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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57화 (157/176)

<157화>

터질 듯 커다란 눈망울에서 불꽃이 일렁거렸다. 협상의 여지 따위는 없다는 강인한 눈빛.

여차하면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듯, 육체의 근육은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팽팽했다.

하진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그녀를 설득했다.

<그는 죽었어.>

<다시 말하지만,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야.>

‘네 권한이 아니야… 라는 뜻인가.’

하진은 그녀의 말뜻을 천천히 해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육체가 이성의 말을 자꾸만 거역했다. 당장에라도 그녀를 제압하고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다.

‘일단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겠군.’

지금 그녀에게는 진정이 필요했다. 왜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 또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진이 천천히 움직여 창고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그 순간, 올리비아의 몸이 하진을 향해 튀어나왔다. 그녀의 기다란 두 손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벼락같은 움직임.

그러나 그에게는 뻔하고, 느리게만 느껴졌다. 속도라면 내로라하는 스위퍼와 매일 같은 단련을 해온 그다. 변종 중에서는 표범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도 더러 있었다.

상대가 나빴다.

하진이 몸을 살짝 비틀어 그녀의 두 손을 쳐내고 목덜미를 내리쳤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타격.

그러나 그녀를 제압하기엔 충분한 힘 조절이었다.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올리비아가 비틀거리다 바닥에 닿기 직전, 하진이 그녀를 받아들었다.

하진은 올리비아를 어깨에 둘러메고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 눈을 끔뻑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걸어가 휠체어를 붙잡았다. 휠체어에 탄 노인은 그를 보고 해맑게 물었다.

<어딜 가는 거야? 올리비아는 자?>

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휠체어를 끌었다. 다행히 그를 붙잡거나 방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누워 있는 올리비아가 신기한지 그녀의 옷깃을 툭툭 건드릴 뿐이었다.

“어, 조장님!”

목장으로 되돌아온 하진을 본 조원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곳에는 이미 복귀한 노아와 벌목조로 나간 일부 조원들을 제외한 조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어…….”

하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어깨에 올려뒀던 천천히 올리비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근육 탓인지 제법 무게가 있어 어깨가 뻐근했다.

“조장님 이분은?”

“말했잖아. 생존자라고.”

“그걸 물은 게 아닌데요…….”

그들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진이 매달듯이 온 그를 보고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노아가 바닥에 내려진 여자의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감염의 증상은 없었다.

“하진, 근데 이 사람은 상태가 왜 이래? 물린 것 아니지?”

“물린 건 아냐. 말을 안 듣기에 기절시켜서 구조해 왔다.”

‘그건 구조가 아니다, 이 악마야!’

노아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그런 표정들을 짓지? 집 앞에 좀비를 보호하고 있더라. 자기 부친이 좀비가 되었나 봐. 죽여야 한다고 해도 아득바득 덤비길래 일단 데려왔어.”

하진의 설명을 들은 노아와 부장들은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상황은 알겠지만, 어쨌든 방식이 대단히 잘못됐다. 어디까지나 ‘구조’다. 그들은 한 번도 생존자들을 억지로 데려온 적이 없었고, 방침상 그래서도 안 됐다. 여자가 깨어나면 얼마나 난리를 칠지 생각만 해도 훤하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설득해야지. 내가 영어를 잘했으면 그 자리에서 설득했을 거다.”

“그래. 내 생각엔 네가 영어를 잘했어도 한바탕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노아의 말에 하진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튼, 제이슨을 불러줘. 깨어나면 설득하게.”

“그래. 근데 이 사람 말이야.”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죽인 건 아니지?”

“그럴 리가. 힘 조절은 확실히 했다.”

“글쎄, 네 기준의 힘 조절이라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할지 상상이 잘 안 되는걸? 명복을 빌어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하진은 그가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 * *

올리비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흐릿했던 기억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 자신을 공격한 고릴라 같은 동양인의 기억에게까지 닿았다.

그 망할, 오지랖 넓은 동양인이…….

<으, 대체 내게 무슨 짓을…….>

다행히 머리가 아픈 것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바닥에는 꿉꿉한 이불이 깔려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왠지 낯설기도, 동시에 낯익기도 한 장소였다.

<여기가 어디…….>

올리비아가 황급히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점차 장소에 대한 기억이 올올히 떠올랐다. 확실히 낯익은 장소였다. 과거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전, 가끔 들렀던 친척의 목장이었다.

“아, 하세요.”

그녀에 귓가에 그 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리비아는 발소리를 죽이며 침실 문 가까이 다가갔다. 갈라진 문틈 사이로 하진과 그의 수마에 붙잡힌 모친의 모습이 보였다. 올리비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저 괴물로부터 엄마를 구해야 해.

올리비아는 본능적으로 튀어 나가려던 몸을 간신히 붙잡고서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게 없나 찾았다. 때마침 시선에 들어온 쇠 봉 하나.

그녀가 손에 봉을 꽉 붙잡고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찰나, 모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맛있어.>

그녀가 멈칫했다. 그러고선 다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하진이 제 모친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 처음 만난 동양인은 제 모친의 식사를 돕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입가를 닦고 팔과 목까지 구석구석 물티슈로 닦아주었다. 아무리 봐도 해를 끼치는 상황은 아닌, 기이한 모습이었다. 손에 힘이 풀렸다.

“뭐해, 거기서. 일어났으면 나와라.”

그때 하진의 굵직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올리비아가 움찔하며 문에서 떨어졌다.

<일어났다. 올리비아. 이리 와.>

귀신같은 감이었다. 올리비아는 봉을 내려놓고 천천히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를 힐끗 바라본 하진이 어딘가를 향해 외쳤다.

“거기! 제이슨 불러와라!”

그의 외침에 한 동양인 청년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제이슨입니다.>

<올리비아.>

제이슨의 인사에 올리비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가 둘 다 유창한 듯 가운데서 통역을 시작했다.

“일단 위험한 듯 보여서 이쪽으로 옮겼다.”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라니.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군.”

<물에 빠지지도, 보따리 내놓으라고도 하지 않았어.>

올리비아의 대답은 단호했다. 하진은 그녀의 말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간 말을 잃었다가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는 충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

“좀비가 된 부친은 죽이지 않았어. 사실 처음부터 죽일 생각도 없었다. 우리 캠프의 규칙에는 가족이 좀비가 된 경우, 남은 가족이 직접 안식을 선물하게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넌 부친을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죽일 생각이 없는 좀비 근처에 생존자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긴 거야.”

올리비아의 표정이 약간은 풀어졌다. 그가 부친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을 위해 번거로움을 감수했다는 것이 있던 적개심을 조금씩 녹아내리게 했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가족을 버릴 수 없었다. 모친과 부친을 곁에서 지키다가, 사태가 해결되고 바이러스 치료제가 나오길 기다릴 생각이었다.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갈게. 구조는 됐어. 굶어 죽던 것도 아니고.>

“치료제는 없어. 올리비아.”

하진의 말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가운데서 말을 전하던 제이슨은 눈알을 도록도록 굴리며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우리에게는 연구소가 있어. 미국에서 파견한 전문 연구인력들이지. 그들이 말했다. 좀비가 되는 건 바이러스에 감염된 질병이 아니라고. 그들은 이미 죽은 상태라고 말이야. 미련을 버려야 해. 그에게 안식을 선물하고 우리와 함께 가서 새 삶을 살아. 그게 네 부친도 원하는 바일 거다.”

올리비아는 네가 뭘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내리눌렀다. 다소 강압적인 느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속내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기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러한 호의를 베푼다는 게, 그녀로서는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흔들렸다.

“지켜야 하는 네 모친을 생각해라.”

저 대목이었다. 자꾸만 엄마를 들먹거리는 것. 저것 때문에 매몰차게 거절을 못 하는 거였다.

“강제로 끌고 가진 않겠어. 우리는 두 시간 후부터 복귀 작업에 들어갈 거니까,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마라. 제이슨, 가자.”

제이슨이 먼저 빠져나가고 하진이 뒤돌아서 나가려던 차에 올리비아가 그를 불렀다.

<잠깐.>

“……?”

하진이 몸을 돌려세웠다.

<왜… 이렇게 도와주는 거야?>

하진은 다시 제이슨을 부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 정도 문장을 해석할 수 있었고, 대답도 가능했으니까. 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짧고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너는 힘세고 아름답다.>

<뭐, 뭐래 멍청이가…….>

<캠프에 좋은 영향일 것.>

그 말을 끝으로 하진은 엄지를 한번 추어올리고선 밖으로 빠져나갔다.

올리비아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모르겠다.

날씨가 덥지도 않은데 괜히 식은땀이 흘렀다.

하진은 밖으로 나와 복귀를 준비했다. 때마침 도착한 옹 상병이 산악용 미니트럭들의 오와 열을 맞춰 주차하고 있었고 그 뒤로 노아가 부산스럽게 물자와 가축들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 하진. 올리비아 씨는 일어났어?”

“어.”

“우리랑 같이 간대?”

“모르겠어.”

“제대로 PR한 것 맞아? 혹하지 않을 리 없는데.”

난 최선을 다했어. 하진이 중얼거렸다. 노아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조원들에게 하던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 대도시까지 가면 퀴진에서 대형 차량을 보낸다고 하니까, 거기까지만 와리가리 하자.”

“어. 확인. 옹이도 수고했다.”

“에이, 아닙니다. 별일 없었지 말입니다.”

하진이 가세하자 작업에 속도가 났다. 한창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 주택 안에서 올리비아가 걸어 나왔다.

하진이 잠시 손을 들고선 그녀에게 다가왔다. 가축 냄새가 훅 풍겼으나, 그녀는 익숙한 듯 티 내지 않았다.

<결정했나?>

<응. 짐을 챙겨 올게.>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어느새 마음의 준비까지 완벽하게 마친 듯 밝은 표정이었다. 과연, 쿨한데. 하진이 씩 웃었다.

<같이 가지. 위험하니까.>

<그래, 고마워.>

그녀는 돕겠다는 그의 말에도 토 달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 반응이 신기했다. 챙겨주면 챙겨주는 대로 ‘누굴 어린애로 보느냐’며 괄괄거리는 여전사가 떠올랐다.

“수색 2, 3조, 복귀합니다.”

-확인.

노아가 목청껏 외쳤다.

“출발!-”

첫 번째 장기수색이 끝나가고 있었다. 수십 킬로미터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고생길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쾌재로 물들어 있었다.

가득 찬 차량만큼과 반비례할 만큼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고 도착한 오프로드의 끝, 시가지의 초입에는 이미 주변을 정리하고 덤프트럭 꼭대기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있는 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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