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탕!
요한이 쏘아낸 격발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총탄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노아가 총을 꺼내려는 찰나 요한의 총구가 움직여 그를 겨냥했다.
정확하게 이마를 꿰뚫린 문성철은 이미 바닥을 피로 물들인 채로 발작하듯 부들거리고 있었다.
노아의 얼굴에 핏대가 돋아나고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됐다.
“이게 무슨 짓이야!”
“움직이지 마.”
“너…….”
“네게 말했던 건 모두 사실이야. 한 치의 거짓도 없지. 하지만.”
요한은 날카로운 비수를 심장에 꽂듯 말을 내뱉었다.
“네 캠프조차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서생연의 간자 김준이나 저런 입만 산 쓰레기 정치꾼에게 휘둘리고 있는 너와 협상할 수는 없어. 뒤통수를 맞을 게 뻔하니까. 그러니 움직이지 마라. 너만큼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아.”
“김준이 서생연의 간자라고?”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아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무슨 숨은 일화가 있는 듯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땅땅거리는 총소리, 누군가의 비명. 고함 지르는 소리가 어지럽게 물감처럼 뒤섞였다.
노아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요한의 표정은 평온했다. 패배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움직이지 마. 얼굴에 바람구멍 난다.”
“그렇게 당장에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총구를 들이밀고 있어도 위협적이지 않다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동료들을 멈춰.”
요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 와중에 저런 농담이 나오는 건지. 참으로 그답다고 해야 할지.
“농담이 지나친데. 이미 시작됐고, 한참 늦었어.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날 테니까.”
“싸우기 싫다고 했던 놈이 이딴 짓을. 많은 사람이 죽을 거다. 네 동료든, 내 동료든.”
“대부분 너희 캠프 사람들이겠지.”
“자만하기 이를 데 없군.”
“자만이 아니야.”
요한의 음성은 단호했고, 거침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 너머로 탕탕거리는 총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내 동료들은 강하니까.”
얼마나 징그럽게 튼튼하고 강하고 질긴 놈들인지, 보면 깜짝 놀랄걸.
* * *
요한이 노아와 대면하는 사이, 하진은 문짝에나 쓸 법한 커다란 무늬 철판을 엘카에 담아 왔다.
사람들의 의문 섞인 시선이 그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게 뭐야?”
“철판.”
“아니, 철판인 건 아는데…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야. 형씨.”
“저쪽 컨트롤박스 같은 데서.”
하진이 철판을 들어 바닥에 내려놓자 쿵, 하는 충격음이 들렸다.
그가 핏대를 세우고 낑낑거리며 철판을 옮기자 바닥을 긁는 끼기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를 긁어 대는 소음에 사람들이 눈을 찌푸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이건 뭐 하게?”
“방패. 신호가 오면 전진해야지.”
“형씨, 잊었어? 우리의 임무는 앞에서 시선을 끌어 주는 거라고.”
“나도 알아.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이걸 방패 삼아서 요한이 있는 정 중앙까지 라인을 밀 거다. 내 앞에 요한을 두고 싸울 생각 따윈 없어.”
하진의 단호한 말에 수색 조원들이 모두 말을 잃었다. 어찌 보면 리더의 지시에 반하는 돌발행동. 뭔가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조원들이 노심초사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끔뻑거리던 스위퍼가 툭 내뱉듯 그를 불렀다.
“이봐, 외팔이 형씨.”
“왜.”
“평소엔 그냥 고지식하고 재수 없는 근육 돼지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뭐, 이 자식아?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이럴 땐 참 마음에 든다니까. 얘들아. 우리 대장 형씨만 적진 한가운데에 둘 생각은 아니지?”
“예!”
순식간에 모두의 안색이 환해지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전투를 앞두고 있고, 누군가가 또다시 다치고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분위기가 밝다. 마치 스위퍼의 분위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그가 지휘봉을 잡을 때와 요한이 지휘봉을 잡을 때는 차이가 분명했다.
요한이 리드할 때는 뭔가 차분하게 가라앉고 침착한 느낌이라면, 그가 앞장설 때는 마치 이미 승리한 전투에 나가는 것처럼 들뜨고 흥분되는 느낌이다.
둘 중 어느 사람이 리더를 맡더라도 질 것 같지 않은 느낌만큼은 공통적이었지만.
스위퍼가 벽처럼 세워진 철판 덩어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엄청 두꺼워 보이긴 하는데, 그나저나 이거 총알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것 맞아?”
“글쎄. 쏴 볼까.”
스위퍼가 철판을 퉁퉁 두드렸다. 확실히 몇 겹이나 겹쳐 있어서 두껍고 단단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스위퍼가 손짓하자 사람들이 멀찌감치 떨어졌다.
글록에 소음기를 돌려 끼고선 유탄이 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비스듬한 각도로 조준했다.
소음기 달린 권총의 격발음이 들리고, 총탄은 철판 몇 겹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남은 철판은 한참이나 여유가 있었다.
“이 정도면 5mm나 7mm 총알로도 뚫기 어렵겠지?”
“형님들, 원래 대인용 소총은 강판 0.5cm만 되어도 못 뚫고 튕겨 나갑니다. 사람은 대여섯 명 있어도 뚫어버리지만요. 이 정도 두께면 철갑탄도 막을 것 같지 말입니다.”
옹 상병이 끼어들었다.
“사람 다섯 명을 뚫는다고? 거 참 살벌하구만. 어쨌든 안전하다는 거지. 발밑만 조심하면 되겠네.”
스위퍼가 철판을 지탱하고 있는 엘카를 보며 중얼거렸다. 엘카의 지지판과 바닥 사이에는 약간의 공간이 있었으나, 누군가 이 공간으로 총알을 쏘아 보낼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철제 방패는, 좋은 철벽이 되어 줄 것이었다.
“그나저나, 형씨는 이걸 대체 어떻게 옮겨 실은 거야. 진짜 괴물이라니까.”
“남자는 근력이다. 힘이 최고지.”
“그, 그래.”
하진이 어깨를 쫙 펴며 콧대를 세우자 스위퍼가 헛웃음을 흘렸다. 보나 마나 낑낑거리며 여러 번 옮겨 실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노력이 가상하니 넘어가 주는 걸로.
“그럼 라인 밀고 갈 선발대는 나, 하진. 옹이.”
“내가 대신 갈게. 옹이는 어차피 원거리에 있을 때 화력이 극대화되니까. 굳이 위험한 곳까지 걸어 들어갈 필요 없어.”
혁이가 나서려는 옹 상병을 제지하며 끼어들었다. 요즘 들어 위험한 임무에 자원하는 경우가 잦은 그였다.
그러다 한 번에 골로 갈 텐데. 스위퍼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한 것도 사실이었다. 제 목숨 하나 건사하기 위해 안전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으니까.
“좋아, 아주 조장다워. 리더라면 그래야지.”
그러고선 호쾌하게 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혁이 아픈지 어깨를 움츠렸다.
“세 명이 철판 끌고 요한이 있는 위치까지 자리 잡을게. 그동안 나머지는 코너에 고개 내미는 놈들 다 쓰러트려 줘. 개죽음은 사양이니 엄호 잘하라고. 특히, 우리 특등 사수 옹아, 형 믿어도 되지?”
“맡겨 주십쇼. 뚝배기를 날려 버리겠슴다.”
“좋아, 아주 든든해!”
이번에는 스위퍼가 옹 상병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옹 상병이 아픈지 몸을 움츠렸다.
“아아, 아픕니다…….”
“자식이, 엄살은.”
조 편성과 추가적인 행동 지침을 모두 전파한 다음, 스위퍼는 용병단 노인에게 무전을 쳤다.
“용병단, 여기는 캠프 요한.”
-애송이냐.
“애송이는 아니고 애송이의 부하 1호요. 할배.”
-아 그 단발머리 계집애같이 생긴 놈?
“아니, 이건 단발이 아니라….”
노인의 날카로운 독설에 스위퍼가 울상을 지었고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인데.
“약속하셨던 백업 요청이요.”
-뭐야, 벌써?
“여의도 캠프랑 부딪혔습니다. 지금 노량진역 환승 통로에서 대치 중이고 요한은 적진 한가운데 잡혀 있어요.”
-뭐? 애송이가?!
“그래서 노량진역 9호선 쪽 입구로 진입하셔서 뒤 좀 잡아주쇼. 저희가 정면에서 싸우고 있을 테니까.”
-알겠다. 거 참, 사고뭉치 애송이들 같으니.
쯧쯧 혀 차는 소리 이후에 무전이 끊겼다. 스위퍼는 ‘거 괄괄한 노인네 같으니.’ 하고 툴툴거리고서는 무전기를 어깨에 걸었다.
방아쇠는 당겨졌고 이제는 결판을 지을 차례다.
자, 이번 싸움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스위퍼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띠리리릭. 띠리리릭.
스위퍼가 들고 있던 무전기가 두 번 연달아 울렸다. 무전기에서는 아무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신호가 왔다.
스위퍼가 수신호 했다. 저쪽 반대편에는 아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스위퍼가 대기 중인 용병단에 신호를 넣었다.
“할배, 준비됐습니까?”
-준비 완료다. 애송이.
“라져. 시작하십쇼.”
-그냥 눈에 보이는 놈들 다 조지면 되냐. 애송이는?
“대장은 저희가 확보하죠. 할배는 마음껏 날뛰시길.”
-좋아. 말하는 꼬락서니는 네 상관을 똑 닮아서는 마음에 드는구만.
주고받은 무전은 짤막했다. 스위퍼가 우드득 몸을 풀고선 총기를 바로잡았다.
“그럼 우리도 밀러 가 볼까. 하진.”
“어, 흐앗!”
하진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철제 강판이 가득 담긴 엘카를 밀었다. 그 뒤로 스위퍼와 혁이 허리를 숙인 채 자리를 잡았다.
갑작스레 코너 안쪽으로 튀어나온 사람들을 본 여의도 캠프 생존자들이 웅성거리다가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뭐야, 하는 순간 머리를 내민 생존자들에게 사격이 이어졌다. 500m 밖의 사격이었지만, 한 발 한 발이 날카롭게 놈들에게 틀어박혔다.
“좋아, 밀어붙여!”
엘카가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탕탕거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적들이 쏘아 보낸 탄환은 팅, 소리를 내며 철판에 튕겨 나가거나 틀어박혔다.
정면에서 쏘아대는 탄환보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탄환이 월등히 많았다.
엄호는, 완벽했다.
“정지.”
정확히 카페 옆쪽에 도착한 스위퍼가 전진을 멈췄다. 더 들어가면 투척 무기의 유효 사거리에 들어가게 된다.
지금 있는 자리가 적이 수류탄을 던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거리.
물론 이쪽에는 그런 상식적인 거리가 통하지 않는 괴물이 한 명 있었다.
“하진!”
“으아압!”
하진이 전력으로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수개월 간 거의 매일 단련한, 현역 야구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어깨다. 그의 최대 비거리는 이미 일반인의 수준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날아간 수류탄이 코너 끝에 부딪혀 폭발했다.
펑!-
파편이 비산하고 고통에 찬 비명이 여기저기 튀어나왔다.
철판 너머로 적들이 혼비백산해 하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스위퍼가 다시 한번 수류탄 투척을 지시하고, 이번에도 정확하게 수류탄이 코너 끝에 틀어박혔다. 운 좋게 살아남았던 자들의 절망적인 비명이 이어졌다.
“전진한다. 밀어.”
스위퍼의 지시에 하진과 혁이 철판을 밀기 시작했다. 철판은 금세 연기가 자욱한 코너 끝까지 도착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다시 한번 정지했다.
연기와 살점이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코너 건너편에서는 총성이 가득했다. 아마도 용병단이 뒤쪽을 정리하는 듯했다.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던 스위퍼가 말을 꺼냈다.
“돌린다. 하나, 둘, 셋.”
세 사람이 동시에 철판을 밀며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수류탄 파편에 꿈틀거리는 사람들과 반대쪽 계단 위쪽에서 기관총을 세워놓고 드르르륵 갈겨대는 용병단 노인의 모습이었다.
여기저기서 튕기는 유탄에 스위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용병단 사람들이 마치 람보를 연상시키듯 사정없이 기관총과 특전사용 기관단총을 갈겨댔다.
“와, 죽이게 터프한데.”
스위퍼는 말하면서도 한 번씩 고개를 내밀어 총을 격발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의 말소리는 총소리에 묻혔는지 옆의 두 사람은 그저 조용했다.
“아무래도 뒤로 빠져야겠다. 여기 있다간 우리도 몸에 바람구멍 나겠어.”
스위퍼가 철판을 세워둔 채 몸을 뺐고, 뒤쪽에서 엄호하던 조원들을 불러들였다. 코너를 돌아 합류하려는 조원들을 그가 제지했다.
“형, 마저 정리 안 해도 돼요?”
“내버려 둬. 용병단이 미친놈들처럼 발광하고 있어. 그러다 눈먼총알 맞는다. 저거 철갑탄이라고. 맞으면 진짜 뒈져.”
“어… 그럼 대장은 어떻게 할까요, 들어가 볼까요?”
“아니 놔둬. 알아서 하겠지. 믿자고. 우리는 여기서 도망쳐 오는 놈들 정리하자. 꿀 빨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