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정수야!”
“모두 엎드려! 은폐! 라이트 꺼!”
요한이 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함과 동시에 가장 가까운 컨테이너 쪽으로 몸을 숨겼다.
힐긋 보이는 정수의 몸은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총성은 한 발.
저격이다.
‘위치는?’
총성으로 파악한 거리와 위치는 용산역, 3층의 두 번째에서 네 번째 창 사이.
요한이 목소리를 낮춘 채로 다시 한번 무전을 쳤다.
“3층 두 번째에서 네 번째 창문 사이. 실력 좋은 저격수가 있다. 다들 당황하지 말고 제자리에서 사격 준비해. 적이 더 있을지도 몰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온몸의 온도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표적이라 해도 단발에 명중했다. 상당히 실력 좋은 저격수가 있다는 뜻.
좌우가 철제 칸막이로 막혀 있고, 앞쪽은 가시 박힌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뒤쪽으로는 탁 트인 개활지. 퇴로가 없다.
오른쪽 정면,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요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2조의 조원들이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해 엎드린 채 컨테이너를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다른 조는?’
다른 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피하지 못한 건 2조뿐.
그때, 빠지직거리는 불꽃과 함께 3층의 창문 하나가 빛을 발했다.
요한은 번쩍거림의 정체를 곧바로 파악했다.
차량용 비상 조명탄이 암흑에 물든 역전을 밝히기 위해 타올랐다.
적들이 그들을 발견한다면 꼼짝없이 당한다.
요한은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소리를 질렀다.
“2조 빨리 몸 숨겨! 나머지 조원들은 지원사격!”
조명탄이 역 아래로 던져지는 것과 네 명이 몸을 일으킨 것, 그리고 수색 조원들이 사격을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요한은 곧바로 조명탄을 투척한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새벽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격발음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탕!
두두두두!
쏟아지는 탄환에 반응이라도 하듯 곧바로 적들이 반격이 첨예한 총성과 함께 되돌아왔다.
‘위치는.’
여명이 밝기 전의 어둠 속에서 오롯하게 불꽃을 내뿜는 총구만 빛을 발했다. 요한의 눈이 목표물을 따라가면서도 총구가 보이는 곳의 위치를 잡아냈다.
이내 바로 지척에서 소음기에 걸린 총성과 함께 요한이 바라보던 창문에서 머리를 내밀고 총을 쏘던 한 명이 총에 맞아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옹 상병이었다.
두 집단은 사정없이 탄환을 주고받았으나 총구만 내민 채 쏘아대는 탄환은 대부분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한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후 먼저 사격을 멈춘 것은 적들이었다. 놈들은 사격을 멈추고선 창가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사격중지.”
적이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자신들은 독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놈들이 원하는 건 빤했다. 탄약이 전부 떨어지는 것.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수 없지.’
요한이 무전기를 잡고 또박또박하게 전파했다.
“최대한 탄약을 아껴. 다음 신호까지 대기.”
때마침 불꽃을 뿜어내고 있던 조명탄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정수는?
-…….
-죽었나.
-이마에 맞았어요.
보고하는 혁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물었지만, 요한 또한 이미 그가 총에 맞는 순간 절명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요한은 일부러 혁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오로지 누군가가 또다시 조명탄을 켜는 것에 집중했다.
누군가 빛을 낸다면 당장에라도 꿰뚫어 버릴 것만 같은 흉흉한 기세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누군가 또다시 조명탄을 켰다.
팟! 탕!
다시 한번 불빛이 켜졌으나,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리며 쏘아진 탄환이 먼저 조명탄이 던져지기도 전에 사내를 쓰러트렸다.
‘저격수의 솜씨로는 이쪽도 뒤지지 않지.’
상황은 상당히 불리했다. 퇴로는 없고, 총소리가 난 이상 여기저기서 먹잇감의 냄새를 맡은 좀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터다. 철벽이 철로를 막고 있었지만, 철조망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게다가 날도 밝지 않아 시야가 어두웠다.
대치상태를 무너뜨려야 한다.
“또 부상자 있어?”
-여기, 정은이가 총에 맞았어.
스위퍼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 너머로 정은의 가냘픈 신음과 세리의 음성이 새어 들어왔다.
요한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대치하다간 이쪽의 피해만 점점 커질 터다.
전면전을 해야 한다.
“각 조장 부상자 파악 좀.”
요한의 말에 각 조의 조장들이 차례대로 보고를 시작했다.
-2조. 정은이가 총에 맞았어. 상처가 깊다.
“관통상이야?”
-응.
그나마 다행이군. 요한이 중얼거렸다.
“3조는?”
-정수가… 에디도 다쳤어.
“4조는?”
-4조 이상 무.
요한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하고선 곧바로 다음 지시를 이어갔다.
“1조, 4조. 진입한다. 2조랑 3조는 엄호사격 해서 최대한 시선 끌어줘. 우리 진입 이후에는 부상자 수습하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 스위퍼와 혁은 부상자 수습 완료되면 둘이 합쳐서 임시 조로 합류해. 셋 세면 사격 시작하고, 사격 시작 후 십 초안에 뛴다. 셋.”
요한이 핏발 선 눈으로 목표 장소를 노려봤다.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저들이 먼저 공격했다. 사망자가 나온 이상 그대로 넘어갈 순 없었다.
“둘.”
설령 친구를 죽여야 하게 되더라도.
“하나. 사격.”
땅! 따당!
격발음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공격 재개에 당황했는지 저쪽에서의 반격이 상당히 늦었다.
요한은 속으로 10초를 빠르게 센 뒤 전속력으로 반원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쪽 사격에 저쪽도 대응사격을 시작했지만, 잠입하는 인원들은 거의 용산역 근처까지 다다른 뒤였다.
요한은 용산역으로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몸을 숨기고 적의 모습을 찾았다.
1층 비상구 쪽은 비어 있었다.
뒤이어 하진, 진수가 따라 들어왔다.
“소희랑 재호는?”
요한의 물음에 하진이 턱짓했다. 두 사람이 잔뜩 굳은 얼굴로 허겁지겁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는 거 저들이 확인했어?”
“헉, 아니요. 이쪽으로는 총알이 날아오지 않았어요.”
“좋아.”
놈들은 우리가 들어온 걸 모른다.
위험천만한 진입이었다.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리라.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총을 등 뒤로 멘 후 권총을 꺼내 들었다.
“적들은 2층, 3층에 모여 있어. 하진, 진수는 2층으로. 나랑 옹 상병은 3층으로 간다. 피오, 베르다는 1층 홀 정면에서 빠져나가는 사람 없도록 막아. 재호, 소희는 광장 쪽 입구 막아. 한 명도 놓치지 마라. 무리해서 전투하지는 말고 적이 많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스위퍼에게 무전 쳐.”
마지막 말은 하진에게 하는 말이었다. 하진은 의도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한은 그와 눈빛을 한 번 교환하고선 말하고선 옹 상병과 함께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들어갔다. 하진이 막내 진수를 보며 말했다.
“우리도 가자.”
아직도 밖에서는 주고받는 총성이 끊이질 않고 시끄럽게 땅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하진이 천천히 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올랐다. 목표는 총소리가 나는 곳.
그가 한 프렌차이즈 음식점 매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오픈형 매장 창가 쪽으로 적들이 훤히 드러났다.
하진이 손가락을 세 개 들어 보인 다음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세 개, 두 개, 하나.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졌다.
하진은 두 사내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총성이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좋아, 다음.”
파크타운 캠프 출신 전 막내, 진수는 긴박한 상황에도 침착하게 하진을 따라왔다. 하지만 침착한 발놀림과 달리 동공과 손끝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남은 탓이었다.
하진은 굳이 그를 다독이거나 과하게 추켜세우지 않았다.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선 스스로 견디고 겪어야 할 과정이었기에.
총성이 멎었다.
사격을 중단한 게 어느 쪽이든 소강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어디지. 이 근방이었는데.’
하진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2층 홀에는 여러 음식점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하진은 우선 역 뒤쪽으로 창문이 나 있을 만한 매장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2층 곳곳을 뒤져도 안쪽 매장들에서는 적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 바닥에 즐비하게 떨어져 있는 탄피와 누군가가 흘린 핏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탄피가 많이 흩어져 있다.
아마도 탄약이 떨어져 후퇴했을 것.
하진은 마치 사냥개가 사냥감을 추적하듯 핏자국을 따라 걸어갔다. 핏자국은 반대쪽 광장으로 나가는 창문 근처에서 끊겨 있었다.
창문 아래쪽에는 총성을 듣고 몰려든 좀비들이 가득했다.
그 순간, 하진의 기감에 인기척이 걸려들었다.
쐐액!- 쿵!
하진은 사내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마자 글록을 들어 사내를 향했으나, 거의 동시에 그의 손이 하진의 손을 붙잡았다.
붙잡힌 손아귀에서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눈앞의 사내는 하진보다도 더 장신의, 최소한 한 체급 정도 위로 보이는 육중한 체구의 사내였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에서 글록이 떨어졌다.
“흐아압!-”
하진이 잘린 팔을 벽에 세게 부딪쳤다. 스프링 소리와 함께 의수 칼날이 튀어나오고, 놈의 안면을 향해 찔러 갔다.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홱 젖혔다.
큰 덩치에 걸맞지 않은 순발력이었다.
뒤이어 놈이 하진에게 달라붙어 어깨와 다리에 팔다리를 걸어 그를 조이기 시작했다.
압력과 통증이 동시에 느껴진다.
하진이 몸을 들썩거리며 등 뒤에 매달리듯 자신을 붙잡은 적에게 타격을 가해 보지만 옥죄어 오는 압박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그때, 으드득! 하고 살점 뜯기는 소리와 사내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으아악!”
사내의 팔을 물어뜯어 기술에서 벗어난 하진이 입속에 남은 살점과 핏물을 투, 뱉어낸 다음 사내의 머리를 향해 상단발차기를 날렸다.
사내는 팔을 들어 발차기를 막아냈지만, 충격이 남은 듯 비틀거렸다. 다시 한번 이어지는 발차기.
사내는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해서 그의 발차기를 막아냈다.
느껴지는 부유감.
사내의 핏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하진을 창문 쪽으로 집어 던졌다.
마치 변종과도 같은 힘이었다. 와장창, 유리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하진의 몸이 광장으로 추락했다.
쿵, 하는 묵직한 충격과 함께 하진이 허리를 활처럼 휘며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소란을 듣고 몰려든 좀비들이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 아아…….”
진수는 총기를 손에 쥔 채 긴장감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두려움에 못 쏜 게 아니었다.
하진과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사람 몇은 족히 뚫고 나가는 총알이다. 놈에게 총을 쐈다간 하진도 다칠 수 있었다.
그러나 엎어치기 하듯이 하진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는 사내를 본 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는 제대로 된 사격이 불가능했다. 사내가 진수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내다 찍었다.
눈앞이 번쩍하는 충격과 함께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후.”
사내가 숨을 몰아쉬며 물어뜯긴 팔뚝에서 피를 뚝뚝 흘린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눈앞에 다른 침입자는 없다.
침입자를 모두 제압했다고 판단한 그가 저벅저벅 제 배낭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알코올로 상처를 소독하고 항생제와 소염제를 먹고 붕대로 응급처치했다.
혹시라도 감염되기 전에 처치를 해야 했으니까.
“빌어먹을.”
얼마나 세게 물어뜯었는지, 감아 놓은 붕대가 금방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상처가 제법 깊었다. 사내는 붕대의 위에 몇 겹이나 다시 붕대를 감았다.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응급처치를 끝낸 사내가 쓰러져 기절한 진수의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팔에도 천을 칭칭 감은 뒤에 묶기 시작했다.
진수의 몸이 부르르 경련했다.
포박이 끝나고 나서 사내는 줄여 두었던 무전기의 음량을 높였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리더의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너희 괜찮은 것 맞아? 왜 다들 무전이 없어?
사내가 송신 버튼을 눌렀다.
“노아. 여기 침입자들의 반격이 거세다. 숫자도 제법 많고.”
-재원이냐?
“어.”
-무리하지 말고 빠져.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까.
“다 죽이고 갈 거다.”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래도.
재원이라 불린 사내는 무전을 뚝 끊었다. 그는 건방지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들을 그냥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그때,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은 금세 불타는 듯한 끔찍한 고통으로 변했다. 재원의 동공이 터질 듯이 확장했다.
제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상의에 아슴아슴 배어들고, 눈앞이 샛노랗게 변해갔다.
재원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 뒤에는 떨어져 좀비들에게 물어뜯겨 죽었어야 할 하진이 서 있었다.
전신이 피와 땀으로 범벅된 채.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야차 같은 모습으로.
하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뚝뚝 떨어져 바닥에 적시고 있었다.
“어떻게-”
좀비에게 물어뜯기고도…….
분명 좀비가 놈의 팔과 어깨를 물어뜯는 것을 똑똑히 봤다. 진작 감염이 시작되어 몸을 가누지도 못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사내의 의문이 이어지기도 전에 하진의 의수 칼날이 다시 한번 사내의 숨통을 관통했다.
“후우…….”
하진이 숨을 깊게 내쉰 다음, 놈의 목에서 칼을 빼내고 그의 옆에 떨어져 있던 항생제를 입에 탈탈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