 여전히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어차피 금방 와.’
헬기를 띄웠으니 삼십 분 안에 도착할 거다. 변종 대가리 깨기 전문가들이.
“으아아악!”
철책 너머에서 비명이 들렸다.
경계병들이 당했다.
무작정 시간을 벌라고는 했으나 방법은 하나뿐이다. 모가지를 거는 것.
“젠장!”
최근엔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이런 대규모 수색에서 남은 변종이 나타날 줄은…….
가장 선두에서 철구가 두 자루의 롱 나이프를 마치 요리사처럼 쓱쓱 갈았다. 노인은 그 뒤에서 허공을 향해 기관총을 조준했다.
“격발!”
누군가가 격발 지시를 내렸다. 좀비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것.
“자리 지켜! 밀리지 마라!”
열린 문을 향해 좀비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뛴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으나, 이전의 움직임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속력 차이가 확연했다.
탕! 탕탕!-
올리비아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캠프에 합류하고 처음 듣는 격발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소리가 오싹했다.
과연 비상사태라는 듯 조원들은 아낌없이 탄환을 쏘아 보냈다. 좀비들이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달려들었지만 침착한 사격은 오히려 거리를 벌렸다. 사격이 시작되자 전선은 금세 밀려났다.
<우, 우리도 빨리.>
올리비아가 탄창을 집어 들었다. 9번 대형에서 마지막 스쿼드의 역할은 보급이다. 탄약이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보급품을 날라주어야 했다.
올리비아가 보급품을 전달하기 위해 탄통을 붙잡은 순간, 그녀의 눈에 허공에서 점프하듯 철책을 뛰어오른 변종의 모습이 보였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모아놓은 듯 시끄러운 공간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사위가 고요하게 느껴졌다.
마치 표범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듯, 끔찍할 만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놈이 철책을 넘는 모습이 슬로우모션, 또는 주마등처럼 느릿하게 보였다.
두두두두!
“뒤져라아아아!”
슬로우모션은 허공에 떠오른 변종 아이언피스트의 몸체에 용 노인이 기관총의 굵은 총알 세례를 먹이면서 끝났다.
용 노인은 거센 반동을 애써 짓눌렀다. 양쪽 팔에 굵은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엑!-
진로를 방해받은 변종이 바닥에 착지한 뒤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덥석 붙잡았다.
“으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두둑! 충격음이 들렸다. 곧이어 붙잡힌 사내의 목이 통째로 뽑혀나갔다.
파바박!-
피가 분수같이 튀었다.
그 상황을 얼빠진 얼굴로 지켜보던 올리비아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방금 목이 뽑힌 사내는,
방금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신입 조원의 분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