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아아, 번식이라니. 대장 형씨의 지시를 지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짝짓기할 암컷을 찾아봐야겠는걸?”
스위퍼가 싱글벙글 웃었다. 누가 봐도 놀리는 듯한 투였다.
“쓸데없는 소리를.”
“왜, 형씨. 한쪽 팔이 없어도 형씨는 충분히 매력적인걸.”
“관심 없다.”
“원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법이지.”
“그리고 내 팔 가지고 농담하는 레퍼토리도 이젠 지겹다. 난 지금 이 팔이 마음에 드니까.”
“그러게. 반응이 이젠 재미없네.”
“언젠가 잭이 레이저포도 달아주겠지.”
“…어, 멋지겠네. 꼭 그 날이 오길 바라.”
요한은 적당히 하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게임을 의식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부정적인 단어가 튀어나왔다.
“정정하지. 종의 유지.”
“내가 들을 땐, 그게 그건데 말이지.”
노아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피식 웃음 새는 소리를 냈다.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하진이 목 근육을 푸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바빠지겠군.”
“젊어서 몸이 잘 움직일 때 많이 일해 둬라.”
“어이 애송이야,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요한의 말에 용 노인이 눙치듯 내뱉었다. 스위퍼가 히죽 웃자 노인이 퉤퉤, 침 뱉는 시늉을 했다.
“말했듯이 전 수색조가 뉴질랜드 전역의 생존자 착수에 나갈 거야. 그동안은 각 섬에서 인원을 차출해 비상군을 만들 거고. 두 스쿼드로 나눈다. 1조, 4조가 함께.”
스위퍼와 용 노인이 눈을 마주쳐왔다.
“오클랜드 북쪽으로.”
“라져. 할배, 잘 부탁해.”
“발목이나 잡지 마라, 애송이.”
“2조는 3조와 함께 오클랜드 남쪽으로. 너희는 우선 전진 기지 하나를 만들고 안전지역으로 만들어 놔. 생존자 구조용 캠프를 그쪽에 만들어 둘 거야.”
요한의 말에 하진과 노아가 반색했다. 친근하지는 않았어도, 서로가 피차 편한 상대였다.
“만약 출타 중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리면… 최종 판단은 3조와 4조 조장이 한다.”
“와, 형씨. 그건 우리를 못 미더워하는 처사 맞지?”
“안다니 다행이네.”
요한의 즉답에 스위퍼가 구시렁거렸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리더라기 보다는 돌격대에 가까운 포지션이었으니 미쳐 날뛸 때 통제해 줄 고삐가 필요할 터였다.
“모두 몸조심하고. 죽지 말고.”
이렇게 대대적인 수색팀을 내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혹 대규모로 수색조가 파견될 경우 대부분 요한 또한 함께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남아있어야 했다. 대부분의 전투 인력이 부재한다면, 남아있는 사람이 가장 부담스럽기 마련이니까. 자신이 책임지고 이들을 지켜야 했다.
이번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생존자 수는 더욱 늘어날 터다. 그다음에도 요한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구조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할 생각이었다. 호주를 거쳐 동남아까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생존자들을 구출할 생각이었다.
모든 기반은 준비되었다.
유능한 리더들이 있으며, 체계화된 조직이 있고, 식량과 자원이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분명 말썽을 일으키는 분탕 종자가 생겨나겠지만 상관없었다.
사람은 체제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설령 분탕 종자들이 생겨난다고 해도 안정감이 들면 그들도 따르기 마련. 그저 자신은 믿을만한 측근들만 있으면 된다.
뉴질랜드는 아주 좋은 베이스캠프였다. 지열 발전 시스템이나, 풍력 발전 시스템도 곳곳에 기반이 남아있는 데다가 식량 생산 기대치도 훌륭해 자급률이 높았다.
변종의 씨만 말린다면, 이 지역을 청정 구역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흠, 남는 사람들은 괜찮을런가?”
용 노인이 걱정을 담아 물었다. 아무래도 전투조가 전부 빠진다는 게 내심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남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복귀 요청하겠습니다. 네 사람도 혹시 위험해지면 바로 연락하고요. 제가 백업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네놈이 뭐 분신술을 쓰는 것도 아닌데…….”
“아시잖아요. 쉽게 무너질 기지가 아닙니다.”
“그래.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노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도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른 의견은?”
이의는 없었다. 용 노인도 그저 걱정 섞인 질문이었을 뿐, 사실상 반박은 아니었다. 요한은 밑도 끝도 없는 신뢰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럼, 조원들에게 공지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요한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 위 단상에 올랐다.
오래간만에 듣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에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다.
특히나 새로 합류한 신입 조원들의 경우엔, 소문만 무성했던 캠프 리더를 직접 보고선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보냈다.
수색조 연설이 이어지고, 하진과 노아는 멀찍이서 그 장면을 감상했다.
평소에는 담담한 말투를 쓰는 그였지만, 저런 자리에 올라가면 꼭 저렇게 분위기를 잡고 오글거리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요한이 신기했다.
“…이상, 발원한다. 너희들의 희생이 인류 재건의 시작점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바라건대, 지금까지처럼 다치지 말고, 죽지 말고 되돌아오기를.”
역시나 오글거렸다. 하진이 돋아나는 소름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시선을 돌렸다.
수색 조원들은 하나같이 감명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효과는 훌륭했다.
“우와. 진짜 오그라드네.”
노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구시렁거리듯 한 마디 내뱉자, 하진이 곧바로 동의했다.
“동감.”
“내 친구가 아주 단단히 준비한 모양인데.”
수색 루트부터 연설까지, 세세한 것이 모두 안배되어 있다. 하루 이틀 고민해서 추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뭔 생각일까나.”
“글쎄. 음…….”
노아가 끙, 소리를 내며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뭐, 왕이라도 되려고 하나 보지.”
제가 말하고도 웃긴 농담인지 하하, 멋쩍은 웃음을 던졌다.
실없긴.
하진은 다리를 꼬았다. 반대쪽 의자에는 용 노인과 스위퍼가 앉아 있었다.
스위퍼는 지루하다는 듯 귀를 후비고 있었고, 용 노인은 마뜩한 웃음을 지으며 요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손주의 재롱잔치를 보는 할아버지의 미소 같은 웃음이다.
그러다 문뜩 계면쩍었는지 용 노인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싱글벙글 웃던 스위퍼가 노인을 툭 치고선 눙쳤다.
“할배, 뭐 필요한 거라도?”
“신경 꺼라.”
“카메라라도 필요해 보이는 얼굴이라서 말이야. 손주 떠나 쓸쓸해서 어떡하나.”
“조용히 해라, 이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야.”
“아니 왜. 내가 가서 카메라 하나 갖다 줄까?”
“카메라는 됐고, 네가 입 좀 닥치고 있을 만한 눈치가 필요하네.”
“거, 괄괄한 노인네 같으니라고.”
“닥쳐, 인마. 입 아프다.”
하진은 시선을 회수했다.
볼 가치가 없는 투덕거림이다. 한없이 지루해 보이는 표정의 스위퍼나, 캠프 리더를 손주 보듯이 바라보는 노인이나. 그로서는 별로 이해되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종류의 인간들이었으니까.
하진의 시선이 옆자리의 노아에게 향했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요한의 연설을 감상하고 있었다.
정상인이다.
역시 정상인은 정상인끼리 짝지를 지어야 하는 법.
그러다 문득 하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하진을 바라봤다. 그러고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친구끼리라지만, 그런 시선은 좀 부끄러운걸?”
정상인이란 말은 취소하기로 했다.
이 캠프 조장 중 정상인은 나뿐이라고 하진은 생각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나.”
“음… 글쎄, 한배를 탄 순간부터?”
노아가 해사하게 웃었다. 하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답지 않게 예쁘장한 얼굴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이 묘하게 신경을 거슬렸다.
사내새끼가, 무슨 웃음이…….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섬에 들어가 생산조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하진이었다.
* * *
드르르- 덜컥, 덜컥!
산악용 미니트럭이 산길 올라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수색조의 맨 앞줄에는 바퀴 두꺼운 산악용 바이크를 선두로, 미니트럭 서너 대가 연달아서 소음을 내뿜으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본대와 거리를 떨어트린 채 앞장서고 있는 바이크에는 노아가 타고 있었다.
“정지.”
노아가 일행을 멈춰 세운 후 헬멧을 벗으며 지도를 확인했다. 지형이 험한 오프로드의 울퉁불퉁한 바닥이 자꾸만 엉덩이를 자극했다. 노아가 욱신거리는 하반신을 풀며 정확하게 이동 중인지 확인했다.
조악하게 그려진 지도를 물끄러미 확인하던 노아가 지도를 곱게 접어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경로는 정확했다. 헬기를 타고 직접 제작한 지도라 조악하긴 했지만, 편의성을 상당히 따져 만든 지도였던 만큼 알아보기는 상당히 수월했다.
“이동하자.”
그들의 일차 목적지는 남부 양 떼 목장이었다. 요한이 남부 수색에 가장 중요한 거점이라고 집어두었던 곳.
이동하는 조원들은 트럭에 옹기종기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종말을 맞은 세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락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바람을 가르며 들어왔다.
종종 뛰쳐나오는 좀비들은 쇠뇌의 희생양이 되었다. 사람들은 마치 자연스럽게 길가의 돌을 치우듯 나타나는 좀비를 박살 냈다.
“정지!”
선두에서 노아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기존과는 다르게 조금 상기된 듯한 목소리였다.
하진이 차량에서 내려 앞으로 이동했다. 선두에서는 노아가 박살 나 길을 막고 있는 나뭇더미에 발을 올리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뭐, 태풍이라도 맞았나?”
“아니, 이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야.”
노아가 나무들의 잘린 단면을 가리켰다. 단면은 마치 무언가가 물어뜯은 듯 갈가리 찢겨 있었다.
“사람이 한 것도 아니고.”
“변종?”
“그렇다고 봐야지.”
이 사태가 변종의 짓이라면, 아마도 처음 마주하는 변종일 공산이 컸다.
나무를 자르는 변종은 기록에 없었으니까. 패턴 리스의 변종은 긴급상황이다. 하진은 곧바로 통신을 담당하는 조원을 불러 요한에게 보고를 지시했다.
“치우자니… 한세월 걸릴 것 같고.”
수십 년 묵은 통나무들이었다. 가지부터 다 쳐내야 간신히 치울 수 있을 법한.
그렇다고 이 거리를 다시 건설기계를 끌고 올 수도 없었고, 대형차가 지나다니기엔 길도 너무 조악했다. 하진이 엄한 나뭇가지를 하나 발로 분지르며 노아에게 물었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지?”
“대략 30km 정도?”
“걸어가지.”
“역시 그 수밖에 없나?”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