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요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다고?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
미디어 매체에서나 접하던 상황이 눈앞에 다가오자 좀비가 나타난 것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었다.
원자로 폭발, 그리고 방사선 피폭.
겪어보지 않아도 그 여파나 파급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반격이 불가능한 싸움이라는 것도.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제발 가만히 좀 놔두라고.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 놓은 원흉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은 기분이다.
요한은 미쳐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리나에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다니?”
“말 그대로예요. 발전소가 터지는 꿈을 꿨습니다.”
리나는 격양된 얼굴로 자신이 본 장면을 설명했다. 유난히 짤막했다는 꿈.
이온화 방사선 위험 마크가 그려진 발전소에서 샛노란 불꽃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지만, 누구도 화재를 진압하거나 사고를 막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그 주변에는 시체와 타오르는 불꽃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좀비들뿐.
“아니, 그럴 리가…….”
요한은 부정하려 했다. 그럴 리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로를 폐쇄하는 추세였고, 설령 돌아가고 있는 발전소라 하더라도 좀비가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터질 리는 없었다.
원전은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군사력이 1순위로 투입되는 장소다. 설령 지도부가 사라지더라도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원전 중단이 완료될 때까지 지원병력이 끊임없이 들어갔을 터.
그가 겪었던 회귀 전의 경험에서도, 3년 동안 원자력 발전소가 터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왜?
요한의 머릿속에 폭풍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다 어느 순간 뎅, 하고 경종이 울렸다. 회귀 전과 가장 크게 달라졌던 것 중 하나.
‘설마 좀비의 확산 시기가 빨라진 것 때문인가.’
확실히 좀비 확산이 빨랐다. 변종의 출현도, 감염자가 번지는 속도도, 군사작전이 마비되는 시간까지도. 전부 빨라졌다.
회귀 전에는 원전이 중단될 때까지 군사작전이 이루어졌었지만, 이번에는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심쩍다. 우리나라 군사력이 원전 중단조차 못 시킬 정도로 한심했다고?
그럴 리가 없다.
요한은 고개를 저으며 리나에게 물었다.
“위치는 어딘지 파악돼?”
“Tianwan…….”
“뭐?”
“티안완. 간판을 봤어요.”
“중국?”
“그런 것 같아요.”
“시기는?”
“죄송해요, 그건 알 수 없었어요. 이번 꿈은 너무 짧아서…….”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티안완. 확실한 것은 그녀가 예지를 꿨다는 사실 자체로만 봐도 분명 이곳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이었다.
당황하거나 분노하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먼저.
요한은 곧장 수색조 조장들과 신도 핵심 관리자들을 소집했다. 긴급한 방송이 울려 퍼지고, 갓 깨어난 사람들이 요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부랴부랴 몰려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요한의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는 모양이다.’라는 청천벽력같은 한 마디에 얼이 빠진 얼굴로 그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장소는 티안완, 티안완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
요한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재호였다.
“티안완 발전소는 산둥반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원전 중의 하나죠.”
재호의 대답에 요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산둥반도면, 코앞이 아닌가. 그곳에서 원전이 터진다면 100% 방사능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재호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정말이지, 이렇게 끔찍한 걸 왜 놓치고 있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원전이 터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그저 저희가 눈앞의 생존에 급급해서 놓치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원전은 국가비상사태가 되면 중요시설 1순위의 보호 대상으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정부와 관계자들은 좀비 사태가 터지자마자 원전을 모두 중단시켰을 거예요. 하지만 원전이 완전히 중단되려면 최소 1년, 최대 5년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재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낯빛은 점점 파리해졌다.
“분열을 시작한 우라늄. 그러니까 돌아가고 있는 원자로는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발생하는 열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최소 1년에서 최대 5년까지도 걸립니다. 지금이 아포칼립스가 터진 지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기이니, 초기에 좀비에게 점령된 원전 중 하나가 터질 시기가 됐어요.”
사람들은 마치 수학과 과학 시간에 이해 못 할 이론을 듣는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재호는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원자로 냉각수가 텅 비고 자동화된 디젤엔진이 멈춰 버린 겁니다.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부 좀비가 되어서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자로의 압력은 올라가고 있어요. 중국과 일본, 여기 한국에서도 몇 년 이내에 도미노처럼 발전소가 터지고 말 거예요, 아아!”
요는 이거다. 원자로의 폭발을 막아 줄 안전장치인 냉각수를 갈아줄 직원들이 전부 좀비가 됐고,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화 디젤엔진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멈춰버리면서 결국 관리받지 못한 원전이 터져버리게 되었다는 것.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겁니다.”
그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그 의중만큼은 알 수 있었다. 결국, 폭발은 현재진행형이고 막을 수도 없다는 것.
사람들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공포.
“안전지역은?”
“없어요. 최소한 국내에서는 어딜 가도, 아주 깊은 지하까지 땅굴을 파 들어가지 않는 한…….”
사람들이 탄식을 숨기지 못했다.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았으나, 요한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 또한 마찬가지의 심정이었기에.
하지만 그는 순순히 이 결과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살아남는다.
어떠한 시련과 위기가 닥치더라도, 이 빌어먹을 종말이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조여 오더라도,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종말은 자신에게 체크메이트를 선언했다. 패배를 강요했다.
너희가 얼마나 발버둥 치든 끝은 정해져 있다. 그저 암울한 회색 배경에 떠오른 게임 오버라는 글자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고.
엿이나 처먹으라지.
숨통이 끊어져 마지막 한 줌의 숨을 내뱉을 때까지, 벌레처럼 발버둥 쳐 주마.
“해외는?”
“……네?”
“국내는 안전하지 않다면서, 국외는 어떤데.”
“어, 그, 잠시만요!”
재호는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달려나갔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는 십 분이 지나자 그가 자신의 도서관에서 세계지도를 꺼내 왔다.
돌돌 말려 있던 세계지도를 길게 펼친 후 양쪽 끝에 고정쇠를 올리고 입으로 보드마카 뚜껑을 땄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안전지역이 있어요. 방사능이 세계에 퍼져도 안전하려면 무풍지대로 가야 합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남반구까지요.”
그런 다음 그는 세 개의 지역에 동그라미를 쳤다.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가장 안전한 곳은 최근 미국에서 방사능 안전지대로 선포한 하와이. 혹은 뉴질랜드나 호주 남부. 하지만 이곳은 너무 먼데… 혹시, 해외에 좀비로부터 안전한 국가가 있을까요?”
“몰라. 하지만 없다고 봐야지. 만약 이 난리가 국내와 아시아에 국한된 거라면, 진작에 미군들이 국내로 들어오고도 남았을 테니까.”
“그렇네요. 미국은 절대 자국의 군인들을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조국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은 미군의 강함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그리고 미국은 역사적으로 그런 군인의 신뢰를 지켜왔다.
만약 이 사태가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만 터진 거라면 주한미군을 수습하기 위해 상공에 수많은 미국 전투기들이 떠다녔을 터다.
하지만 그런 희망찬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 또한 무너졌거나, 최소한 해외 파병된 자국민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
중국과 미국까지 이 사태에 휩쓸렸다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 사태가 벌어졌을 공산이 컸다.
“그러면 대안이 없어요. 해로를 통해 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피소는 이 셋. 그중에서도 하와이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게 장단점이고, 뉴질랜드나 호주는 나라 전체에 아직 좀비들이 남아있겠지만, 물자를 구하는 건 하와이보다 수월할 거예요.”
“거리는?”
요한의 질문에 재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일본을 돌아 하와이까지 간대도 8천km는 가야 하고, 뉴질랜드는 그보다도 멀어요. 저런 코딱지만 한 어선에 사람들을 다 태우기도 어려울뿐더러, 만약 욱여넣고 간다고 해도 제주도도 못 벗어나서 퍼져버리고 말 거예요.”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절망적이었기에, 재호는 승조원의 부재까지 지적하진 않았다.
항해사도 없고 승조원도 없는 수천 킬로미터의 항해. 신종 자살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오히려 방사선 피폭보다 먼저 죽게 될 거다.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야 한다. 항해 중 방향을 조금이라도 잘못 잡으면 그대로 표류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한 번 표류가 시작되면 그다음부터는 정말 처절한 식량난과의 싸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저런 어선으로는 기대도 안 해. 내가 기대하는 건 우리가 노획한 군함이야. 어때, 군함을 움직일 수 있다면 가능할까?”
“네?”
“저 군함은 어떠냐고. 연료만 충분하다면 갈 수 있겠어?”
생각지도 못했던 요한의 질문에 재호의 머릿속이 핑핑 돌아갔다. 군함. 군함이라.
확실히 군함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요한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부족한 항해술도 자체 GPS나 예비용 레이더 장비를 활용하면.
“확실히 군함이라면… 이론상으론 가능해요. 저 함정이 인천급 호위함이 확실하다면, 항속거리랑 원료 탑재량을 따졌을 때 아슬아슬하게 하와이까지 갈 수 있을 거예요.”
“인천급 호위함이라며?”
“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장비들이 조금 달라서요. 대장님이 사용한 미스트랄 같은 경우에는 울산 포항급에나 들어가 있는 건데. 그리고 원래 인천급에 들어가는 대잠헬기도 안 보이고. 긴가민가해지고 있어요.”
재호의 말이 끝나자 루카가 끼어들었다.
“저거 인천급 맞아. 미스트랄은 추가된 장비고. 게다가 저건 해군용 미스트랄이 아니야. 공군용이지. 그리고 헬기야 뭐, 누가 들고 튀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마치 나처럼.
루카의 중얼거림에 재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아슬아슬하지만 가능은 합니다. 다만 지금 인력으로 저 함정을 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가능하다. 운용을 할 수 있다면.
사실 어처구니없는 전제조건이었지만.
“희박할 겁니다… 솔직히 무리예요.”
“…….”
“해군을 한 명이라도 살려둬야 했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스위퍼가 요한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에 답한 것은 루카였다.
“어차피 몇 명 살려뒀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을 거야. 함정 운용은 철저하게 특기 분업화돼서, 자기 특기가 아니면 대부분 문외한이거든. 부사관이든, 장교든.”
사람들끼리 갑론을박하는 사이, 요한은 깊은 사색에 빠져 있었다. 마음은 굳힌 상태였다.
설령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한다.
요한은 각오를 다진 후 눈을 형형하게 뜨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방향을 정해주지.”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비참한 현실, 가혹한 상황 속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라고 한다면, 자신들을 지켜준 든든한 리더에 대한 신뢰. 그 신뢰가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모든 작전은 다 취소야. 변종 피콜로든 영종도의 군부대든 뭐든 말이야. 지금부터 우리의 초점은 방사능 오염지대에서의 탈출로 잡는다. 저 군함을 타고 해외로 뜰 거야.”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 요한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긴장이 풀린 스위퍼와 세리가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런 걸 요즘 애들 말로 탈조선 각이라고 하지?”
“요즘 애들이라고 하니까 진짜 아저씨 같아, 오빠.”
요한이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잡담하지 말라는 뜻.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었다.
“리나.”
“예. 요한 님.”
“전에 한 번 말했었지, 인류에 대한 적의를 멈추고 종의 유지를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고.”
“네. 그랬었지요.”
“미안하지만 역시 그런 건 나랑 맞지 않아.”
리나의 빤한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
“인류 구원의 임무 따위를 맡기려면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아왔다는 이야기야. 내 목적은 나의 생존. 그리고 여기 있는 내 사람들의 생존. 그뿐이니까.”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감동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요한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을 맞추며 눈으로 외쳤다.
날 믿어. 내가 캐리한다.
그리고 사람들 또한 눈으로 대답했다. 스위퍼만 빼고.
“근데 형씨들, 다들 비자는 있지?”