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44화 (144/176)

<144화>

* * *

재호는 4호선 지하 철길을 이용해서 석빙고 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육지로 나와 반포대교 잠수교만 넘어가면 코앞이 목적지였다.

혼자 걷는 지하철은 여느 때보다 음습한 기운을 뿜어냈다.

여러 개의 손전등이 어두운 철로를 환하게 비출 때와 달리 한 개의 손전등으로는 그저 발밑을 비추기 급급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외로움, 그리고 공포가 전신을 차분히 잠식했다. 재호는 한 손에는 소음기 달린 권총을,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손전등 든 손으로 권총 든 손을 지지하고선 천천히, 그리고 꿋꿋이 걸어 나갔다.

요한은 감사하게도 마지막까지 많은 신경을 써 주었다. 몇 없는 소음기 달린 권총에, 손전등 배터리까지 거의 모아 받았다. 비상식량과 예비 탄약도 넉넉했다.

하지만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했던, 지금 변종 골룸이라도 마주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전투력은 형편없었으니까.

변종은 고사하고 좀비 몇 마리만 동시에 나타나도 총을 쓰다가 좀비 떼에 쫓기다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제발….’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나더라도 더는 지켜줄 이들이 없다는 사실에 손발뿐만 아니라 전신이 두려움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잇따라 손전등에서 새어나간 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툭,

‘으아악!?’

무언가가 발에 걸리는 듯한 느낌에 재호가 소스라치며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급하게 손전등을 비춰 본 그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냥 돌멩이일 뿐이었다.

재호가 한숨을 삼키며 다시 손전등을 정면에 비췄다. 그 순간, 재호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

눈앞에 좀비가 있었다. 사기(死氣) 넘치는 회백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바라보며 희번덕거리고, 악취 가득한 주둥이가 자신을 향해 쩍 벌어졌다.

“으아아악!”

재호가 기겁하며 들고 있던 휴대용 나이프를 휘둘렀다. 푹, 나이프가 놈의 안구를 꿰뚫으며 경련했다. 동시에 재호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젠장, 젠장.

당장에라도 사달이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시커먼 지하 통로 안에서의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마침내 재호는 반포대교 잠수교 앞에 섰다.

과하게 집중한 탓인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 탓인지, 한겨울에도 전신에 땀이 가득했다.

아귀의 주둥이 같은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자마자 길거리의 좀비들이 쏟아져 나와 재호에게 몰려들었다.

죽은 자들이 내뿜는 사기에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소름이 끊임없이 오소소 올라왔다.

저 많은 수의 좀비와 전투는 불가했다.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느린 좀비들. 포위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었다.

재호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반포대교를 건넜다. 뒤쪽으로 점점 더 좀비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눈앞에 좀비 다섯 마리. 재호가 글록을 권총집에 집어넣고 짧은 헌팅 나이프를 그러쥐었다.

긴박한 상황을 대비해 총을 쏘는 것은 최후의 최후로 미뤄둬야 했다.

재호는 전진했다. 앞서 접근하는 좀비 한 마리를 박살 내고 곧바로 그 뒤에 있는 좀비를 발로 밀었다. 공간이 생기자마자 재호는 두 좀비 사이를 지나쳐 앞으로 빠져나왔다.

한 차례 위협을 벗어난 그는 또다시 빠른 걸음에서 전속력으로 달렸다. 100m쯤 달리고 나니 호흡이 가빠져 왔다.

재호가 달음박질을 멈췄다. 어느 정도 좀비와 거리를 벌렸으니, 체력 안배가 필요했다. 체력이 바닥나버리면 중요할 때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재호는 걸었다가 뛰었다가를 반복하며 좀비들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잠수교의 끄트머리.

다시 한번 좀비 떼와 조우했다. 이번에는 뒤따라오는 좀비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제법 많은 수였다.

사방에서 좀비 울음소리가 옥죄듯 날아들었다. 심장 한쪽 어딘가가 고장 난 듯 정신없이 요동쳤다.

재호가 입술을 깨물며 다리의 가장자리로 이동해 걸으며 글록을 꺼내 들었다. 이번은 근접전으로 뚫을 수 없는 수였다.

장탄 수는 15발. 옆쪽에서 접근하는 좀비들을 무시하고 눈앞의 좀비들만 처리하고 뚫어낸다. 그 수밖에 없다.

재호가 손아귀에 힘을 주며 좀비 떼 앞으로 뛰어들었다.

탕! 탕! 탕!

한 발 한 발, 목숨을 건 신중한 격발이 이어졌다. 좀비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재호가 좀비들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좀비 한 마리의 손길이 재호의 팔을 붙잡았으나 재호는 팔을 힘껏 움직여 털어냈다. 눈앞에 뻗어져 오는 손길과 딱딱거리는 이빨이 가득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시야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자신도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결국 뚫어냈다.

그의 뒤쪽으로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좀비 떼가 자신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앞쪽 골목 여기저기서도 좀비들이 튀어나왔다.

좀비, 좀비, 좀비!

그야말로 좀비들의 세상이었다.

더 이상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 세상은, 좀비들을 위한 곳이라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재호는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렸다.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감염이라도 된 듯 뜨거웠다. 뜨듯한 날숨이 차가운 대기를 가르고 용의 숨결처럼 허옇게 뿜어져 나왔다.

뒤쪽으로 따라오는 좀비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마치 피리 부는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여기서 더 빠르게 걸어야만 점점 더 놈들과의 거리를 벌릴 수 있을 것이다.

재호는 국립중앙도서관 바로 인근에서 따라오고 있는 좀비들을 따돌리기 위해 건물 한쪽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빌딩의 반대쪽 입구로 빠져 나왔다. 하나하나 요한과 수색을 하면서 배운 생존 방식들. 안전한 빌딩을 육안으로 판단하는 방법 또한.

빌딩을 몇 번 반복해서 가로지른 재호는 침착하게 전진했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뒤따라오던 좀비들의 모습은 어느덧 자취를 감춘 뒤였다.

놈들이 자신을 포기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

도서관 안쪽으로는 좀비들의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있다 해도 대부분이 걷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 잘려나간 놈들이 전부였다.

재호가 허리 아랫부분이 잘린 채 접근하는 경비원 복장의 좀비 머리를 깨부쉈다.

처음에는 ‘아포칼립스가 터졌는데 도서관으로 오는 사람이 어딨겠어.’ 라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좀비들이 총상을 입은 채였고, 여기저기 폭탄과도 같은 무언가에 그을린 자국들이 가득했기 때문.

‘군사 부대가 들어와서 한 번 토벌했었구나.’

여기저기 유리가 깨지고 핏자국, 죽은 좀비들이나 총탄이 박힌 흔적들이 즐비했다. 한바탕 전투가 있었던 모양인 듯.

국립중앙도서관은 국가 보호 시설인 만큼 중간중간 시설 보호를 위해 군사작전이 투입되었을 터다. 그 덕분에 내부의 좀비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재호에게는 호재였다.

재호는 지금쯤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를, 미래를 위한 유산을 위해 싸워준 군인들에게 짧게 감사를 표하고서는 도서관 실내로 잠입했다.

‘비공식간행물 보관소가….’

건물 안은 햇빛이 비치는 부분을 제외하면 어두컴컴했다. 도서관 특유의 책 냄새와 피 냄새가 뒤섞여 알 수 없는 묘한 악취를 만들어냈다.

재호는 비공식간행물 보관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바스락거리며 도서관을 뒤졌다.

맨몸으로 부딪혀 자료를 찾는 작업은 익숙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로 망망대해를 혼자 건너는 기분이었다. 정보가 너무 적은 탓이었다.

어두컴컴한 도서관 안, 서지정보시스템도 안내도도 없는 드넓은 도서관에서 단 한 권뿐인 비공식 자료를 찾는 것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도서관 내부는 그가 던져 놓은 서적들로 어지럽게 쌓이기 시작했다.

무진 애를 썼지만, 성과는 없고 호흡만 점점 가빠졌다.

‘이래서 어느 세월에 찾는담.’

이마에서 땀방울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려 목과 어깨를 적셨다. 전신에서 흘러내렸던 땀이 식으면서 온몸에 한기가 드는 듯했다.

그럴수록 더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바닥에 쌓이는 서적은 점점 늘어나고 반비례하듯 체력은 점점 떨어졌다.

마침내, 창문 밖으로 노을이 지고 게으른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재호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찾았다.’

재호가 서적 겉면에 쌓인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냈다.

낡고 오래된 잡지 같기도, 고서 같기도 한 괴이쩍은 모양새의 책이었다.

겉면에서부터 알 수 없는 괴상한 글자들이 가득했고, 표지 정면의 모두교를 상징하는 심벌만이 책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수년 전,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그 책이 분명했다.

재호가 침을 꼴깍 삼키고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책 안쪽에는 알 수 없는 글자와 흑 묵으로 쓱쓱 그린 듯한 삽화가 가득했다.

원시인 같은 복장을 하고 원을 둥글게 그린 뒤 춤을 추는 사람들. 뱀들이 둘러앉은 빈 목조 의자를 향해 절하는 사람들이 그려진 삽화들이 휙휙 넘어갔다.

뒤쪽으로는 불길하게 생긴 모양새의 재단 모습도, 지팡이나 뼈 목걸이, 뼈 칼 등등 종교적인 색채 가득한 제사물건들이 그려져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재호의 손길이 좀 더 다급해졌다.

그의 손길이 멈칫한 것은 한 장의 그림을 본 이후였다.

‘이거야……!’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 듯 빈 여백 한 장을 넘기자 바로 정면에 한 삽화가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뱀 머리, 터질 듯한 몸통과 징그럽게 벌려진 입. 변종 피콜로의 모습이었다.

리나나 노아가 서술했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장마다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이 그려져 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재호의 동공이 터져나갈 듯 확장됐다. 변종 골룸, 다윗, 샤크까지도 그가 보고 겪었던 변종들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은, 분명히 종말과 관계가 있다. 언어를 알 수 없다는 게 천추의 한이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재호의 손길이 책의 마지막 장을 붙잡았다.

마지막 장은 통째로 한 장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미지의 세계 같기도, 우주 같기도 한 공간. 거대한 협탁을 가운데에 두고 수많은 생명체가 그것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흡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듯한 구도였다.

어떤 존재는 인간의 형상을, 어떤 존재는 입과 코가 긴 괴물의 형상을 했다. 또 다른 존재는 천사처럼 날개가 달려 있기도, 악마처럼 뿔이 달려 있기도 했다. 어떤 존재는 그저 먼지 뭉치처럼 검고 둥근 모습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주사위와 카지노 토큰처럼 생긴 둥그런 칩이 가득했다. 마치 여기저기에 널린 모양새가 그들끼리 한바탕 도박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운데에는 둥근 지구본이 있었다.

‘이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그저 한 장의 삽화일 뿐이었지만, 그 삽화가 주는 충격은 정도를 지나쳤다. 재호는 눈 껌뻑거리는 것마저 잃은 채 숨을 삼켰다.

수많은 생각과 가설이 머릿속을 오가며 맴돌았지만, 그중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만한 그런 가설들.

재호는 눈을 부릅뜨고 빨려 들어갈 듯 서적을 노려봤다.

‘도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뭐야.’

그게 실책이었다.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좀비를 놓친 것.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좀비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재호를 덮쳐왔다.

* * *

시간은 훌쩍 흘러갔다.

백여 명의 신도 주민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꼬박 이틀을 밤새 작업해서 인천 물류 항의 좀비들을 처리한 뒤 급유 차를 이용해 군함의 연료를 공급했다.

부피가 작게 나가면서도 동시에 오래 버틸 수 있는 식량들 위주로.

“바닷물에서 소금을 구할 수 있으니까 조미료는 최대한 적게 담아도 될 것 같아. 그건 뭐야?”

요한이 스위퍼가 챙겨 온 비닐 배낭을 가리켰다.

“이거? 투망이야.”

그가 내려놓은 것은 대형 투망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불법이지만, 이만큼 효과 좋은 그물이 없지. 초대형으로 가져왔어. 혹시 자리 잡은 지역에서 식량이 부족할 경우도 고려해야 하니까.”

식량은 충분했다. 문제는 비율이었다. 함선에 적재할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었다. 최대한 보존성 좋고, 가벼우며, 조리가 편한 식품들을 위주로 담아야 했다.

화물선의 부재가 너무도 아쉬웠다.

결국, 화물선은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남아 있는 화물선들은 화물 대신 피난민들을 가득 태운 채 바다 위를 부유하고 있을 것이었다.

적재량을 모두 채운 이후부터는 요한은 전문가들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

준비는 끝났다. 하지만 무언가,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해서 마음을 건드린다.

뭔가가 빠진 듯한 기분.

정말 떠나는 게 맞는가.

용 노인의 말대로 차라리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불확실의 연속에 기백 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걸 만한 확신이 있는가.

문성철의 죽기 전 대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공부 못 했던 거 티 내는 거야, 뭐야? 원전이 왜 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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