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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서바이벌-127화 (127/176)

<127화>

노인이 손을 내밀자, 요한은 그 손을 잡았다. 노인의 표정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할 말은 끝났나?”

“예.”

“그럼, 외출준비를 해야겠군.”

찌뿌둥한지 노인이 기지개를 켰다.

“따로 준비하실 게 있으십니까?”

“그럼. 서울은 좀비며 인간이며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애송아. 서울로 들어가는 걸 쉽게 생각하면 안 돼. 특히나 이렇게 많은 인원을 데리고는 말이지.”

노인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인 또한 요한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왔는지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가 겪은 캠프 요한의 저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세력과 맞붙었어도 최소한 지지는 않았던 자신들이었다. 그런 자신들을 기습했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때 인원이 고작 스무 명 안팎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단일 전투력은 자신이 보았던 어떤 세력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강하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런 전력을 가지고도 애송이는 이곳을 찾아왔다. 추가적인 도움을 받고 만약을 위한 보험을 들어놓기 위해.

지독하리만큼 신중하고, 고지식하고, 꼼꼼한 녀석이다. 더불어 배짱까지 있는.

노인은 요한을 바라보던 흐뭇한 시선을 거두고 무전기를 잡았다.

“철구야, 거기 있냐.”

-예, 할배.

“들어와 봐라.”

짤막하게 철구를 부른 노인이 요한을 향해 물었다.

“애송아, 지금부터 간단하게 경로 설명할 건데, 같이 들을 놈들 있으면 부르든지.”

“아아, 예.”

요한이 무전기를 켜고 스위퍼, 하진, 혁이와 재호, 루카를 불렀다.

먼저 도착한 것은 철구였다. 철구는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할배, 불렀습니까?”

“애들 서울로 출타 준비시켜라. 잘 치는 애들로 한 열댓 명 정도만 추려.”

“할배가 직접 갑니까?”

“직접 간다.”

노인이 직접 간다는 말에 철구가 약간은 마뜩잖은지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나 가타부타 토를 달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춘향이랑 춘향맘도 봐야지. 눈 호강하고 와야겠다.”

철구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사무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뒤이어 요한이 부른 조장들과 일부 사수들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장수 셋에 군사 둘이라. 좋은 밸런스야.”

노인이 요한이 부른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영문을 모르던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노인분께서 원정을 백업해주기로 하셨다.”

요한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 애송이들. 두 가지 정보를 알려줄 거다. 참고로, 거기 대장 애송아. 이 정보들은 너희들을 백업하는 데 포함된 비용이다.”

“예. 계속하시죠.”

그가 요한을 바라보고선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는 경로다. 너희들끼리 머릿속으로 그려 넣은 경로는 있겠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용산까지 가는 가장 안전한 건 내가 알려주는 길일 거야.”

노인의 말에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고, 재호는 질문을 던졌다.

“대장님, 용산이요?”

“그래. 합동참모부를 먼저 갈 거야. 그다음이 국립중앙도서관이다.”

“아, 합참이… 그렇네요, 합참이 있었어요.”

재호는 의문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더 상위 기구인 합참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했다.

“경인고속도로 타고 신월 나들목까지 갈 거야. 여기가 우리 첫 번째 거점이자 내 거래처가 있는 곳이지. 여기서 고 패드를 타고 이동한다.”

“고 패드요?”

“그래. 전동킥보드 알지? 시속은 느리지만, 완충하면 주행거리가 80km 정도 되니까, 왕복하기에는 충분할 거야. 오토바이로는 못 가. 너무 눈에 띄거든.”

요한은 노인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서생연처럼 만나는 모든 사람을 때려잡고 죽이든 노예로 만들든 할 게 아니라면, 오토바이처럼 눈에 띄는 이동수단은 배제해야 한다. 요한은 자전거나 도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동킥보드라니. 조금은 신선했다.

“그런 다음 노들로를 거쳐서 신길역 R파크로 가. 거기가 2차 거점이야. 여기부터는 도보로 이동한다. 원효대교를 건너서 용산역으로. 여기서는 지상으로는 절대 못 다녀.”

좀비 하나하나는 약하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한 번 좀비에게 쫓기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좀비들의 물결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생존자들은 건물과 건물을 이용해 공중에서 이동하거나, 지하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점점 깊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는 게 그들이 터득한 생존법.

“사실상 가장 위험한 건 신길역에서 지하철 길을 이용해서 용산역까지 가는 길이야. 꽉 막힌 어두운 통로에서 좀비들이 나타나는 것도 위험하지만, 무엇보다 여기는 여의도 캠프 놈들의 거점이니까.”

여의도 캠프라는 말에 요한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일단 신월 나들목까지는 우리가 앞장선다. 거기서 내 거래처를 소개해주지. 그다음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가는 거야. 우리는 한 시간 간격을 두고 너희를 따라가지. 만약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정확한 장소와 상황을 전파해. 그럴 만한 상황이 안 되면 딱, 한마디만 해. 매안.”

“매안이라면.”

“아무 뜻도 없어. 암호 같은 거지.”

“예. 그러지요.”

요한은 군더더기 없는 작전에 흔쾌히 대답했다.

“두 번째는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들이야.”

노인은 서울 지도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여의도, 구로, 잠실이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서울엔 세 개의 캠프가 있어. 첫 번째로는 여의도 캠프. 개백정이 있던 용산 쪽 세력까지 흡수하면서 세력을 키웠지. 리더도 제법 특출난 애송이인 데다가, 주변에 쓸 만한 놈들이 많아서 요주의 캠프야. 내 거래처도 그쪽과의 싸움에서 밀려나서 신월동 쪽으로 내려왔지.”

“여의도부터 용산까지라… 제법 활동 범위가 넓네요.”

“정확히는 용산, 마포, 여의도라고 보면 돼. 주로 지하철을 이용해서 이동하지.”

“지하도에는 변종 골룸이 있을 텐데.”

“뭐 이겨냈겠지, 골룸급 변종들이야 대처법만 알면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니까.”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고 노인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음은 구로 쪽에 자리 잡은 캠프. 여기는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었거든.”

“마지막 확인은요?”

“한 달이 훌쩍 넘었지.”

서울에서 한 달이면 한 캠프가 무너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요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위치상 엮일 일이 드문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잠실 종합운동장.”

“잠실 쉘터가 아직도 버티고 있습니까.”

“아는 곳이냐?”

요한의 반문에 노인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조금. 수방사 일부와 경기도 파주 쪽에 있던 기갑부대 일부가 주둔하고 있는 공식 쉘터이지 않습니까.”

“맞아.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무이한 정부 소속 쉘터지.”

“놀랍네요.”

“사실상 너무 많은 공격을 받아서 너덜너덜해진 거로 아는데. 초창기에 워낙 많은 물자를 쟁여놓기도 했고, 화력 자체가 어마어마하니까.”

“지금도 잘 버티고 있습니까?”

“무너진 군부대들이나 떠돌이 군인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 몰려들고 있는 모양이야. 피해자도 계속 생기는데 그만큼 전력보충이 되니까. 다만 문제는…….”

요한은 듣지 않아도 답을 알고 있었다.

식량난.

실제로 저 캠프는 서울 남부지역의 희망이라고 불렸던 캠프였다. 생존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저곳으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많은 생존자가 모이는 와중에도 감염 전파를 최소화했다.

첫 변종의 타격을 받았을 때는 거의 기백 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나, 제2기갑여단의 합류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변종의 습격도 막아냈다.

결국, 문제는 식량난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휘관이 너무나 유능했던 게 문제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구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굶주리기 시작했고, 점점 통제를 벗어나거나 쉘터에서 도망치거나, 극단적으로 군인들을 향해 반기를 드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추후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지휘부는 한강을 통해서 서울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여객선이 좀비화가 되었었다.

인재는 많았으나 굶주림, 그리고 두 부대의 공존으로 생겨난 사령관끼리의 알력다툼이 결국 무너지는 원인이 되었었던 비운의 쉘터.

“아무리 대단한 부대라 한들, 먹지 못하면 싸울 수 없으니까.”

탄약이 많다고 해도, 사람이 탄약을 먹고 살 수는 없다. 진짜 생존은 6개월부터 시작이다. 라면 등 대부분 식량이 무용지물이 되어 가고, 인류가 굶주리기 시작하는 시점.

“무조건 대가리 속에 콱 저장해야 하는 한 가지는, 도시 내에서는 절대 총을 쏘지 말라는 거야. 총소리 한 방에 수만 마리의 좀비들이 몰려 들어온다고 생각하라고. 잘 기억해. 서울에는 천만 마리의 좀비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기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호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요한을 향해 물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냥 계룡이나 진해로 갈까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 줄 알고. 후회하지도 돌아보지도 마. 일단 앞만 보고 가자.”

재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굳이 위험한 곳인 서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을 찾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

하지만 더 위험한가 덜 위험한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위험한가 위험하지 않은가의 차이는 없다.

어느 곳으로 가든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타임어택이 시작된 시한폭탄.

“준비되었다는군. 그럼 출발하자. 애송이들.”

요한이 재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는 생각이 많다. 마치, 얼마 전까지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일지는 꾸준히 쓰고 있지?”

“그럼요, 대장.”

“그래. 출발하자.”

생각할 시간에, 먼저 움직인다. 사실 누구보다 조급한 것은 요한이었다. 애써 티 내려 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신을 옥죄는 위화감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둘렀다. 리나의 꿈, 변종 피콜로, 여의도 캠프, 서울의 천만 좀비 등등 불안한 요소들은 많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더 컸다.

묵직한 고민 속에서 바이크가 출발했다. 용병단은 저들끼리의 훈련된 방식으로 도로를 뚫으며 나아갔다.

덕분에 요한 일행은 체력을 비축하며 전진할 수 있었다. 사실상 좀비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는 수준.

과연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칭찬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여!”

노인이 안내한 곳은 서서울 호수공원 근처의 고리울 초등학교였다. 노인은 초등학교 문 건너에서 총기를 메고 있는 문지기들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했고 그를 알아본 문지기들이 그에게 화답했다.

“여기야, 캠프 춘향. 덕배, 오랜만이야.”

“예,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춘향맘은?”

“교장실에 계십니다.”

“소식 좀 넣어줘. 손님들 데리고 갈 테니까.”

“예.”

캠프 춘향.

서서울 호수공원 근처의 두 학교를 거점으로 하는 캠프였다.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여기저기에 정리되지 않은 시신들이 보였고, 사람들도 부상자들이 많이 보였다.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는 생존자들, 이마나 복부에 붕대를 감은 생존자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지독하게 싸웠군.’

그들이 싸운 게 좀비는 아닐 것이다. 총을 쏘는 좀비는 없을 테니까. 노인은 그들이 ‘여의도 캠프’에 밀려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요한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는 신노아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신노아는 철저하게 집단이기주의적인 유형의 인간이었다. 내 편에게는 항상 관대하고 친절하게, 적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매정하게.

자신과도 딱 맞는 가치관과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었고.

다행인 것은 개백정 휘하의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신사적인 유형의 인간이라는 것.

인질극이나, 고문, 세작 잠입 등등의 인간 이하의 방법을 사용하진 않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힘으로 승부하는 타입의 생존자였다. 그 때문에 개백정을 상대할 때 상당히 힘들어했었지. 매번 개백정에게 통수에 통수를 얻어맞곤 했으니까.

자신이 합류하기 전의 여의도 캠프는 개백정에게 갈기갈기 찢겨 공중분해 되기 직전인 상태였었다.

“그런데 대장님.”

“응?”

요한의 생각을 끊은 것은 재호였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분들 상태가 정말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이렇게 위험한 서울에서 왜 나오지 않고 버텼던 걸까요? 이들뿐만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생존자들은 어째서 천만 좀비가 있는 서울을 고집하시는 거죠?”

“예리한 지적이네.”

“멍청한 행동 같아서요. 저라면 빨리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싶었을 텐데.”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 이 캠프 사람들을 봐, 뭐가 느껴지지?”

“음…….”

재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얼굴에 생기가… 희망이 없네요.”

“정상적인 반응이지. 하루하루가 세상의 종말이고,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 준비된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그저 목숨을 걸고 하루치 물자를 구해 와 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이지.”

“아…….”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어. 그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뿐이지. 당장 먹을 것도 부족한 사람들에게 서울을 떠나 외각에서 미래를 대비하라는 생각은, 너무나 과한 사치를 바라는 거야. 오늘을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우니까.”

과연 사람들의 표정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마치 요한을 만나기 전의 마트 캠프 사람들의 상황을 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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