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29화 (129/176)

<129화>

“여기가 엔진 킥보드 충전소입니다.”

요한 일행이 안내를 받아 도착한 1층 킥보드 충전소는 간이 발전기와 자동차 배터리를 이용한 임시 충전소였다.

충전소 안은 여기저기서 수급한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엔진 킥보드들이 가지런하게 세워져 있었다.

피를 닦아내기는 했지만, 은근하게 묻어 있는 핏자국들이 여전히 남아 마치 생사 혈전을 뚫고 들어온 경주마처럼 음습한 기운을 뿜어냈다.

일행은 출발하기에 앞서 간단하게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주행을 연습했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균형감각이 영 꽝인 몇몇 생존자는 운동장에서 꼴사납게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죄송해요, 형.”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처음엔 자전거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니까.”

이동하는 데 힘이 조금 드는 걸 제외하면 자전거도 나쁘지 않은 이동수단이었다. 불안하게 이동하느니, 차라리 힘이 더 들더라도 안전하게 이동하는 게 백번 나았다.

“정은이는 자전거를 타는 게 낫겠다.”

“힝…….”

요한은 망아지 소리를 내는 정은이를 반강제로 자전거에 태웠다. 그 외에도 운행 중에 조금이라도 비틀거리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조원이 눈에 띄면 바로 자전거에 태웠다.

“익숙하지 않은 이동수단을 타고 움직이다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요한은 시무룩한 표정의 생존자들을 다독여주고는 가야 할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서울 방향에서 이유 모를 피 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탕!

잠시 후, 동쪽 멀리서부터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던 좀비들의 머리가 홱 돌아가더니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안내원이 요한을 향해 말했다.

“신호가 왔습니다. 출발하시면 됩니다.”

“예. 고맙습니다.”

“연희 님께서 마지막으로 몸조심하고, 꼭 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란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예.”

마지막까지 배려가 과분했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불편한 배려.

요한은 마지막까지 친절을 베푼 캠프 춘향의 안내원을 향해 묵례하고선 대열을 정비했다.

“1조가 앞장선다. 2조가 왼쪽 측면, 3조가 오른쪽 측면, 4조가 후방 봐. 보이는 좀비들을 잡고 전진한다. 다수의 좀비 떼가 보이면 무전 칠 것.”

요한의 지시를 끝으로 수색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도시에 집어삼켜 지기라도 하듯 요한 일행이 탄 엔진 킥보드와 자전거가 도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뒤로 무언가 걱정하는 듯, 불편한 듯한 시선이 그들의 뒷모습을 향했다.

* * *

“전방에 좀비 셋.”

요한의 짤막한 음성에 피오와 베르다가 미끄러지듯 빠르게 패드를 움직여 한 손으로 좀비의 숨통을 끊고 되돌아왔다.

쐐액! 옹 상병이 발사한 화살이 정확하게 날아가 남은 한 마리의 이마를 관통했다.

출현한 좀비들을 처리한 세 사람은 다시금 요한이 있는 도로의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순간적인 처리, 그리고 다시 은폐.

신도 밖을 벗어난 순간 지켜야 할 기본적인 행동방침이었다. 여차하면 곧바로 창문을 깨고 들어가 몸을 숨길 수 있도록 기습을 염두에 둔 이동방식.

아직은 생존자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히 신월 나들목 인근과 비교해서 좀비들의 출현 빈도가 잦았다.

보통은 한, 두 마리씩. 가끔은 열댓 마리가 떼를 지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요한은 이동을 멈추고 놈들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움직였다.

“전방에 좀비 한 마리.”

또다시 좀비 한 마리가 나타나자 피오가 엔진 킥보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순식간에 놈의 숨통을 끊었다. 운동신경만큼이나 훌륭한 주행 솜씨였다.

‘이건 굉장한데.’

요한이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엔진 킥보드라는 놈의 성능은 대단했다.

자신이 살았던 지난 생에는 주로 자전거가 도심 내의 이동수단이었다. 여러 단점이 있었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소음을 최소화하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이 녀석은 충전할 때 전기를 잡아먹는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월등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이동 시 체력을 거의 잡아먹지 않으며, 타고 내리기가 간편하고, 익숙해지면 이동 중에도 한 손으로 좀비를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이 그중 최고의 강점이었다.

“요한 님. 오른쪽 골목에 좀비 떼. 겁나게 많아요.”

앞서 경로를 탐색하던 베르다가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이 골목 어귀에 천천히 몸을 붙이고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좀비의 수를 확인했다.

얼추 몇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수. 거리부터 지하철역까지 좀비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반대쪽 갓길로 붙이고 최대한 조용히 지나치자.”

“예.”

어차피 지나가는 길. 굳이 시선을 끌 필요는 없었다.

부응-

요한의 킥보드가 다시금 달려나갔다. 골목을 통과할 때 몇 좀비들이 따라붙긴 했으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노들로로 진입하는 여의1교에 도착하기까지 특별한 위기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전방에 여의도 교각 발견.”

요한은 작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무전기에 상황을 전파했다. 또 하나의 분기점인 노들로가 눈앞이었다.

그리고 그 안전하고 평화롭던 전진은 노들로에 진입하자마자 돌을 던진 유리창처럼 산산이 박살 났다.

“전방에 좀비 떼.”

이번엔 요한이 일행을 완전히 멈춰 세웠다. 눈에 보이는 좀비만 오, 육백은 되어 보이는 수.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이상.

지형적으로도 안 좋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데다가 주변에 건물들도 많아 일단 소란이 일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좀비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컸다.

전위 네 명으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수색조 전체가 투입된다고 해도 어려운 상황이다.

“모여.”

요한은 근처 모텔 로비에 자리를 잡고 조원들을 전부 불러들였다. 뒤따르던 다른 조원들이 금세 따라붙었다.

“잠시, 도로 상황을 보고 다시 출발하자.”

일단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요한이 조원들에게 안전지역 확보를 지시하고는 건물 옥상까지 내달렸다.

십여 층 정도를 올라가니 박살 난 문고리 너머로 옥상 가운데 총상을 입은 시체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요한이 시체의 머리를 깔끔하게 까부수고는 천천히 난간으로 다가가 쌍안경을 들었다.

도롯가가 한눈에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쉽지 않겠는데.’

도로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좀비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가도로 입구에서부터, 지하차도, 평지 도로까지도 좀비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놈들은 허우적거리며 닫힌 차창을 두드리거나 다리, 둑을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요한이 쌍안경을 벗었다.

더 넓은 시야가 한 번에 펼쳐졌다.

그의 시선에 들어온 세상은 좀비들로 가득한 회색 도시이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서 동아시아의 중심 도시로 발돋움했던 과거 영광이 빛나는 도시.

빛바랜 서울이었다.

14. 각자의 정의

“What the Fuc….”

내부 정리를 마치고 옥상으로 따라 올라온 조원들이 서울시의 상황을 보고선 입을 쩍 벌렸다. 스위퍼는 욕지거리를 가감 없이 내뱉었다.

노들로며 도로 옆쪽의 시가지며 좀비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좀비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몇 마리지? 오백? 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한데.”

“형씨, 왜 이 뒤쪽으로만 좀비가 가득한 거지?”

“여의도 쪽에서 싸움이 잦았다고 했잖아. 여기저기서 밀려 들어간 거겠지.”

과연 좀비들이 향하는 방향이 전부 북쪽이었다. 스위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경로는 없나? 개백정이 지나온 길이 있을 텐데.”

“그때는 아마 좀비들을 다른 곳에 몰아넣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차피 바이크 타고 이동하면 좀비들을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하긴, 확실히 그 양성애자 형씨는 소음 따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

“오히려 클랙슨을 빡빡 눌러 남은 생존자들을 다 튀어나오게 했을걸.”

요한은 실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어쩌지. 한바탕할까?”

“아니. 위험성은 둘째치고서라도 저기서 싸우고 있으면 눈에 너무 띌 것 같네. 차라리 옆쪽 골목길 쪽으로 뚫자.”

골목길 쪽도 상황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좀비들과 싸우다 생존자들의 습격을 받을 확률은 낮으리라.

요한의 말이 끝나자 재호가 의견을 냈다.

“으, 이런 상황이면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차라리 지금부터 지하철로 가는 게 어떨까요? 두 블록 아래에 영등포시장역이 있어요. 신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면 괜찮을 거예요.”

재호의 말에 요한이 턱을 한 번 쓰다듬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음, 좋아. 그쪽 골목에 좀비들이 있었어. 한 삼사백 마리 정도. 차라리 킥보드를 보관해 놓고 걸어서 그쪽을 뚫고 가자. 멀지 않아. 여섯 정거장 정도니까.”

요한은 모텔 카운터에서 마스터키를 찾아 아무 객실이나 열어 엔진 킥보드를 모두 집어넣은 뒤 호수를 외우듯이 되뇌었다.

“이백칠 호. 이백칠 호.”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재호가 소리 내어 호수를 외우고 있었다. 요한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역시 머리 쓰는 친구가 한 명 있으면 편하다니까.

요한은 뒤따라오는 용병단에 경로 수정을 짤막하게 공유한 뒤, 모텔 밖으로 걸어 나와 그들이 왔던 길을 5분 정도 되돌아갔다. 좀비 떼가 가로막고 있던 길.

“전투준비해. 돌파 진형으로.”

요한의 지시에 16명이 일사불란하게 위치를 바꿔 진형을 재정비했다.

정면에 곡선에 가까운 일렬로 근접전에 강한 여덟 명이, 중앙에 원거리 지원이 가능한 네 명이, 후방엔 뒤에서 다가오는 좀비를 확인하고 처리해줄 네 명이 자리 잡은 모양새.

한쪽을 집중적으로 뚫으며 이동할 때 사용하는 진형이었다.

‘준비.’

요한의 수신호가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좀비는 이백 마리 이하. 전투가 시작되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또 다른 좀비를 부르겠지만, 지하철까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충분히 뚫어낼 수 있다.

‘원거리 공격 개시.’

요한의 신호와 동시에 네 명의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침입자를 발견한 좀비들이 그르렁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접근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모여드는 회백색 시선에 몇몇 생존자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확실히 한 마리 한 마리 있는 것과 다수의 좀비가 뭉쳐서 다가오는 건 위압감 자체가 달랐다.

여전히 끔찍하고, 심할 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괴이쩍다.

시체들이 신체 일부를 뚝뚝 떨어트리며 다가온다. 너무도 현실감 없는 광경.

발을 절뚝거리기도, 허공에 이를 딱딱거리기도 내장을 흘리기도 하면서 다가올 때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각한 곰팡이 썩은 내가 풍겨왔다.

특히나 썩은 몸뚱어리에서 똬리를 튼 구더기와 파리들 때문에 피부에 놈들의 몸이 닿기만 해도 감염되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을 만들어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함께 살아있던 사람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모습들.

‘근거리 공격 개시.’

요한이 수신호를 보냈다.

돌격 신호와 동시에 여덟 명의 전위가 손아귀에 각자의 무기를 꽉 그러쥐고 눈앞의 좀비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퍽! 퍽!

한마디의 말도, 단말마의 신음조차 내지 않고 그저 찌르고, 베고, 자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는 전투.

일방적이었지만 밀어붙이는 쪽도 정신력과 체력을 갈아먹는 전투가 시작됐다.

도심 안에는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그런 좀비들을 썰어 가는 소리만 가랑가랑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좀비와의 싸움.

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좀비들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점점 무기를 휘두르는 게 익숙해질수록 위협과 역겨움마저 무뎌지고 오로지 지치는 육신과 정신만을 붙잡아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열 맞춰. 스위퍼, 하진은 속도 늦추고 에디는 속도 올려.”

“으으. 네,”

그러다 가끔 대형이 무너질 때가 되면 요한의 짤막한 음성만이 희미해진 정신을 깨고 들어왔다.

요한이 살짝 일그러진 반원의 진형을 다시금 가다듬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방심하기에 십상이다. 방심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요한이 쇠뇌를 튕기다 말고 에디를 불러들였다.

“에디, 중위로 빠져. 힘 빠지는 사람 보이면 교체해줘.”

“예, 예.”

전위는 체력 정신력과의 싸움.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바로 교체해줘야 하고, 중위는 위험할 때마다 곧바로 백업을 해줘야 했다.

소희의 합류가 큰 도움이 됐다. 혹시나 일행이 맞을까 쇠뇌의 발사를 망설이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소희는 자신만만하게 누군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곧바로 화살을 쏘아붙였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했다.

“지원, 정수, 교대해.”

지원이나 정수, 에디처럼 전위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우긴 했지만,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었다. 마치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모습이 계속해서 연출됐다.

새삼 정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자신과 스위퍼, 하진, 세리, 혁, 정환. 이렇게 여섯 명이면 여덟 명이 막아야 하는 자리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준 A급 생존자 한 명이 빠지자마자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밝은 것을 보고 눈을 감은 것처럼 아쉬움의 잔상이 남아 맴돌았다. 요한은 흐트러지는 정신을 바짝 붙잡았다.

“에디, 다시 교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