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33화 (133/176)

<133화>

하진은 응급처치를 끝내고 시체를 한쪽으로 치운 다음 진수의 포박과 두건을 풀어주었다. 뒤늦게 깨어난 진수가 몸을 벌벌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하진이 그를 진정시켰다.

“…그 사람은요?”

“죽였어.”

하진의 손끝에 절명한 시체가 걸려 있었다. 진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웃통을 벗은 채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그를 향해 물었다.

“조장님은… 괜찮으세요?”

“어. 내려가자.”

하진이 진수를 부축해 내려갔을 때 3층과 1층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었고 스위퍼와 혁이 들어와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하진을 보자마자 베르다와 피오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괜찮아?”

처음 그가 피투성이가 된 채 뛰어 들어왔을 땐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변종인 줄 알고 격발할 뻔했을 정도.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다시 뛰어 올라가는 그를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진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해 보인 뒤 요한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다쳤네.”

요한이 하진을 힐끔 바라보고는 툭 내뱉었다.

“면역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적으니 안심하지 말고 최대한 물리지 않게 조심해.”

“노력하지. 적은 어떻게 됐어?”

“일곱 명 사살했어. 한 명은 생포했고.”

“그런데 표정이 안 좋군.”

“스나이퍼가 없었어.”

사살당한 사람 중 저격수가 없었다.

요한이 3층으로 들어왔을 때, 창가에 총 일곱 명의 적들이 그에게 뒤통수를 붙잡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저격수가 없었다.

“3층에 창문이 열려 있었고.”

“3층에서 도망쳤다고?”

하진이 놀라 되물었다.

“그럴지도. 아니면 아예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요한의 발치에는 무릎 꿇려진 생존자 한 명이 포박된 채였고 손에는 그에게서 노획한 무전기가 들려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계속해서 무전이 울리고 있었다.

-재원, 어떻게 됐어. 재원아.

하진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그의 표정을 저렇게 만든 원흉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이들은 여의도 캠프의 생존자들이야.”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신노아의 것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녀석의 목소리는 정신없고 다급했다.

요한이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예상했던 일이 예상했던 방향으로 벌어졌다. 알고도 막지 못했다.

“이제 어쩌게?”

“고민 중이야. 일단 시신 수습하자. 정수 물건도 챙겨. 지혜 가져다 줘야지.”

조원들의 시야에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지혜의 모습이 그려졌다. 항상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질 수심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요한 또한 다시 찾아온 죽음에 심장이 얼얼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의문이었다.

계속해서 머리에 맴도는 한 가지 의문점.

이들은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도착한 걸 알았는가.

해가 진 뒤 아주 멀리서부터 기척을 죽이고 지나왔다.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빠르게 반응할 수 없을 터다. 요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세워졌다. 믿고 싶지 않은 그런 가설이.

“이 층에 몇 명이었어?”

“세 명.”

“올라가자. 확인할 게 있어.”

요한이 하진을 따라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죽인 사람 중 한 명의 얼굴을 보자마자 요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재원.

요한이 아는 얼굴이었다.

“아는 사람인가?”

하진이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요한에게 물었으나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시체가 보내는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다.

‘동생은 참 용감하고 대단해.’

‘다 죽이고 만다.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거야, 개 같은 서생연 놈들.’

‘노아! 요한!’

그가 기억하는 이재원은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강하기도 했다. 서생연과의 싸움에서도 치열하게 싸우고 거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이.

“요한?”

자신의 전 동료와 현 동료가 사생 결단 끝에 두 사람이나 죽었다. 불필요한 전투였고, 피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 심장에 묵직한 쇠 추가 얹힌 듯 빡빡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요한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그까지 불필요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요한이 그의 어깨를 툭 치자 하진이 움찔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야, 왜 다친 델…….”

“상처가 깊네. 혹시 모르니 고립된 지역에 자리 잡고 상처 수습해. 스위퍼, 정은이는?”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요한이 스위퍼를 따라 부상자들이 임시로 치료받고 있는 역내 의무실로 향했다. 에디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정은의 상처는 제법 컸다. 그녀는 손발이 속박된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총탄이 어깨 아래쪽을 뚫고 빠져나갔다.

내장이 파괴되지는 않았으나, 탄환이 살과 근육을 헤집고 뼈를 긁어냈다.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 또한 함께 무너졌다. 요한이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니.”

“오, 오빠…….”

요한을 보자마자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흐느끼는 것 같기도,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한.

“이제 더는 싫…….”

그녀는 꾹 참아왔던 말을 내뱉었다. 그나마도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뜻은 똑똑하게 전달됐다.

누군가가 다치는 것도, 누군가가 죽는 것도, 같은 사람끼리 싸우는 것도 이제는 싫다는 말이.

“쉬어. 응급처치했으니 괜찮을 거야.”

요한이 입술을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말로는 책임진다고 떠들었지만, 언제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의 책임은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아닌,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인데도. 늘 그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력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이 싸움에는 과연 끝이 있는가.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가.

대답 없는 물음만 메아리친다.

요한은 한참을 그녀의 손을 잡아준 채로 침대 가를 떠나지 못했다.

-거기, 용산역 침입자들.

한참 동안을 동료의 이름만 불러대던 무전기에서 요한 일행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놓친 사람이 있었다. 도망친 자가 신노아에게 도착한 것이다.

요한이 송신 버튼은 누르지 않은 채 가만히 듣고 있자, 노아가 재차 무전을 쳤다.

-침입자들. 응답해. 듣고 있는 것 알아.

노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흥분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은 듯한.

요한은 고민했다.

무전을 받아서 무엇을 어찌할 것인가.

이 친구가 왜 자신을 부르는 건지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도발해 심리전을 걸려고 하는 건지도.

망설이던 요한이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여기는 용산역이다.”

-카피. 석구를 풀어줘.

그의 요청은 단순명료했다. 인질로 잡은 생존자를 풀어달라는 것. 요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이를 위해 무전을 쳤다고?

“그럴 순 없지.”

-후회할 텐데.

“대신, 우리의 볼일이 끝나면 풀어주지. 동료의 목숨이 아깝다면 접근하지도, 공격하지도 마.”

-풀어주지 않으면 곧바로 총공격한다. 우리 전부를 죽이지 않는 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개미지옥을 경험할 거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해 주지.

그의 협박이 진심이라는 것쯤은 요한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인질을 풀어주더라도, 그의 공격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무전을 친 이유는 미심쩍었다.

“만약 풀어준다면, 우리를 더 이상 공격하지 않을 건가?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나.”

무전기는 잠시간 침묵했다. 이내 전보다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목적이 뭐야.

“물건을 찾고 있다. 물건만 찾고 조용히 나갈 거야.”

-목적이 물건이라는 증거는? 또 석구를 풀어준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약속하지.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면 물건을 찾고 네 동료를 풀어준 뒤 조용히 여기를 떠나지.”

헛된 기대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동료를 죽였고 남은 것은 생사를 건 혈투일 뿐일 거다.

포기할 때 즈음, 노아가 예상치 못했던 말을 해 왔다.

-믿을 수 없군.

“믿을 수 없겠지. 너를 못 믿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

“뭐?”

-리더끼리 단둘이. 협상 테이블을 열자고. 무전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요한은 그의 속내를 알아채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 의중을 알아챌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나를 만나겠다고? 도대체 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래.

“피차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뭔데?”

-나는 더 이상 동료를 잃고 싶지 않은데. 너는 그렇지 않은가 봐.

동료를 잃고 싶지 않았으면 공격하지 말았어야지.

요한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내리눌렀다. 노아의 무전이 이어졌다.

-너와 나 둘만 장소로 나와서 다시 한번 서로 진 빚과 이자를 청산하는 거야.

그는 감에 의지한 도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큰 희생 없이 이 싸움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걸고.

자신의 두뇌보다 감을 더 신뢰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잠시 팀원들과 이야기해보고 와도 괜찮겠나.”

-얼마든지.

요한은 곧장 조원들을 불러모았다. 그러고선 여의도 캠프에서 리더끼리 1:1의 만남을 희망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요청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사실을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그래서, 가서 그자를 만나고 온다고?”

“그래.”

하진의 물음에 요한은 단호하게 대답했고, 당연하게도, 반발은 극심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형씨. 함정이면 어쩌려고?”

“오빠, 진짜 미쳤어?”

“안 됩니다. 대장님.”

단 한 명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요한이라도 누군가 이런 자리를 만들어 혼자 가겠다고 한다면 절대 안 된다고 했을 터였다.

“형씨가 이렇게 고구마를 먹이는 건 정말 익숙지가 않은데.”

요한은 쓰게 웃었다.

“그저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 가지 선택지를 고른 것뿐이야.”

평소처럼 명확한 근거에 기반을 둔 선택은 아니었다. 그가 노아를 만나기로 한 건 그저, 정해진 시나리오처럼 그저 하나둘 쌓여왔던 고민과 상황들이 티끌이 모이듯이 모여 들어와 원뿔의 꼭짓점에서 만나는 모선처럼 하나의 선택지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서, 노아를 만나라고.

“그자가 말처럼 혼자 올 거라고 확신해?”

“확신하진 않아. 하지만 혼자 올 거야.”

“…그게 뭐야 형씨. 멘탈 나간 것 같은데?”

“그럴지도.”

사실 이성이 온전한 게 이상한 상황 아닌가. 요한은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요한의 단호한 표정을 본 사람들이 이마를 짚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재호만이 오로지 말을 아끼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대장님.”

“말해.”

“만약 꼭 만나셔야 한다면 말이에요. 올 때 봤는데, 여의도와 용산 사이에 있는 노량진 환승 통로에 서브웨이 카페 하나가 있어요. 거기서 양쪽 코너까지는 오백 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요.”

요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의력이 남다른 건 알고 있었지만, 한번 지나온 길의 구조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장소를 그곳으로 요구하셔야 합니다. 추가로 각 진영에서 두 대표를 제외한 인원은 코너 안쪽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을 것도요.”

“좋아. 말해보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서로 무장은 하고 들어올 것으로 합의 보세요.”

“뭐 그건 당연한데. 굳이 말하는 이유는?”

“여차하면 적 리더를 제압하셔야 하니까요.”

“무조건 내가 이길 거라고 장담하는군.”

요한의 말에 재호가 푸흐흐 웃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해서 그들의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못할 것도 없다.

요한은 곧바로 노아에게 무전을 쳤다.

“듣고 있나? 여기는 용산이다.”

-카피.

“지금부터 15분 후, 노량진역 내 9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러 오다 보면 기다란 통로가 하나 있어. 그 통로 안에 있는 카페 서브웨이에서 보지. 그 통로 안쪽으로는 너랑 나만 들어간다. 다른 사람이 들어간 순간 전쟁이라고 생각해.”

-신중한걸.

“그래서 대답은?”

-좋아.

“이따 보지.”

녀석은 흔쾌히 허락했다. 요한이 무전기를 끄자 스위퍼가 볼멘소리했다.

“형씨 나는 진짜 추천하고 싶지 않아.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던 사람들과 협상이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는 건 어때? 역시 혼자 가는 건 좀.”

“혼자 안 갈 건데?”

“응?”

“다 준비해. 용병단에도 도움 요청하고. 시간 없으니까 노인분께는 스위퍼가 전후 사정 설명하고.”

요한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우선 용병단을 지상 통해서 노량진역으로 보내. 내가 신호하자마자 신노아를 제압할 테니 너희는 앞에서 총격전을 하고, 용병단이 뒤를 친다.”

“신호는?”

“무전기 송신 버튼을 두 번 연속으로 누를게. 만약 협상이 잘 끝날 것 같으면… 따로 무전치고.”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노아는 너무 정석적이고 직선적이었다. 본연의 성격 자체가 그랬다. 함정을 파거나 머리를 굴리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

그래서 특유의 무력이나 카리스마를 가지고도 늘 개백정에게 뒤통수를 맞아 왔다. 그리고 요한은, 그런 그의 약점과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부재중 리더는 스위퍼.”

“라져.”

요한은 지금, 전우의 뒤통수를 치려 한다.

그의 책임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내지 않는 것이었고, 그로 인한 결과물은 오직 스스로 감당할 몫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