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26화 (126/176)

<126화>

* * *

3조. 혁, 루카, 정수, 에디가 탄 헬기는 항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넘어와 공중에서 부양했다. 그 밑으로는 헬기 소리에 몰려온 좀비들이 끝도 없는 하나의 해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루카 님, 잠시 문 좀 열게요.”

혁이 헬기 문을 열고서 좀비 떼를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탕! 요란한 격발음이 좀비 울음소리와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뚫고 날아갔다.

날아간 탄환은 정확하게 좀비 한 마리의 이마를 관통했다.

“와, 대단한데.”

거의 최장 사거리에서 좀비를 정확하게 맞춰 쓰러트리는 모습을 본 에디와 정수가 감탄사를 냈다.

“그렇게 막 쏴도 괜찮아?”

루카가 뒷좌석을 향해 묻자 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요한 형이 우리한테 준 임무는 좀비들을 최대한 멀리 끌어당기는 거니까요.”

헬기 소리로도 충분할지 모르지만, 혁은 이 긴장감 넘치는 실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혁이 다시 한번 소총의 개머리판을 오른쪽 어깨에 단단히 고정하고 좀비 한 마리를 조준했다.

같은 시각, 2조와 4조.

정유 공장 안쪽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무래도 헬기 소리를 듣고 안에 있던 좀비가 모두 소음을 쫓아간 모양이었다.

“으, 저게 뭐야.”

그 대신 회전을 멈춘 정유 통 안쪽에 좀비들의 시체가 기름을 잔뜩 먹은 채 울어대고 있었다. 딱딱하게 표면이 굳은 한 정유 통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기계가 한창 작동할 때 돌아가는 기계 소리를 듣고 저 안으로 다이빙한 모양이었다.

2조는 엄호하고 4조는 수작업으로 쓸 만한 물건들을 골라냈다. 한쪽에서는 하진이 1t 지게차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조작하고 있었다.

2조가 네 방향에서 엄호하고 재호가 재고 창고에서 날라야 할 물자들을 골라냈다. 그사이 하진은 한 손으로 능숙하게 1톤짜리 지게차를 끌고 와 높은 곳의 유류 통을 쏙쏙 뽑아냈다.

“JP-8이라고 쓰인 통은 전부 그쪽으로 옮겨주세요, 제품 네임 태그에 F-76이랑 MF, MDO라는 글자가 보이면 전부 한쪽으로 빼주시고, HO, Heavy Oil, 중유라고 쓰여있거나 G, 가솔린, 휘발유라고 쓰여 있는 거도 이쪽으로 빼주시고. 아, 벙커 씨유도 한 통만 챙겨주세요.”

재호의 요청에 하진이 부지런히 운전대를 놀렸다. 널찍한 창고 한쪽으로 유류 통들이 잔뜩 쌓이기 시작했다.

가급적 배합이 완료된 연료를 챙겨가는 게 좋지만, 부족하면 직접 배합하는 방법도 있었다.

연료통들은 차곡차곡 정박지로 이동했고, 사람들은 선선한 바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유류 통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거, 제법 오래 걸리겠는데.”

육지에서 옮기는 거야 차량이 있으니 문제없지만, 문제는 부두에서 어선에 옮기는 게 전부 수작업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어선에도 적재량이 있었기에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

“요한, 하진이다.”

-어, 무슨 일이야.

“생각보다 좀 걸릴 것 같은데. 괜찮아?”

-얼마나?

“음, 한 네다섯 시간?”

-잠시.

무전기 너머에서 침묵이 느껴졌다. 네다섯 시간이면 다른 부분보다 소음으로 시간을 끌고 있는 헬기의 부양시간이 문제였다.

-혁아.

-응?

-헬기로 크게 한 바퀴 돌아서 최대한 이곳에서 멀고 안전한 곳에 착륙해서 대기해.

-알았어.

-그리고 2, 4조는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 들어오는 좀비들 최대한 안 흘리고 막아줄 테니까.

요한의 든든한 목소리에 하진이 씩 웃었다.

“어, 확인했다.”

하진은 무전기를 끄고 낑낑거리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천천히 해도 된다니까 무리하지 마라. 특히 허리 조심하고.”

“형씨.”

“어?”

“우리 돌격대랑 미끼들이 너무 일을 잘해줘서 여기도 좀 한산하니까, 소희랑 정은이를 경계 세우고 남자 여섯이서 짐 나르는 게 어때?”

“잠깐만, 남자 여섯이라니?”

“어?”

“…죽을래?”

세리의 정권 찌르기가 난사됐다.

효과는 미약했다.

“그래 주면 고맙지.”

“형씨들, 이리 와서 우리도 힘 좀 쓰자구.”

정권 찌르기의 맛을 보니 드럼통도 충분히 나르겠다는 스위퍼의 말에 그를 흘기듯 보고서는 세리도 한 손 거들었다.

수색은 착착 진행됐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작전을 짜고 진행한 것에 비해 작업은 순탄했다.

식료품이 든 컨테이너를 찾기 위해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가, 안에 갇힌 채 좀비가 된 시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재호가 어이없이 물릴 뻔한 것을 제외하고서.

시위에 항상 활을 걸고 있던 소희가 재빨리 놈의 머리에 화살을 박아넣지 않았다면,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날 뻔했다.

뒤늦게 합류한 요한이 그 소식을 듣고는 시선으로 재호를 한번 두드렸다.

“체력적으로 지쳐 있을 때가 가장 방심하기 쉬울 때지.”

야리야리한 몸으로 온몸이 땀에 젖어 옷에 하얀 소금기가 일어날 정도로 막노동을 뛰었으니.

요한은 숨을 내쉬고는 고생했다고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들 했어. 복귀하자.”

요한 일행은 신도로 돌아와 한숨 쉰 다음 곧장 다음 날 아침 제대로 군장을 갖추고 육지로 향했다.

미리 사전탐사를 끝마치고 헬기를 이용한 좀비 몰이까지 한 어제의 작전과 달리, 진짜 모험이자 위험지역을 향한 수색.

사람들의 표정에는 긴장과 각오가 역력했다.

“출발하지. 일단 청라랑 송도 쪽 돌 거야. 스쿠터든 바이크든 탈 것 구해서 부평구청으로 간다.”

* * *

“어이, 애송이!”

제법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요한이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부평구청의 정미와 용병단 캠프 사람들이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오랜만입니다.”

“한동안 내 무전도 씹더니, 이렇게 기별도 없이 들이닥치면 돼?”

“무전 넣으라고 했는데, 못 받으셨습니까?”

“애송이야, 급이란 게 있잖아. 급이. 새파랗게 어린 계집애한테 전해 받는 거 말고, 이 자식아. 네가 직접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응?”

말은 그렇게 해도 기분 나빠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등 뒤에서 지척에서 하진, 스위퍼가 철구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 형씨 잘 지냈어?”

“그럼. 이 자식들. 얼굴 좋아 보이네?”

오랜만의 친구를 만나듯이 악수하는 그들 뒤로 깔끔하게 정리된 거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거, 고생 좀 했겠는데.

“그런데 왜 부천시청 쪽 캠프는 안 쓰십니까?”

“아, 거기. 왠지 터가 안 좋아서 말이지. 비어 있진 않아. 새로 들어온 가족재단 여자들이 쓰고 있어. 미스 김은 너 본다고 나온 거고.”

“아, 그렇습니까. 정미 씨, 오랜만이에요.”

“네. 요한 씨, 잘 지내셨죠?”

약간의 어색함과 반가움이 뒤섞였다. 그런 분위기의 온도를 눈치챘는지 노인이 손가락을 꺾어 마시는 시늉을 했다.

“어떻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해후의 맥주 한잔할 테야?”

“괜찮습니다. 금방 이동할 거라서요.”

“매정한 자식. 그래. 일단 들어가자고. 좀비들 냄새 맡고 온다.”

“그러시죠.”

요한은 반가운 인사를 마무리하고선 노인을 따라 이동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던 요한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용병단 캠프의 본대로 가는 도중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갑수 등등 예전에 요한과 함께했던, 캠프 요한의 옛날 구성원들. 요한은 본인도 모르게 지나치다가 눈이 마주쳤고 목을 살짝 움직여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갑수는 대답 대신 노인의 눈치를 봤다. 그러자 노인은 무언가를 허락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만이오.”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몸이 조금 불어 있었고, 얼굴은 살이 빠져 있었다.

“다른 캠프 사람들은…….”

“어이, 누가 대장들 얘기하는 데 끼어들래? 인사만 하라고 인사만.”

“네, 죄송합니다.”

갑수가 금세 꼬리를 내렸다. 놀라웠다. 말 한마디조차 허락을 맡고 해야 한다니. 사람 갱생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는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과거 골칫덩이였던 사람들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저 자식은 네가 보내준 애 중에 재능은 그나마 제일 좋은데, 정신상태가 글러 먹어서 말이야. 아주 뜯어고치는 데 애를 썼지.”

“고생하셨네요.”

“하여튼 처맞아야 말을 들어요, 쯧.”

요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불쌍하거나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신과 함께하던 좋은 시절을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남을지도 모르지만, 용병단 캠프 정도만 되어도 상당히 점잖은 수준이라는 걸 그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거다.

물론 그에 비하면 캠프 요한은 아주 파라다이스겠지만.

노인의 사무실에 들어온 요한은 그가 직접 내려주는 차를 한잔 따라 마셨다.

“중국 쪽 업체랑 거래할 때는 말이야, 이렇게 오너가 직접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게 예의지. 정성이랄까.”

“향이 좋네요.”

요한의 감탄에 노인이 씩 웃었다.

“그래, 서로 연애나 하자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냐.”

곧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노인. 요한도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거래군. 좋아, 필요한 게 뭐야?”

“해군 군함을 운용하는 법이 적힌 문서요. 교보재든, 간행물이든, 기밀문서든 좋습니다.”

요한의 입에서 상상도 못 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노인이 인상을 팍 썼다. 마치 또 무슨 짓을 꾸미냐는 듯.

“해군이라도 털었나 봐?”

“그렇게 됐습니다.”

“대단한 새끼네. 이거, 완전 물건이란 말이지. 너, 내 양자 할래?”

“구할 수 있을까요?”

“고놈 조동이도 지 할 말만 하는 건 여전하고.”

이번엔 진짜로 웃어버렸다.

“군사자료는 못 구하지. 인마. 어디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아니, 하려면 하기야 하겠지만,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 대가를 먼저 들어봐도 되냐.”

“헬리콥터를 타고 드라이브를 시켜드리겠습니다.”

“똥 드세요. 이 자식아.”

노인이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주먹 감자를 쥐어 보였다.

“농담이고요. 중요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정본데.”

“이게 없으면 앞으로 생존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요한의 음성은 확신에 차 있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용병단 노인은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거절하련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가 안 맞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이건 공짜로 알려주시죠.”

“처음부터 내가 들어줄 거라 기대도 안 했구만? 그래, 뭔데.”

“해군기지 위치를 몰라서 국립중앙도서관에 가 보려고 하는데, 혹시 주변에 해군기지나 군사시설이 있는 곳을 아십니까?”

“화성에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있잖아. 거기도 있을 것 같은데? 용산에 합참도 있고. 거기야말로 100% 있겠네. 무슨 중앙도서관이야. 독서 하러 가냐? 똑똑한 줄 알았더니, 빡대가리네, 이거.”

요한은 속으로 한 번 재호의 이름을 탄식 석인 목소리로 불러준 뒤, 노인이 불러준 지명과 이름을 가슴 속에 박아넣었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아, 뭔 짓거리를 꾸미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요한은 그저 슬그머니 웃을 뿐이었다.

“거래하시죠.”

“안 한다고. 힌트 좀 줘라. 나도 줬잖아.”

“인력으로는 막기 어려운 재앙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

“흐음… 재앙이라.”

요한의 힌트에 노인이 이것저것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짚이는 게 없다.

“궁금하시면 저희를 따라오시죠.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단, 저희가 위험해졌을 때, 딱 한 번만 백업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를 보험으로 쓰시겠다? 그만한 가치는 있는 정보겠지?”

“듣지 않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허튼소리를 하는 놈이 아니다. 많은 애송이를 봐 왔지만, 이만큼 알맹이로 꽉 찬 녀석은 본 적이 없으니까. 이 녀석이 온다면 오는 거다. 해군을 털어서까지 대비해야 할 무언가가.

“좋아. 거래는 너희의 바로 뒤에서 백업하다가 위기상황에서 돕는 것, 대가는 우리의 목숨과 비등한 수준의 정보. 맞나?”

“예. 한 가지 더, 여러분께서 위험에 빠지셨을 때, 저희는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매정한 애송이 새끼.”

“죄송합니다.”

“그래서 네가 더 마음에 든다니까.”

노인이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좋아. 아직은 너와 거래해서 후회한 적이 없으니까. 백업 정도는 해 주지. 마음껏 날뛰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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